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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금융위기 불씨 “눈여겨봐라”

한국판 금융위기 불씨 “눈여겨봐라”

GM대우 부평공장.

세계 불황의 늪이 깊다. 경기침체의 원인이 무엇이고, 불황 타개책은 또 무엇인지조차 가늠하기 쉽지 않다. 혹자는 경기순환적 불황이 아니라 경제의 근본구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비관론을 내놓는다. 이번 불황이 결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현재의 경기 불황을 새 경제팀의 힘과 지략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조언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게 불황극복 비책이라고 생각했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라는 지적이다. 좌 원장은 “이번 불황은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며 “간단한 처방전만으로 불황이 타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윤증현 경제팀은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강만수 경제팀이 범했던 독단적 신념(도그마)에 또다시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봉균 전 재경부 장관도 “윤증현 경제팀이 해결해야 할 과제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점도 많다”고 지적했다. 윤증현 경제팀이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1. 크라우딩 아웃 후폭풍


-선진국 대규모 국채발행 후 경제상황 대비해야


글로벌 금융위기 심화에 세계 각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입은 줄고 세출은 늘어날 전망이다. 대규모 적자재정의 편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올해 선진국의 재정적자에 따른 국채발행은 3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만 2조 달러의 국채발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윤증현 경제팀이 경계해야 할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선진국들의 재정확대책이 초래할 수 있는 제2의 금융충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3조 달러에 달하는 선진국 국채가 발행되면 민간 금융시장의 자금난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공공자금이 민간에서 융통되는 자금을 쓸어 담는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크라우딩 아웃(Crowding Out) 효과다. 김준경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상황은 은행들이 외채의 만기 연장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며 “만약 외채연장이 곤란해지면 외환보유액의 감소가 불가피하고, 그렇다면 원화가치가 평가절하되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은 또다시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외환보유액의 효율적 관리뿐 아니라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장치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 저축은행 부실


- 프로젝트 파이낸싱 ‘빨간 불’ 간과했다간 낭패


저축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다. 원인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부실에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전체 PF 규모는 15조원을 훌쩍 넘는다. 이 가운데 10분의 1 수준인 1조5000억원가량은 악화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의 부실 문제를 이번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실 저축은행의 부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新)예보기금이 출범한 2003년부터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김준경 교수는 “참여정부는 당시 공적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실 저축은행을 정리하지 못했다”며 “이번 정부도 저축은행에 대한 정책방안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저축은행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미분양 사태 등으로 빨간 불이 켜진 건설업체의 문제가 저축은행과 맞물려 있다. 저축은행 부실을 처리하지 않고선 건설업체의 구조조정, 한발 더 나아가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는 어렵다. 김 교수는 “부실 저축은행의 고금리 수신경쟁을 서둘러 억제 및 지도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저축은행의 부실을 키울 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금리수준을 높이는 역효과까지 유발해 금융부실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윤희 한국조세연구원장도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주택부문에서도 경제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며 “특히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주택담보 한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3. 묻지마 신용보증 확대


-잠재적 부실기업 지원은 ‘제2 금융위기’ 진원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돈맥경화’ 현상을 신용보증이라는 수단으로 해소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다. 하지만 생존가능성을 상실한 기업에 대한 신용보증은 경기침체를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다. 이른바 ‘잠재적 부실기업’에 대한 신용보증 및 만기연장 대출행태는 다른 건전한 기업의 투자활동 및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이런 기업이 퇴출되는 것도 직간접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다.

윤증현 경제팀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다. 한국경제의 ‘묻지마 신용보증’ 문제는 위험수위를 훌쩍 넘어섰다. 2000년대 이후 신용보증기구가 신용보증 및 장기보증 비중을 늘리는 과정에서 잠재적 부실기업에 대해서도 신용보증 또는 만기연장을 해줬기 때문이다.

자산규모 70억원 이상의 외부감사 대상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3년 연속 갚지 못한 기업 비율이 전체의 15%에 육박하는 것은 묻지마 보증의 폐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김 교수는 “생존가능성을 상실한 기업에 대한 신용보증의 연장은 해당 산업에서의 공정한 경쟁구도를 파괴함으로써 시장의 정상적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4. 무리한 정책추진


- 시급하지 않은 정책 밀어붙이면 오히려 ‘毒’


그야말로 세계 불황이다. 1929년 경제 대공황 이후 최대 환란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팀은 경기회복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선순위 또는 효과 면에서 시급하지 않은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한국경제에 ‘독(毒)’이 될 수 있다.

이건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가령 금산분리 완화, 금융공기업 민영화 등 정치적 여건이나 시장상황에 비춰 조기추진이 바람직하지 않은 사안이 많다”며 “적어도 올해부터 내년 상반기까진 모든 초점을 경기회복에 맞춰야 세계 불황을 헤쳐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태준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조급하게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정책집행을 한다든지, 한 건 위주의 정책을 발표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 역시 “논란의 소지가 큰 금융규제의 무리한 변경은 금물”이라며 “충분한 안전장치 또는 사회적 합의 없이 논란의 소지가 큰 제도변경을 강행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5. 렌트 시킹


-정치적 이익추구 해소 못하면 갈등 초래


건설부양책을 쓰면 건설업계를 위한다는 불만이 나오게 마련이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 이른바 ‘땅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며 비판이 쏟아진다. 여기에선 관련 정책이 실제로 필요한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를 경제용어로 ‘렌트 시킹(rent seeking)’이라고 한다.

앤 쿠르거와 고들 둘릭이 고안한 렌트 시킹 이론은 정치적 수단에 기초한 이익 추구 활동을 말한다. 시장에서의 이윤추구 활동과는 구별된다. 이를테면 관세처럼 정책목표에 따라 부가되는 반사이익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렌트 시킹으로 인한 사회갈등은 역대 정부에서 모두 나타났다”며 “하지만 지금은 불황을 함께 극복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렌트 시킹은 생산적이지 않은 논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염재호 교수는 또 “관련 정책이 왜 필요한지, 무엇 때문에 집행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숱한 현안을 처리하는 데 급급해 밀어붙이기식 정책입안, 집행을 했다간 사회갈등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서병수 국회 재정위원장은 “정부정책의 성공 여부는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따라 결정된다”며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도 국민과 함께하지 못하면 결국 실패한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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