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돈맥경화’까지 치료해 볼까?
월가 ‘돈맥경화’까지 치료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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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초대형 제약회사들의 합병이 줄을 잇고 있다. 세계 10위권 이내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경제위기에 살아남으려면 자금과 연구인력에선 덩치를 키우고, 관리비용에선 군살을 빼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그림이 그럴듯해서일까. 자금경색으로 시달리는 월스트리트까지 나서서 인수자금을 대고 있다. 초대형 인수합병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은 세계 최대 제약회사인 미국의 화이자다.
이 회사는 올해 1월 라이벌인 미국 제약사 와이어스를 68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화이자는 와이어스 주식을 협상 직전 종가에 15%의 프리미엄을 붙여 주당 50.19달러에 인수한다. 이로써 세계 최대 제약업체가 탄생하게 됐다. 최근 금융위기 속에서 보기 드문 거대 인수합병(M&A)이 성사된 것이다.
이 인수합병은 2006년 3월 통신업체인 AT&T와 벨사우스가 합병한 이래 월스트리트가 지원한 최대 규모다. 골드먼삭스,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월가의 다섯 은행은 이번 협상을 위해 화이자에 225억 달러를 대출해 주기로 합의했다. 신용경색으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상황에서 이 같은 합의는 이례적이다.
그래서 거대 제약회사의 인수합병이 월가의 자금경색을 푸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색을 뚫는 약을 개발하는 제약사가 세계 금융경색의 해결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화이자는 26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인수 대금은 은행 대출금과 주식 등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화이자-와이어스 ‘14만 대군’ 형성
화이자가 이 같은 거대 인수합병에 나선 것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을 위해서다. 이 회사는 앞으로 백신과 생명공학 분야에 전념할 방침이다. 이 두 분야는 미래 수익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장기간에 걸친 시험과 시행착오에 따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수합병으로 자금력과 연구인력을 최대한 확보해 개발에 집중한다는 게 화이자의 전략이다. 이번 M&A로 화이자는 알츠하이머 치료제와 항암제, 소염제, 진통제, 우울증 치료제 등 수요가 많은 신약 치료제 개발에서 장기적으로 다른 업체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화이자는 1999년 시판을 시작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본가다. 협심증 치료제인 아큐프릴, 혈중 콜레스테롤 감소제인 리피토르 등 수많은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484억 달러의 매출과 81억 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다. 임직원은 8만6000명에 이른다. 와이어스는 지난해 임직원 약 5만 명이 224억 달러의 매출과 4억6000만 달러의 이익을 기록했다.
말 오줌에서 추출한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을 주성분으로 하는 호르몬제 프로마린, 항우울약인 에펙소르 등을 생산한다. 또 미국 제약사인 머크앤드컴퍼니는 경쟁 업체인 셰링-플라우를 411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가장 최근의 M&A로 3월 9일 발표됐다. 인수합병에 따라 셰링-플라우 주주들은 1주당 머크 주식 0.5767주와 현금 10달러50센트를 받게 된다.
머크 주식은 같은 비율로 신설 법인의 주식으로 전환된다. 신설 법인의 대표는 리처드 클라크 머크 최고경영자(CEO)가 맡게 됐다. 머크는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휴먼파필로마라는 바이러스를 막아주는 예방백신 가르다실과 천식과 알레르기 치료제인 싱귤레어, 전립선 질환 치료제인 프로페시아 등을 생산하는 업체다.
2005년 기준으로 매출 220억 달러, 수익 55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6만15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셰링-플라우는 2008년 기준 185억 달러의 매출과 19억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직원이 5만여 명이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레미케이드, 발기부전 치료제인 레비트라, 고지질혈증 개선제인 제티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두 업체도 합병을 통해 신약 개발을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세계 7대 제약회사의 하나인 머크앤드컴퍼니는 ‘글로벌 연구 중심 제약사’라고 스스로 표현한다. 그만큼 연구개발에 많은 노력을 하는 제약기업이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생산품을 개척·개발·제조하고 마케팅 활동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건강에 기여한다는 것이 모토다.
1957년 머크컴퍼니 재단을 설립해 4억8000만 달러의 장학금과 비영리기구 지원금으로 사용해 왔다. 이 업체는 의약품을 포함해 광범위한 화학물질 정보를 담은 ‘머크 인덱스’로 유명하다. 1970년대까지 한국의 의학·약학·화학 분야 필수 서적으로 꼽혔으며, 독일어 발음에 따라 ‘메르크 인덱스’로 불렸다.
이와 함께 ‘머크 진단과 치료 매뉴얼’이라는 의학 교과서로도 이름이 났다. 이 회사는 미국 뉴저지주 화이트하우스 스테이션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1891년 독일 제약·화학업체인 머크 KGaA의 미국 지사로 출발했다. 미국 정부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적국 자산이라며 이 지사를 몰수하면서 미국 지사는 독일 본사와 다른 새로운 회사가 됐다.
이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 밖에서는 머크 샤프 앤드 돔(MSD)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북미 이외 지역에서는 모회사가 머크라는 이름의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모회사였던 독일의 머크 KGaA는 미국과 캐나다에선 머크라는 이름을 쓰지 못한다. 대신 ‘EMD 화학’이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다.
EMD는 ‘에마누엘 머크, 다름슈타트’의 약자다. 에마누엘 머크는 19세기 머크 가문에서 제약공장을 처음 세운 인물이다. 독일의 머크 KGaA는 1668년 프리드리히 야코프 머크가 독일 중서부 헤센주의 다름슈타트에서 ‘엥겔 아포테케(약국)’를 인수한 것에서 출발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제약·화학업체의 하나다. 오랫동안 개인 기업으로 운영되어 오다 1995년이 되어서야 상장됐다. 머크 집안은 여전히 최대 주주로서 이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잇단 합병…독일은 지지부진
프리드리히 야코프 머크가 세상을 떠난 뒤 약국 소유권은 그의 조카에게 넘어갔으며 그 뒤 계속 부자 승계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1827년부터 생약에서 추출한 유효성분을 의약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근대적인 제약공업의 시작이다. 다름슈타트에 있는 약국은 제약사가 됐고, 매장은 공장으로 확장됐다.
이곳은 머크 가문의 의약품 연구센터가 됐다. 셰링-플라우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독일에서 1851년 설립된 셰링AG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에 의해 미국 지사의 재산을 몰수 당했다. 셰링AG의 미국 지사는 셰링 코퍼레이션이라는 독립회사가 됐다. 이 회사는 1971년 순수 미국 제약사인 플라우와 합병해 셰링-플라우가 됐다.
재미난 것은 독일의 머크 KGaA가 피임약으로 유명한 독일 제약사 셰링AG를 합병하려고 오랫동안 별렀으나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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