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주가 만난 한국의 리더들 7 문훈숙
임형주가 만난 한국의 리더들 7 문훈숙
세계적인 발레리나 1호와 영혼결혼식.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을 설명할 때면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다. 세계적인 무용수가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둘째 며느리가 된 사연은 소설 속 여주인공 스토리 같다.‘과연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은 두 예술인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서로에게 “공감한다”는 말을 주고받더니 이야기는 사랑, 인생 목표, 자녀 교육 등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어졌다. 임형주 반갑습니다. 2003년 ‘프랑스 문화의 밤’행사 이후 7년 만이네요. 프로 무용수에서 예술 경영자로 바뀐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꼭 뵙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문훈숙 감사합니다. 저는 임형주씨의 음악을 들으면서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반갑네요.(웃음)
임형주 오늘 새벽 그리스에서 귀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문훈숙 네. 3주간 아테네에서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하고 돌아왔어요. 신종플루 때문에 고생 많이 했죠. 어린이나 가족을 위한 공연을 준비했더니 타격이 더욱 심하네요. 공연을 보신 분들이나 관계자분들은 “너무 좋았다”고 하니까 그나마 힘이 나요.
임형주 저도 공연을 자주 하잖아요. 작년에 파리 살 가보 독창회가 있었는데 감기 기운이 있었어요. 온몸에서 열이 났지만 공연을 취소할 순 없잖아요. 다행히 공연 당일 컨디션이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었지만, 그동안 다른 독창회와는 다르게 힘들게 공연했죠. 하지만 기립박수를 받은 순간 다 낫는 기분이었습니다.
문훈숙 맞아요. 하여튼 그리스에 다녀오니까 한국이 더 좋아지네요.
임형주 2009년에 처음으로 연간 공연 100회를 돌파하셨어요. 국겙片?단체에서도 하기 힘든 일인데요.
문훈숙 100회는 처음이죠. 나무에 물을 많이 준다고 빨리 자라는 게 아니잖아요. 충분한 영양분과 시간이 필요하듯이 25년이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임형주 2010년 계획도 세우셨나요?
문훈숙 지금까지 다져왔던 실력으로 발레를 더욱 대중화시키는 데 노력할 겁니다. 국내외 정기공연과 발레 교육도 열심히 하고요. 쉬지 않고 달리니까 힘드네요. 아직 힘들 나이가 아닌데요(웃음). 공연할 때마다 해설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임형주 그러면 직접 해설 멘트를 쓰나요?
문훈숙 네. 무용수나 발레를 배운 사람만 알 수 있는 부분을 알려주고 얘기를 해주니까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임형주 발레리나 하면 무지 고고하고 우아해서 단장님을 처음 뵈면 도도하고 차가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무척이나 상대방을 배려하시네요. 발레 공연에 앞서 해설을 해준다는 것도 그렇고요.
문훈숙 발레를 할 때는 오로지 내 자신만 신경썼죠. 은퇴를 하고 CEO로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문화예술을 즐기시는 분조차 발레를 어렵고 지루하다고만 생각하는 거예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발레 문턱을 낮추는 노력을 시작했어요. 해설하는 것도 그렇고, 국내 처음으로 공연 무대에 자막을 넣었어요. 마치 동화 <헨젤과 그레텔> 에서 두 남매가 길을 잃지 않도록 빵을 조금씩 떨어뜨리는 것처럼 공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임형주 반응은 어때요. 제가 팝페라를 하다 보니 단장님의 의도가 이해가 가는데요.
문훈숙 자막을 넣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반대에 부닥치다가 제가 2009년부터 적극적으로 나선 거죠. 막상 하고 나니 너무나 좋아하는 거예요. 발레를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분도 있고요(웃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발레 공연의 기본 수준이겠죠.
임형주 기본 실력이 바탕이 된 후에 대중화에 나서는 게 맞다는 얘기죠.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문훈숙 그렇죠. 공연을 보고 실망을 하면 다시 안 와요. 공연장에 오게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실력을 갖춘 후에 대중화에 나서야 합니다. 공연의 참 묘미는 감동입니다. 감동이 없다면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죠.
지난해 연간 공연 100회 넘어 헨젤과> 호두까기>
임형주 올해 공연 중 <오네긴> 이 가장 눈에 띄는데요. 92년에 판권을 가져오려다 실패하고 17년 만에 무대에 올리셨죠.
문훈숙 (한참 말을 잇지 못하더니 마음이 아픈 듯 한 손을 가슴에 살포시 올렸다) 솔직히 <오네긴> 은 발레리나로서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백조의 호수보다 아니 어떤 공연보다 해보고 싶은 작품이죠.
물론 이번에 후배들이 할 수 있어서 뿌듯해요. 92년 당시에는 우리 발레단에 관심조차 없었는데 이번에는 한 번에 승낙했거든요. 그만큼 국내외적으로 실력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게다가 신종플루로 공연업계가 어려웠던 9월에 열렸는데 표가 많이 팔렸어요. 그때 기자분이 ‘신종플루를 이긴 공연’이라고 소개하던데요(웃음). 아….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힘들었어요. 다시 토슈즈를 신고 싶은 생각에 몇 번이나 이를 악물었는지 몰라요.
임형주 특별히 이 작품에 애착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문훈숙 두 가지 때문이죠. 첫 번째로 <오네긴> 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19세기에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고전 작품과 달리 20세기 유럽 작품이에요. 우리 발레단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고요. 두 번째는 너무 아름답습니다(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중간중간 영어를 사용한다.
<오네긴> 얘기가 나왔을 때는 ‘So Beautiful!’을 연발했다). 러시아 작품은 짜인 틀대로 움직이죠. 그런 형식에서 벗어나 스토리 흐름 위주로 풀어가는 게 유럽 발레죠. 특히 <오네긴> 은 음악과 무용, 이야기가 너무나 조화를 잘 이뤄요.
임형주 무엇보다 국내에 처음 공연됐다는 게 중요하겠죠.
문훈숙 예전에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이끌고 공연을 했었죠. 국내 발레단이 직접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임형주 처음 발레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문훈숙 일곱 살 때 처음 어머니가 발레학원에 보내셨죠. 그때만 해도 제가 발레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후 리틀엔젤스예술단에 들어가게 됐고, 선화예술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선화예고 1학년 때 처음으로 미국에서 발레를 전공한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분에게 8년간 전문적으로 배웠습니다.
임형주 마치 운명 같은데요. 연습하는 건 힘들지 않았나요.
문훈숙 저는 공연보다 연습이 행복해요. 하나씩 갈고닦는 그 기분이 좋아요. 마치 조각하는 과정과 비슷한데요. 깎아내는 아픔의 과정을 통해 몸을 만들고 동작을 만들어내죠. 그런 과정을 거치고 연륜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깊이가 배어나오죠.
임형주 맞아요. 그 말을 들으니까 떠오른 게 있어요. 무용수에게는 타고난 몸이 있듯이 저에게는 목소리와 그에 맞는 옥타브가 있잖아요. 옥타브도 연습을 통해 조금씩 늘릴 수 있어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샤워하면서 목소리를 체크해요. 샤워실이 소리가 퍼지기 때문에 연습하기 좋아요. 그런데 어제 안 되던 음이 나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문훈숙 하하. 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발을 들어올려 다리를 봐요. 다리가 부었는지를 본 후에 배를 만져봐요. 살이 조금이라도 찌면 안 되거든요
임형주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요. 혹시 <지젤> 로 일곱 차례 커튼 콜을 받은 날 아닐까요.
문훈숙 그때는 너무 힘들었던 공연이었고요. 개인적으로는 로마에서 야외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공연 준비 중인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거예요. ‘아! 이러다가 공연 취소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공연 30분 전에 비가 거짓말처럼 멈추는 거예요. 비 온 뒤 저녁 하늘도 유난히 맑았죠.
[지젤] 장면 중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부분이 있는데 무대장치가 필요 없을 정도였어요. 이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무용 평론가가 오셨는데 공연이 끝난 후 저에게 “공연을 보는 동안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았다”며 영원의 세계를 표현했다고 극찬해주셨어요.
임형주 ‘영원’이라고 하셨죠. 저도 영원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공연을 할 때 제가 갖고 있는 재능을 한순간에 보여주잖아요. 그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거죠. 반대로 발레단을 이끌어 오면서 힘든 일은 없었나요.
문훈숙 25년 중 20년 동안은 외부 후원을 받을 수 없었어요.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발레단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죠. 초기에는 무용계 내에서 “거기는 어디가 지원하니까 가지 말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나마 시아버님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운영을 할 수 있었죠. 다행히도 이제는 유니버설발레단을 업계에서 조금씩 인정해 주는 분위기 같아요. 기부도 받고 기업 후원이 늘고 있어요. 꾸준히 한 길만 열심히 달려온 보람이죠.
임형주 제가 3년 전에 2008년 파리 독창회를 준비하면서 파리 총프로덕션 매니저를 만났는데요. 그가 한국 예술인으로 정명훈, 조수미, 그리고 유니버설발레단을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한국인으로 자랑스럽고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유니버설발레단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석 달 전에 문선명 총재가 쓴 <평화를 사랑한 세계인으로> 를 읽었어요. 기존에 제가 갖고 있던 통일교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깨진 것 같아요.
문훈숙 (웃음) 사실 저도 이 책을 읽고 ‘시아버님을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반성했답니다.
임형주 총재님이 얘기를 잘 안 하시나 봐요.
문훈숙 거의 가족들하고 시간을 안 보내세요. 자녀분들이 상당히 많이 힘들었죠. 그분은 오로지 세계 평화를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시니까요. 평화를> 지젤> 오네긴> 오네긴> 호두까기> 백조의> 오네긴> 오네긴> 오네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남편
임형주 개인적인 질문인데요(사무실 책상 뒤로 한 청년의 오래된 사진을 가리키며). 남편분이시죠. 상당히 미남이시네요. 그런데 영혼결혼식은 단장님 선택이셨나요. 문 단장은 21세 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문선명 총재 차남과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문훈숙 아시겠지만, 저희 시아버님이 배필을 정해주시잖아요. 저희 아버지도 어머니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결혼하셨어요. 저 역시 총재님이 선택해 주신 분과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왔죠. 남편 될 사람이 뚱뚱하든, 장애가 있든, 흑인이나 백인이듯 상관없이 그런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죠.
임형주 연애도 한번 안 하셨어요?
문훈숙 네.
임형주 제가 올해 24세잖아요. 당시 단장님 나이 때인데요. 저는 100%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가 돼요. 연애에 관심 없는 문 단장님과 조금 다른 게 저는 워커홀릭이에요. 저는 연애보다 일이 더 좋아요.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있을 것 같아요. 평생 배필인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죠.
문훈숙 아쉽죠.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힘들지 않다고 해도 거짓말이고요.
임형주 어렴풋이나마 남편에 대한 기억은 나나요?
문훈숙 그분의 목소리요. 키가 크고 다리도 길었죠. 그림도 잘 그리시고…. 굉장히 부드러운 분이셨어요. 절대로 화를 내는 법이 없었어요.
임형주 그런 아련한 기억만으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문훈숙 제게 무용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죠. 그 모든 감정과 생각을 춤 속에 녹였습니다. 작품 속 왕자님은 항상 남편이었어요. 한 가지 더 얘기해 드릴까요. 제 영어 이름이 줄리아예요. 사인을 할 때 ‘Julia HJ Moon’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J는 남편(문흥진) 이름의 이니셜을 넣은 거예요. 제 이름 하나에 두 사람이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안 계시니까 제가 두 몫을 해야죠. 그리고 제게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임형주 굉장히 낭만적이신데요. 아이들에게는 어떤 어머니세요?
그는 시아버지인 문선명 총재의 권유로 시동생과 시숙으로부터 아들 신철(18)과 신월(8)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문훈숙 친구 같은 엄마예요. 큰아이는 지금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요. 우리 신월이는 너무 예뻐요. 세 살 때 벌써 <호두까기 인형> 에 출연했어요. 세 살 때라도 무대에 나가면 두려울 텐데 잘하더라고요. 끼가 있고 음악성이 풍부해요.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임형주 아주 어렸을 때부터 키웠나요?
문훈숙 신철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키웠고요. 신월이는 6개월 됐을 때요.
임형주 누가 입양해서 키우라고 아이디어를 준 건가요.
문훈숙 시아버님이 권하셨죠. 신철이가 올 때가 92년이었죠. 그때 저는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돈키호테> 를 연습 중이어서 정신이 없었답니다. 솔직히 엄마 역할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신기하죠. 직접 낳은 아이도 아닌데 행복했어요. 순수하고 깨끗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가 저를 보고 “엄마”라고 불렀을 때 감사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저도 변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해요.
임형주 책에서도 읽었지만 총재님이 무척 예뻐하시네요.
문훈숙 그러니까요. 자서전을 봤는데 자녀분 중 유일하게 제 얘기만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자녀분들에게 죄송하고요.
문선명 총재의 지극한 사랑
임형주 팝페라를 하고 있지만 경영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인생 선배이신 단장님께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문훈숙 예술 계통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죠. 저도 처음엔 힘들었는데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니까 마음이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경영할 때는 무조건 직원 얘기를 들어준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고무줄을 너무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끊어지고, 느슨하게 잡으면 놓칠 수 있잖아요.
사람마다 다루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무엇보다 자신이 전체를 위해 가야 하는 길을 놓치지 않고 올바르게 가면 될 것 같아요. 이 생각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왜 저는 아버지(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총재)처럼 카리스마 있게 이끌지 못할까’라는 고민도 많았고요.
그러다 아버지께서 제게 한 얘기가 큰 힘이 됐습니다. “내가 깃발을 들고 앞서 나갔다면 너는 조용히 뒤에서 이끌어주면 된다”며 제 방식대로 하라고 격려해주셨죠.
임형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문훈숙 발레단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제가 할 몫이죠. 완전한 독립은 아니더라도 유럽 발레단처럼 수백 년 역사가 이어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죠. 뭐든지 처음 만든 사람이 있을 때는 잘되잖아요. 그 다음에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죠. 유니버설발레단의 전통과 방향을 후배들에게 교육하는 게 첫 번째 할 일입니다. 전통은 손에서 손으로 그리고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돈키호테>호두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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