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우·최지성 투톱 인텔을 누르다
이윤우·최지성 투톱 인텔을 누르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10월 11일 전용기 편으로 귀국했다. 지난해 4월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이 전 회장은 계속 국내에 머물렀다.
그러다 1년6개월 만인 9월 20일 유럽으로 출국했다 돌아왔다. 프랑스겣뗌?영국 등에 들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방문 목적과 만난 사람, 구체적인 이동 경로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오랜만의 외출이었지만 그야말로 조용한 외출이었다. 재계 일부에서는 이 전 회장의 복귀설이 나돌고 있지만 삼성 쪽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 전 회장보다 주목되는 사람은 이재용 전무다.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재계 소식통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요즘도 세계 유수의 기업 오너나 CEO를 가끔씩 만난다고 한다.
다만 예전처럼 영빈관에서 만나지 않고 자택에서 조용히 식사를 같이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삼성의 핵은 역시 삼성전자다. 이 전 회장이 물러난 후 삼성, 특히 삼성전자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 삼성전자 경영진은 잇따라 이 전 회장의 복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통찰력과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뜻에서다. 최지성 사장은 9월 초 독일 베를린에서 “전략적 포커스를 하려면 오너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이 전 회장의 복귀 문제를 공론화했다. 권오현 반도체사업 담당 사장도 9월 2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와 미래를 위해 이 회장의 경험이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전 회장의 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오너 공백과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삼성전자는 승승장구했다. 물론 이 전 회장이 중심을 잡고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삼성전자는 훨씬 앞서갔을 수 있다. 그가 구축한 토대와 성과가 지금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의 삼성전자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 발광다이오드(LED) TV 10대 가운데 9대는 삼성 제품이다. 9월 말에는 글로벌 IT기업의 대표주자인 인텔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휴대전화 단말기의 세계 최강이라는 노키아가 3분기 적자를 기록했는데도 삼성전자는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글로벌 대표 IT기업으로 우뚝 서다 오는 11월 창립 40주년을 맞는 삼성전자가 제2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삼성전자는 3분기에 해외법인 실적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4조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추정 실적을 공시했다. 시장 전망치인 3조 8000억~4조원을 훌쩍 넘어선 수치로 2004년 1분기(4조100억원) 이후 처음으로 4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렸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이룬 실적이라 의 미가 남다르다. 특히 위기 수습에 바쁜 경쟁사들의 기를 확 꺾었다. 특히 부품과 완제품 부문에서 세계시장을 고르게 주도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였다.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정보통신(휴대전화 단말기), 디지털미디어(TV) 등 4개 주력 사업에서 고루 이익을 냈다.
과거 반도체와 휴대전화로 벌어들인 돈을 TV와 생활가전 부문에서 까먹는 구조에서 벗어난 것이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반도체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 부분은 정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삼성전자는 특정 부문의 강자였을지는 몰라도 올라운드 플레이어는 아니었다.
해외에서 반도체 회사로 알려질 정도로 전체 실적에서 반도체 비중이 컸다. 2004년 1분기에 영업이익이 4조원을 넘었을 때도 반도체가 1조7800억원, 정보통신이 1조2800억원의 이익을 냈지만 LCD는 8400억원, 디지털미디어 1500억원, 생활가전 600억원의 이익에 그쳐 포트폴리오가 편중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일부에서는 반도체 경기가 가라앉을 경우 회사 자체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까지 나왔다. 이번엔 달랐다. 반도체, LCD, 정보통신, 디지털미디어 등 4개 사업 부문이 골고루 1조원 안팎의 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와 LCD가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유지한 가운데 휴대전화와 TV 부문이 약진하면서 균형을 이뤘다.
D램 시장 점유율이 40%에 이르는 반도체 부문에서는 그야말로 단독질주다. LCD 시장에서도 2위인 LG디스플레이와 더불어 2강 체제를 확실히 구축했다. 휴대전화 점유율은 20%를 넘어 노키아를 바짝 뒤쫓고 있고, TV는 북미시장에서 소니와 격차를 더욱 넓히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휴대전화와 TV를 필두로 완제품 부문의 경쟁력과 수익성이 좋아지면서 경기 사이클의 진폭이 큰 반도체와 LCD 부문을 보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달리 삼성의 벤치마킹 대상이던 소니는 엔고 등으로 고전했다. 여기에 세계 휴대전화 단말기 판매 1위인 노키아도 13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노키아는 10월 15일(현지시간) 발표한 2009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8억32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분기 중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6%, 영업이익은 51% 줄었다. 장비 분야도 고전했지만 주력인 휴대전화 부진이 원인이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미국 인텔을 넘어서기도 했다. 9월 22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종가 기준으로 달러화로 환산했을 때 1102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1일(현지시간) 현재 1093억8000만 달러를 기록한 인텔을 8억6000만 달러 초과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지난해 9월 인텔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각각 1269억 달러와 761억 달러로 인텔이 508억 달러나 많았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실적 랠리가 계속 이어질까? 실적이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80만원을 훌쩍 넘긴 주가가 70만원대로 밀렸다.
그러나 반도체와 LCD 부문은 계절적 변수가 큰 4분기와 내년 초를 제외하면 당분간 호황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소니를 비롯한 경쟁사가 LED TV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어 마케팅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영업이익이 다소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강하고 빠른 뉴 삼성으로 변신하다 삼성전자는 올 1월 21일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기존 4개 사업총괄을 부품(DS: Device Solution) 부문과 완제품(DMC: Digital Media&Communications) 부문으로 재편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반도체총괄과 LCD총괄은 DS 부문으로, 디지털미디어총괄과 정보통신총괄은 DMC 부문으로 흡수됐다.
책임경영으로 현장과 스피드를 중시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또 불필요한 내부 경쟁을 줄이고 사업부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높여 회사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포석도 깔려 있었다. 단순히 조직만 합친 건 아니다. 본사의 기능, 조직, 인력을 대거 현장으로 넘겼다.
경영지원총괄을 폐지하고 사업부문의 현장완결형 의사결정 구조로 바꿨다. 본사 인력 1400명 중 200여 명만 남기고 모두 현장으로 전진 배치했다. 전체 임직원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인력의 보직을 바꾸는 사상 초유의 인사 쇄신이었다. 특히 현장에서 검증된 최정예 직원을 영업 일선에 전면 배치하는 등 조직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현장 중심 경영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고객 접점뿐만 아니라 생산, 물류, 협력업체 등 현장에 자주 나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신속하게 해결해 다시 현장에 반영하라는 것이었다. 관리보다 효율에 무게를 두면서 삼성전자 경영 DNA도 달라졌다.
모든 기업의 영원한 화두인 창조경영도 숙제로 던져졌다. 보고와 지시 중심의 회의를 토론식으로 바꾸고, 도전과 실패를 용납하는 문화를 도입하자는 노력이 이어졌다.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Work Hard)’ 문화에서 ‘효과적으로 근무하는(Work Smart)’ 조직문화로 가꾸려는 시도 역시 계속됐다. 시간관리에서 성과관리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이를 위해 근무복장 자율화, 자율 출근제 등을 도입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말 DS 부문을 단일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사업재편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와 LCD사업부를 DS 부문으로 묶었지만 물리적 통합 수준이어서 시너지 효과 창출이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 단일 체제를 구축해 태양광 등 미래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투톱 리더십’ 위기에 더욱 빛나다 이윤우 부회장이 DS 부문을, 최지성 사장이 DMC 부문을 맡는 ‘투톱 경영’은 삼성전자가 불황을 극복하고 체질을 바꾸는 기폭제이자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현장경영을 강조한 이 부회장은 2월 말 사무실을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경기도 기흥 사업장으로 옮겼다.
사무실에는 푹신한 소파 대신 회의용 탁자를 놓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이 부회장이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놓고 결국 사업을 성공시킨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 부회장은 또 전국 각지의 사업장에 자주 들러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분위기만 다잡는 건 아니었다. 이 부회장은 1분기에 67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반도체 사업을 되살리기 위해 권오현 사장과 머리를 맞대고 ‘차세대 제품 육성’이란 전략적 카드를 꺼냈다. 내용은 주력 D램 제품을 DDR2에서 DDR3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기존 DDR2보다 정보처리 속도와 성능이 40~50%가량 좋은 제품으로 바꿔 높은 가격을 받자는 전략이었다.
마침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운 운영체제인 윈도 7을 내놓는다는 소식이 업계에 퍼지면서 PC업체들이 DDR3 제품을 찾는 등 운도 따랐다. 이 부회장은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제품을 경쟁사보다 1세대 이상 앞서 제공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유지해야 한다”고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현장경영으로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공격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는 전략이 먹혔기 때문이다. DMC 부문을 맡고 있는 최지성 사장 역시 추진력이 대단한 경영자란 평가를 받고 있다. 별명이 ‘독일병정’ 또는 ‘최틀러’인 그는 ‘내 사전에 2등은 없다’거나 ‘세계는 넓고 팔 물건은 많다’는 말로 유명하다.
그는 수시로 “사업별 시장지배력을 더욱 높여 현재 1위인 제품은 2위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확대하고, 2위인 제품은 1위와의 격차를 지속적으로 축소하는 데 주력해 달라”고 독려한다. 자신감도 대단하다.
그는 유수의 글로벌 기업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삼성만 강한 이유로 “삼성에는 힘을 모아 바른 방향을 찾아가는 자이로스코프가 있다”며 “성장 궤도에 오르면서 석세스 포뮬러도 작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자이로스코프는 무게중심을 고정해 어느 방향에서든 쉬지 않고 회전하는 회전체를 말한다.
석세스 포뮬러는 말 그대로 성공할 수 있는 법칙을 뜻한다. 결국 삼성은 스스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갖고 있으며, 이미 성공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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