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너덜너덜한 미국 경제를 보라
아직 너덜너덜한 미국 경제를 보라
미국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순이익이 매출액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 3분기에만 생산성이 연간 9.5% 증가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의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비결이 뭘까? 기업들이 인건비를 연간 5.2% 삭감했고 전체 근로 시간도 5% 단축했기 때문이다.
즉 보다 적은 인력이 보다 더 짧은 시간 동안 일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전혀 희소식이 아니다. 지난 10월 미국의 실업률은 10.2%로 치솟았다. 경제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기였던 1983년 이후 최고치다. 하지만 이조차 실업 대란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는 못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경제인구에서 탈락되거나 자신의 의지와 달리 시간제 근무를 해야만 한다. 일할 능력과 의사와 상관없이 실질임금 이상을 받지 못하는 이런 사람들까지 실직 인구에 더하면 이른바 ‘불완전 고용률’을 추산할 수 있다. 지난달 불완전 고용률은 9월보다 0.5% 상승한 17.5%를 기록했다.
잘리거나 죽도록 일하거나일부 낙관론자는 10월 해고 당한 근로자 수가 ‘단’ 19만 명뿐이라고 강조한다. 올 초에 비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수치는 기업 대상 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일반 가구 설문조사를 통해 산출된 실업률과는 다르다. 가구 조사에 따르면 지난 3개월간 매달 50만 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해고 근로자 통계의 두 배가 넘는 수다. 평균 시간당 임금 역시 지난달 0.3% 상승했지만 1년 전에 비하면 2.4%밖에 오르지 않았다. 한편 근로자들의 근무 시간은 일주일에 평균 33시간으로 미국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의 실업률 통계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준은 지난 4일 기준 금리를 ‘상당 기간’ 현행 0~0.25%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연준은 제로 금리를 유지하는 이유도 명시했다. “자원 활용이 저조하고 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안정된 상태를 지속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자원 활용 저조’는 곧 실업률을 뜻한다.
버냉키 의장이 이끄는 연준이 10% 선을 넘긴 공식 실업률 통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동향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의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 투자기관인 핌코 대표 겸 공동최고투자책임자(CIO) 모하메드 엘-에리언이 말했다.
지난주 금값이 온스당 1100달러 선을 돌파했고 물가지수연동채권(TIPS) 시장 역시 인플레이션 징후가 심상치 않다. 또 연준의 제로 금리 정책이 자산 가치의 거품을 야기하리란 지적도 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연준이 금리를 인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완벽한 정답은 없다”고 엘-에리언은 말했다.
“어느 한쪽은 포기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미 정부 정책 결정자들이 부럽지 않은 이유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 가닥 희소식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실업률이 두 자릿수였던 1980년대 초반의 상황은 훨씬 더 암울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실업률과 함께 인플레이션도 치솟았다.
그래서 실업률과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진단 척도로 삼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더한 ‘고통지수(misery index)’가 나왔다. 하지만 경제적 고통은 여러 형태로 온다. 자산관리기업 칼라모스 어드바이저스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고통지수 산출법을 만들었다.
이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보낸 월간보고서에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순자산의 감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칼라모스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순자산 관련 데이터를 추가해 1929년부터 신(新)고통지수를 산출해냈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놀랍게도 지난 1년 반 동안 받은 경제적 충격이 경제 대공황 시대를 포함해 사상 최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칼라모스는 대공황 시절처럼 고통이 길게 연장되지는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그늘이 드리운 증시에 햇살은 언제 비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기대하기는 이르다. 증시는 궁극적으로 사회 심리를 반영한다. 엘리어트 파동이론(시장 가격이 일정한 리듬에 따라 반복된다는 주가변동이론)의 대가인 로버트 프렉터도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현재 금융위기 대처와 관련해 정부에 실망한 사회심리가 한참 더 나빠진 다음에 반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974년 바닥을 친 사회 분위기는 그 뒤 33년간 서서히 개선됐다. 2년 만에 분위기가 반전되진 않는다.” 프렉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편 “요즘처럼 기록적으로 과대평가된 주식을 사려면 상당한 배포가 있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프렉터에 따르면 배당수익이 6~7% 수준이고 주가수익비율(PER)이 6 이하일 때 저평가된 주식을 잘 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3%대의 배당수익에 세 자릿수의 PER은 결코 좋은 투자 조건이 아니다.
미 증시가 지난 2월 극도의 비관론에 시달린 다음 약세 속에서도 상승을 계속하자 프렉터는 투자자들에게 공매도한 주식을 되사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것도 10월로 끝났다. 이제 그는 현금을 쥐고 있으라고 권한다. 일례로 ‘0’에 가까운 수익률을 내고 있는 미 재무부 단기채권에 투자하라는 얘기다.
지난 1년 반 충격 사상 최대수익률에 근거한 투자 결정은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프렉터는 주장한다. 1981~82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800선일 때 그는 주식이 다섯 배가량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채 수익률이 15%나 되는데 무슨 주식투자냐”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지금 프렉터는 혼란스러운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40%의 손해를 보느니 수익률 제로에 가까운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LY 어드바이저스를 운영하는 베테랑 증시 애널리스트 루이스 야마다 역시 미 증시의 위험을 경고하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증권거래량이 연중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고 다양한 기술적 조치들도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상승세를 이어가는 기술주(반도체 제외)와 달리 일부 종목은 급락하는 등 종목 간 편차도 심하다.
하지만 야마다는 금에 대해서는 유독 낙관적이다. 사실 그녀는 2001년 이래 금에 주목해 왔다. 그녀는 투자자들은 그때부터 다우지수가 14000대를 돌파했던 2006~2007년 호황기를 포함해 지금까지 금거래 시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다우지수를 금으로 변환해 평가하면 첨단기술주 거품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 43온스에서 현재 9온스로 추락했다.
다시 말해 다우는 약세 시장이 됐고 금은 강세가 됐다는 뜻이다. 금값 폭등이 달러 약세에 기댄 일시적 현상은 아니다. 야마다는 최근 금값이 다른 통화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방 경제에 대한 불신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인도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00t의 금을 사들였다. 유럽과 미국 경제는 “붕괴됐다”고 인도의 재무장관은 선언했다. 물론 과장 섞인 표현이지만 미국을 보는 세계의 냉정한 평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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