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 하늘 문 두드린다
자연으로 돌아가 하늘 문 두드린다
어렸을 때 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자주 바라봤다. 조화로 겉을 화려하게 꾸민 상여가 둥실둥실 산길을 올라가고, 그 뒤로 슬픈 곡소리가 따라갔다. 마침내 상여는 보이지 않고 저 먼 곳에서 곡하는 소리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들려왔다. 산의 그 깊은 속으로 한 생명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을을 떠나 또 다른 마을인 산으로. 아버지는 상여 나가는 사람의 묘혈을 파주는 일로 벌이를 하기도 했다. 저녁 무렵에 돌아오셨는데, 손에는 떡과 하얀 목장갑과 고무신이 들려있기 십상이었다. 쇠죽을 끓이느라 내가 아궁이 앞에 앉아 있으면 아버지는 지친 표정으로 돌아와 잉걸불에 떡을 구워주었다.
아무 말씀이 없었다. 내가 지금껏 기억하기로는 그런 날 저녁이 가장 이상한 맛의 저녁이었다. 슬프고도 서늘한 저녁의 빛깔. 많은 말을 하지 않게 만드는 그 어떤, 목숨 가진 사람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수긍. 그 후로 좀 더 커서는 상여를 뒤따라가는 행렬에 나도 속해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상여를 제일 처음 따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알 수는 없었지만. 나의 시골집은 산과 바로 붙어 있어서 마당에 서서 산을 바라보면 첫눈에 무덤들이 들어온다. 무덤 위로 풀이 돋는 것을, 무덤 위로 산 그림자가 내려오는 것을, 무덤 위로 갈잎이 구르는 것을, 무덤 위로 소복하게 흰 눈이 쌓이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는 소복 차림의 동네 아주머니가 아침 식전에 곡 하는 것을 여러 날 보게 된 적도 있었다. 남편을 잃은 그 아주머니는 남편의 무덤 앞에서 길고 긴 곡을 하고서야 내려왔다. 그 일을 ‘햇무덤’이란 시로 썼다.
까마귀가 한 마리 또 두 마리 울며 날아가 / 죽은 나무에 / 나무의 폐에 / 흉탄처럼 내려앉는 // 슬픈 구천(九天) // 여자는 식전바람에 곡을 하고 내려갔네 // 누군가 치대다 급한 일 보러 가 / 덩그러니 남겨진 / 반죽처럼 // 또 / 마르는 / 햇무덤
그 후로는 조등이 내걸린 시골 친구네 집에 가서 이슬이 내리는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천막 아래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앉아 허기처럼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보았다. 절에 가서는 부도에 푸른 이끼가 무성하게 끼는 것을 보았다. 별세한 문인들을 조문하러 간 적도 많았다. 박찬 시인의 별세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그를 조문하러 가서 한참을 울고 나왔다.
‘산사람 만나러 산에 갔다가 / 그는 만나지 못하고 / 계곡물에 비친 푸른 산 그림자만 보고 오네 // 그도 아마 저와 같으리’라고 생전에 그가 쓴 ‘산빛’이란 시가 떠올랐다. 그는 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과 이별했다. 오규원 시인을 떠나 보낸 일도 참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와 정담을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옷깃 스치듯 몇 차례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폐기종을 앓았던 그는 아주 짧은 절명시를 제자의 손바닥에 손톱으로 써서 남겼다. ‘한적한 오후다 / 불타는 오후다 /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는 시였다. 이 시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그는 강화도 전등사 부근 아름드리나무 아래 안장됐다.
인간의 죽음에 관한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후배가 죽음 체험을 취재하면서 관 뚜껑에 못 박는 소리를 들려줄 때에 무척이나 그 소리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자연의 일부로 다시 돌아가는 장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타샤 튜더의 삶을 알게 됐을 때 나의 이런 확신은 좀 더 굳어졌다.
튜더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된 세계적인 동화작가다. 미국의 권위 있는 그림책상인 칼데콧 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인세 수익을 모아 쉰여섯 살에 버몬트주 산골에 땅을 사서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 정원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 중 하나가 됐다.
30만 평이 넘는 땅을 일궈 꽃과 나무의 세상을 만들어 주고 그는 떠났다. 18세기 풍의 농가에서 꽃을 가꾸는 92세의 튜더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았을 때 나는 그에게 매료됐다. 그의 글 가운데는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다. 난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이곳의 모든 것은 내게 만족감을 안겨준다.
내 가정, 내 정원, 내 동물들, 날씨, 버몬트주 할 것 없이 모두’, ‘자녀가 넓은 세상을 찾아 집을 떠나고 싶어할 때 낙담하는 어머니들을 보면 딱하다. 상실감이 느껴지긴 하겠지만, 어떤 신나는 일들을 할 수 있는지 둘러보기를. 인생은 보람을 느낄 일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짧다’.
그는 지난해에 세상과 작별했다. 박라연 시인이 최근에 내게 보내온 신작 시집을 펼쳐보니, 이 타샤 튜더에게 바치는 헌시가 한 편 실려 있는데 아주 명편이었다. ‘안경이 없어서’라는 시였다.
수십 년을 하루같이 수십만 평의 / 자연을 / 밥벌이시키며 구십이 저무는 타샤 튜더 / 그녀는 이 세상을 벌면서 / 저 세상도 벌고 있었다는 것 // 너무 늦게 알아봤어 // 이 세상과 / 다른 세상을 경계 없이 드나드는 / 심부름꾼인 양 그녀 / 저절로 조금씩 자연으로 바뀌어져서 / 장례도 필요 없다는 걸 // 우리는 생의 편이지만 / 생은 / 죽음의 편이라는 걸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는 인간의 유약한 마음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찬물을 마시듯 냉정하게 말하자면 삶과 죽음은 따로 경계가 없다. 많은 종교 수행자들이 이것에 공감해 왔다. 깊은 명상에 도달한 수행자들은 삶과 죽음이 손바닥과 손등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사람의 몸이 애당초 허술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몸은 무너져 내리는 산기슭의 흙과 같다고 말한다. 이것과 저것의 구별, 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별이 사람들에게 죽음을 삶과는 아주 괴리된 것으로 생각하게 하고, 또 그래서 죽음에 대해 말할 때 혀를 내두르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죽음이 두렵다는 사람들에겐 늘 다음과 같이 평소에 마음을 닦으라고 당부하고 싶다.
‘나는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가 됩니다. 물을 바라보면 물이 됩니다. 이슬을 바라보면 이슬이 되고 새를 바라보면 새가 되어 날아갑니다. 이들이 얼굴 붉히면 나도 얼굴 붉히고 이들이 잠자면 나도 잠이 됩니다. 밤에는 밤이 되고 새벽이 오면 새벽으로 열리는 나.
나는 이들 우주의 영혼이요 육체.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그들의 분노가 나의 분노이며 그들의 노래가 나의 시(詩)입니다. 그들은 나의 집, 나 또한 그들의 집. 그들이 내 안에 있으므로 내가 그들 안에 있고, 내가 그들이므로 그들이 곧 나입니다.’(이성선 시인의 장시 ‘하늘문을 두드리며’ 부분)
1970년 김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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