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대중화의 지휘봉을 잡다
클래식 대중화의 지휘봉을 잡다
9월 15일 저녁 8시 서울 서초동 DS홀에 위치한 유라시안필하모닉 연습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금난새(62) 감독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금 감독은 이날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성악가들과 합작 무대인 ‘오페라 갈라 콘서트’의 리허설을 하루 종일 가졌다.“성악가들과 무대를 준비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네요. 이젠 나이가 들어서 절제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지난해 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공연은 150회에 달한다. 일주일에 세 번꼴이지만 매번 열정적인 모습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공연을 많이 할수록 청중이 늘고, 이를 통해 클래식이 대중화된다는 생각을 하면 공연을 줄일 수 없다”고 말했다. 금 감독은 현재 경기도립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자, 유라시안 코퍼레이션 CEO다.
유라시안 코퍼레이션은 유라시안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다양한 음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삼성전자, 포스코, CJ, 삼성테스코 등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연주를 기획할 뿐 아니라 음악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제주뮤직아일페스티벌’과 ‘무주 페스티벌’ 같은 음악축제도 연다.
흥미로운 것은 유라시안필하모닉은 순수 민간단체로 정부 지원을 한 푼도 받지 않는 ‘벤처 오케스트라’라는 점이다. 정부 지원은 없지만 연간 100회에 달하는 공연을 한다. 기업체와 지자체의 후원으로 경비를 충당하고 수익도 올린다. 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청중을 기다리지 않는다.
기업체부터 지방대, 사관학교, 사법연수원 등 사람들이 모이고 음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금 감독은 “공연 섭외가 들어오면 제시한 금액이 터무니없이 낮아도 절대 ‘NO’라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액이 맞지 않으면 주최 측의 상황과 청중의 눈높이에 맞는 공연을 다시 제안한다.
“예산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오케스트라 인원과 공연 시간을 줄이면 된다”는 이야기다. 기업으로 치면 소비자 지향적인 공연을 개발해 주는 것. 그는 “비즈니스에서도 상대방에게 무턱대고 ‘NO’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라며 “지금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그 공연을 통해 사람들이 다시 공연을 원하게 되면 결국 수익으로 이어지더라”고 설명했다.
인원과 시간을 줄였다지만 품질은 줄이지 않는다. 서울 창동의 ‘서울열린극장’에서 진행하는 ‘브런치 콘서트’가 좋은 예다. 이 극장은 서울 동북부 지역의 문화 발전을 위해 서울시에서 마련한 텐트형 이동식 극장이다. 예산이 부족한 주최 측을 위해 금 감독은 15~20명 규모의 소규모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1년에 두 번씩 공연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공연이 끝난 후 인터넷을 통해 공연 횟수를 늘려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금 감독은 주최 측의 요청으로 올해부터는 오케스트라 인원을 늘리고 두 달에 한 번씩 공연을 갖고 있다. CJ 후원으로 진행했던 사법연수원 콘서트도 마찬가지. 금 감독은 “CJ의 후원이 끊기는 바람에 중단했다가 사법연수원에서 직접 후원자를 구해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다.
클래식을 하다 보면 이처럼 영화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진다”며 미소 지었다. 금 감독의 인생도 영화 못지않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그는 지휘자가 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1977년 독일 유학 3년 만에 카라얀 국제 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했다. 지금이야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일이 흔하지만 당시 그의 입상은 국가적인 쾌거였다.
7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 최고 오케스트라 중 하나였던 국립교향악단의 최연소 지휘자로 부임했고, 이후 KBS교향악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92년 돌연 안정된 KBS에서 전임 자리를 박차고 수원시립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했다. 당시 수원시향은 1년에 10회도 연주하지 않던 존재감 없는 오케스트라였다.
그는 수원시향을 수원갈비보다 유명하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월급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KBS에선 ‘사공’이 너무 많아 내 뜻을 펼치기 어려웠다”며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고 싶은 내 기질이 작용한 것”이라고 돌이켰다.
이때부터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93년 국내 최초로 지휘자가 해설자로 등장해 7년 동안 전석 매진을 기록한 ‘청소년 음악회’는 작은 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재야 음악회’나 ‘마라톤 음악회’도 열었다.
수원시향의 이름이 알려지자 후원도 생겼다. 삼성전자에선 5년 동안 매년 4억원씩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수원시에선 축구장으로 만들려던 부지에 야외 음악당을 조성했다. 하지만 그는 99년 수원시향을 그만두고 유라시안필하모닉의 지휘자이자 CEO로 나섰다. 그는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내가 직접 아이디어를 불어넣어 움직이는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자립형 오케스트라를 꾸린 것은 과거 경험과 무관치 않다. 그는 “서울시향이 150억원을 지원받고 KBS교향악단이 90억원을 지원받는 것은 프로의 관점에서 볼 때 합리적이지 않다”며 “음악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산업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의 비판은 최근 넘쳐나는 음악 전공 졸업생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유학생만 1000명이 넘는데 이들이 한국에 돌아올 때는 어디로 가야 하나. 수백억원을 몇 개의 오케스트라에 집중 지원하기보다는 이런 인력들을 고용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를 많이 양성하는 게 우선 순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라시안필하모닉은 시작부터 화제를 모았다.
99년 12월 31일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포스코 로비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으로 새천년의 문을 열었다. 로비 연주회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웅장한 관현악의 선율에 감동했고 모두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 덕분에 유라시안필하모닉은 포스코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로비 정기 연주회를 얻었다.
힘든 일도 많았다. 전용연습실이 없어 서울 반포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강당 한편을 연습장으로 이용했다. 문제는 ‘방세’였다. 금 감독은 방세 대신 음악을 제공하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도서관 음악회를 하기로 제안한 것. 도서관 측도 대환영이었다. 도서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지역주민들에게 문화를 향수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와 잘 맞았기 때문이다.
정성을 들인 만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금 감독은 지방 공연을 잘 다니는 지휘자로 유명하다. 그는 “KBS 시절 다른 음악가들은 해외 유명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고 싶어 했지만, 난 1년에 두 번씩 했던 지방 공연이 가장 좋았다”며 “지방을 찾아다닐 때마다 늘어가는 클래식 시장을 보면서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3년 전 음악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오케스트라 캠프를 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한국의 음악시장은 모두 입시교육에 집중돼 있다”며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대학에서 키워야 하듯이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인재를 직접 양성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그가 펼치고 있는 실내악 축제 ‘제주뮤직아일페스티벌’은 그동안 비인기 공연이었던 실내악 열풍을 일으켰다.
제주도를 고품격 실내악의 고향으로 만들기도 했다. 2007년부터 열고 있는 ‘무주 페스티벌&아카데미’는 솔리스트 양성 일변도의 클래식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공연 횟수에 따라 보수 지급오케스트라 운영에서도 파격을 보였다. 그는 단원들의 보수를 공연 횟수에 따라 지급한다. 그는 “공연이 많을수록 단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도 많아진다. 단원들의 경우 외형적으로만 보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지만 그 열정은 남다르다”고 밝혔다.
“근처 오케스트라들과 연결된 악기점에 가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현악기 활털을 가장 자주 교체하는 곳이 바로 우리입니다. 연습이 끝나도 자기들끼리 조를 짜서 맞춰볼 정도로 열심이죠. 그렇다고 제가 연습하라고 지시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금 감독의 ‘하모니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연주가 끝나면 지휘자가 먼저 나가던 관행을 없앴다. 단원들이 먼저 박수를 받고 퇴장하도록 함으로써 지휘자에게 배려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2년 전 60세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방 출장을 다닐 때는 단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그는 “어느 순간 단원들이 제가 힘들어 병이 들면 공연을 못 한다면서 버스를 못 타게 하더라”며 웃었다.
금 감독은 지난해부터 월드심포니를 구성하고 음악감독을 맡았다. 월드심포니는 전 세계 22개국 52명의 연주자로 이뤄진 오케스트라다. 그는 “클래식은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언어”라며 “난 클래식을 통해 지역과 계층, 인종 간에 문화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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