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머니 속 개인비서
호주머니 속 개인비서
개인비서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식사를 어디서 해야 할지, 열차가 언제 출발하는지, 남편 생일선물을 어디서 사야 좋을지 즉석에서 알려주는 도구가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컴퓨터 과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지만 기술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제는 휴대전화로 못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다. NTT 도코모를 비롯한 일본의 이동통신사들은 이제 휴대전화기에 두뇌까지 달아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GPS)과 인터넷 접속 외 여러 가지 기능을 스마트 소프트웨어에 한데 묶어 각 개인에게 맞춤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비서가 하는 바로 그런 일을 말한다. 도코모는 사용자 선호도, GPS, 구매 정보, 트위터 피드(단문 메시지 송수신 시스템) 대화, e-메일, 개인 블로그 등등 각종 출처에서 나오는 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도코모의 프로젝트 책임자 사토 가즈오(佐藤和雄)에 따르면 “사용자의 생각을 읽는 휴대전화”의 개념이다.
도코모의 구상에 따르면 이 장치는 우리의 생활양식에 자연스럽게 녹아 드는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통한 온갖 정보의 이용을 가능케 해준다. 예컨대 어느 일요일 오후 쇼핑이나 하려고 도쿄의 긴자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의 휴대전화에 탑재된 소프트웨어가 당신이 서예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전시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휴대전화는 몇 가지 일만 기계적으로 하던 시대에서 이제 사용자에게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시대로 바뀐다”고 도코모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 야마다 류지(山田隆持)가 말했다. 도코모는 지난해 11월 개인비서의 시험판을 선보였다. ‘아이콩시어’(‘전자 관리인’이라는 뜻)라는 이 제품은 사용자에 관한 정보와 200여 정보제공업체의 자료를 토대로 사용자가 관심을 보일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지하철 고장, 교통사고, 지진 소식을 알려주고 지역행사와 콘서트 소식을 잊지 않게 챙겨준다. 맥도널드와 기타 레스토랑, 수퍼마켓, 여행사, 영화배급사의 디지털 할인쿠폰을 자동으로 갱신한다. 휴대전화기 화면의 알림을 보고서야 DVD를 오늘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이나 구하기 어려운 콜드플레이(영국 록밴드)의 공연 입장권 판매가 방금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500달러짜리 단말기를 구입하고 월 2.3달러의 사용료를 내야 하는 이 서비스는 아직 사용자의 생각을 읽지 못하지만 일단 첫 단계에는 들어섰다. 아이콩시어는 지금까지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두 달 동안 거의 50만 명이 서비스를 신청했다. 물론 도코모가 신규 이용자를 계속 모으고 사람들이 원하는 정교한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잘하면 이 개인비서는 편리한 도구가 되지만, 잘못하면 그냥 애물단지로 전락할지 모른다. 도코모는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를 피하려고 알림을 전달할 때 사용자의 심리를 어떤 식으로 고려해야 좋을지에 관한 실험을 도쿄에서 해왔다. 사생활 침해가 잠재적으로 큰 단점이다. 미국의 경우 규제 당국과 시민들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이 사용자들의 검색 습관을 특정 검색광고에 이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일본에선 구글어스가 웹을 통한 공중사진 제공으로 사생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휴대전화 개인비서를 개발하려면 더 많은 개인정보를 이용해야 한다. 일부 분석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GPS 위치를 쇼핑이나 여행 기록과 결합하는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너무나 많은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한 추천을 받으면 오싹한 느낌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미즈호 은행의 통신산업 분석가 오니시 다케시가 말했다.
사생활 침해 논란을 피하려고 도코모는 고객이 제공하기로 동의한 정보(성별, 생년월일, 거주지 도시명이 기본이다)만 아이콩시어에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회사 서버에서 개인정보를 고객명단과 별도로 보관하는 방법도 개발해 왔다. “고객의 신원을 추측하지 못하도록 자료를 익명으로, 추상적으로 처리한다”고 사토가 말했다.
기술은 갈수록 위력이 세지기 때문에(예컨대 조만간 휴대전화를 통해 당신이 어느 빌딩의 몇 층에 있는지 알아내는 일이 가능해질지 모른다) 소비자에게 사생활 우려가 제일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동통신 업계와 당국은 개인행동 자료를 처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올여름이면 성과가 나올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이 기술이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하이테크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폭넓은 노력의 일환으로 이 기술 연구에 1억6000만 달러를 쓰기 때문이다(도코모는 일부 정부의 지원을 받긴 하지만 아이콩시어 서비스는 자체 자본으로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도코모 서비스는 “좋은 발상”이라고 IT 자문업체 유로테크놀로지 재팬의 최고경영자 게르하르트 파솔이 말했다. 다만 그 성공 여부는 “도코모가 그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잘 설명해 사용하고픈 욕구가 일도록 만드는 데 달렸다.” 사람들이 점점 더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시점에서 휴대전화 개인비서를 개발한다는 구상은 대단한 야망으로 보인다. 그런 일이 성사될 곳을 꼽자면 아기자기한 도구를 좋아하는 일본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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