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My Way My Life ] “한국의 우주 강국 비상을 꿈꾼다”

[My Way My Life ] “한국의 우주 강국 비상을 꿈꾼다”


1981년은 미국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역사적인 1차 우주비행에 성공한 해다. 그해 4월 12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컬럼비아호가 발사되는 순간, 온 인류가 숨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김승철(47) 대한항공 항공기술연구원 우주개발팀장도 그 발사 장면을 TV로 지켜보고 있었다.

발사대를 성공적으로 출발한 우주선은 54시간 20분에 걸친 우주비행을 마치고 4월 14일 지구로 귀환했다. 젊은 청년의 가슴속에 항공우주산업의 맹아가 움트는 순간이었다.

“당시 컬럼비아호의 발진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대단한 혁신이었어요. 그 전까지 인간이 탑승한 우주선은 모두 한 번밖에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엄청난 예산과 자원을 낭비했거든요. 컬럼비아호는 오비터(orbiter: 우주선), 고체연료, 로켓부스터를 모두 재사용하고 외부연료탱크만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시스템이었어요. 웅장하고도, 역동적인 본체가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아, 저 길이 바로 내 길이다.’ 이런 확신이 들더라고요.”

우주에 대한 그의 동경은 사실 더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때 별자리 공부에 흥미를 느꼈고, 우주의 형상과 구조, 규모에 관해 관심을 쏟았다. 그가 항공 엔지니어에 입문해 우주개발팀장이란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마음 한편엔 중학교 시절 그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저 광활한 우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열망을 안고 서울대 항공공학과에 입학했지만 당시만 해도 학과 커리큘럼엔 우주와 관련된 과목이 거의 없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우주공학, 우주산업에 관한 한 척박한 때라 교수는 물론 강좌나 책도 드물었던 시절이죠. 그래서 대학 시절 우주에 대해 배운 기억이 별로 없어요. 항공공학과에 구조역학은 있었지만 우주나 천체 역학은 없더라고요.”

부친은 그런 김 팀장에게 법학과 진학을 권했다. 중·고 시절부터 인문계 과목보다 수학과 과학에 푹 빠져 살던 그의 귀에 부친의 말이 들릴 리 만무하다. 그는 물질의 세계, 수의 세계, 정교한 시스템의 세계에 열광했다. 거기엔 묘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있었고, 그 아름다움이 늘 그를 취하게 했다.

“서울대 항공공학과에 진학한 후에도 아버지의 권유는 그치지 않았어요. 공대에서도 법학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식이었죠. 물론 불가능하진 않지만 제가 가고 싶은 길은 아니었습니다. 요즘처럼 이공계 학문을 공부한 전문 변호사가 각광 받는 시절도 아니었고요. 대한항공에 입사한 뒤 딱 한 번 마음이 흔들렸던 적이 있긴 했어요. 학창시절 나보다 공부 실력이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좋은 학과를 나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봤을 때죠. 엔지니어의 길이 왠지 초라해 보여 사법시험을 준비하겠다고 잠시 한눈을 팔았죠.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지요.”

1986년 그는 대한항공에 입사해 항공우주사업본부에 배치됐다. 항공우주사업본부는 처음엔 특수사업부란 이름으로 출범했다. 오래전 박정희 대통령의 방위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반영된 부서라고 했다. ‘항공우주’이란 말이 붙어 있기 했지만 실제로 우주와 관련된 사업은 전무했다.

1976년 만들어진 이 부서는 군용헬기 500MD, F5 제공호를 조립하거나 군용항공기를 정비하는 일을 했다. 1989년 카이스트가 영국으로 기술연수 요원을 파견하면서 한국의 본격적인 우주산업 연구가 시작됐지만 당시 대한항공엔 장기적인 비전만 있었을 뿐 우주산업 분야의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없었다.

“학과 동기생 중 절반 이상은 공부를 계속했고 3분의 1정도는 기업체에 취직했는데 대한항공에 두 명이 입사했어요. 공대생들은 대부분이 비행기 정비 관련 부서를 지원했지만 저는 뭔가를 만드는 데 인생을 걸고 싶었어요. 제가 설계한 도면이 실제 부속이나 구조물로 태어났을 때 느끼는 희열은 굉장하죠. 저는 창조자가 되고 제가 만든 물건들은 사랑스러운 피조물이라고 할까… 바둑에 빠진 사람이 한밤중에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이 바둑판으로 보이듯 그때 저는 사물을 볼 때마다, 그 사물의 제작 공정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어요. 제가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것도 공부가 지겨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상물림으로 있기보다는 현장에 있는 게 좋았고 움직이는 게 좋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민항기 수출사업 분야의 치공구 기술과 개발에 매달렸다. 치공구란 기계의 가공, 조립, 검사 등에 필요한 보조 장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원통형 공작물에 구멍을 뚫으려면 그곳을 미리 부시(원통형의 고정구)와 베이스, 위치결정구, 클램프 등을 이용해 드릴 작업에 필요한 치공구를 설계해야 한다. 제아무리 숙련공이라 해도 정밀하게 제작된 치공구를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MD-11의 스포일러를 만들어 보잉사에 합병된 맥도널드더글러스에 납품했어요. 스포일러는 비행기 날개 위에 달린 일종의 항공역학적 제동장치입니다. 비행 중 방향을 바꿀 때 보조키 역할도 하지요. 복합재료 구조물로 설계개발하고 우리회사 최초로 미국 FAA인증을 받아 납품한 의미 있는 성과였습니다. 제공호도 장비는 수입했지만 부품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 조립해 공군에 인도했어요.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어요. 휴일도 거의 못 쉬고 야근을 밥 먹듯 했지만 피곤한 줄 몰랐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퇴사한 선배 한 분이 저의 ‘치공구’ 시절 은사였는데 모든 것을 그분한테 배웠지요. 두 명의 일 중독자가 배짱이 맞다 보니 일을 하면서 신명이 났어요.”

자신의 일에서 흥미를 느끼다 보니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일을 통해 자신의 충일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회사도 그가 창출한 성과를 인정했고, 승진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누락된 적이 없었다. 특히 1995년에서 96년까지 그는 직장생활의 절정기를 누렸다. B717 노즈 섹션(Nose Section) 치공구 개발 총괄을 맡았을 때다.

“노즈 섹션은 파일럿이 앉아 있는 데서 여객기의 문 직후까지의 부분을 말합니다. 설계, 제작이 굉장히 난해한 부분이죠. 동체는 통으로 일직선이라 오히려 쉬워요. 그런데 노즈 섹션은 유선형이라 조립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보잉과 맥도널드더글러스 등 메이저사들이 이 노즈 섹션을 자체 제작했는데 우리가 120여대분의 납품 계약을 했습니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치공구와 부품을 개발했죠. 그런데 설계 과정에서 메이저사의 설계에 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B717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는 메이저 본사의 도면상의 데이터가 실제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외형 모델을 받아 컴퓨터 3D상으로 부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메이저사의 설계 데이터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결국 대한항공은 리모델링을 하다시피 해서 노즈 섹션을 재설계해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개발한 B717 노즈 섹션이었지만 중도에 수출이 중단됐다. 초기 투자비용이 많아 200∼300대 정도 팔아야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 열심히, 그리고 창조적으로 일했던 시절이었다”고 김 팀장이 그 시절을 돌이켰다. 최근 들어 그가 이끄는 우주개발팀은 정부가 항공우주연구원을 통해 추진 중인 한국형우주발사체(KSLV-1) 및 액체로켓 엔진개발사업의 체계종합사업을 담당한다.

이 사업의 핵심에 해당하는 발사체는 KSLV-1 개발을 마쳤고, KSLV-2 개발이 예정돼 있다. 러시아와 공동 개발한 KSLV-1은 100㎏ 내외의 소형위성(과학기술 2호 위성)을 근지점 300㎞ 원지점 1,500㎞의 지구 타원궤도에 올리는 것이 목적으로 다가올 6월 고흥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다.

“발사체 개발에 대한 찬반 양론이 팽팽합니다. 반대론자들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발사체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죠. 이웃나라 발사체를 쓰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 발사체를 이용하면 위성의 시스템 정보가 유출됩니다. 국가안보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죠. 또 발사체를 개발하면 우리가 위성을 띄우고 싶을 때 언제든 발사가 가능하게 됩니다. 당장 소요되는 비용보다 국가의 미래 전략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 팀장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우주산업이 정권의 부침과 상관없이 장기적 비전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KSLV-1의 발사 계획이 2005년 이후 세 차례나 연기된 데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러시아와의 기술보호조약 발효 지연과 중국 쓰촨성 지진으로 인한 부품공급 지연 등이 이유다.

“한국은 로켓기술 핵심인 액체로켓 엔진기술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어요. 2018년 개발 예정인 KSLV-2는 액체로켓 엔진입니다. 아마 2조원 가까운 전체 예산 가운데 절반가량이 액체로켓 엔진 개발에 사용될 겁니다. 시간과 돈이 관건이지만 결국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때가 되면 발사체의 상업적 이용도 가능해지고 한국이 그동안 꿈꾸었던 우주강국으로 부상하게 되는 겁니다.”
벌써 6년째인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지 못했지만 김 팀장은 더 큰 목표를 위해 감내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우주산업이 달 탐사선을 쏘아 올리고, 우주의 심원을 탐사하기까지 제 열정과 경험과 지식을 쏟아 부을 겁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문어발’ 자르는 카카오, 드디어 멈춘 M&A…투자 활동, 지출→수입 전환

2'퇴사-취업' 반복하면...실업급여 '최대 50%' 삭감

3치킨값이 금값...배달비 포함하면 1마리에 3만원

4"대화 의지 진실되지 않아"...의대생단체, 교육부 제안 거부

5부광약품 "콘테라파마, 파킨슨병 치료제 유럽 2상 실패"

6"불황인데 차는 무슨"...신차도, 중고차도 안 팔려

7큐라클 "떼아, 망막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반환 의사 통보"

8'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논란에...정부, 하루 만에 발표 수정

9‘검은 반도체’ 김, 수출 1조원 시대…티맥스그룹, AI로 ‘품질 관리’

실시간 뉴스

1‘문어발’ 자르는 카카오, 드디어 멈춘 M&A…투자 활동, 지출→수입 전환

2'퇴사-취업' 반복하면...실업급여 '최대 50%' 삭감

3치킨값이 금값...배달비 포함하면 1마리에 3만원

4"대화 의지 진실되지 않아"...의대생단체, 교육부 제안 거부

5부광약품 "콘테라파마, 파킨슨병 치료제 유럽 2상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