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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매력이 3만 달러 시대를 연다

서울의 매력이 3만 달러 시대를 연다

2009년 말, 씁쓸한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 가이드북(론리 플래닛)이 서울을 ‘당신이 싫어하는 도시’로 꼽았다. 미국 디트로이트, 가나의 아크라에 이은 3위다.

며칠 뒤인 2010년 1월 초, 이번에는 정반대의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뉴욕타임스)가 뽑은 ‘올해 꼭 가봐야 할 여행지 31곳’ 중 우리 서울이 3위로 뽑혔다. 순위로는 같은 ‘3위’인데 평가 내용은 최악과 최상, 극과 극이다.

서울시장으로서 여행 잡지가 ‘싫어하는 도시 3위’에 서울을 올린 이유가 궁금했다. ‘무질서하게 뻗은 도로, 옛 소련 스타일의 콘크리트 아파트, 끔찍한 대기오염에 영혼도 마음도 없는 곳’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서울시 해외마케팅을 담당하는 부서가 몹시 억울해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여기서 언급된 그 이유가 잡지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42개의 댓글을 정리한 내용일 뿐이기 때문이다. 담당부서에서는 통계로서의 신빙성이 전혀 없다고 항변했다. 나도 일리가 있는 반론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도 생각해봄 직했다. 론리 플래닛 기사는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자극이기도 했다.

댓글에서 보듯 서울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효율성만 강조된 회색도시’로 각인돼 있음을 깨우쳐줬으니 말이다. 서울이 세계인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로 다가서자면 아직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21세기는 기능을 넘어 감성의 시대다. 사람의 감성적인 만족감을 자극하는 ‘매력’이 경쟁력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글로벌 기업들이 디자인에 역점을 두는 이유도, 따져보면 결국 제품의 매력을 높이려는 노력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일류 도시 대열에 진입하자면 이곳에 사람이 몰리고, 돈이 몰리고, 또 정보가 몰려야 한다. 그러자면 서울이 세계무대에서 매력적인 상품이 돼야만 한다.

그래야 서울로 관광객이 찾아오고 투자자가 몰린다. 특히 21세기 국가 경쟁력은 도시 경쟁력이 좌우한다. 세계 40여 개 주요 도시의 경제력은 전 세계 경제력의 70%를 점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 국가로 발돋움하려면, 수도 서울이 매력적인 도시로 거듭나 일류 도시로 진입해야만 한다.

따져보면 서울은 놀라운 도시다.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 중 서울처럼 집에서 나와 30, 40분 안에 산에 오를 만한 도시는 없다. 집에서 나와 한 시간 이내에 강물에 반짝이는 햇살을 만나는 흔치 않은 도시이기도 하다. 600년 넘는 역사를 간직한 수도 역시 드물다. 그만큼 매력적인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압축 성장 과정을 거치며 이러한 서울만의 독특한 매력은 획일적인 콘크리트 이미지에 묻혀 버렸다. 따라서 서울로 관광객이 찾아오고, 투자자가 몰리도록 하자면 이러한 ‘회색도시’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서울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이 절실하다.

민선 4기 서울시가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라는 비전을 설정하고,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디자인 정책’을 펴기 시작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동안의 서울이 회색도시로 성장해 온 건 산업적인 논리를 기준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능’이 최우선의 가치였다.

거리의 벤치는 앉을 수만 있으면 되는 거였고, 가로등은 불만 밝으면 됐다. 건물은 무조건 공간이 넓게 나오는 게 우선이었고 간판도 그저 크게 잘 보이면 최고였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도시에서 우리는 삶의 행복감을 못 느낀다. 도시의 매력이 발산될 수 없다. 그래서 지난 4년 가까이 서울시는 우리 서울을 하드시티에서 소프트시티로 새롭게 디자인해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왔다.

하드시티란 기능과 효율 중심의 도시, 자동차 중심의 도시, 속도 중독의 도시, 건설과 산업 중심의 도시, 역사와 전통으로부터 단절된 도시, 구조 중심의 도시다. 소프트시티는 인간중심의 도시, 보행자 중심의 도시, 자전거 속도를 음미하는 도시, 문화·예술과 역사·전통·콘텐트 중심의 도시다.

서울은 변화해왔고. 지금도 바뀌어간다. 성냥갑 아파트를 퇴출시켰고, 간판 등 공공 공간에 디자인을 적용했으며, 한강과 남산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냈다. 나아가 광화문 광장 같은 랜드마크를 만들고, 취임 전보다 녹지를 246만㎡나 늘리고, 대기 중 미세먼지를 1995년 관측 이래 최저 수준으로 개선했다.

이런 시도는 모두 서울을 소프트시티로 바꿔 도시의 매력을 높여보려는 몸부림이다. 그렇게 애써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다. 미국의 일간지가 정한 순위는 그 단적인 결과다. 그들이 서울을 ‘꼭 가봐야 할 여행지 3위’로 꼽은 이유는 디자인이었다. ‘도쿄는 그만 잊어라, 세계 디자인 마니아들이 서울에 푹 빠져있다’는 파격적인 추천의 변을 덧붙였다.

4년 전만 해도 디자인 불모지나 다름없던 서울이 올해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까닭도, 서울을 매력적으로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서울이 ‘가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나게 되면서 다양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취임 전 세계 27위였던 서울의 도시 경쟁력은 12위(중국사회과학원과 미국 버크넬대학 2008년 7월 공동조사 결과)로 훌쩍 뛰어올랐고, 최근 2년 연속 중국, 일본, 태국에서 ‘가장 방문하고 싶은 도시 1위’(리서치기관 ‘닐슨컴퍼니’ 지난해 10월 조사 결과)에 선정됐다. 관광객은 시장 취임 전보다 30%나 늘었다.

다양한 관광인프라를 조성하고 관광산업 육성정책을 공격적으로 편 게 기반이 됐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난해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의 만족도가 84.6%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아무리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여도 서울의 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만족도를 이 정도로 높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성과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현재 OECD 선진 국가는 GDP의 평균 12%를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데 비해 우리는 6%대에 머물러 있다. 관광산업은 고용효과가 IT 산업의 5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서울이 회색도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만큼 일자리가 창출된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올 한 해 관광산업으로 인한 일자리가 3만 개 가까이 늘어나리라 기대된다.

그간 서울시의 도시 디자인 정책을 두고 겉치레 행정이니, 전시 행정이니 하는 꼬투리 잡기가 왕왕 벌어졌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길로 걸어온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서울에 가보자’는 여론이 전 세계로 더욱 확산된다면, 도시 디자인이 곧 경제이자, 돈이라는 걸 우리가 피부로 느끼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우리 서울을 평가하는 반가운 순위와 씁쓸한 순위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지금, 서울의 전례 없는 변화를 세계가 인정해 주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신호다. 도시 디자인이라는 게 1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장기적인 투자인 만큼 여기서 주춤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단지 절반을 왔을 뿐이다. 전 세계 모든 여론이 우리 서울에 호감을 가질 때까지, 뚝심을 갖고 정책의 연속성을 지켜 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모든 시민의 공감대 형성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누군가 물었다.

서울 사람과 파리 사람의 차이를 아느냐고. 파리 사람은 불편한 건 참아도 아름답지 못한 것은 못 참는데, 서울 사람들은 아름답지 못한 건 참아도 불편한 걸 못 참는단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3만 달러 시대를 앞장서 열어나가자면 불편한 건 물론 아름답지 못한 것도 참지 못하는 사회로 옮아가야 한다. 이는 곧, 우리가 우리 다음 세대에게 먹고살 길을 마련해 주는 길이기도 하다.

[필자는 제 4기 민선 서울특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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