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영국은 ‘그린’ 선진국이자 허브

영국은 ‘그린’ 선진국이자 허브

영국은 기후변화를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런던에 위치한 유럽기후거래소는 유럽의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가 설립한 카본트러스트는 10억 파운드의 에너지를 절약했다.
▎작은 간판이 붙어 있는 유럽기후거래소의 입구.

▎작은 간판이 붙어 있는 유럽기후거래소의 입구.

런던 중심부 비숍게이트 62번가에 위치한 유럽기후거래소(ECX·European Climate Exchange). 유럽 최대의 탄소배출권 거래소라지만 이곳의 출입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간판이 작을뿐더러 아래와 같은 안내판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기후거래소를 찾은 방문객이라면 60번지를 찾아가시오.’

분명히 주소에는 62번가로 적혀 있는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몰라 62번가 입구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이곳의 직원이 “여기가 유럽기후거래소가 맞으니 들어오라”고 한다.


ECX에서 162조원 규모 탄소배출권 거래ECX에서 이런 장난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곳에서 유럽의 환경론자들이 시위를 벌이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환경론자들은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가 돈벌이일뿐더러 환경 이슈를 이용하는 사기 행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ECX가 세계에서 탄소배출권 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인 동시에 유럽에서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에 EUA라는 이름의 탄소배출권을 할당한다. EUA는 European Union Allowance의 약자. 2008년 EUA 중 84.9%가 ECX에서 거래됐다. 현재 유럽에는 유럽기후거래소 외에도 노르드풀(Nordpool), 블루넥스트(Bluenext), 유럽에너지거래소(EEX·European Energy Exchange) 등의 탄소배출권 거래소가 있다.

2008년 EUA 중 7.1%는 블루넥스트, 5.8%는 EEX, 2.1%는 노르드풀에서 거래됐다. ECX가 단연 유럽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ECX의 총거래 규모는 무려 920억 유로(약 162조원)에 이른다. 전 세계 탄소거래량의 40%, 유럽 탄소거래량의 87%를 차지한다.

ECX에서 다루는 대상은 크게 두 가지다. EUA 외에 CER을 거래한다. 유럽 배출권 거래 제도는 총량거래제 방식을 따른다. 총량(cap)을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거래(trade)하며 캡 앤드 트레이드라고 불린다.


환경규제에 대한 교육이 가장 중요총량거래제는 각 기업에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을 설정한 뒤 이보다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기업은 여분을 팔도록 한다. 총량을 초과해 배출하는 기업은 배출권을 사야 한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전력회사나 석유회사는 탄소 절감을 하지 못하면 EUA를 구매해야 한다. 물론 총량보다 적게 배출하면 EUA를 팔 수 있다.

1EUA는 1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CER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뜻하며 Certified Emission Reduction의 약자. 기후변화협약(교토의정서)에 따른 나무 심기, 화석연료 대체 등과 같은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에 투자해 인정받는다. EUA선물, 옵션과 CER선물, 옵션이 이곳에서 거래된다.

EUA는 2014년까지 매년 12월 마감하는 상품이, CER은 2012년까지 매년 12월을 기준으로 삼는 상품이 거래된다. EUA의 경우 유럽 배출권 거래 제도하에서만 거래할 수 있지만, CER은 국제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한국은 EUA의 경우 유럽 국가 간의 거래이므로 참여가 어렵다.

ECX에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고객으로는 바클레이스, 골드먼삭스 등 80여 개의 글로벌 기업이 있으며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거래자가 은행 등을 통해 탄소 거래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듯 ECX가 전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의 중심지임에도 불구하고 외부는 물론 내부도 소박했다.

인원은 모두 6명.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ECX가 유럽선물거래소(ICE·Inter Continental Exchange)의 온라인 거래시스템을 활용하며 탄소배출권에 대한 상품개발과 마케팅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ICE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에너지선물거래소다. ECX는 영국 CLE 그룹에 속한 회사다.

런던 증시에 상장돼 있는 CLE는 ECX와 함께 미국의 시카고기후거래소(CCX), 시카고기후선물거래소(CCFE)도 소유하고 있다. 이들 또한 ICE의 시스템을 공유한다. 직원들은 모니터를 보며 실시간 거래량과 가격을 확인하고 있었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한 1월 6일 일시적인 시스템 오류로 거래가 잠시 멈췄다.

▎(왼쪽부터)유럽기후거래소의 사무실 모습, 각종 상품에 부착돼 있는 탄소 감축 라벨은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생산에서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왼쪽부터)유럽기후거래소의 사무실 모습, 각종 상품에 부착돼 있는 탄소 감축 라벨은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생산에서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ECX의 패트릭 벌리 사장은 “지금 이 시스템이 멈춰 있으면 런던뿐 아니라 시카고까지 탄소배출권을 포함한 유럽선물거래소 전체의 거래가 일시적으로 멈춘다”고 말했다. 이곳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사무실 벽에 걸린 TV에선 영국의 인기스포츠인 크리켓이 방송되고 있었다.

이 한산한 분위기에서 탄소 거래만의 독특한 특성을 엿볼 수 있다. 분초를 다투는 외국환 거래 등과는 달리 탄소배출권의 구매는 아직까지 기업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템포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권 정책을 읽고 기업에 탄소 감축을 충분히 못했을 때를 대비하라고 일러주는 것이 ECX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거래가 있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이들은 탄소배출권 ‘소비’를 촉진한다. 이 때문에 이곳 직원의 절반 이상이 유럽연합 기후변화 정책 전문가들이다. ECX가 점점 사세를 확장해가는 것처럼 유럽의 기업들은 배출권 거래 제도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

이 중 영국의 성적은 유럽에서 상위권에 속해 있다. 영국은 이미 1990년과 2006년 사이에 교토의정서 제1차 공약기간(2008~2012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12.5%를 상회하는 15%의 온실가스를 감축했다.


카본트러스트에만 350명 에너지 전문가영국의 온실가스 감축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 받는 곳이 카본트러스트다. 카본트러스트는 2001년 정부의 출자로 기업의 에너지 효율 개선과 신기술을 통한 온실가스 저감 지원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2008년에는 영국 기업이 연간 7000억원 상당의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는 데 기여했다.

카본트러스트의 주요 사업에는 탄소 감축을 위한 민간 및 공공 부문에 대한 컨설팅, 저탄소 기술 개발 지원,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에너지 효율성 향상 프로젝트 지원, 그리고 탄소 감축을 위한 신규 사업 발굴 등이 있다. 카본트러스트는 카본 트러스트 스탠더드(Carbon Trust Standard)와 카본 라벨 컴퍼니(Carbon Label Company)라는 두 개의 자회사를 갖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사업은 기업의 에너지 절감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다. 저탄소빌딩·해양에너지 기술 등 최신 기술과 에너지 절감 방법이 카본트러스트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무료로 제공된다. 컨설팅을 요청하면 8~10명의 전문가가 탄소관리 전략의 수립을 지원받을 수 있다. 1년에 1만 건 이상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350명의 에너지 전문가가 이곳에 근무 중이다. 영국 100대 기업 가운데 70% 가까운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카본트러스트는 재정적인 지원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자율 0% 대출’ 사업이다. 정부의 예산을 받으면 카본트러스트가 대상 기업을 선정한다. 투자금은 중소기업이나 병원·학교 등 공공부문 사업장의 보일러 교체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설투자에 쓰인다.

최근 1회 대출 최대 규모가 20만 파운드에서 40만 파운드로 늘어났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공공부문에 대출의 기회가 주어진다. 탄소 발자국이라 불리는 탄소 감축 라벨 인증사업도 이곳에서 하고 있다. 탄소 감축 라벨은 제품의 생산단계에서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측정해 라벨의 형태로 제품에 부착하는 제도다.

영국 최대의 소매업체인 테스코는 영국에서 자회사 제품에 탄소 감축 라벨을 최초로 부착한 기업이다. 영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이 사업에 동참하는 국가 또한 늘고 있어 영국이 이 분야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간장 가격도 '쑥'...밥상물가 부담 또 커진다

2공정위 "쿠팡이 소비자 속였는지 조사...PB상품 금지 아냐"

3의대교수단체, "의대 증원 보류 소송지휘권 발동해달라"

4 강형욱 논란 이후 첫 입장..."직원 감시 안 해"

5삼성전자 엔비디아 HBM 테스트 ‘낙방’ 입장문에 ‘특정 시점’ 담긴 까닭

6오뚜기 3세 함연지, 미국법인 입사..."마케팅 업무 담당"

7‘땡큐 엔비디아’…사상 첫 20만원 돌파한 SK하이닉스

8일요일부터 이틀간 전국 비...필리핀은 첫 태풍 기미

9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 국내 허가..."약가 평가 아직"

실시간 뉴스

1간장 가격도 '쑥'...밥상물가 부담 또 커진다

2공정위 "쿠팡이 소비자 속였는지 조사...PB상품 금지 아냐"

3의대교수단체, "의대 증원 보류 소송지휘권 발동해달라"

4 강형욱 논란 이후 첫 입장..."직원 감시 안 해"

5삼성전자 엔비디아 HBM 테스트 ‘낙방’ 입장문에 ‘특정 시점’ 담긴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