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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갈 길을 말하다

한국경제의 갈 길을 말하다

한국경제에 봄바람이 분다. 따스한 경기 회복풍이다. 그러나 만끽하긴 아직 이르다. 경기 선순환에 따른 회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의 결과다. 인위적 경기부양이라는 얘기다. 내수부진, 부동산 투기, 취약한 외환관리 시스템 등 문제점도 여전하다. 역대 경제수장 8인에게 한국경제의 ‘갈 길’을 물었다. 경제인단체, 경제학과 교수 등 25명이 질문을 던졌다.

장마 바람 타고 제비가 날아오나? 국내 경제지표가 꿈틀댄다. 대부분 상승세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6월 경기동행지수는 전월비 2% 상승했다. 1978년 1월 2.1%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올 1월 -25.5%까지 추락했던 광공업 생산증가율이 -1.2%로 감소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6%까지 올랐다. 전월비 15%포인트 오른 수치. 청신호는 더 있다. 코스피지수는 8월 7일 현재 1576.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의 지수 1500선을 훌쩍 넘었다. 이젠 1600 고지를 향해 질주한다. 환율은 12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위축됐던 소비심리도 기지개를 편다.

한국은행의 7월 소비자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CSI는 109. 100 이상이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완전한 회복 국면일까?



질물 1. 한국경제 바닥 쳤나?


□ 추가 하락 가능성 “희박” 71%
□ 김진표 “일자리 생겨야 바닥 쳐”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는가’는 질문에 응답한 전직 경제부처 수장 7명 중 5명이 “바닥으로 향하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아직 바닥을 때린 건 아니지만 회복세는 분명하다는 것.

진념 전 부총리는 “추가 하락은 멈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승윤 전 부총리도 “저점 근처에 도달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국경제의 전반적 회복시점은 2010년 중반 이후”라고 전망했다.

김진표 전 부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국가 부도 위기를 간신히 벗어난 정도”라며 “회복국면으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쏘아붙인다. 김진표 전 부총리의 견해는 실업률과 수출감소를 근거로 한다.

올 6월 현재 실업률은 3.9%. 연초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정규직 일자리도 3만여 개 사라졌다. 일자리가 없으면 소비가 준다. 그러면 기업이 투자를 꺼린다. 살 사람이 없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올해 상반기 기업 설비투자는 37조9073억원. 전년 동기비 20% 감소했는데, 9년 만에 최저치다.

이뿐 아니라 수출감소세도 지속되고 있다. 김진표 전 부총리는 “일자리가 생겨야 경기가 회복된다”며 “재정정책으로 풀린 돈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문 2. V자형이냐 U자형이냐?


□ V자형 회복 “없음”
□ 출구전략 잘되면 U자형


그럼에도 시장 안팎에선 V자형 회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전직 경제수장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V자형 회복을 예상한 수장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1997년 IMF 때와 같은 V자형 회복은 불가능하다”며 “글로벌 경기침체와 동아시아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U자형 회복을 높게 점쳤다. 이승윤 전 부총리도 “V자형 회복은 사실상 어렵다”며 “바닥을 다지는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했다. 역시 U자형에 가깝다.



질문 3. 경기 회복, 재정정책 덕분?


□ “그렇다” 100%
□ 내년 국가채무 400조원 돌파 ‘부담’



경기 회복세를 이끄는 것은 재정정책이다. 전직 경제수장은 모두 한국경제에 회생기미가 보이는 이유로 재정정책을 꼽았다. 시중에 풀린 돈이 경기를 부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자금은 아직 경기회복의 선순환 고리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효과를 제외하면 올 2분기 성장률이 2.3%에서 1%대로 떨어지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더구나 자동차 감세 효과까지 빼면 0%에 가깝다. 최각규 전 부총리는 “재정정책의 약발이 끝났을 때 한 차례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담스런 대목은 또 있다. 재정정책은 쉽게 말해 빚이다.

현재 366조원에 이르는 국가채무가 2010년 4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2007년 말 현재 617만원에서 올해 말 751만원으로 증가한다. 자칫 하면 이 빚을 온통 후대가 감당해야 한다. ‘출구전략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승윤 전 부총리는 “출구전략의 핵심은 타이밍”이라며 “이르면 올해 말, 늦으면 내년 초 세계 경기가 바닥을 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그때가 출구전략의 적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인다. 경기회복 흐름이 강화되고 있지만 하반기에도 이런 회복세가 이어질 지 장담하지 못한다.

정부는 경기회복이 가시화될 때까지 확장적 재정정책을 유지할 방침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 상반기 정부가 경기부양에 쏟아 부은 돈은 전체의 167조. 올해 주요 사업비 258조에 65%에 해당한다.



질문 4. 감세냐, 증세냐?


□ 이승윤 “개인소득세 인하 유보 괜찮아”
□ 강봉균 “법인세 인하, 투자 연결 안 돼”


이런 이유로 정부의 고민은 날로 깊어진다. 정부 곳간이 텅텅 비는 것도 골치 아픈데 채워넣을 방법마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으로 돈을 회수하든지, 아니면 세금을 올리든지, 방법은 두 개 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기조는 감세다. 세금 올리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다.

감세·증세 논란에 불이 붙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감세가 옳은가? 증세를 해야 하는가? 이는 현 정부의 딜레마 중 하나다. 이승윤 전 부총리는 감세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투자가 활성화되고, 곳간이 채워질 수 있다는 논리다. 법인세 인하는 성장 잠재력 확보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소득세 인하는 유보해도 괜찮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대로 강봉균 전 장관은 법인세를 인하해 봤자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기업의 저축률은 16%. 가계(4.8%)보다 3배 이상 높다. 대기업의 유보금 규모는 100조원에 이른다. 투자하지 않고 돈을 싸놓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논란이 됐던 법인·소득세 인하를 당초 계획대로 추진할 방침이다. 과연 정부가 재정정책의 후유증을 감당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질문 5. 수출·내수 공생 길 없나?


□ 사공일 “지식산업 발전으로 외화수입 주력”
□ 조순 “내수 진작 위해 경제계획 필요”



한국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는 이뿐 아니다. 무엇보다 수출 중심 경제체제를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중심은 수출이다. 국민총생산의 50% 이상이다.

글로벌 시장이 위축되면 그만큼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수출을 줄이고 내수를 진작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은 “우리나라처럼 에너지와 주요 원자재의 수입의존도가 높으면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 외화수입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안이다. 어떻게 외화수입을 하느냐다. 사공일 전 장관은 “서비스와 지식산업 발전으로 외화수입을 늘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관광, 보건, 의료, 물류, 교육, R&D 분야의 과감한 규제개혁과 개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순 전 부총리는 “대미, 대EU 수출에만 의존하면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며 “선진국과의 경제 격차를 줄이려면 내수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수 진작을 위해선 기존에 돌보지 않았던 농수산 부문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경제계획이 필요하다는 게 조 전 부총리의 주장. 경제 비전을 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질문 6. 취약한 외환관리 어떻게 하나?


□ 사공일 “국제통화금융체제 개편에 리더십 발휘”
□ 강경식 “항구적 통화스와프협정 체결 필요”


자본시장의 대외 개방도가 높은 탓에 외환관리시스템이 취약한 것도 고민거리다. 금융거래의 건전성 관리에 소홀하면 언제든지 외환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은 비슷하다. 금융기관들이 금리가 낮은 외국자본을 단기로 끌어들여 중장기 대출에 충당했다가 유동성 위기를 겪은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시스템을 더욱 강화해 금융거래의 만기 불일치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국제적 협조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강경식 전 부총리는 “미국과 유럽연합 처럼 필요할 경우엔 언제든지 통화스와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통화스와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가 구체적 실행단계에 들어가 1200억 달러 규모의 결제기금이 조성됐다. 한·중, 한·일 간엔 각각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협정이 체결됐다. 이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빠져나오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사공일 전 장관은 “적정한 외환보유액 유지를 위해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과 통화스와프 장치를 마련하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등 지역금융협력체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며 “(G20 정상회의 등에서 진행되는) 국제통화금융체제 개편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문 7. 부동산 투기 어떻게 막나?


□ 진념의 ‘길목 잡기론’


“용도변경, 형질변경을 했을 땐 차익 80% 환수해야”

우리나라의 68%는 산이다. 가용면적당 인구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때만 되면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부는 이유다. 시장도 투기와 미분양을 오간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돈의 규모는 800조원에 이른다.

이 자금은 현재 부동산을 넘나들고 있다. 연 2.0%의 저금리는 집값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 저금리, 불확실한 금융시장이 돈을 부동산으로 쏠리게 하는 것이다. 이 자금이 부동산 쪽으로 유입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부동산은 비생산적 부문. 경기부양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오히려 자금배분의 왜곡만 초래한다. 만약 투기 열풍이 불면 진화하는 데 1년 이상 걸린다. 강봉균 전 재정부 장관은 “재정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념 전 부총리는 ‘길목 잡기론’을 편다.

부동산 투기의 온상인 용도변경, 형질변경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다. 진 전 부총리는 “용도변경, 형질변경을 했을 땐 차익 80%를 환수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거래가 있을 땐 토지로, 없을 땐 돈으로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투기의 길목을 막자는 취지다.

그는 이어 “한곳에서 20년 이상 농사를 지은 사람에겐 세금을 면세해줌으로써 지역발전에 공헌한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재입성을 꿈꾸고 있다. 2007년 목표를 달성한 후 단 1년 만에 1만 달러 대로 추락한 아픔을 이젠 털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는 숱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중 시급히 처리해야 할 것은 갈등해소다. 노사갈등, 이념갈등, 사회갈등은 도움이 될 게 없다. 대한민국호의 순항을 방해하는 말 많은 ‘사공’일 뿐이다.

조순 전 부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선진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분열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감정대립이 격렬한 것도 이유다. 이들은 종종 후진적으로 비친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 ‘선진국이다’‘아니다’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 국민 가슴 속에 맺힌 사회문제를 부드럽게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선진국이다.”

장관에서 부총리, 다시 장관으로
경제사령탑의 역사
경제사령탑이 부총리에서 다시 장관직이 된 지 1년 6개월. 경제부총리를 재추진해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 유관부처가 늘어난 만큼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다. 건국 후 경제부처 수장은 항상 국정의 전면에 나섰고 그 위상과 권한의 범위 등을 놓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경제부처인 재무부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만들어졌다. 1955년에는 경제개발과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부흥부가 신설됐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위해 1961년 부흥부에 예산기능을 합쳐 경제기획원을 만들었다. 재무부는 이후 예산편성권을 34년간 갖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재정경제원을 만들어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한다. 경제부처 사령탑에 힘이 쏠렸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재경원에서 기획과 예산부문을 떼어내 기획예산처를 만들고 금융감독 기능도 분리해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들면서 약화된다.

김대중 정부가 결국 3년 만에 다시 부총리제도를 도입해 힘을 실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10년 만에 기획재정부로 부처 이름을 바꾸면서 부총리제를 폐지한다. 부총리는 국무총리가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그 직무를 대신하는 자리다. 그러나 그보다는 경제 유관부처 수장들이 모일 때 서열상 회의를 주재한다는 특전이 더 크다.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는 뜻이다.

부총리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45년 전인 1964년.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이 1호다. 이후 김학렬, 남덕우, 신현확 전 부총리는 박정희 시대 경제 최우선 논리로 실세 중의 실세로 통했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경제부총리가 없었던 시기는 대통령이 경제에 자신이 있었던 시기였다”며 “실무진은 일이 늘어나니 옥상옥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경제부총리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빨라진다”고 말했다.
질문 어떻게 뽑았나?
이코노미스트는 ‘역대 경제수장 8인 한국 경제의 갈 길을 말하다’를 준비하면서 패널 25명을 선정해 총 124개의 질문을 받았다. 그 중 비교적 공통되는 질문 20여개를 꼽아 역대 경제 수장 8인에게 물었다. 총론엔 양극화 및 일자리 문제(7개·6%), 수출·내수 공존문제(6개·5%) ,부동산 정책(5개·4%), 외환 관리(5개·4%)에 대한 질문을 주로 다뤘다.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잠재성장률+미래먹거리(36개·29%), 출구전략(22개·28%), 노사갈등(19개·15%), 금융감독시스템(11개·9%)은 컨셉트 인터뷰를 통해 상세하게 물었다. 다음은 패널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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