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과 사망 선고 사이
암 진단과 사망 선고 사이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 애플 CEO 스티브 잡스. |
존 매튜스는 폐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석면이 일으키는 매우 치명적인 폐암의 일종이다. 예후가 최악이었다. 의사는 9개월 이상 생존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나도록 그는 살아 있었다.
그러자 매튜스는 내기 업체에 자신이 폐중피종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생존 기간 중앙값(median: 통계집단의 변량을 크기의 순서로 늘어놓았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값)인 25개월을 넘겨 사는 데 50 대 1로 내기를 걸었다. 2008년 그 내기에서 이겼다. 지난달 두 번째 내기에서도 이겨 8000달러 이상을 땄다.
그러곤 다시 세 번째 내기를 했다. 2010년 중반은 넘긴다는 내기였다. 전형적인 인간 승리의 소재로 많은 사람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 애플 CEO 스티브 잡스,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 배우 패트릭 스웨이지 등 치명적인 암 선고를 받고 살아가는 저명인사들의 이야기는 많이 오르지만 생존 기간 예후의 근거가 되는 원칙이 무엇이냐는 논의는 거의 없다.
예후(prognosis)는 “미리 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질병이 어떻게 진행될지, 서로 다른 치료법들이 환자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는 예측이다. 암 예후의 현대적 개념은 아주 간단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의사들은 특정 암이 과거의 환자들에게서 어떻게 진행됐는지 보여주는 자료를 근거로 같은 질병을 가진 현재 환자들의 암 진행 상태를 예측한다.
미국에서 암 관련 자료의 수집은 20세기 전반에 의사 개개인에서 정부기관 등 중앙 기구들로 이전됐다. 미 국립암연구소(NCI) 역학조사 담당 부소장 브렌다 에드워즈는 NCI가 1973년 이래 미국의 특정 지역들에서 암 관련 자료를 수집한다고 말했다. NCI의 조사 대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미국 인구의 26%에 해당한다.
그 지역에서 진단된 모든 암 자료는 익명으로 NCI 암 기록부(암과 종양 관련 자료실)에 보고되고 지속적으로 관측된다. 이런 정보는 통계학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변화하는 생존 기간과 현재와 과거의 치료법 효율성을 비교하는 데 사용되며, 암 연구자들에게 예후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런 방법의 한계 중 하나는 자료 수집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라고 에드워즈가 말했다. 다시 말해 예후가 암 치료나 심지어 진단 분야의 최신 기법보다 뒤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자료 자체가 정확해야 예후도 정확성이 높아진다.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의 연구 방법론 전문가인 앤드루 비커스는 이렇게 말했다.
“암 의학에선 수많은 결정이 ‘환자의 현 상태’라는 단일 변수에 기초해 내려진다. 예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아주 개략적인 위험 분류밖에 되지 않는다.” 주로 종양의 크기와 전이 정도로 결정되는 병기 판정(staging)은 질병의 진행을 예측하는 가장 유용한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병기 판정이 암 생존을 결정하는 모든 요인을 감안하지는 못한다. 종양의 조직 분류(세포 차원의 암 특성), 호르몬 반응성, 진단 시기, 시도된 치료법, 그리고 환자의 나이, 전반적 건강 상태, 생활방식 등이 주요 요인이지만 그 외에도 많다. 비커스는 환자가 의사에게 어떤 요인들이 예후에 사용됐는지 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인적인 예후를 목적으로 환자들을 정확히 분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점이 암 환자들을 더욱 당혹스럽게 한다. 암 관련 자료가 아주 세부적인 하부 그룹으로 나눠진다고 해도 환자들이 그 자료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생존 기간의 중앙값을 보자.
역사가이자 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는 20여 년 전 ‘중앙값은 의미가 없다(The Median Is Not the Message)’는 글을 잡지에 기고했다. 그는 복부 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 암의 생존 기간 중앙값은 8개월이었다.
과학자로서 통계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그 중앙값이란 남은 8개월을 산다기보다 환자의 50%가 8개월을 생존했다는 의미며, 나머지 50%는 그 이상 살았고 일부는 훨씬 더 오래 살았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알았다. 굴드는 그 암의 낮은 생존 확률에 낙담하지 않고 자신도 생존 기간 중앙값보다 훨씬 오래 산 일부 환자의 대열에 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낙관론에서 용기를 얻어 실험적인 치료 프로그램에 자원했다. 그 결과 암 진단 후 20년 이상 생존했다(2002년 6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물론 환자의 긍정적 태도가 생존 기간 연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러나 닥쳐올 일에 현실적 기대를 가지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
생존 기간의 과소평가와 과대평가는 같은 동전의 앞뒤 면과 같다.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의 임상 종양학자 이선 바슈 박사는 생존 기간의 높은 기대치에 초점을 맞추는 암 전문의는 환자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바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과도하게 낙관적인 예측을 했고 환자가 그것을 믿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환자가 받는 충격이 더 크다.”
여기서 공통적인 문제는 유용한 예후가 단일 수치로 요약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변이성 때문이다. 굴드가 지적했듯이 변이성은 진화가 지시하는 생물학적 적응 반응 중 하나다. 그래서 한 집단에서 한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는 치료법이 다른 사람에게는 잘 듣는다. 따라서 최소한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장기간에 걸친 생존 관련 확률을 이야기 해줘야 유익하다.
암 전문가는 환자에게 예후의 근거가 되는 자료를 더 많이 제시하고 그 자료의 의미를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 에드워즈는 통계 수치를 열거하기보다 특정 암 환자 집단의 실제 생존 기간을 그래프로 제시하면서 환자의 어느 정도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설명하고 가능한 치료법을 환자와 상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슈는 때때로 노모그램(계산 도표)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암 기록부와 임상시험에서 얻은 최대한 폭넓은 자료를 근거로 만든 생존율의 컴퓨터 모델을 말한다. 비커스도 더 많은 암 전문의가 그런 도구를 사용해 환자들과 상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도구를 사용하면 환자나 의사가 환자의 정보를 직접 입력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생존 기간의 개인 맞춤형 예측, 여러 다른 치료법의 상대적 효과, 그리고 심지어 치료법의 부작용에 따르는 위험성 비교도 가능하다. 그러나 예후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모노그램 같은 컴퓨터 모델이 아무리 유용하다고 해도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소통을 대신할 만큼 이상적인 도구는 없다고 바슈가 말했다.
질병의 잠재적 결과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알면 환자가 어떤 치료법을 택할지, 어떤 생활방식을 채택할지, 치료 거부가 여생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길인지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일부 환자에게는 예후가 과도한 불안감을 초래하거나 지나친 기대감을 부추긴다고 바슈는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미묘하고 까다로운 문제는 환자가 직면하는 가장 처음의 선택일지 모른다. 자신이 예후를 원하는지 아예 원하지 않는지 여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제조업 자동화’ 가늠자 ‘로봇 밀도’...세계 1위는 韓
2영풍, 고려아연에 배당금만 1조1300억 수령
3KT, 1.6테라 백본망 실증 성공...“국내 통신사 최초”
4'윤여정 자매' 윤여순 前CEO...과거 외계인 취급에도 '리더십' 증명
5‘살 빼는 약’의 반전...5명 중 1명 “효과 없다”
6서울 ‘마지막 판자촌’에 솟은 망루...세운 6명은 연행
7겨울철 효자 ‘외투 보관 서비스’...아시아나항공, 올해는 안 한다
8SK온, ‘국내 생산’ 수산화리튬 수급...원소재 조달 경쟁력↑
9‘국내산’으로 둔갑한 ‘중국산’...김치 원산지 속인 업체 대거 적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