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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엔 연줄도 사내정치도 없다

우리 회사엔 연줄도 사내정치도 없다

김윤섭(62) 유한양행 사장은 전문경영인 체제, 노사 화합의 전통, 지속적인 사회환원을 유한양행의 핵심가치로 꼽았다. 김 사장은 지난해 3월 최상후 사장과 함께 공동대표이사에 취임했다. 40여 년 역사를 지닌 이 회사 전문경영인 체제의 수혜자이기도 한 그는 “독보적인 전문경영인 체제 덕에 능력 있는 인재들이 유한을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능력만 있으면 CEO가 될 수 있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좋은 인적 자원을 끌어모은다고 봅니까?“신입사원 채용 면접을 해 보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는 회사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입사원들에게 유한은 세 가지가 없는 회사라고 말합니다. 3무(無)라고 하는데 지연·혈연·학연이 없습니다. 1500여 명 임직원 중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친인척은 한 사람도 없어요.

1대주주인 유한재단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유한엔 연줄도 사내정치도 없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사장이 될 수 있다 보니 내부 경쟁이 치열합니다. 사장이 되려면 능력은 물론이고 동료들과 잘 화합해야 할뿐더러 회사 발전을 위해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이 될 확률이 어떻게 되나요?“임기 3년인 사장은 불문율에 따라 연임을 한 번밖에 못합니다. 결국 6년 동안 입사한 사람 중 한 명꼴로 사장이 되는 셈이죠. 300 내지 500대 1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장에게 쓴소리를 하려면 임원급은 돼야겠죠?“과장급만 돼도 사장과 대화할 기회가 있고 그때 쓴소리들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잘못된 일, 정직하지 못한 행위가 걸러지죠. 유한은 그래서 자정 능력이 있습니다. 승진도 합리적으로 일하고 투명해야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스맨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의견이든 쓴소리든 의견을 활발히 개진하고 나름의 대안이 있는 사람이 성장합니다.”



CEO가 후임 CEO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합니까?“대주주인 재단 쪽에 조언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영향력은 없습니다. 대주주는 현직뿐 아니라 전직 임원들과도 대화해 판단을 하죠.”



전문경영인 체제라 인사나 투자 면에서 보수적이지는 않나요?“앞으로는 달라지겠지만, 과거 외부 인사 영입이 적고 젊은 사람이 발탁되는 경우도 별로 없었죠. 사실 두어 단계를 건너뛰는 발탁인사는 투명성이 떨어져 오너 아니면 하기 어렵습니다.

사업다각화 등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업종 특성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제약회사가 신물질을 개발하는 데는 보통 20~30년 걸리고 성공 확률도 1만분의 1이 채 안 됩니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도 제약회사 아니면 신물질 개발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제약회사는 기초과학에 대한 실력이 부족하고 글로벌 마케팅 능력도 떨어집니다.”

김 사장은 부사장 시절 영업을 총괄했다. 2008년 1년 만에 업계 2위 자리를 한미약품으로부터 회수할 당시 그는 유한의 매출 성장을 주도했다. 카리스마도 있지만 CEO 취임 후엔 임직원을 존중하는 스타일을 보강했다. CEO가 외부에 많이 알려지는 게 좋은 건 아니라면서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면 발 벗고 나서겠다고 그는 강조했다.



유한은 기업 이미지는 좋은 반면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각화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에 투자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만한 현금 동원력도 있고, 지난해부터 몇 곳 투자도 하고 있습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은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의 취약점을 보완해 줄 기회가 오면 건전한 M&A는 해야죠. 특정 회사를 M&A해 지속적 성장을 할 수 있다면 과감히 할 겁니다.”



포브스 서베이에서 CEO의 과반수가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조건으로 핵심가치와 더불어 리스크 관리 능력을 꼽았습니다. 유한양행의 리스크는 무엇이고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제약회사는 고객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고객은 항상 변하고 언제든 외면할 수 있죠. 더욱이 제약산업은 생명을 다루는 특수한 분야입니다. 유한의 임직원은 신뢰의 실추를 차단할 자정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회사가 지속가능하려면 성장을 담보하는 동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과감하게 연구개발(R&D)에 투자해야 돼요. 제약업계는 향후 5년간 먹고사는 것은 걱정이 없습니다. 그 후에 무엇으로 먹고살 거냐가 문제죠. 유한은 지금도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이 업계 상위권이지만 앞으로 5년 동안 세계적인 제약사 수준인 15%까지 끌어올릴 겁니다. 재무 안정성 면에서도 문제가 없습니다.”



핵심 가치로 노사화합과 사회환원도 꼽았는데 지속가능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창사 이래 노사분규가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노사분규가 잦으면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어요. IMF 체제 당시엔 노조가 먼저 30분 근무연장과 상여금 삭감을 제안했습니다. 분기 단위로 사업계획을 세울 때마다 노조가 참여하지만 경영엔 참여하지 않습니다. 노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것이죠.

우리끼리는 그래서 노사가 아니라 노-노 관계라고 합니다. 사회환원은 대주주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들 2대 대주주를 비롯해 공익법인이 보유한 지분이 35% 이상인데 배당을 받으면 장학사업, 불우이웃 돕기 등을 합니다. 실배당률도 높아 주식·현금 배당이 주가의 5% 수준에 이르는데 은행 금리보다 높죠. 한마디로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이 시스템화돼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창업자가 이런 장치를 만들어 놓았는데 세계적으로 유례가 거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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