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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걸림돌은 치웠다

윤리적 걸림돌은 치웠다

도덕적 신념을 고수하는 부시는 연구용 배아 파괴에 반대한다.

"배아 없는 배아줄기세포라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내게 던진 질문이다. 2005년 5월의 이야기다. 대통령과 부통령, 대여섯 명의 백악관 참모(그중에서 역시 내가 제일 졸병이었다)가 대통령 집무실에 모인 자리였다. 난 국내정책팀 멤버였고 그날 브리핑 주제는 내 담당인 줄기세포 논란 현황이었다.

회의 말미에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위원회가 곧 발표할 예정인 ‘만능줄기세포의 대체 공급원’이라는 보고서 사본을 대통령께 드렸다. 전에 내가 간부로 일하기도 했던 그 위원회는 연구원들이 배아 파괴를 통해서만 추출했던 귀중한 세포를, 굳이 그런 파괴를 거치지 않고 얻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대체 공급이 성공한다면 배아줄기세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윤리적 딜레마를 피해 가는 과학적 방법을 찾는 셈이다. 이 위원회 보고서에서 윤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가장 좋다고 추천한 방식은 소위 ‘체세포 역분화’였다. 굳이 배아가 없어도 성숙한 성인세포를 배아세포와 같은 상태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그해 봄 과학자들과 대화해 보니 이 방식의 연구가 실은 위원회의 건의보다 훨씬 더 진전된 상태였다. 연구원들은 이 기술의 전망이 밝다고 누누이 되뇌면서 하버드 대학과 호주의 연구소가 수행한 예비연구를 소개했다. 그렇다면 가능하다는 말인가? 난 “과학자들은 시간이 주어지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듯하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다만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 후 몇 달 동안 우리는 도움이 되는 정보를 백방으로 수집했다. 몇몇 연구원이 대통령을 면담하러 오고 우리 참모들도 더 많은 연구원과 대화했다. 부시도 줄기세포 논쟁과 관련한 발언에서 그 주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말뿐만 아니라 돈도 지원하고자 했다.

2007년에는 그런 기술의 지원을 늘리는 대통령령에 서명도 했다. 한편 부시는 엄청난 정치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도덕적 기본 신념을 고수했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기에 발생 초기의 인간 생명을 실험소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었다. 그 선을 넘지 않으면 의학연구를 지원한다는 뜻이다.

줄기세포 과학자들은 누구나 체세포 재프로그래밍의 엄청난 잠재력을 알았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실험 결과에 한결 쉽게 다가가는 길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연방정부 지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사라지고 연구 관련 논란을 잠재울지도 모른다. 그들 중에는 연구용 배아 파괴에 반대하는 부시의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 부시의 격려가 신기술을 연구하는 이유도 아니었다. 다만 그의 격려를 통해 배아 파괴의 대체기술이 개발되면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얻고 그들의 연구와 관련된 정치 드라마가 막을 내릴 가능성을 엿보았다. 2007년 11월 이 연구를 보는 대중의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두 팀이 배아를 쓰지 않고도 인간 피부세포를 ‘배아와 같은 상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놀랄 만한 위업이고 그 누구의 상상도 초월하는 빠른 속도였다. 그 뒤로 그 기술을 정교하게 다듬은 사례가 몇 건 더 발표됐다.
이런 발달로 사람들이 이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연구원들은 곧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새 세포가 배아줄기세포와 동일하다는 확신을 갖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모든 경로를 탐구하고자 한다. 연구용으로 인간배아를 파괴하는 데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는 시각에서 과학적 우려와 윤리적 우려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경우 새 방식이 일거에 균형을 무너뜨렸다.

또 그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 줄기세포 논란 자체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른다. 다만 정치가 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는 못한다. 객관적 사실이 변하는 상황에서도 일각에서는 부시 정책의 종식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3월 초 드디어 그들이 소원을 풀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의 원칙을 뒤엎고 사상 최초로 현행 배아 파괴에 의존하는 연구에 연방자금을 지원하도록 승인했다.

줄기세포 논란의 참 교훈은 오바마 대통령의 그 결정 자체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줄기세포 대체 신기술을 통해 명백해진 그 교훈은 과학이 유연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윤리야말로 명확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더 큰 사회에서 적절한 지침만 내리면 중대한 도덕적 한계를 넘지 않고도 연구를 발전시킬 길을 찾아내는 과업을 감당할 능력이 우리 과학자들에겐 있다.

과학과 윤리 사이의 양자택일을 피해 우리는 윤리과학을 고집해야 한다. 또 생명과학 시대의 자제(自制)라는 임무를 부시의 말을 빌려, “인간 생명을 지키는 엄숙한 의무를 다하는 동시에 의학을 발달시키는 도전으로” 간주해야 한다.

앞으로는 그 이중 도전이 정치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며 응전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그렇다. 정책이 올바르고 과학기술이 올바르면 가능하다.

[필자는 윤리공공정책센터(EPPC)의 허톡 연구원이며 최근 ‘미래의 상상(Imagining the Future: Science and American Democracy)’이라는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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