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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원 매출 보안업체를 꿈꾼다

1조원 매출 보안업체를 꿈꾼다

▎아이디스는 시장의 요구에 걸맞은 제품 개발을 우선시한다.

▎아이디스는 시장의 요구에 걸맞은 제품 개발을 우선시한다.

고(故) 최진실씨 유골 도난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는 CCTV(폐쇄회로 TV)였다. 이처럼 범죄 현장뿐 아니라 지하철, 은행, 버스 안, 심지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과 같은 생활 공간에서도 CCTV는 24시간 돌아간다. 이 CCTV는 ‘눈’에 해당하는 카메라와 ‘뇌’에 비유되는 영상저장장치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제 기능을 한다.

대전시 유성구 관평동에 자리한 (주)아이디스(IDIS·대표 김영달)는 CCTV에 들어가는 영상저장장치를 만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회사다. 지구촌에서 팔리는 디지털 영상 저장장치(DVR・Digital Video Recorder) 100대 중 15대는 이 회사 제품이라고 추정된다.

대우증권 박연주 애널리스트는 “아이디스가 글로벌 보안업체인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 영국의 데디케이티드마이크로스(DM)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3대 DVR 생산업체”라고 소개한다. 아이디스? 일반인들에게 낯선 이름이지만 이 회사 제품은 벌써 우리 주변에 숱하게 깔려 있다.

예컨대 국내 금융권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본사 보안시설에 장착된 DVR의 대략 80%가 아이디스 제품이다. 실제로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모든 ATM에는 이 회사 제품이 내장돼 있다. 아이디스의 국내 DVR 시장 점유율이 40%에 이른다고 김영달 대표는 강조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의 행적도 어딘가에 있을 아이디스 DVR에 한번쯤은 저장됐다고 봐야 한다.

DVR은 CCTV 카메라가 잡은 영상을 디지털 정보로 바꿔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장치다. 1990년대 말 무렵만 해도 CCTV 영상은 비디오카세트테이프로 불리던 VCR(Video Cassette Recorder)에 아날로그 정보로 담겼다. 자기테이프 위에 영상을 담다 보니 녹화 시간이 길어야 12시간이었다.

후속 모델인 DVR은 30일로 확장된 저장 시간에 힘입어 영상저장장치 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르렀다. 이 회사의 설립 시기도 보안장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점과 맞물렸다. 아이디스는 1997년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 과정을 밟던 29세의 김영달 대표가 동료 과학도 4명과 함께 만들었다.

김 대표가 종잣돈으로 3000만원을 대고 창업 멤버들이 500만원씩을 거둬 시작했다. 밖에서 보면 사업도 아니었다. 그저 엔지니어들이 프로젝트 하나 추진하는 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돈보다 더 든든한 자산이 있었다. 보안시장이 변화하리라는 ‘확신’과 야심을 구현해줄 ‘기술’이다.

아이디스 출범 초기 이미 학계와 산업계에는 디지털 기술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고, 가전분야만 해도 아날로그 정보를 담던 비디오테이프가 디지털 정보에 적합한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Digital Versatile Disc)에 자리를 내줄 즈음이다. 보안장비 시장은 아직 아날로그 시대에서 미적댔다.

안전성을 중시하는 보안장비의 특성상 새 기술보다는 효능이 확인된 기존 기술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 여건도 신생 기업이 뛰어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시장은 존재하는데 규모가 작아 대기업이 주력하지 않았고, 시장을 지배하던 일본 기업들은 한물간 아날로그 제품을 높은 가격에 팔았다.

계산은 간단해졌다. 일단 보안장비 시장이 디지털기술 기반으로 바뀌면 모든 기업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누구에게나 신기술인 까닭이다. 물론 디지털 기술 노하우라면 갓 창업한 아이디스보다는 글로벌 전자・전기 기업들이 월등하다. 그렇지만 기술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이 더 큰 시장을 놔두고 보안장비와 같은 틈새 시장에 뛰어들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보안장비를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들조차 비주력 사업인 보안장비 부문에 핵심 기술 인력 투입을 꺼리는 실정이었다. 아이디스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기술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전산학을 전공한 창업 멤버들은 카이스트에서 첨단 디지털 기술의 세례를 흠뻑 받았다.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 기술을 대체하는 큰 변화의 맨 앞에 우리가 서 있었다고 장담하던 시절”이라고 김영달 대표가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812억원)의 75%를 해외에서 올렸다. 해외 30여 개국 60여 개 보안 관련 회사에 납품했다. 특히 선진국 시장인 북미(22.5%), 유럽(27.1%)이 전체 매출의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이 회사의 기술 경쟁력을 말해준다.

“우리는 국제 품질 평가에서 1등을 놓쳐본 일이 거의 없다”고 창업멤버인 정진호 연구소장이 강조했다. 초창기에는 기술만 믿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창업 이듬해인 1998년 첫 DVR 제품 ‘IDR1016’ 을 미국 시장에 내놓았다. 이미 몇몇 해외 업체들이 기존 VCR을 개량한 DVR 제품을 선보이긴 했지만 100% 디지털화된 제품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아이디스의 제품은 녹화시간이 30일에 가까운 파격적 성능을 자랑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DVR의 고객은 개별 소비자가 아니라 보안장비를 만드는 기업이다. 이 기업의 구매 담당 실무자 입장에서는 신생사 제품으로 섣불리 바꿨다가 행여 뒤탈이 생기면 그 책임을 혼자 뒤집어써야 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몸을 사렸다 (이런 기억 탓인지 아이디스는 지금도 기술 기반 제품보다는 시장기반 제품을 더 쳐준다. 김 대표는 최고의 제품은 최고의 기술로 만든 제품이 아니라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궁여지책으로 첨단 제품을 알아 주는 소비자를 찾아 나섰다.

NASA,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 굵직한 거래선을 뚫는 데 주력했다. 또 1999년엔 시드니 올림픽 주경기장에 디지털 보안장비 수백 대를 한꺼번에 납품하면서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노력과 시행착오가 밑거름이 됐을까? 이 회사는 부침이 심하다는 DVR 업계에서 2001년 161억원 매출을 올린 이래 지난해까지 매년 26%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영업이익률도 2005년이래 25% 이상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DVR에서 CCTV로, 더 나아가 보안장비 전반으로까지 생산라인을 확대해 1조원 매출의 세계적인 보안 업체로 거듭난다는 목표다.

하지만 올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에 수출이 주춤하면서 1,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실적을 밑돈다. 김 대표 스스로도 “예전엔 우리가 시장 성장 속도를 앞섰지만 지금은 비슷하게 간다”고 말했다. 당면 정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하느냐가 아이디스의 미래와 세계 DVR 업계 판도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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