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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가 족발보다 와인과 잘 맞아”

“순대가 족발보다 와인과 잘 맞아”

3월 말 허영만 화백을 따라 나선 곳은 서울 장충동에 있는 47년 전통의 ‘평안도 족발집’이었다. 이곳에서 족발과 순대, 그리고 와인의 궁합을 알아봤다.

허영만 화백이 만화를 그릴 때면 으레 와인을 준비한다. 와인을 가득 채운 잔을 작업 테이블에 함께 놓는다. 만화를 그려나가면서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신다. 그가 작업을 끝낼 쯤엔 와인 한 잔이 어느새 비어 있다.

허 화백은 “밤새 만화를 그릴 때는 마치 사막에서 혼자 테이블을 놓고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들 만큼 외롭다”며 “이때 와인 한 잔은 좋은 친구이자 동반자”라고 말했다. 와인을 음미하면서 즐기다 보니 ‘원샷’ 문화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와인의 변해가는 맛을 지켜보는 것이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 화백은 와인 덕분에 평소 즐기는 등산 재미도 늘었다. 그는 “산에서 야영을 할 때 텐트 안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이 일품”이라고 말했다. 허 화백이 산을 탈 때 와인과 함께 챙기는 ‘장비’가 있다. 손잡이가 달린 등산용 컵이다. 그는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잔에 와인을 마시면 맛이 안 난다”며 “녹차 티백을 종이컵에 우려내면 맛이 더 씁쓸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덧붙였다.

허 화백이 와인을 즐기는 방식은 합리적이면서도 한국적이다. “우리는 와인을 너무 엄숙하고 비장하게 마셔요. 무슨 독립 운동하러 온 것도 아닌데….” 3월 26일 허 화백과 함께 장충동의 ‘평안도 족발집’을 찾았다. 허 화백은 “평소 와인을 마셔보니 기름진 음식과 잘 맞아 족발과 와인의 궁합에 대한 기대가 높다”며 “밥상에 둘러 앉아 우리 음식과 와인을 맞춰보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에 오기 전 미리 지인을 통해 순대와 머리 고기까지 바리바리 싸왔다. 이날 LG트윈와인에선 족발에 맞는 와인으로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루마니아 와인 4종을 준비했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모두 족발 요리를 즐긴다는 것이다.

LG트윈와인의 김진섭 팀장은 “모름지기 같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와인과 그들이 즐기는 음식만큼 뛰어난 궁합은 없다는 생각에 준비했다”며 “순대와 머리 고기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살릴 칠레 와인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이날 와인은 족발과 와인처럼 부담 없는 안주에 걸맞게 가격대가 모두 5만 원 이하였다.



순대엔 칠레 와인이 제격

허 화백이 준비한 순대는 어린아이 주먹만큼이나 큼직했다. 허 화백은 “요즘 거리에선 보기 쉽지 않아 재래 시장에서나 구할 수 있는 순대”라고 말했다. 차지고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인 순대는 일상 속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서민 음식. 질 좋은 돼지 창자를 굵은 소금으로 수차례 씻어 비린내를 완전히 뺀 후 선지, 찹쌀, 두부, 숙주 등 여러 가지 속 재료를 채워 찌는 조리법을 사용한다.

순대는 지역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함경도에선 대창에 여러 가지 속 재료를 채워 크게 만들어 얇게 썰어먹는 아바이 순대가 대표적이다. 찹쌀밥을 주재료로 버무려 넣은 찹쌀순대, 명태 뱃속을 주머니로 삼아 속을 채워 넣어 만드는 명태 순대도 있다.

돼지 창자 중에 가장 가늘고 부드러운 소창을 사용하는 충남의 병천 순대는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적고 담백한 게 특징. 전라도의 암뽕순대는 돼지 암컷의 내장을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원도에선 돼지 창자 대신 오징어 몸통을 사용한 오징어 순대가 유명하다.

와인은 칠레의 ‘에스타시옹 리제르바 시라즈(Estacion Reserva Shiraz)’와 ‘비냐 마이포 카르미네르 카베르네 소비뇽(Vina Maipo Carmenere Cabernet Sauvignon)’이 등장했다. 허 화백은 순대와 함께 에스타시옹을 맛본 후 “안주를 무제한 담아주는 막걸리 집 주모 같은 느낌의 와인”이라며 “순대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극찬했다. 순대나 머리 고기의 경우 특유의 냄새로 꺼리는 이들이 많지만 와인을 함께 하면 이를 완화시킬 수 있다. 칠레의 부드러운 카르메네르나 메를로의 시라즈 와인이 제격이다.



족발 껍질보다 살코기가 잘 어울려

1 순대, 머리 고기와 어울리는 칠레 와인 2 족발과 스페인 와인
한국 족발 요리는 돼지 앞다리로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앞다리는 운동량이 많고 몸을 지탱하므로 연골이 발달돼 있다. 족발의 생명은 껍질. 씹으면 껍질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장국의 감칠맛이 퍽퍽한 살코기에 양념을 하는 듯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평안도 족발집은 재료도 재료지만 47년 동안 맥을 이어온 걸쭉한 장국으로 유명하다. 족발은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지구촌 음식이다. 이탈리아에선 발톱까지 보이는 족발 요리 ‘잠포네(Zampone)’를 즐긴다.

프랑스 족발 요리엔 오랜 시간 오렌지와 사과, 벌꿀에 달콤하게 졸여 살이 매우 무른 ‘오 피에 드 쿠숑(Au Pied de Cochon)’이 있다. 루마니아에선 족발은 물론 돼지 한 마리를 12월 21일 ‘성 이그나트의 날(Ignat Day)’에 포도주와 함께 먹는 풍습이 있다. 스페인에선 돼지 뒷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인 후 말린 ‘하몽(Jamon)’이 대표적이다.

허 화백은 “스페인에서 맛본 하몽이 너무 좋아 한국에서도 사 먹는데 그 맛이 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날 족발과 어울리는 와인엔 족발 요리가 유명한 나라의 와인이 총출동했다. 산도가 적은 이탈리아의 ‘리파로소 몬테풀치아노’는 부드러운 질감으로 고기의 육질을 촉촉하게 해줬다. 프랑스 ‘샤토 데 두아이유’는 포근한 느낌의 향이 족발에 우아한 맛을 더해줬다.

스페인 와인 ‘바자 크리안자’의 잘 익은 과일과 바닐라 향은 족발이 간직한 고유의 향에 묻히지 않고 개성을 뽐냈다. 루마니아 ‘비잔티움 로소 디 발라히아’는 가득 퍼지는 강렬한 풍미로 족발의 비릿함을 잡아줬다. 허 화백은 “와인과 함께 하기엔 순대보다 족발이 다소 무거운 것 같다”며 “족발 껍질의 기름을 와인으로 없애기가 쉽지 않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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