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와 소통으로…‘그린’ ‘글로벌’ 쇳물경영 새 발진
창의와 소통으로…‘그린’ ‘글로벌’ 쇳물경영 새 발진
지난 1월 19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미국 뉴욕 포시즌 호텔에서 열린 첫 ‘해외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 올해 포스코의 경영방침을 가늠할 수 있는 말을 했다. “포스코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조1500억원의 원가를 절감하는 대신 투자비는 사상 최대 규모인 9조3000억원으로 늘리겠다.”
원가절감 등 내부 혁신은 계속 추진하지만 최악의 국면을 벗어난 경기를 감안해 투자를 늘려 공격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고품질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비 5000억원도 포함돼 있다. 특히 3조원 정도는 사업 다각화를 위한 신성장 분야에 투자한다.
기존 설비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이처럼 투자를 과감하게 늘린 것은 지난 1년간 극심한 불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지난 1년, 특히 정 회장이 취임한 직후 경영 환경은 열악했다.
지난해 2월 27일 포스코의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후 갑작스러운 회장 교체를 둘러싼 후유증도 있었고 포스코 역사상 처음으로 27%에 이르는 감산이 단행되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1분기에 적자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의 20%에도 미치지 못한 실적을 거두자 회복 시점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고객이 왕이다! 현장경영 몸소 실천정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하며 위기 극복에 나섰다. 경영관리 주기를 분기 단위에서 월별로 단축했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 극한의 원가절감을 진행했다. 덕분에 1조1500억원이라는 원가절감을 이뤄냈다. 고객사 방문을 늘렸고 영업 직원들에게는 현장을 직접 찾아 다닐 것을 독려했다.
효과는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3분기가 지나자 1조원대의 분기 영업이익을 회복했고, 4분기에는 경제위기 이전 수준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거뒀다. 연간 영업이익 규모는 전년보다 줄었지만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단연 돋보이는 실적이었다.
이제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글로벌 경제위기 영향으로 대부분의 대형 철강업체가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포스코는 가장 빨리 체력을 회복했다. 오히려 위기 이후 ‘최고의 철강업체’로 한발 전진했다. 최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100대 기업에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철강 분석기관인 WSD의 ‘2010년 철강사 경쟁력 평가’에서는 5년 만에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이런 회복세를 바탕으로 포스코는 올해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19일 같은 행사에서 “올해 포항4고로를 개수하고 광양 후판공장을 준공하는 등 신·증설 설비를 본격 가동할 것”이라며 “아울러 국내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겠다”고 자신하며,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 국내 투자자들에게 “올해 성장 분야 투자를 위해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조선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글로벌시장 확대 의지도 밝혔다. 정 회장은 “인도 오리사주 일관제철소 부지 공사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제철소 건설 등 해외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해외 철강가공센터를 확대해 사업 다각화와 함께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는 올해 세계경기 회복 조짐으로 철강경기가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고, 목표치를 올려 잡았다. 올해 조강 생산은 지난해(3100만t)보다 16.6% 증가한 3440만t, 매출은 지난해(26조9540억원)보다 9.3% 높은 29조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정 회장이 선임 초기 어수선한 분위기를 빠르게 반전시킨 데는 소통과 창조를 중심으로 한 특유의 경영방식이 포스코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8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와의 대화’다. 이 행사에서 한 직원이 “다른 대기업보다 보고가 많다”고 하자 정 회장은 “보고문화를 바꾸자는 것은 누차 강조해 왔다”며 “앞으로 e-메일이나 스마트폰 위주로 보고하자”고 답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사전에 원고를 준비하지 않은 채 즉석에서 직원 50여 명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었다. 포스코가 글로벌 회사가 되도록 해외 유학 기회를 확대해 달라는 건의엔 바로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포스코 3.0’ 실현하는 원년
고객과의 소통과 신뢰도 역설했다. 그는 “고객사가 친숙함을 느끼도록 지속적으로 내부 평가를 하면서 고객사의 말을 듣겠다”며 “회사의 이익과 고객사와 신뢰가 상충하면 이익을 버리고 신뢰를 얻자는 게 내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두뇌와 가슴에 호소하는 마케팅을 했다면 앞으론 기업이 사회공헌과 연결된 ‘혼’에 호소해야 한다”며 새로운 마케팅론을 꺼내기도 했다. 정 회장의 창의와 소통은 여느 기업 CEO가 미사여구처럼 쓰는 그런 차원은 아니다.
지난해 취임 직후 세계 철강경기가 휘청거리는 가운데서도 정 회장은 임직원에게 “잘 놀아야 일도 잘한다”며 “놀아라”고 주문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2분기 실적 악화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지난해 9월 정 회장은 서울 대치동 사옥 4층에 ‘포레카(POREKA)’라는 이름의 놀이공간을 만들었다.
직원들에게는 의무적으로 한 달에 최소 4시간을 사용토록, 즉 놀도록 했고, 상사들에게는 직원들이 이곳을 이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는 특별 지시까지 내렸다. 포레카의 ‘브레인샤워’라는 공간에는 아예 ‘누워서 뒹굴뒹굴하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정 회장 취임 후 포스코가 부드러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직원들에게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나눠 주며 시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정보화 시대에 맞는 영업환경을 주문하고 있다. 그는 포스코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이 3.0시대에 맞도록 사고방식을 바꿀 것을 강조한다. 그는 지난달 간부회의에서 “앞으로 승진 요건에 쌍방 간 의사소통 능력이 주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철강을 만들 줄 모르는 매니저는 용납할 수 있지만 소통이 안 되는 매니저는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 철강회사 뉴코어의 경영 철학도 그가 자주 인용하는 예다. 그가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도 매일 아침 직원들과 돌아가며 식사를 하며 현장의 얘기를 듣는 것이었다. 정 회장은 이런 변화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올해를 ‘포스코 3.0’을 실현하는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포스코 3.0은 3세대로 진화한 포스코를 의미한다. 사업 영역에서는 철강 전업 시대, 건설·IT·에너지 등 관련 사업으로의 확장기를 넘어 원료에서 비철강, 다른 소재까지 아우르는 종합 소재 메이커를, 활동 무대는 로컬(국내), 리전(지역)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지향한다. 인재 측면에서는 도전과 창의, 혁신 마인드를 지닌 인재를 필요로 한다.
정 회장이 ‘창의’와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처럼 경직되고 시키는 일만 하는 조직으로는 ‘포스코 3.0’ 시대를 열어갈 수 없다는 판단이다. ‘글로벌 포스코’를 위해 정 회장은 올해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제철소 건설 등 해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 1년간 11개국을 다녔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3월 초 이명박 대통령의 호주 순방을 수행하며 원료 공급사인 리오틴토, BHP빌리턴을 방문하며 지속적인 협력관계 기반을 다졌다. 4월에는 세계 최대 니켈 광산으로 유명한 뉴칼레도니아에서 의회 연설을 했다.
이후 8월에는 중남미 지역에서 새로운 자동차 메카로 떠오른 멕시코 동부 타마울리파스주 알타미라시 인근의 자동차용 고급 소재인 CGL(연속용융아연 도금강판)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이날 준공식에는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 에르난데스 플로레스 타마울리파스 주지사 등 멕시코 정부 주요 인사가 참석했다.
9월에는 인도 방문길에 올라 만모한 싱 총리를 예방하고 포스코의 인도 일관제철소 프로젝트에 적극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싱 총리 외에도 나빈 파트나익 오리사주 총리, 핸디크 광산성 장관 등 인도의 주요 인사를 잇따라 만났다.
포스코, 더 이상 철강업체로만 부르지 마라!이 방문으로 포스코가 2005년부터 추진했던 인도 오리사주 일관제철소 건설에 속도가 붙게 됐다. 신사업 개발을 위한 방문도 이어졌다. 10월 초에는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율리야 티모셴코 총리를 차례로 만나 원료 개발 부문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뤄냈다. 우크라이나 최대 철강사인 ‘메틴베스트 홀딩스(Metinvest Holding)’와 ‘원료 및 철강 분야의 포괄적 협력에 관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카자흐스탄, 베트남, 미국, 인도네시아에 합작공장 설립, 현지공장 준공식 등을 위해 다녀왔다. ‘신사업’을 위해 포스코는 그동안 마그네슘, 티타늄 등 희유금속을 개발, 활용하는 노력을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국토해양부,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손잡고 바다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기술을 상용화하기로 했다.
리튬은 전기자동차, 휴대전화, 노트북PC 등에 사용하는 2차전지의 주원료로 차세대 핵융합발전 원료 등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전략금속 중 하나다. 정준양 시대의 포스코가 더 이상 철강업체로만 머물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철보국’에서 시작한 포스코가 ‘자원보국’으로 다시 한번 국가 경제의 견인차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이런 일하는 방식의 변화, 사업 영역의 변화, 글로벌화 등은 이미 올 초 정 회장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신년사에도 예고돼 있었다. 그는 “창업기인 포스코 1.0, 성장기인 포스코 2.0을 넘어 포스코 3.0 시대를 새롭게 열어 나가자”면서 “2010년에는 업(業:사업영역)을 진화시키고, 장(場:활동무대)을 확대하며, 동(動:업무추진 방법)의 혁신을 이루자”고 당부했다.
업의 진화는 철강 본업을 바탕으로 종합소재 기업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엔지니어링과 건설(E&C), 자원개발, 에너지, 정보통신(ICT) 사업 등을 전략사업군으로 육성하는 한편 M&A 기회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장의 확대는 인도네시아, 인도 등 대형 글로벌 프로젝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해외 자원개발 투자를 확대함과 동시에 이머징 마켓, 해양부문에서 비즈니스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정 회장은 “특히 동의 혁신이야말로 업과 장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에서만 30년, 그것도 현장에서만 30년을 지낸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 회장이 그동안의 포스코 방식에서 탈피하자고 하는 것은 의외다.
하지만 지난해 취임 초부터 정 회장은 포스코가 그동안 못 했던 ‘놀기’ ‘소통’을 강조하면서 내적 변화를 유도해 왔다. 이제 포스코는 그런 자신의 변화를 바탕으로 세상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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