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의 중동 로케 ‘유감’
TV 뉴스에서 보는 중동의 모습은 절망스런 불모지 같은 이미지다. 여성들은 베일로 온몸을 휘감고, 몸 어딘가에 무기를 숨긴 듯한 남성들은 성난 표정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체로 이런 이미지를 한층 더 부추겼다. 영화 ‘허트 로커’(2009)에서 이란은 무시무시하고 생명력이 없는 땅으로 그려진다.
‘마이티 하트’(2007)의 앤절리나 졸리는 파키스탄에서 납치된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솔로몬의 딸’(1991)에서도 이란은 샐리 필드가 인질로 잡히는 적대적인 땅으로 묘사된다. 그 밖에도 ‘렌디션’(2007), ‘브라더스’(2009), ‘자헤드: 그들만의 전쟁’(2005) 등 중동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많다(제이크 질렌할이 이런 영화에 자주 캐스팅되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지난 5월 말 개봉된 영화 두 편에서 보여주는 중동의 이미지는 딴판이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2’와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다. 알라딘의 마법융단 이야기 이후 무슬림 세계가 이렇게 놀이공원처럼 묘사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사막은 라스베이거스의 휴양지처럼 반짝거리고, 낙타는 누구나 한 마리쯤 지녀야 할 애완동물처럼 보인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한술 더 뜬다. 보톡스 주사를 맞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과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페르시아의 왕자’의 제이크 질렌할(이 영화에도 그가 또 나온다!). 이 영화들은 중동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 두 영화를 근거로 판단을 하자면 중동은 적대적이거나 위험한 곳이 아니라 매우 지루한 곳이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제리 브룩하이머가 베스트셀러 비디오게임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역시 유명 비디오 게임을 바탕으로 했던 영화 ‘슈퍼 마리오’(1993)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페르시아의 왕자’의 광고에는 신체 노출 장면이 많이 나와(질렌할의 이두근의 크기를 보라!) 섹시한 영화 같은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섹스가 없는 순수한 모험영화다(질렌할과 공주 역을 맡은 젬마 아터튼의 로맨스를 다룬 장면도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라이언 킹’과 ‘백 투 더 퓨처’를 합쳐놓은 듯한 플롯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추방당한 왕자의 이야기에 시간여행 등이 혼합됐다.
질렌할이 타고난 배우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자신도 관객만큼이나 길을 잃은 듯하다. 형편없는 칼싸움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온다. 게다가 배우들의 억양도 귀에 거슬린다. 왜 고대 페르시아인들의 말투가 영국인의 억양처럼 들릴까?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은 또 어떻게 아부다비까지 가게 됐을까? 이들은 이전에도 로스앤젤레스, 멕시코 등지로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시트콤 ‘브레이디 번치’가 늘 똑같은 세트장에서 벗어날 목적으로 하와이 여행 이야기를 끼워 넣었을 때처럼 억지스럽고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나 멕시코는 ‘섹스 앤 더 시티’ 원래의 배경인 뉴욕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아부다비처럼 문화적으로 완전히 동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아부다비는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다. 이런 장소 선택은 이 작품에서 섹스와 재미를 앗아갔다. 쇼핑의 재미도 줄고(명품족인 캐리가 20달러짜리 신발을 산다) 주인공들이 마시는 술도 순해졌다.
이들이 사막에서 입은 의상은 마이클 잭슨이 법정에 출두할 때 입었던 파자마와 비슷하다. 사만다는 해변에서 한 관광객과 키스하려다 체포된다. 갱년기를 앞둔 여성의 성생활은 사막같이 메말라진다는 게 이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일까? 여름 영화들은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아이언맨 2’의 아이언맨은 세계 최강 무기업체의 억만장자 CEO다).
하지만 뻔한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이들 영화의 문제점은 진부한 이야기뿐이 아니다. 일부 단체에선 ‘섹스 앤 더 시티 2’가 무슬림을 보는 고정관념을 강조한 반이슬람 영화라고 주장한다. ‘섹스 앤 더 시티’나 ‘페르시아의 왕자’가 또 다시 속편을 만든다면 난 여권을 잃어버린 척 하겠다. 이런 식의 영화 속 휴가는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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