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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의 LG’ 흔든 맏딸·맏사위…잦은 송사·구설에 ‘도덕성 결함’ 논란

故 구인회 창업 회장이 만든 ‘인화’ 가치에 세 모녀 ‘반기’…여론 ‘싸늘’
상속회복 소송 핵심 구연경·윤관 부부, 탈세·부정거래 의혹에 ‘구설’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왼쪽)와 부인 김영식 여사, 그리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여동생 구연수씨(오른쪽). [사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LG그룹 기업문화는 ‘인화’(人和)로 유명하다. 사람을 아끼고 화합하는 LG그룹 특유의 가치는 고(故) 구인회 창업 회장 때 형성돼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인화의 LG’가 지닌 무게는 오너가(家) 분쟁을 3대째 억누른 배경으로 작용했단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LG그룹은 여타 대기업집단과 달리 경영권 분쟁이 적었다. 구 씨와 허 씨 두 집안의 공동 창업인 데다, 자손이 많았음에도 ‘경영권이 흔들릴 정도’의 다툼은 나타나질 않았다.

이런 기치가 4대째에 접어들면서 흔들리고 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2018년 5월 타계한 후 재산 상속을 두고 가족 사이 분쟁이 벌어져서다. 문제를 제기한 쪽은 구광모 LG그룹 회장 모친인 김영식 여사(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 부인)와 두 여동생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구연수씨다. 세 모녀는 지난해 2월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인화의 LG’ 내부에서 법정 다툼이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단 뜻이다.

지난 5월 21일 해당 소송에 대한 변론준비기일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되면서 LG 오너가 다툼이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양측 법률대리인은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서 ‘증거 채택’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첨예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 상속 회복 아닌 ‘경영권 분쟁’

구본무 선대회장 타계 후 약 6개월간 유족 사이 이뤄진 합의에 따라 경영 자산 분배가 진행됐다. 구광모 회장은 당초 선대회장이 남긴 ㈜LG 지분 11.28%에 보유하고 있던 6.24%를 더한 17.52%를 확보하는 방향이 유력했다. 구본무 선대회장이 병중 남긴 뜻이 ‘경영권 지분은 구광모 회장에게 전부 상속’이란 점도 합의 과정에서 유족에게 공유된 것으로 전해진다.

구광모 회장은 그러나 모친의 의중이 ‘딸들이 한 주도 못 받는 점이 서운하다’라는 점을 듣고, 경영권 방어에 ‘마지노선’으로 여겨진 지분 15%만 지키는 방향으로 경영 자산을 분배하는 데 합의했다는 게 법정 증언을 통해 대외에 공개된 바 있다. ㈜LG 지분 11.28%가 아닌 8.76%만 물려받은 점을 두고 재계 일각에선 ‘구광모 회장이 양보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해석대로라면 ㈜LG 지분 2.52%를 두 여동생(구연경 대표 2.01%, 구연수씨 0.51%)에게 구광모 회장이 나눠 준 셈이다. 대신 상속세는 각자 부담키로 했다. 세 모녀는 이와 별개로 구본무 선대회장의 개인 재산인 금융투자상품·부동산·미술품 등을 포함한 약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받았다. 현재 ㈜LG 지분은 구광모 회장이 15.95%를 가지고 있다. 구연경 대표는 2.92%, 구연수씨는 0.72%를 보유한 상태다.
2012년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미수연(88세 생일 잔치)에 LG 일가 구성원이 참석한 모습. 앞줄 왼쪽부터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과 부인 김영식 여사, 구자경 명예회장,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남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 뒷줄 왼쪽 두 번째부터 구본준 LX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사진 LG]

세 모녀는 상속 소송의 제척기간(3년)이 지난 4년 3개월 만에 문제를 제기했다. ‘구본무 선대회장이 남긴 ㈜LG 지분 11.28%를 법정 상속 비율에 따라 다시 나누자’라는 게 세 모녀의 핵심 주장이다.

소송 과정에서 세 모녀가 상속 분할에 이의를 제기하는 가족 간 대화가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구연경 대표가 ‘구본무 선대회장 유지와 상관없이 분할 합의는 리셋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란 취지의 발언을 한 점도 법정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 녹취록엔 구연경 대표 남편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도 등장한다. 이에 따라 윤관 대표가 세 모녀를 부추겨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는 ‘배후설’이 세간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번 법정 다툼에서 세 모녀가 승소하게 된다면 LG그룹 지배구조 변화는 불가피하다. 세 모녀 주장이 반영되면 구광모 회장의 지분율은 9.7%로 감소한다. 반면 김영식 여사는 기존 4.2%에서 7.95%로, 구연수 대표와 구연수씨는 각각 3.42%와 2.72%로 높아진다. 세간에서 이 사안을 순수한 상속회복 청구가 아닌 ‘경영권 다툼’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손대는 사업마다 ‘구설’

재계에선 여러 정황상 구연경·윤관 부부가 이번 상속권 분쟁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소송 향방과 별개로 LG 오너가 경영권 분쟁에 대한 여론은 문제를 제기한 세 모녀 쪽에 부정적인 분위기다. 구연경 대표와 윤관 대표가 잦은 송사에 휘말리면서 ‘도덕성 결함’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윤관 대표가 이끄는 BRV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투자사다. BRV 산하 벤처캐피탈(VC)인 BRV캐피탈매니지먼트(이하 BRV캐피탈)는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에 주로 투자하는 BRV로터스(BRV Lotus) 펀드를 운용 중이다. 윤관 대표는 이를 기반으로 한국 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투자금 운용 성과 보수·배당 수익 등을 통해 수익을 올려왔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이하 에코프로머티)가 대표적 사례다. BRV캐피탈은 에코프로머티 기업 가치가 720억원에 불과할 때인 2017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925억원 안팎을 투자했고, 이를 통해 에코프로머티 전체 유효 지분의 24.43%에 해당하는 1685만5263주(BRV로터스 그로스 펀드 15.91%·BRV로터스 펀드 III 8.52%)를 보유했다. BRV캐피탈이 지닌 지분에 대한 보호예수가 지난 5월 17일 풀렸음에도 주가가 상승해 총가치가 1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BRV캐피탈은 할인율 9.7% 정도를 적용해 지난 20일 에코프로머티 지분 약 3.2%를 주당 9만3657원에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했다. 총매각 규모는 1억5000만 달러(약 2040억원) 수준이다. 블록딜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면서 에코프로머티 주가는 8만원 대까지 빠졌다. BRV는 이번 투자금 회수로 ‘조 단위’ 차익을 얻을 것으로 분석된다. 벤처캐피탈업계에선 이에 따라 윤관 대표 등에게 부여되는 성과 보수도 3000억원 안팎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윤관 블루런벤처스(BRV) 대표(왼쪽)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사진 이코노미스트DB]

문제는 윤관 대표가 이같이 막대한 수익을 한국 시장에서 올리고 있음에도 ‘탈세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윤관 대표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배당소득 221억원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는 점을 개인통합조사를 통해 발견했다. 강남세무서는 이에 종합소득세 123억원 추징을 윤관 대표에게 고지했다. 윤관 대표는 이에 불복, 곧장 심판 청구를 제기했다. 조세심판원은 2022년 12월 윤관 대표의 청구를 기각했다. 윤관 대표는 기각 결정에도 불복해 강남세무서를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2023년 3월부터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윤관 대표는 2005년 미국 영주권을 획득하고,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한 후 2011년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미국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소득세법상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면 종합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윤관 대표는 국내 체류 일수가 183일 미만이라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납세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세청은 윤관 대표가 스스로 국내 거주자로 양도소득세를 신고한 이력이 있고, 고의·조직적으로 국내 체류 일수 183일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한 점 등을 근거로 납세 의무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만약 이 소송에서 강남세무서가 패하게 된다면, 현재 다툼 중인 123억원 규모의 세금은 물론 윤관 대표가 2020년 이후 한국 시장에서 거둔 수익에 대한 추징도 이뤄지기 힘든 구조다. 에코프로머티 투자로 발생한 이익에도 세금을 매기기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이 행정 소송의 변론기일은 오는 5월 30일로 예정돼 있다.

윤관 대표는 탈세 의혹 소송에 더해 고(故) 조정구 삼부토건 창립자의 손자인 조창연씨와도 2억원 규모의 대여금 반환 민사 소송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조창연씨는 2016년 9월 윤관 대표 요청에 따라 2억원을 현금으로 빌려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관 대표와 조창연씨가 관여한 벨레상스호텔(옛 르네상스호텔·현 센터필드) 인수 본계약 체결 직후에 대여금을 전달한 셈이다. 윤관 대표가 르네상스호텔 재매각 사업으로 수익이 발생하면 대여금을 갚겠다고 약속했다는 게 조창연씨 측 입장이다. 재계에서는 호텔 매각과 재개발 등을 둘러싼 이면 거래 가능성 등에 주목하고 있다.

윤관 대표와 신세계그룹 간 법적 분쟁이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최근 제기된 바 있다. 신세계그룹 이커머스 플랫폼 에스에스지(SSG)닷컴의 기업공개(IPO)가 지연되면서 불거진 분쟁이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BRV캐피탈은 재무적 투자자(FI)로 SSG닷컴에 총 1조원을 투자해 각각 지분 15%를 보유 중이다.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 행사 시점이 6월 1일로 잡혀있는데, 행사 가능 여부를 두고 대립하는 모습이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사옥. [사진 에코프로]

남편이 준 비공개 정보로 주식 취득?

구연경 대표가 세간의 지적을 받는 사안도 남편의 사업 활동과 무관치 않다. BRV캐피탈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지난해 4월 A 신약 개발 상장사에 5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윤관 대표가 투자 결정을 주도했다. 구연경 대표는 최근 A 기업의 주식 3만 주가량을 LG복지재단 측에 넘긴다는 의사를 밝혔다.

문제는 매수 시점이다. 500억원 투자 유치 직후 A 기업 주가는 당일에만 16% 넘게 급등했다. 투자 유치 전 1만8000원 수준이던 주가는 한때 9만5300원까지 뛰었다. 구연경 대표가 투자 발표 전 A 기업 주식을 취득했다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셈이다. 자본시장법 제174조는 상장법인의 업무 등과 관련된 미공개 중요정보를 특정 증권 등의 매매·거래에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재계에선 구연경 대표가 LG복지재단에 A 기업 주식 기부에 나선 건 불법성 등에 대한 논란이 일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있단 해석이 나온다. LG복지재단 이사회는 지난 5월 10일 회의를 통해 A 기업 주식 처리 여부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추후 법적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 때문에 반대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감독원은 구연경 대표가 보유한 A 주식의 기부 여부와 상관없이 미공개 정보 주식 거래 의혹을 살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른바 ‘세 모녀의 경영권 분쟁’ 사안의 법적 해석과는 완전히 별개로, 여론만 본다면 문제를 제기한 측 주장에 신뢰도가 상당히 떨어진 분위기”라며 “구연경·윤관 부부가 일으킨 문제가 ‘도덕성 결함’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당초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내세운 명문에도 힘이 빠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타계 6주기가 있었는데 고인의 유지는 ‘인화’로 대변되는 가치가 아니었을까 한다”며 “선대 회장의 유산은 넓은 의미에서 가문의 재산”이라고 덧붙였다.
LG복지재단 이사회 2024년 2차 회의록. [자료 LG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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