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합’의 절충안 도출할까?
‘정반합’의 절충안 도출할까?
‘정운찬 총리’ 시대가 열렸다. 대한민국에서 총리가 어떤 자리인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국정 전반을 관할한다. 정부 정책의 최종 귀착점은 총리실이다.
정 총리 내정자 앞에는 다양한 현안이 쌓여 있다. 그중엔 그가 날카로운 비판을 던져온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들도 있다. 국책사업인 4대강 정비사업과 ‘MB노믹스’의 기둥인 감세정책 등이다.
일각에선 정 내정자의 경제관과 MB노믹스의 충돌을 우려한다. 그러나 정 내정자의 다른 관점을 이명박 대통령이 수용하면 MB노믹스가 절충·보완돼 한 단계 진화(進化)할 수도 있다.
정 내정자는 자신을 “decisive한(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일이 있다(2006년 12월). 그가 맞닥뜨린 5대 현안을 어떻게 ‘decisive하게’ 매듭지어 나갈지 세상이 주시하기 시작했다.
1 세종시 논란 =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문제 해결은 정 내정자의 첫째 과제가 됐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 총리 지명 첫날 기자회견에서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원점으로 돌리기는 어렵지만 동시에 원안대로 다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볼 때 아주 효율적인 플랜은 아니라면서 한 얘기다. 정 내정자는 “행정복합도시를 부분적으로 하되 충청도 분들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여러 가지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대강 정비 ‘친환경’으로 추진될 듯
세종시 문제는 충청 민심의 향배를 쥐고 있는 ‘뜨거운 감자’다. 당장 자유선진당과 민주당은 강도 높게 반발하고 있다. 자신의 발언이 문제되자 정 내정자는 “개인 생각을 얘기한 것”이라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정 내정자의 ‘일성(一聲)’은 그간 현 정부가 세종시 프로젝트에 대해 보여온 미지근한 태도와 맞물려 프로젝트 수정에 대해 정부와 모종의 교감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왔다.
사실 학자들 사이에선 세종시의 자족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다. 계획대로 49개 중앙행정기관이 모두 이전해도 공무원과 가족을 합쳐 인구가 6만 명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과 대학 등을 추가로 세종시로 옮겨와 자족기능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세종시 플랜 수정이든 곧바로 세종시 건설 계획 후퇴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충청권 출신의 유력 차기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인 정 내정자가 충청권의 의구심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관건이다.
2 4대강 정비= 정 내정자는 일단 큰 틀에서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은 수질 개선 문제가 있기 때문에 쉽게 반대하기 힘든 사안”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업 내용의 조정 여부와 범위다. 정 내정자는 일단 “더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4대강 주변에 쾌적한 중소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조건을 달았다.
그가 앞으로 4대강 사업을 본격적으로 챙기기 시작하면 친환경 요소는 상당 수준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4대강 사업과 맞물려 있는 또 하나의 변수는 2009년 예산안이다. 이미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에선 4대강 사업 때문에 다른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과 복지 예산이 줄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정 내정자 역시 평소 대규모 토목공사에 대해 우리 경제의 거품을 키운다고 비판해왔다. 정 내정자는 그간 재정 배분의 우선순위를 연구개발(R&D)·교육·의료·관광 등에 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내년 예산안(총지출 기준)은 올해 수정예산(284조5000억원)과 추경예산(301조8000억원) 사이에서 정해질 예정이다.
예산 전쟁은 어느 해보다 치열하다. 이 때문에 정권 내부에서 브레이크 없이 추진돼온 4대강 사업에 다소간의 속도 조절이 생길 여지가 있다.
3 감세 = 지금까지 감세는 MB노믹스의 성역이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조차도 국회에서 “감세 유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대답했다가 곤욕을 치렀을 정도다.
정 내정자는 평소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그는 올 4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여윳돈이 있는 이들은 이미 충분히 소비를 하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감세로 얻게 된 소득을 은행 빚 갚는 데 사용한다”면서 “감세가 소비증대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경제원론 교과서에 나온다”고 평가절하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올해 예정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를 그대로 시행한다고 밝혀왔다. 특히 법인세 인하(최고세율 22%→20%)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일 뿐 아니라 경쟁국과의 조세 경쟁을 감안할 때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세제개편안 역시 법인세·소득세 인하를 전제로 부족한 세원을 메우기 위해 비과세·감면을 대폭 줄이는 내용으로 짜였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접고 기존 감세 정책을 수용할지, 아니면 감세 기조와 내용에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직 베일 뒤에 있다. 다만 정치권의 법인세·소득세 유보 목소리는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4 부동산 = 정 내정자는 지난 6월 이미 부동산 시장의 이상 열기를 경고했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전이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의 이상 열기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지만, 지금 진정시키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막아야 한다는 것은 정 내정자와 기존 경제팀의 생각이 일치하는 대목이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의 열기를 빼기 위한 정책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감세, 소비증대 효과 없다”고 반대금융당국은 당장 7일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와 같은 세금·거래 규제가 발동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정부는 세금·거래 규제는 부작용이 커 시행하지 않기로 정리했다.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정 내정자의 생각도 같다.
5 출구전략 = 정부의 공식 견해는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문의 회복이 완전하게 이뤄진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재정·통화 확장정책을 유지한다”(허경욱 재정부 제1차관, 4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는 것이다. 위기극복을 위해 시중에 풀어놓은 돈을 회수하는 ‘출구전략’을 적어도 금년 중엔 시행하지 않겠다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있다.
경기부양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반면 정 내정자는 경제의 안정성을 중시한다. 전·현 정부의 단기 경기부양책에 대해 “실효성이 없고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매서운 비판을 가해왔다. 800조원을 넘는 요즘의 단기 부동자금은 분명히 과잉유동성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유동성을 흡수하는 정책은 대단한 정치적 모험이 될 수 있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따라서 정 내정자의 등장으로 출구전략 시행이 예상보다 빨라지는 진로 수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정 내정자는 소문난 야구 매니어다.
또 한 명의 저명한 야구 매니어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기자에게 “육체적 충돌이 없고 룰을 정확히 지켜야 하는 것이 야구의 신사적인 매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앞으로 정 내정자에겐 육체적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의 설계자들과 부딪칠 일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런 충돌과 갈등을 얼마나, 어떻게 ‘decisive’하게 돌파해 나가느냐가 MB노믹스의 진화 정도를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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