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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시대 한반도 번영의 중핵지대 vs 개발 규제 덩어리 지대

통일시대 한반도 번영의 중핵지대 vs 개발 규제 덩어리 지대

그날도 이른 아침 한강 하구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다.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따라 연천으로 가는 동안 한강과 임진강을 경계로 남북한 사이에는 희미한 안개가 끼어 있었고, 그 사이로 북녘 땅이 보이다 안 보이다를 반복했다. 마치 안개연기 자욱한 오래된 극장에서 선명하다가 흐릿해지고 다시 선명하다가 흐릿해지기를 반복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아침 8시, 아침밥을 먹기 위해 백학면의 어느 버스종점 부근에 차를 세웠다. 버스종점에는 조그만 상가가 형성돼 있었다. 열댓 개의 상점이 눈에 들어왔는데 반 이상의 상점 간판에는 땅이나 부동산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었다. 초등학생 서너 명이 동그란 원 안에 명조체로 땅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인 부동산중개소 앞을 지나 무심히 등굣길을 재촉했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될 법한 학생 중에는 안경을 쓴 학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간단한 아침밥을 먹고 나서 종점다방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수십 년 전에 마셨을 법한 맛과 모양의 커피였다. 땅이라는 글자, 안경 쓴 초등학생 그리고 크림과 설탕 덩어리 커피가 공존하는 아침의 종점 풍경이었다.



회한·기대·좌절의 뒤엉킴

연천은 회한과 기대 그리고 좌절이 뒤엉켜 있는 곳이다. 지난 시절 경기북부 접경지대와 연천군에 대한 미래구상은 여러 차례 있었다. 제4차 국토종합계획 및 수정계획(2006∼20)에서는 국토개발 6대 전략 중 하나로 동북아시대의 국토경영과 통일기반 조성이 제시된 바 있다.

이 계획의 구체적인 목표 중 하나는 번영하는 통일국토다.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접경지역에 평화벨트를 조성하고 북한지역 개발을 위해 남북한 협력체계를 확립한다는 내용이다. 경기도 접경지역 계획(2003∼13)에서는 남북 교류협력과 통일시대에 대응한 접경지역의 공간적 통합, 정주환경 개선과 지역개발 활성화를 통한 낙후지역 관리, 그리고 자연생태 보전과 지속 가능한 개발의 달성 등을 접경지역 개발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연천군에는 평화 관광로 조성사업, 남북한 통일·생태교육기관 건립사업, 남북교류 협력단지 조성사업 등이 계획돼 있다. 작년 말 발표한 경기개발연구원의 경기북부 미래구상에서는 통일시대 한반도 및 경기북부의 비전으로서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가교의 중심지, 한반도 번영의 중핵지대, 생태환경의 보고이자 새로운 관광의 처녀지, 그리고 냉전을 극복한 평화와 협력의 공간이라는 구상이 제시되었다.

다양한 이름의 계획들이 모두 통일시대 이후 한반도 번영의 중핵지대라는 개념하에서 평화와 협력의 공간, 그리고 생태의 보고로서 경기북부와 연천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요란한 미래 구상과는 달리 경기도 북부 접경지역의 현실은 착잡하기만 하다. 미래구상이 전혀 발 디딜 틈도 없이 경기북부 접경지역은 거미줄처럼 다양한 규제가 얽혀 있다.

이 지역에서의 개발행위는 다양한 제한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국토이용관리법, 군사시설보호법,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기북부 지역은 수도권에 해당되어 수도권 정비계획의 골격을 준수해야 한다. 군사지역에 속하는 지역의 경우에는 군사적 토지이용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개발이 허용된다.

연천군의 경우 거의 전 지역이 군사시설 보호구역인데 통제보호구역과 제한보호구역이 각각 29.8%와 70.2%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 지역개발 가능성이 있는 행정위임구역은 연천군 전체 면적의 7.0%에 불과하다. 수도권정비계획에 따르면 경기북부 지역은 성장관리지역 그리고 일부는 자연보전권역으로 규제를 받으며, 또한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개발규제를 받고 있다.

통일시대 한반도 번영의 중핵지대라는 미래비전과 요원한 듯한 통일시대와 규제 덩어리 지대라는 현실이 모순과 갈등 그리고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지역이다. 처음 방문지인 상승관측소(OP)로 가는 길에 검문소가 나타났다. 검문소 위에는 관할 사단장 명의로 6월 민통선 출입시간이 오전 4시 40분부터 저녁 10시 30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반인들은 이 시간 동안에만 민통선 내에 머물 수 있다. 모내기가 끝난 듯한 논 위에는 벌써 허수아비가 세워졌다. 아마도 허수아비는 민통선 출입시간에 관계없이 거기에 하루 종일, 밤새도록 맘대로 민통선 내에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상승관측소의 전면에는 지금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춘 상태라는 의미의 정전중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고, 오늘이 정전 2만0399일째임을 알리고 있었다.


상승관측소 부근에는 남북한 간 전쟁과 대결의 현장이 곳곳에 남아 있다. 상승관측소 부근에는 6·25전쟁 때 영연방국가(영국·캐나다·뉴질랜드·호주)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고왕산이 있다.

이때 희생되었던 영연방 군인들의 묘지가 적성에 있으며, 당시 고왕산 전투에서 생존한 용사 150여 명이 매년 이곳을 방문한다. 상승관측소 부근에는 1968년 청와대에 침투하려고 했던 북한군의 이동로, 즉 ‘김신조 침투라인’이 있다.

또한 상승관측소 부근에는 1974년에 발견된 제1땅굴이 있다. 제1땅굴은 횡단면으로 볼 때 위 길이 0.5m, 옆 길이 1.2m, 그리고 아래 길이가 1.1m인 마름모꼴 형상이다.

정훈장교의 설명에 의하면 북쪽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향한 제1땅굴의 총 길이는 3.2㎞ 정도로 추정되며, 1시간에 1개 연대, 약 1200명이 이 땅굴을 통해 남쪽으로 침투 가능하다고 한다.

상승관측소가 있는 지점은 서울까지의 직선거리가 52㎞에 불과하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이 땅굴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구정섭 중사라는 분이다.

구 중사는 제대 이후 지금은 제주도에서 감귤농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땅굴을 발견한 구 중사가 재배한 제주도 감귤은 어떤 맛일까? 땅굴 발견 이후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 떨어져 있던 철책선이 1.2㎞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했다. 북쪽의 철책도 최초의 군사분계선보다 군사분계선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비무장지대 내에서는 화재가 자주 발생한다. 북쪽 비무장지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기도 하고,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시계를 확보하기 위해 불을 일부러 놓기도 한다.



‘한반도의 중심, 로하스 연천’

북쪽에서 내려오는 불을 막기 위해 남쪽에서 맞불을 놓는 경우도 흔하다. 어떤 때는 화재가 3개월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비무장지대의 불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 꺼지기도 하고, 또는 스스로 불길이 약해져 꺼지기도 한다. 군사분계선 양쪽에는 총을 든 병사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 있는 비무장지대에는 산천초목을 태우는 불이 발생했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상승관측소에 이어 취재진은 태풍전망대를 방문했다. 태풍전망대는 군사분계선까지는 800m, 북한군 초소와는 불과 1600m 떨어진 곳에 있어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전망대 중 하나다. 태풍전망대의 전면은 다른 전망대와 달리 총알이 뚫을 수 없는 방탄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1992년 개관한 이 전망대에는 이미 9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태풍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녘 땅의 모습은 남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철책이 있고 간간이 GP가 있었고, 다만 남녘 땅과는 달리 민둥산의 모습이 자주 목격될 뿐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우리 GP에는 태극기와 UN기가 함께 걸려 있었다.

정전의 현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연천군청으로 향하면서 정훈장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가을에 전역할 예정이라고 했다. 금년에는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기업들의 장교 출신 채용인원이 줄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전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사단에서 철책방위를 위해 노력한 군인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오후에는 연천군청을 방문했다. ‘한반도의 중심, 로하스 연천’이라는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로하스란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자로, 연천군 관계자는 건강과 환경을 해치지 않는 생활 스타일을 일컫는 뜻으로 개인적 건강과 더불어 환경까지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연천군의 면적은 696.19㎢로 서울의 1.14배에 해당하지만, 인구는 작년 말 기준으로 4만5495명에 불과하다. 교육열에 불타는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듯 연천군 내에는 초등학교 15개, 중학교 6개, 고등학교 2개 등 총 23개 학교가 있으며, 학생수가 5780명에 달한다. 연천군 전체 인구의 무려 12.7%가 초·중·고등학생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들은 다시 대학 진학이나 취직 등을 위해 연천군을 떠난다. 많은 학생수에 비해 5인 이상 기업체는 67개뿐이고,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1554명으로 전체인구의 3.4%에 불과하다. 군사분계선 근처의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마찬가지로 재정규모 3041억원, 재정자립도 27.1%의 가난한 군이다. 열악한 재정자립도지만 그나마 유류보조금을 제외하면 15.6%로 떨어진다.



연천군과 군, 다양한 협조관계 모색


1. 성모 : 북녘 땅을 향해 서 있는 거대한 성모 마리아상. 바람 부는 철책에 서 있는 성모의 모습은 묘한 울림을 준다. ⓒ이상엽 2. 호루고루 : 고구려 산성인 호루고루 발굴현장. 남한에서 가장 북단에 위치한 고구려 유적지다. ⓒ조우혜
연천군청 관계자는 군 전체 면적의 98%가 군사보호지역이고, 약 30%가 민통선 이북지역에 속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역 발전과 군사시설 보호라는 갈등관계는 연천군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연천군의회는 2008년 6월부터 2009년 3월까지 군사시설 및 군사활동 피해조사를 실시했는데 재산권 피해 62건, 군 주둔 피해 46건, 군사활동 피해 54건 등 총 162건이 접수되었다.

연천군의회는 또한 군사시설 보호지역으로 인해 발생한 규제를 개선하기 위해 군사피해 홍보영상물도 제작하기로 했다. 군의회가 채택한 ‘수도권 규제 철폐 및 지역발전 지원촉구 결의안’의 네 번째 항목에는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군사시설보호구역 완화 및 군사훈련장·사격장을 조속히 이전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와 같은 갈등도 있지만, 한편으로 연천군과 군은 다양한 방법으로 협조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먼저 연천군이 전방의 전망대를 관광자원화하고 군은 이에 협조하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연천군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2월까지 6억5000만원을 들여 열쇠전망대에 전시시설을 설치했다.

전시물에는 DMZ에서 발견된 녹슨 철모, 노출된 지뢰 등 분단의 상흔, 통일의 희망을 담은 영상물, 그리고 DMZ의 생태계를 연출한 생명의 요람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태풍전망대의 경우에도 2008년 8월부터 2009년 3월까지 2억5000만원을 들여 내외부 바닥 교체, 방송 및 영상 브리핑 장비 등을 보강했다.

과거에는 안보의 기지로만 여겨지던 철책선의 전망대를 관광상품화해 군에서는 국민의 안보의식을 강화하고, 연천군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DMZ 일원 평화생태공원 조성사업과 임진강 고랑포구 및 1·21 침투로 역사·문화관광지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화생태공원 조성사업은 경기도가 추진하는 사업으로 연천군 중면 횡산리에 야생동물 보호센터 및 임진강 역사문화센터 건립, 태풍전망대 철책선 걷기(500m), 생태 탐방대(생태 습지원, 조류관찰소 등)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추진되는 이 사업은 약 1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태풍전망대 옆 철책선 걷기는 해당 군부대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환경·생태 전문가들 DMZ 내부 탐사활동

역시 같은 기간에 진행하려고 하는 임진강 역사문화 조성사업은 조선시대 말 경기북부 최고의 무역항이었던 임진강 고랑포구와 1·21 침투로의 체계적 정비를 통해 지역 내 문화관광을 활성화하려는 사업이다. 현재 대상 토지를 매입하는 절차에 들어가 있으나 아직까지 전체 소요예산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2020년 연천군 기본계획에 의하면 연천군의 미래상은 통일을 준비하는 남북교류협력 거점도시, 역사·문화·생태 관광도시, 그리고 자연과 조화되는 도농 복합형 정주환경 도시다.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연천은 남북교류협력 도시로서 가능성은 있지만, 이웃의 파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떤 우월성을 먼저 선점하느냐는 부분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연천군은 역사 및 문화 면에서 다양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적 제268호로 지정된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유적지다. 서울대 김원용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이 지역은 구석기 시대의 직립원인(약 50만 년 전에 생존, 1981년 자바섬에서 발견) 또는 네안데르탈인(제4빙하기에 생존, 1857년 네안데르탈 회석동에서 발견)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인 왕건의 영혼이 머무르는 숭의전지, 경주를 벗어난 유일한 신라 왕릉인 경순왕릉을 비롯해 고구려 성 등의 유적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관광자원이 타지역, 예를 들어 먼저 방문했던 강화도 지역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1. 철갑상어 : 연천지역 양어장에서 기르는 철갑상어. 캐비아를 생산하기 위한 게 아니라 회를 뜨기 위해 기르는 철갑상어들이다. 맛이 일품이라 한다. ⓒ이상엽 2. 한가한 오후 : 연천의 대낮은 한가하다. 염주를 들고 갈 길을 재촉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평화를 본다. ⓒ이상엽

결국 DMZ 및 민통선지역에 보존된 천혜의 생태자원과 산업화된 시대에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청정생태도시로서의 연천을 만드는 일이 최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태환경의 보고는 민통선이 가로막고 있으며, 설령 민통선지역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아직도 곳곳이 지뢰밭이다. DMZ라는 천혜의 자연생태 보고가 있으나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일반인들이 이 미지의 땅에 발을 딛기는 요원한 일이다.

이제 겨우 유엔사령부의 허가를 획득해 환경 및 생태 전문가들이 조심스레 DMZ 내부에서 탐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계다. 민통선 내에서 생태관광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DMZ를 이용하거나 체험하지 못하는 생태관광은 현실적으로 타지역에 비해 경쟁력이 우월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경원선 전철 연천역까지 연장 건의

보다 적극적인 관점에서 고려해 볼 때 DMZ 내에 남북이 공동으로 생태보전지역을 지정하고 이를 공동 개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상태에서는 요원해 보이는 일이지만, 이러한 날이 가능할 그날을 위해 지금부터 차곡차곡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오후 늦은 시간에 우리는 열쇠전망대를 찾았다.

열쇠전망대로 가는 길에 ‘다섯 번째 땅굴은 우리 사단이 찾자’는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직후라서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터였다. 열쇠전망대 부근에서는 사단의 핵심인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듯 보였다. 여러 대의 군용 지프가 동시에 집결해 있었고 운전병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열쇠전망대는 이제까지 우리가 찾아간 전망대 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듯했다. 전망대 아래에는 절경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고, 북녘 땅은 손에 잡힐 듯 바로 곁에 있었다. 다만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남쪽에는 길게 늘어선 철책, 그리고 북쪽에도 길게 늘어선 철책이 들어왔다.

연천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는 신탄리역이었다. 경원선 기차가 멈추는 마지막 역이다. 신탄리에서 동두천까지 1시간 간격으로 기차가 운행되고 있었고, 요금은 1000원이며, 47분이 소요된다. 실제로 철길은 신탄리역을 조금 지나 끝났다. 조만간 경원선 열차는 철원까지 연결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원을 넘어 평강으로 그리고 금강산과 원산까지 경원선 기차가 연결될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연천군의 숙원사업 중 하나는 현재 동두천시 소요산역에서 끝난 경원선 전철을 연천군 신탄리역까지 연장하는 사업이다.

2007년에 작성된 2020년 연천군 기본계획에서는 2010년에 경원선 전철 복선화를 상정하고 이에 따라 2020년까지 연천군 인구가 2만6000명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만6000명은 2008년 말 현재 연천군 인구의 57.1%에 해당한다. 경원선 전철 연장사업은 금년 기획재정부 심의에서 동두천 소요산역에서 연천역까지(18.2㎞) 복선으로 전철을 연장하는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용역 대상사업에 포함돼 현재 용역이 진행 중이다.

소요산역에서 한탄강역, 초성리역, 전곡역을 거쳐 연천역에 이른다. 연천역에서 신망리역, 대광리역을 거쳐 현재 경원선 철도의 종착역인 신탄리역에 도착한다.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이던 경원선 전철의 실현 가능성에 한 걸음 다가서면서 이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열망은 뜨겁게 표출되고 있으나 현 단계에서 결과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연천군 내의 사회단체로 구성된 ‘지역발전 비상대책위원회’가 주민 2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경원선 전철을 연천역까지 연장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또한 연천군의회는 강원도 철원군의회를 시작으로 의정부시, 양주시, 동두천시, 포천시 의회 등을 잇따라 방문해 경원선 전철 연장사업이 조기에 착공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해 동의를 받기도 했다.

연천군은 수도권정비계획법, 군사기지 및 시설보호법 등 각종 규제와 접경 지역에 위치해 안보논리에 희생된 보상 차원에서 경원선 전철 사업을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연천군이 인정하고 있듯이 단순히 경제성 측면에서 보면 현재 상태에서 경원선 전철의 연장은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국가안보를 위한 지역발전 희생을 현실적인 측면에서 얼마나 큰 가치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가 주목된다. 2012년에는 연천을 남쪽으로 수직으로 잇는 국도 3호선 확장공사가 마무리되고, 연천을 동서로 연결하는 국도 37호선 확장공사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향후 제2외곽순환고속도로가 완료되고, 경원선 복선 전철이 이루어진다면 연천은 더 이상 북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가기 어려운 곳이 아니라, 언제나 접근 가능한 우리 곁의 연천이 될 것이다.


경원선 미래열차가 통과할 통일의 중심

연천은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던 문명의 중심이며, 지리적 위치로 볼 때 한반도의 중심이다. 그리고 연천은 경원선이라는 미래열차가 통과할 통일의 중심이다. 그러나 연천의 오늘은 천혜의 자연생태계가 지뢰와 섞여 있는 곳, 국토방위라는 대의 앞에 오늘날의 경제활동을 희생당하는 곳 그리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반가운 소외된 경기북부 지역의 일부일 뿐이다.

통일 이전 시기, 통일시기, 통일 이후 시기를 감안해 연천군에 대한 단계적 발전계획이 조속히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청정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는 인류의 보고로 연천을 만들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했다.

같이 갔던 이상엽 사진작가는 사진촬영을 위해 연천에서 하루를 더 머무른단다.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을 사진 찍을 그와 소주잔을 나누고 싶은 저녁이었다. 그러나 연천의 어느 낯선 여인숙에 이 작가를 남겨둔 채 어느 새 우리 차량은 의정부를 지나 동부간선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태풍전망대 옆 필승교에 가득했던 새똥 자국의 기억이 생생한 밤이다. 방문자의 눈에 새똥의 모습은 천연생태계의 상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지역민들에게 새똥은 새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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