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왜 하니?
결혼은 왜 하니?
매년 이맘때면 청첩장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두툼한 크림색 종이 위에 도드라진 소용돌이 모양의 글자체가 결혼식 참석을 청한다. 그래서 봄이 되면 우리의 한숨이 깊어간다. 형식적인 결혼식, 피로연, 마지막으로 어색한 댄스의 또 다른 여름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결혼식은 즐겁다. 하지만 대개는 정형화된 의식에 불과하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걱정투성이인 통과의례다. 사회학자들이 ‘끝장났다’고 말하는 사회제도로의 진입을 기념하는 의식일 뿐이다. 옛날 옛적엔 결혼이 유의미했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을 확보하고, 자녀들의 아빠를 가정에 묶어두고, 여러 가지 법적 권리를 얻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권운동으로 일터에서 여성의 권리가 확립된 지 이미 40년이 지났다. 이혼율이 치솟은 지 한 세대가 지났다. 드라마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가 독신 여성의 삶을 미화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결혼이 법적인 측면에서든 실용적인 측면에서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 기사를 쓰는 우리 두 여기자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젊으며 도시에서 전문직에 종사하고, 직장생활과 친구, 그리고 물론 남자친구를 사귀는 일에도 열심이다. 하지만 우리는 남녀의 결합을 법적으로 구속시킨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잘되거나 잘못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이제 여성이 노동력의 과반을 차지한다. 과거보다 학력은 높아졌고 신앙심이 줄었으며 더 오래 산다. 진공청소기와 세탁기 덕분에 집안일도 쉬워졌다. 여성은 미국 가계의 3분의 2에서 생계를 책임지거나 적어도 맞벌이를 한다. 지금은 배우자 권리 대부분이 법적 절차를 통하지 않고도 쉽게 확보된다.
결혼하지 않고 행복한 동거 생활을 하는 미국인도 크게 늘었다. 여성이 독자적으로 건강보험, 국민연금에 가입한다. 입원한 파트너를 문병하러 가는 데도 이젠 혼인허가서가 필요하지 않다. 결혼했다고 해서 세제 혜택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결혼과 관련된 통계 수치가 생소하진 않지만 충격적이다.
미국의 이혼율은 서방 세계에서 가장 높다. 남성의 60%, 여성의 절반이 결혼 생활 중에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다. 물론 무신경한 소비지상주의의 산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공산이 큰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여전히 결혼식 자체를 이상적인 의식으로 생각한다.
미국에서 결혼에 지출되는 비용이 연간 720억 달러다. 결혼을 주제로 하는 TV 리얼리티 쇼도 열두어 편이나 된다. 구글 영문판에서 ‘bridezilla’를 치면 40만 건 이상이 검색된다. 브라이드질라는 bride(신부)와 gozilla(상상속의 괴물)의 합성어로 결혼을 앞둔 신부가 예식 준비에 극성을 떠느라 스트레스로 예민해진 상태를 말한다.
신부 바비 인형도 시중에 네 가지나 있다. 50년 전 그레이스 켈리는 옷깃이 높은 레이스 가운을 입고 눈부시게 빛나면서도 얌전한 자태로 모나코 왕과 결혼식을 올렸다. 요즘은 어떨까?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맞춤으로 수놓은 주시 쿠튀르 운동복을 입고 결혼식을 치렀다(놀랍지 않게도 1년도 안 돼 갈라섰다).
따라서 동성 커플이 ‘결혼의 신성함을 파괴한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잠깐! 이미 결혼은 파괴되지 않았나?’ 벨라민대(켄터키주 루이빌)의 사회학자 커티스 버그스트랜드는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은 결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신부들러리 드레스도 많이 입어봤고 결혼식 건배도 수십 번이나 해봤다. 그런 경험에 비춰 우리는 낭만보다는 이성을 택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두 사람은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에 ‘결혼 서약’이 반드시 포함될 필요는 없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말해둘 게 있다.
5년 뒤에 우리가 결혼했는지 확인해 보라. 우리는 각각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다. 생체시계가 재깍거리며 임신적령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와 함께 “이제 그만 결혼하지 그래?”라는 속삭임이 점점 커지는 시점이다.
40세 독신 여성이 결혼하기보다는 ‘테러리스트에 의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뉴스위크의 예측(잘못된 예측이었다)이 두고두고 조롱당하듯이 만약 우리가 결혼한다면 누구든 우리를 실컷 조롱해도 좋다. 통계로 보면 우리의 직감이 아직은 확실한 ‘추세’로 확인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완전히 헛다리를 짚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미국의 기혼자 비율이 1950년대 이래 10년마다 계속 떨어졌다.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들이 지난 40년 동안 1000%나 늘었다. 미국인들이 결혼하는 나이의 중간값은 남자가 28세, 여자가 26세로 지금이 가장 높다(우리처럼 학력이 높은 도시 거주자들의 경우는 더 높다).
결혼은 서두르지 않는 게 현명한 판단임이 드러난다. 결혼을 늦게 할수록 이혼의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래서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문다. 서두르지 않기로 작심했다면 아예 결혼하지 않는 게 어떨까? 미국 젊은이 5분의 1은 우리처럼 종교가 없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갖는다고 해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요즘 미국 사회에선 보기 힘들다.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008년 미국에서 출생한 아이 중 41%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느 때보다 높은 비율이다. 그중에서도 나이 많고 학력 높은 어머니들이 가장 빨리 늘어난다. 결혼을 위해 순결을 유지하겠다고?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결혼에 관한 책을 쓰는 한 저자에게 28세인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지 않고서는 섹스를 못한다면야 나도 결혼을 고려하겠다. 내 친구들도 모두 마찬가지 생각이다.” 법적인 측면에서도 결혼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판임이 쉽게 드러난다. 주로 동성 결혼 지지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성 커플들은 결혼하지 않고도 어느 때보다 배우자 권리를 많이 누린다.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고서는 여성이 못 가지는 권리는 어떨까? 람다 법적보호 교육재단의 선임 변호사 제니퍼 파이저는 “돈이 많다면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자면 독신으로 남는 편이 여러 모로 유리하다. 미국 연방법은 거의 모든 경우 미혼 납세자를 우대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건강보험 정책에 따르면 소득이 적은 독신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때 정부 보조금을 더 많이 받는다. 허드슨 연구소의 보고서에서 다이애나 퍼흐트고트-로스는 “결혼했다고 해서 돌아오는 혜택이 없다”고 말했다. “2013년이 되면 미혼이 독신으로 남는 게 아무튼 재정적으로는 유리하다는 점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현재 미국의 가정은 중대한 변화의 진통을 겪는다. ‘핵가족의 보금자리’ 시대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지금의 미국 사회는 싱글 부모, 동성 커플, 이성 동거 커플이 뒤섞여 있다.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류학자 헬런 피셔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이 바로 그렇다고 말할지 모른다.
피셔에 따르면 인간은 영원히 한 사람과 같이 살기보다는 3~4년 정도만 한 파트너와 살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우리는 한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방식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는다. 우리 중 한 명은 6년째 한 남자와 동거한다. 하지만 결혼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결혼의 개념이 너무도 오염된 동시에 이상화됐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이혼 부모의 첫 자녀들이었다면 우리는 ‘다가구 가정’이 표준인 세대다. 우리 세대는 침실과 미니밴, 저녁 식탁 사이에서 의붓 부모, 반 형제자매, 고도로 복잡한 휴일 일정에 시달리며 자랐다. 유명인사들의 외도 추문도 끊임없이 보도된다. 따라서 우리가 결혼에 냉소적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고? 정말 그럴까?).
‘결혼의 회전목마(Marriage-Go-Round)’를 쓴 앤드루 철린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왜 점점 사람들이 결혼을 마다할까가 아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여전히 결혼하느냐가 문제다.” 오랫동안 여권운동가들은 결혼이 여성에게 굴레를 씌운다는 이유에서 결혼을 반대했다. 1970년대 여권운동을 주도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결혼이란 두 사람을 ‘한 사람 반’으로 만드는 인습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부엌일을 강요하는 남자와 데이트하려는 여성은 없다(심지어 스타이넘도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내’를 규정하는 역할 분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는 여성은 없다. 남성의 가사·육아 기여도는 1960년대 이래 두 배로 늘었다. 그러나 맞벌이 커플의 경우에도 여전히 여성이 가사의 3분의 2를 떠맡는다(심지어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결혼하면 매주 가사노동을 7시간 더 해야 한다).
한편 직장에서 남편의 성을 취한 여성은 지능과 능력, 야망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기혼 여성이 취직하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요즘 미국 남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기혼 여성들에게서 우려할 만한 불평이 많이 쏟아진다. 그래서 결혼하면 우리의 삶이 갑자기 인스턴트 식품에 포위되고, 탁자에 구두가 올라가고, 설거지가 밀리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사회학자로 결혼과 가정을 연구하는 필립 코언은 “결국 결혼으로 득 보는 쪽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고 말했다. 1900년대 초 이래 결혼을 이끌어온 원동력은 출산과 함께 여성이 보수가 좋은 직장을 가지기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이었다. 여성은 생존을 남편에게 의지해야 했다.
1967년 조사에서 여대생의 3분의 2는 사랑하지 않는 상대라도 경제적 부양 능력만 갖췄다면 결혼하겠다고 말했다(남학생의 경우는 5%가 그렇게 응답했다). 하지만 요즘의 여성은 ‘생존을 위한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 여성의 학력과 보수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졸자 중 여성이 거의 60%를 차지하며, 20대 도시 여성의 연봉이 남성 동료보다 많다.
지금의 여성은 권리도 확보했다. 여성은 성인으로 남성과 동등하다는 높은 기대 속에서 성장했다. 사사건건 챙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헬리콥터 부모’와 언론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성에게도 “원하는 삶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귀가 따갑도록 외쳤다. 그 꿈을 이룰 기회도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25세 이후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겠다는 결혼 서약이 얼마나 끔찍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듯하다(선택 가능한 남자들을 전부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한 사람을 만나 ‘천생연분’이라고 한다면 어불성설 아닐까?). 너무도 선택이 많은 현시대의 사랑을 논한 책 ‘선택 효과(The Choice Effect)’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즉흥적으로 모스크바 같은 곳에 가는 비행기표를 사고, 시험관 아기를 갖고, 이 대륙 저 대륙에 사무실이 있고, 남자의 출산 휴가를 권장하는 시대에 진입했다. 그 결과 선택권을 갖기는 좋아하지만 실제로 선택하기는 싫어하는 세대가 됐다.”
다시 말해 만약 결혼을 한다면 사랑 때문에 한다는 뜻이다. ‘나쁠 때가 아니라 좋을 때(For Better)’의 저자 타라 파커-포프는 요즘의 젊은 여성은 부모 시대의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총체적인 성취를 원한다.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이며 섹스·사랑·가사를 함께 하는 사람을 원한다.
흔히 말하는 ‘영혼의 동반자(soulmate)’를 원한다. 20대 독신 여성의 94%가 파트너에게서 그런 관계를 바란다. 하지만 ‘영혼의 동반자’란 인류의 사랑 역사에서 상당히 새로운 개념이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뇌활동 측정 결과에 따르면 결혼 20년차에 이르면 90%는 처음 느꼈던 열정을 잃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랑 때문에 결혼한 부부는 해가 갈수록 사랑이 줄어드는 반면 중매로 결혼한 부부는 해가 갈수록 사랑이 깊어진다. 그 이유가 뭘까? 중매 결혼의 경우 기대치가 훨씬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이 기대치를 낮춘다면 어린 시절 꿈꿨던 ‘백마 탄 기사’와 오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연구에 따르면 학력이 높고 경제력이 강한 여성일수록, 다시 말해 가정 밖에서 성공할수록 결혼 생활을 오래 유지한다. 실제로 미국의 각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직장을 가진 기혼여성이 적은 주일수록 이혼율도 높았다. 하지만 상호 평등을 주장하는 독립적인 커플이 아예 결혼하지 않기로 작심한다면 어떨까?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유럽의 커플들을 보라. 미국인들에 비해 더 행복하고 신앙심이 더 약하며 결혼이 구식 제도라고 믿는 비율이 높다. 그들의 이혼율이 미국보다 훨씬 낮다. 적어도 법적으로 볼 때 결혼하지 않은 경우에 갈라서기가 약간 더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삶을 함께 하기로 결혼 서약을 한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커플이 결혼한 부부만큼이나 오래 같이 산다. 결혼하면 자녀에게 좋다는 지적이 많지만 자녀의 과반수가 미혼모에게서 태어나는 북유럽 국가들을 보라. 그곳의 아이들이 미국 아이들보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물론 일과 생활 관습이 그런 현실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요점은 이렇다. 자녀에겐 안정이 최고다. ‘진화하는 결혼(Marriage, a History)’의 저자 스테파니 쿤츠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의 퇴조가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 이제는 결혼하는 사람들이 더욱 행복한 삶을 누리는 동시에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도록 대처해나가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성장하면서 듣고 느낀 바와 상충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평균 수명이 70대 후반인 현실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결혼에 한쪽 발을 담근 상태(A Little Bit Married)’의 저자 한나 셀리그슨은 “결혼 서약에 새로운 중압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건강한 동반자 관계는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결혼 제도가 영구히 지속돼야 한다는 생각은 철없고 거의 오만하게 들린다. 저명한 인류학자 헬런 피셔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을 향한 영원한 헌신은 지나치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기사를 읽는 여러분이 우리와 닮은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결혼식장에서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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