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의 미래는 ‘블루’?
블루레이의 미래는 ‘블루’?
삼성전자의 블루레이 플레이어(사진 맨 앞)와 디스크, HD캠코더, 그리고 HDTV. |
은행원 최종산(44)씨는 집 거실에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 TV는 42인치 고화질(HD) PDP 제품. 여기에 DVD 플레이어와 입체음향 시스템을 연결했다. 최씨는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DVD로 영화를 즐기곤 한다. 그는 “당장은 아니지만 DVD 플레이어를 블루레이 플레이어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반한 이유는 화질. 그는 “백화점 매장에서 블루레이와 DVD를 나란히 놓고 영상을 보여줬는데, 블루레이 화질이 DVD보다 월등했다”고 말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언제 구입할지 결정하지 못한 건 “콘텐트가 많지 않아서”다. 블루레이 플레이어는 지난 몇 년간 치열한 싸움 끝에 HD DVD를 제압하고 차세대 영상기기 표준 자리를 차지했다.
VHS 방식이 베타막스를 제치고 표준이 된 뒤 비디오 시장이 급성장한 것처럼 블루레이 시장도 장밋빛으로 펼쳐질 것으로 기대됐다. 블루레이 디스크는 DVD보다 데이터를 5배 이상 저장하고 화질은 5배 뛰어나다. 그뿐 아니라 초고음질 음향을 제공한다. 시장조사 회사 TSR은 지난해 낸 자료에서 세계 블루레이 플레이어 시장이 2007년 176만 대에서 2008년 535만 대로, 올해엔 1377만 대로 쑥쑥 성장하리라고 예상했다. 반면 DVD 플레이어 시장은 2007년 1억3691만 대를 정점으로 연간 20~30%씩 줄어들 것으로 봤다.
블루레이 플레이어 시장 규모 아직 불확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세대 블루레이 플레이어 BD-P1500을 출시했다. 가격은 39만9000원. 지난해부터 DD300 모델을 79만9000원에 팔고 있는 LG전자는 올해 상반기 중 신형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블루레이 플레이어 시장 규모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제조업체들이 판매실적을 발표하지 않는 데다 시장조사 회사도 집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시장이 초기 단계이고 본격적으로 형성되려면 시일이 더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선 최종산씨가 지적한 대로 국내엔 즐길 콘텐트가 많지 않다. 현재 세계 시장에는 블루레이 타이틀이 1000여 개 나와 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을 겨냥해 한글 자막을 넣은 타이틀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디지털 기기 전문 칼럼니스트 서범근씨는 정확한 숫자는 아니라며 “한글 자막 타이틀은 50여 개에 불과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더욱이 국내 시장에 타이틀을 공급할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속속 철수해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21세기폭스와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소니픽처스에 이어 지난해엔 워너브러더스까지 한국 시장에서 발을 뺐다.
워너브러더스는 국내 시장에 타이틀을 내놓지 않는 대신 휴대전화나 인터넷TV(IPTV)를 통해 영화 콘텐트를 공급하고 있다. 이들 할리우드 영화사는 국내 타이틀 시장에서 철수한 이유로 불법 다운로드를 지목했다. 아무리 저가에 타이틀을 내놓아도 불법 다운로드를 당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불황 한파가 전세계를 덮치는 바람에 막 싹을 내민 블루레이 시장이 얼어붙게 됐다. 불황은 블루레이뿐 아니라 모든 시장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그렇다면 블루레이 시장은 당분간 움츠러들었다가 경기가 풀리면서 비약적인 성장세를 구가할까?
한 시장조사 업체 관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익명을 전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타이틀을 소장하고 여러 차례 감상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타이틀을 외면하고 인터넷에서 영화를 즐기는 추세는 비디오·DVD 대여점 수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2007년 기준 서비스업 부문 통계조사 결과’를 보자.
국내 음반·비디오 대여업체 수는 2007년 말 3289개로 전년 말 4406개보다 약 25% 감소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한 데다 IPTV라는 합법 채널을 통한 영화 콘텐트 공급이 새로운 위협 요소로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KT를 필두로 현재 SK브로드밴드, LG텔레콤 등이 HD급 화질의 IPTV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케이블방송도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HD급 화질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중이다.
인터넷 공세 거세도 블루레이 시대는 온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올해 초 ‘블루레이의 흐릿한 미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터넷을 통한 영상 서비스의 등장으로 “모든 종류의 디스크가 구닥다리가 될지 모른다”는 전망을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 시장조사·컨설팅 업체인 엔드포인트 테크놀로지스의 로저 케이 사장은 극단적인 비관론을 내놓았다.
케이 사장은 “인터넷을 통해 비디오를 보는 등 디지털 방식의 직접 전송수단이 몇 년 안에 디스크를 완전히 몰아낼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드웨어의 보급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소프트웨어가 별로 없는 초기엔 하드웨어가 잘 팔릴 수 없다. 그러다 소프트웨어가 많이 깔리면서 하드웨어의 활용도가 커지고, 하드웨어가 활발히 나가기 시작한다.
수요 증대로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하드웨어 가격이 떨어진다. 이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해당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블루레이 시장이 커지려면 플레이어와 타이틀이 이런 선순환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하드웨어-소프트웨어와 달리 블루레이에서는 인터넷과 케이블이 소프트웨어 축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의 공세가 거세다 해도 블루레이 시대의 도래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과거 DVD 플레이어의 초창기 판매 속도보다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디지털 칼럼니스트 서범근씨는 “블루레이와 DVD의 화질 차이는 비디오와 DVD의 차이만큼이나 확연하다”며 “평면 HDTV가 더 보급되고 저렴해지면 블루레이가 차차 인기를 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IPTV 프로그램이 모두 HD 화질로 제작·방송되는 것은 아니다. 케이블TV 방송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케이블 등 네트워크를 상대로 한 블루레이의 경주가 이제 막 시작된 단계라는 얘기다.
소니·도시바 혈전…도시바 HD DVD 포기로 소니 장악 블루레이가 표준으로 자리 잡기까지 표준전쟁에서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맹주는 소니였고, 반대편 진영인 HD DVD는 도시바가 이끌고 있었다. 두 진영에는 세계 주요 전자업체 외에 콘텐트를 공급할 영화사들이 참여했다. 표준전쟁의 포성은 2000년 10월 소니가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전신을 내놓으면서 울렸다. 도시바는 이에 맞서 2002년에 HD DVD의 전신을 발표했다. 두 맹주는 전자업체와 콘텐트업체들을 각각 자신의 진영으로 규합하면서 세력을 불려나갔다. 두 진영은 표준 통합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도 했지만 협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오랜 싸움은 지난해 2월 기술과 세력에서 밀린 도시바가 HD DVD 사업 포기를 선언하면서 종료됐다. 블루레이가 DVD의 ‘계승자’로 확정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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