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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고산지 와인의 ‘명품 경쟁’

남미 고산지 와인의 ‘명품 경쟁’

"아르헨티나에 건너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그 엄청난 잠재력을 보고 제 인생을 와인에 걸기로 결심했죠. 개인적으로 프랑스 특급 와인보다 아르헨티나 와인에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와인나라 아카데미’에서 열린 와인 시음회에서 만난 안느 퀴벨리에의 말이다. 그는 프랑스 머독 지역의 2등급 와인 레오빌 푸와페르(Leoville Poyferre)의 소유주인 퀴벨리에 가문의 일원이다. 그는 퀴벨리에 가문이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현지에서 ‘퀴벨리에 로스 안데스(Cuvelier Los Andes)’라는 양조장을 세울 때 본격적으로 와인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아르헨티나 와인을 싸구려 와인으로만 여긴다”며 “지금 아르헨티나에선 프랑스 명품 와인 못지 않은 고품질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회사가 아르헨티나에서 만든 ‘그랑 말벡 2005년산’은 미국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에게서 100점 만점에 94점, 영국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에게서 20점 만점에 18점을 받았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 와인에 대한 인식이 저렴한 대중 와인에서 고급 와인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미국 와인전문지 ‘와인스펙테이터’는 얼마 전 칠레 와인회사 카사 라포스톨레가 만든 ‘클로아팔타 2005년산’을 2008년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와인이 세계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가격 대비 높은 품질 때문이었다.

매년 기후가 따뜻하고 건조해서 포도가 잘 익고 농약이나 살충제를 사용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좋은 자연환경은 대중적 인기를 가져온 반면 명품 와인이 생산되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포도 재배자들이 천혜의 자연조건 때문에 노력을 등한시한 때문이다.

칠레의 경우 전통적으로 수출 주도 시장이다 보니 가격경쟁력 제고에 주력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거대한 국내 시장의 소비자들이 최고품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남미의 최고급 와인은 가격이나 내수 시장에 눈높이를 맞추는 대신 품질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남미 와인의 품질 향상을 주도하는 이는 아르헨티나의 니콜라스 카테나와 칠레의 아우렐리오 몬테스, 그리고 세계적인 와인 컨설턴트인 미셸 롤랑이다.

특히 롤랑은 남미의 수많은 양조장을 컨설팅해줄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 직접 와인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가 현지에서 프랑스 와이너리 오너 등 6명의 파트너와 함께 만들고 있는 ‘클로 드 로 시에테(Clos de los Siete)’는 아르헨티나 와인의 고급화를 주도했다. 이들의 연구개발 노력이 남미 고유의 환경을 토대로 이뤄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남미의 와인 선구자들은 다른 나라들이 만드는 와인이 아닌, 자신들만이 잘 만들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자 했다. 덕분에 호주산 ‘시라즈(Shiraz)’ 와인처럼 칠레산 중에선 ‘카르메네르(Carmenere)’, 아르헨티나산 중에선 ‘말벡(Malbec)’ 같은 와인이 주목을 끌게 됐다.

최근엔 ‘최고’를 향한 경쟁이 더욱 뜨거워졌다. 요즘은 아르헨티나 양조사들이 경쟁적으로 고산지 재배를 지향한다. 어떤 양조사는 레이블에 알코올 도수뿐 아니라 포도원 해발 고도까지 표시한다. 좋은 포도밭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일교차이기 때문이다. 남미의 포도원들은 대부분 높은 고도에 위치해 저녁 공기가 시원하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으로 포도원의 고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포도밭의 평균 고도가 900m에 이른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몬테벨로 포도밭이 약 400∼800m 높이에서 재배되는 것과 비교된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포도원은 보데가 콜로메(Bodega Colome) 양조사가 운영하는 알투라 맥시마(Altura Maxima) 포도원이다.

현기증이 날 것 같은 3000m 높이에 있다. 이 포도원은 나파밸리에 있는 헤스 컬렉션(Hess Collection) 포도원의 주인인 스위스 기업가 도널드 헤스가 소유하고 있다. 칠레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칠레에서 고급 와인 산지로 주목받고 있는 곳은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과(해발 6960m) 산자락에 위치한 아콩카과 밸리.

칠레 와인의 고급화를 선도해 온 세냐의 포도원이 이곳에 있다. 최근 국내에서 수입되기 시작한 비냐 산에스테반(San Esteban)의 인시투(In Situ)는 아콩카과에서도 가장 높은 고도인 900m에서 생산된다. 인시투 관계자는 “국내에서 고랭지 채소의 품질이 뛰어난 만큼 와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필자는 포브스코리아 기자이며 와인 평론가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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