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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은마’를 부탁해

대치동‘은마’를 부탁해

“버블 논란의 버블.” 한 부동산 전문가는 최근 일고 있는 부동산 버블 논란과 관련해 이런 말을 던졌다. 20년 넘게 상승세를 유지하던 아파트값이 올해 초부터 주춤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잇따라 집값 하락을 점치니 시장이 동요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세 상승은 끝났고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도 크게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기와 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때일수록 흥분하기보다 상황에 맞는 전략을 짜야 한다.

“(퉁명스럽게) 보면 알 것 아니냐. 매수 문의는 거의 없다. 매물도 많지 않다. (부동산 값이) 왜 내려가는지 나도 모르겠다. (재건축 공사 들어간다고 거래가 활성화될 거란 이야기가 있는데) 두고 봐야 한다.”

“(매수 문의는) 전혀 없다. 매물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돈이) 급한 사람이 싸게 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격은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재건축에 대해) 구체적인 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4월 8일 오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소들은 비슷한 말을 되풀이했다. 매수 문의는 거의 끊겼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정문에 들어서자 낡고 녹슬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안내도가 보인다.

정문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은마종합상사에는 32개의 부동산 업체가 있다. 대개는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재건축 상담 환영’이란 문구를 내걸었지만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상가를 몇 바퀴 돌았지만 상담 중인 업체는 손에 꼽기도 어려웠다.



“매수 문의 사라진 지 오래” 푸념만값도 떨어졌다. 한때 14억원을 호가하던 112㎡(34평)형은 현재 11억~11억5000만원에 나와 있다. 지루한 표정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M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최고가에서 30% 가까이 떨어졌다”며 “요즘은 가격 변동을 관망하러 오는 손님이 가끔 있을 뿐이다. 실제로 매수 의사가 있는 손님은 없다”며 푸념했다.

그 사이로 벚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요즘 말 그대로 봄은 왔지만 봄은 아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대한 조건부 재건축 허용이 최근 결정됐다. 서울 개포동 주공아파트 등에도 재건축 가이드라인이 발표됐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발표 전후 가격만 놓고 비교하더라도 개포 주공 1단지 49㎡는 2000만~3000만원 이상 하락해 10억원을 밑돌고 있고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5000만~ 6000만원가량 값이 내렸다. 사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올해는 경기 회복에 따라 부동산 시장도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연초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대치동·개포동 등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이 약세로 돌아서면서 부동산 가격은 장기간 약보합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 움직임은 비관적이다. 특히 법원 경매로 유입된 물건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국의 경매 신고 건수는 3월 현재 1만5건으로 전달보다 47% 증가했다.

입주 예정단지에서도 마이너스 프리미엄의 분양권 급매물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매수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보금자리 주택 대거 공급이 예정되어 있는 점도 주택 시장을 위축시키는 한 원인이다. 4월에만 경기도 구리 갈매지구(2348가구), 남양주 진건지구(4304가구), 부천 옥길지구(1957가구), 시흥 은계지구(3522가구)에 보금자리 주택 사전 예약이 예정돼 있다.

여기에 광명 시흥, 하남 감일, 성남 고등 등이 3차 보금자리 주택 지구로 선정돼 수도권 지역 아파트 거래 침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08년부터 불거진 미분양 주택 문제도 아직도 골칫거리다.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는 5만40가구(지방 4만5858가구 포함)에 이른다.

수도권에만 4000가구(4182가구)가 넘는다. 건설업체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도 13개월 중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조사한 지난달 건설기업경기실사지수(CBSI)는 71.7로 전월 대비 5.9포인트 하락했다. 작년 2월 50.0을 기록한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민간연구소에서 나온 ‘부동산 버블이 꺼지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잇따라 발표됐다. 현대경제연구원·하나금융경영연구소·산업은행경제연구소·IBK금융연구소 등이 연이어 부동산 버블론을 제기하면서 주택 시장은 더욱더 움츠러드는 형국이다.

인구 구조와 소득 대비 집값 수준과 가계 부채비율을 등을 볼 때 중장기적으로 집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게 보고서의 주요 요지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중장기 주택 시장 변화요인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집값과 부담스러운 수준의 가계 부채가 부동산 값 하락을 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은 “제1차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의 은퇴와 전반적인 인구 감소, 가계 자산 포트폴리오 재조정 가능성 등으로 중장기적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은퇴가 본격화되는 베이비붐 세대 중 주택과 부채를 동시에 보유한 가구가 전체의 71.5%에 이른다. 이들이 내놓을 부동산 매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인구 감소 전망도 부동산 값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국내 인구는 2018년부터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택 시장에서 최대 수요층인 35~55세 인구가 현재 총인구의 35.3%(1727만여 명)를 차지하고 있으나 2011년부터 점차 줄어들 전망이다.

수급 분석만 보면 부동산 값이 올라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100%를 넘어선 주택 보급률과 상당 부분 진행된 도시화 역시 당장 주택 가격 상승을 어렵게 한다. 또 가계 자산의 80%가 넘는 부동산 비중을 조정할 필요성도 부동산 가격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됐다.



미국·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과 비슷현대경제연구원은 ‘아파트 가격 하락 가능성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도시화 및 핵가족화로 인한 수요 증가, 실수요 계층인 30~40대 인구 증가, 실질소득 증가 등으로 그동안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도시화 정체와 저출산으로 인한 실수요 인구 감소, 수요자의 구매력 저하 등으로 향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상수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집값과 부담스러운 가계 부채도 대세 하락설의 근거”라고 설명했다. 산은경제연구소 역시 ‘국내 주택가격 적정성 분석’ 보고서에서 요즘 국내 상황이 과거 미국·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가구 소득 대비 12.64배인데 이는 2006년 미국의 부동산 버블 때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민간 연구소들은 이르면 2년, 길어도 5년 안에 집값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와 대비되는 주장도 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급격한 외국인 유입으로 인구 정점 시기가 애초 2018년에서 2020년대 초·중반으로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2차 베이비부머(1968~76년생)의 주택 시장 신규 진출, 적어도 2022년(882만여 명)까지 수도권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 1~2인 가구의 지속적인 증가로 인해 주택 시장 대세 하락 현상은 상당기간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주택 수요의 변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면서 인구는 줄어도 가구수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2인 가구의 증가는 곧바로 소형 부동산 수요 확대를 의미한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부동산 버블 폭발로 장기간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을 보더라도 중대형보다는 소형 주택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부동산 가격은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면서 크게 하락한 적이 있다. 이런 하락세는 6개월 이상 지속되다 지난해 2분기 들어서 약간 반등했다. 집값이 다시 약세에 접어든 것은 지난해 7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통해 규제 정책을 펴면서부터다.

당시 정부는 수도권 전 지역의 LTV를 60% 이내에서 50% 이내로 강화했다. 9월에는 DTI 규제를 수도권 전 지역의 은행권 아파트 담보 대출로 확대했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부동산 값은 계속 내림세였다. 다만 지난해 말과 올 초 재건축 뉴스가 나오면서 잠시 보합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2월 말부터 다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대폭락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한꺼번에 수도권 신도시와 재건축·재개발 물량이 공급되는 2015년께 부동산 값이 폭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의 부동산 값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버블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여전히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저금리 정책이 지속되면서 시중의 유동자금도 풍부하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소장은 “부동산 버블이라기보다는 가격 과열이 조정되는 중”이라고 진단하며 “여름까지는 조정 장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소장은 “재건축·재개발 수요가 있고 토지보상 물량이 풀려 당분간 부동산 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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