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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맡기는 정치 CEO도 배워야

정도전의 맡기는 정치 CEO도 배워야

조선왕조와 한국 대기업의 공통점은 뭘까? 왕권(경영권)이 자녀에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창업자의 자손이 반드시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순 없다.



子張曰 書云 高宗諒陰三年不言, 何謂也?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 以聽於?宰三年. (논어 헌문편)
자장이 말했다. “ <논어> 에 이르기를 ‘고종이 양음(諒陰)에서 3년 거상(居喪)하는 동안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양음은 임금이 돌아가신 부모의 묘 곁에 초막을 짓고 3년을 지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필 고종만 그렇게 했겠는가? 옛날의 인군(人君)은 다 그렇게 했다. 임금이 죽으면 모든 관리가 맡은 직무에 대해 총재에게 품의하고 명령을 듣기를 3년 동안 했다.”

고종은 주 왕조 바로 이전에 중국 땅을 통치했던 은 왕조의 왕이다. 탁월한 경영가였던 그는 쇠퇴해 가는 은 왕조를 일으켰다. 공자가 얘기한 바와 같이 고종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임금은 거상 기간에는 위임정치를 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임금뿐 아니라 지배계급에 속한 대부에겐 부모의 삼년상을 치르는 일이 효(孝)의 기본으로 꼽혔다.

총재는 문무백관을 통솔하는 벼슬을 말한다. 총재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주례> 에 나온다. 국가의 통치조직이 6개의 부서로 나뉘는데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봄(春), 여름(夏), 가을(秋), 겨울(冬) 등 사계절의 특징에 따라 행정조직을 설치했다. 천관, 지관, 춘관, 하관, 추관, 동관이라는 관직이 그것.

천관은 주로 중앙행정과 인사관리, 궁궐 안의 업무를 맡은 부서인데 그 책임자가 총재다. 그래서 천관총재라고 부른다. 지관은 호구, 토지, 곡식 조세 등을 관장하는 부서, 춘관은 교육과 예절 그리고 외교업무를 관장하고, 하관은 국방을 책임지고, 추관은 법 집행을 맡아서 하는 부서, 그리고 동관은 제조와 기술을 관장하는 관직이다.

이러한 6개 부서의 행정조직은 훗날 역대 왕조의 행정조직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왕조에 이어 조선왕조의 이(吏), 호(戶). 예(禮), 병(兵), 형(刑), 공(工) 등 육조가 행정을 맡았다. 호부의 원래 명칭은 민부였다. 당대에 이르러 태종의 이름 이세민(李世民)의 民(민)을 피하기 위해 民(민)을 戶(호)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이를 부르기를 삼가야 할 이름 즉 휘명이라고 한다. 천관총재는 천관 이외의 조직도 운영한다. 천자 다음으로 막강한 직위다. 천관총재의 모델은 <주례> 를 만든 주공(周公)이었다. 주공은 실질적인 주 왕조의 창건자나 마찬가지인 제2대 무왕의 아우다. 무왕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주공에게 나이 어린 자신의 아들 성왕을 보필해 주기를 간곡하게 부탁했다.

친형인 무왕의 유언대로 주공은 건국 초기 불안했던 주나라의 정치를 이끌었다. 성왕이 성장한 후에는 왕권을 조카에게 물려줬다. <주례> 의 핵심은 바로 총재정치에 있다. 총재라 함은 재상 중에서 맏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오늘날의 국무총리와 비슷한 관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총재정치’의 사례를 잘 알고 있던 정도전은 <조선경국전> 을 저술해 ‘총재정치’ 즉 재상정치 실현을 강조했다. 군주는 다만 현명하고 유능한 총재를 임명해 그에게 국가의 정무를 전적으로 위임하는 위임정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주 왕조의 주공처럼 재상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국정을 도맡아 하는 책임정치를 말한다.

정도전이 재상정치를 생각하게 된 배경은 중국의 상고시대 전설적인 인물인 요·순 임금과 같이 유덕자(有德者)가 군주가 되는 고전적 이론이 계속 실현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금의 자손이 반드시 최고의 유덕자임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왕권의 세습은 천하를 차지하려는 대권경쟁을 사전에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안정을 누릴 수 있다.

대신 최고의 유덕자가 왕의 임명을 받아 정무를 담당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던 것이다. 오늘날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정치제도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정도전의 희망과 달리 조선왕조의 임금들은 총재정치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주가 직접 정치를 챙기려 했고, 신하는 단지 통치자인 임금을 보좌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이러한 직접통치 방식은 비단 조선왕조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나라에 이어 명 왕조를 세운 주원장은 그때까지 시행했던 재상 제도를 아예 없애버리고 직접 내각을 연결해 재상 없는 정치를 시작했다. 임금이 재상 없이 혼자 국가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았다. 임금과 내각 사이를 연결하는 세력으로 환관들이 득세하며 소위 환관정치가 꽃을 피웠다.

조선왕조도 단종 시절에 의정부가 실무 행정부서인 육조의 행정사항을 먼저 검토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의정부의 역할이 커지면 상당 부분 군주의 권한이 의정부에 위임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정도전이 구상했던 총재정치를 부분적으로나마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강력한 군주정치를 지향한 세조에 이르러 다시 육조가 직접 군주에게 보고하는 제도로 돌아갔다. 명 왕조의 환관세력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승정원의 역할은 한층 강화되었다.

뛰어난 임금이 태어나 정치를 훌륭하게 할 경우에는 문제가 없다. 현명하지 못한 군주가 즉위했을 때는 그 심각성이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전제 아래 구상했던 정도전의 총재정치론은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대신 조선왕조의 선비들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사가 있을 때 임금이 잘못한다고 생각되면 끊임없이 잘못을 지적하는 충간을 마다하지 않았다. 충간이 통하지 않으면 상소라는 제도로 목숨을 걸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총재정치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바로 이러한 선비정신이 조선왕조 500년을 지탱한 원동력이 되었다.



신하가 임금을 섬길 기본자세는 뭘까

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而犯之! <논어 헌문편>

자로가 임금을 섬기는 자세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는 답했다.
“속이지는 말되 군주의 면전에서 올바른 얘기를 끊임없이 하라.”

이러한 충간정신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수많은 외침이 있을 때마다 백성이 중심이 된 의병조직이 나와 관군과 더불어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역사로 남았다.

요즘도 국무총리를 임명할 때마다 실세총리 혹은 대독(代讀)총리라는 표현으로 실권의 정도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대통령의 업무 중에서 덜 중요한 자리에 대통령 대신 연설문을 읽는다는 역할을 꼬집어 대독총리라고 불린다. 국무총리가 그 직책과 명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수직적 분업을 통한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대통령이 과감하게 그 업무의 일부를 위임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수직적 분업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맹자의 <만만장구> 상편을 보면 수직적 분업을 얘기한다. “공자께서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백성에게는 두 명의 왕이 있을 수 없다(天無二日, 民無二王)’ 고 하셨다. 순 임금은 요 임금에 이어 천하를 다스렸고, 요 임금은 순 임금에게 자리를 물려줬지만 북면해 신하 노릇을 했고, 순 임금은 천하의 제후들을 거느리고, 요 임금의 삼년상을 했다면 이미 천자는 둘이나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반드시 하나여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얼마든지 수직적 분업의 좋은 점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총재정치론은 비록 고대 중국의 왕조에서 시작한 제도지만 오늘날에도 한 번쯤 검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총재경영이 가능할까? 이제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가 쌓여가면서 많은 기업군이 3세 내지 4세까지 이어오고 있다. 몇몇 기업을 제외하면 창업자의 직계가족이 최고책임자가 되어 경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세, 3세가 유능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창업자의 자손들이 반드시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이럴 때 정도전이 구상했던 총재경영을 도입하면 된다. 연령이 어리거나 경영능력이 부족한 승계자가 출현할 경우 총재가 그 공백을 메워 경영의 지속성을 유지하다가 후손 중에 다시 유능한 경영자가 나타나면 그 자리를 넘겨줘 튼튼한 경영 구도를 지속시키는 방법이다.

이러한 순조로운 경영권 이양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어쩔 수 없이 직접 경영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피하지 못하고 파탄을 가져올 수 있다. 주나라 건국 초기에 어린 조카 성왕을 도와 총재정치인 섭정정치를 통해 국가를 굳건하게 만들고, 어린 성왕이 성인이 되었을 때 왕권을 물려준 주공의 모습을 기업들이 나서서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소위 재벌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기업군에서 보면 이러한 총재경영을 실시하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대부분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당장 마음놓고 경영권을 맡길 수 없는 경우인데, 바람직한 경영권 승계 방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대로 너무 일찍 경영권을 승계하는 경우에는 각종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게 돼 막대한 낭비와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또 지속적인 성장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어느 방안을 택하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경영권 승계권자의 마음에 달려 있지만 쉽게 총재경영 제도를 택하는 쪽이 많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도 주공이 성왕에게 왕권을 온전하게 승계해 준 사례를 실현시키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은 아닐까? 즉 한번 실권을 쥐게 되면 좀처럼 놓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염려해 자연스럽고 순조로운 경영권의 승계는 물론 소유권마저 불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기업에서도 역시 총수 한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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