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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기업이 무슨 자선단체인가

특별기고 - 기업이 무슨 자선단체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7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대기업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7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대기업을 강하게 질타했다.



최근 일부 대기업의 영업실적이 호전되고 기대 이상의 경제성장이 이뤄지면서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침체의 늪을 빠져나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수출 호조로 많은 이익을 거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일반 서민과 중소기업은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 이런 상대적 박탈감은 대기업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이어진다.

비난의 핵심은 대기업의 저조한 투자, 미온적 일자리 만들기, 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납품단가 인하 요구, 일방적 발주 취소와 납품업체 변경, 중소기업 핵심 기술의 탈취 등이다. 또한 대기업이 풍부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납품대금의 어음결제와 같은 윤리적이지 못한 행위를 한다는 것과 대기업 성장에 따른 양극화 초래 등이 거론된다. 결국 이런 문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대기업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압박으로 변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학술적 연구로 경영학자 아치 캐럴의 정의가 관심을 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경제적 책임’으로서 저렴한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공급하며, 이익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둘째, ‘법적 책임’이다. 각종 법과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다. 셋째, ‘윤리적 책임’이다. 정당한 방식으로 기업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자선적 책임’이다. 자선 및 기부와 같은 사회공헌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크게 심화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류층과 빈곤층, 수도권과 지방,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소득 양극화가 문제다. 이런 소득 양극화는 기술혁신의 가속화, 노령화의 진전, 국제화에 따른 세계적 현상이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윤 추구하는 조직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 사례로 중산층 붕괴가 지적된다. KDI(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중산층 비중이 62%였는데 작년엔 57%로 5%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이런 중산층의 비중 감소는 상류층으로는 1.7% 진입하고, 하류층으로 3.5% 전락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대기업들이 수치상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실적이 좋은 대기업은 대부분 수출기업이다. 2009년 현재 매출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삼성전자는 83%, 현대자동차는 50%, LG전자는 74%, LG디스플레이는 95% 수준이다. 올해 높은 수익도 수출 증가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주력 수출품목인 휴대전화가 아이폰의 출현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세계시장에서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도요타 사태의 후유증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이런 일시적 현상을 근거로 대기업의 성과를 부정적 의미의 양극화 확대로 해석하거나 중소기업의 납품가 인하를 통해 달성한 장기적 성과로 판단하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대폭 늘리라고 하거나 극단적 이익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대기업 입장에서 너무 지나친 처사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덜 겪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현금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경기변동에 대비하는 것 역시 대기업에는 절실한 문제다. 참고로 국내 상위 50대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04년 9.7%에서 지난해 6.2%로 하락했다. 현재 잘나가는 대기업의 경영성과는 올해 상반기 반짝 경기에 따른 것이다. 많은 대기업이 지속적으로 높은 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하기는 아직 힘들다.

대기업이 수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쌓아 놓고 투자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이유 없이 저금리 상태에서 현금 자산을 쌓아둘 바보가 아니다. 우리 기업에 요즘 최대의 고민거리는 10년 뒤 ‘먹을거리 산업’을 찾는 것이다. 이런 산업에 투자하려면 수십조원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기업이 망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처를 섣불리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상생협약을 맺어왔다.

▎국내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상생협약을 맺어왔다.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에 인색하다고 한다. 세간에 ‘구구팔팔’이라고 떠도는 말이 의미하듯,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고, 고용의 88%를 담당한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중(中)성장 시대로 접어든 DJ정부 이래 일자리 창출은 역대 정부와 현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였지만 이 목표를 제대로 달성한 정부는 없었다. 성장 없이는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성장해도 과거처럼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이런 추세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정치적 압력에 의한 고용은 되레 부작용일자리 창출은 기업매출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이뤄진다. 적정수준의 고용은 기업의 합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추가적 일자리 창출보다는 근로환경 개선 같은 것이 국제표준에서 규정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이다. 대기업에 더 많이 고용하라는 요구는 기업활동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다.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듯해도 실제 더 많은 사람을 해고시키는 행태로 나타날 것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거래, 납품가격 인하 요구, 중소기업의 특허 절취 행위와 같은 것이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한다. 간혹 중소기업 사장들의 절규에 가까운 하소연은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탄탄한 기술 경쟁력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소수의 중소기업을 제외하고 많은 중소기업이 생존의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이런 기업에 경쟁력이 없으니 퇴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대기업은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에 할 만큼 한다고 한다. 오히려 큰 문제는 2~4차 협력사들 간의 납품가 인하, 어음결제와 관련된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 1차 협력사의 납품가 인하가 궁극적으로 2~4차 협력사로 전가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격차가 현저해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취직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글로벌 아웃소싱은 세계적 추세다. 한국의 대기업도 부품과 소재를 점차 외국 업체에서 많이 구매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 조달시장에서조차 해외 조달 비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국내 중소기업을 더욱 어렵게 할 모습이다. 따라서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 수행 차원에서 모든 협력 중소기업을 도와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수천 개 협력사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현실적으로 본업을 제쳐놓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흔치 않게 헌법에서 중소기업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소기업 관련 정책을 갖고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능력 있는 일부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중견기업을 키우겠다는 정책까지 나오고 있다. 수많은 정부 정책으로도 중소기업을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공짜 없는 기부와 자선활동한국 기업에 대한 비난 중 하나는 기부와 자선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08년 낸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총기부금은 8조6700억원이다. 이 중 39%인 3조3200억은 법인이 기부한 것이고, 5조3000억원은 개인이 기부한 것이다. 개인 기부금의 약 80%는 종교단체에 대한 기부다. 전체 규모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적지만 기업당 법인기부금의 세전이익 대비 비중은 2004년 기준으로 한국은 1.8%로 미국 1.7%, 일본 1.4%보다 높다. 한국 기업의 기부활동은 기업 규모에 걸맞은 공헌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은 많은 돈이 있으니 사회에 자선을 하라는 정서도 강하다. 현재 한국의 기업집단이 운영하는 재단 가운데 1조원이 넘는 기금을 가진 것은 삼성그룹과 현대·기아차그룹에서 출자한 두 개의 재단뿐이다. 의료, 사회복지, 교육 등 다양한 사업을 하지만 선진국 수준에는 미흡하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기업의 자선활동에 대해서는 많은 기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자선사업을 한다 해도 절대 공짜가 없다는 것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1891년 미 펜실베이니아 현장의 파업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악덕 기업가 앤드루 카네기는 “자선기금의 대부분이 지각없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게으른 자와 술주정뱅이, 가치 없는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도서관 건립과 같은 가치 있는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지역에 자선기금을 지원했다. 또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서 ‘이 시대의 가장 저주 받은 인간’이란 평가를 받았던 독점 사업가 존 록펠러 역시 그의 많은 자선활동 가운데 농업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은 인류 10억 명을 굶주림에서 구했다고 평가 받는다.

1997년 유엔에 10억 달러를 기부한 CNN 회장 테드 터너는 “10%의 사람이 90%를 소유한 세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자선사업이란 자기한테 있는 것을 단순히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절대로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점기업가라는 평가를 받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300억 달러 이상을 기부하여 빌-메란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여기에 워런 버핏은 “내 돈을 가장 잘 관리해줄 사람은 빌 게이츠”라며 역시 300억 달러 넘는 돈을 기부했다. 재단은 우리 돈으로 약 80조원의 기금을 보유한 단체가 됐다. 이들 역시 교육과 말라리아 퇴치, 사회적 기업 지원과 같은 가치 있는 일을 한다. 때론 경제는 정치 논리보다 윤리적이다.

한국의 대기업도 외국 기업에 비해서는 적지만 자선사업을 통해 많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요즘처럼 상대적으로 많은 이익을 본다 해도 이들에 공짜로 베푸는 자선사업을 하라고 압박할 수는 없다.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 사회·경제적 여건이 성숙해지면 더욱 많은 자선활동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자선사업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위해 하는 것이지 공짜로 나눠주는 게 절대 아니다. 이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중 자선활동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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