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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어카운트 과열 뒤 후유증?

랩 어카운트 과열 뒤 후유증?

최근 펀드도 맞춤식 관리가 유행이다. 대표적 상품이 랩 어카운트다. 연초 이후 20%대 수익을 내면서 주식형 펀드를 깨 랩에 투자하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 지금 들어가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까.



랩어카운트(Wrap Account·랩)가 인기다. 금융위기 이후 맞춤형 자산관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자금이 랩으로 쏠리고 있다. 특히 투자자문을 받아 운용되는 자문형 랩의 빠른 성장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다.일부 자문사가 투자한 종목이 급등하자 증시에선 이들 종목을 두고 ‘7공주’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이쯤 되면 ‘랩이 대세’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랩은 증권사가 자체 시장분석이나 투자자문사 자문을 기초로 주식이나 펀드,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일대일 맞춤식 자산관리 서비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현재 랩 계약자산 규모는 27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3월 13조3000억원에서 두 배로 늘었다. 지난해 말까지 10조원 안팎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불과 5개월 만에 세 배 가까이로 급증한 것이다. 특히 자문사의 자문을 바탕으로 한 랩이 인기를 끌면서 자문형 랩 규모는 1조3640억원으로, 지난 3월 6519억원에서 109% 급증했다. 같은 기간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4조원 가까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자문형 랩의 자금 흡수력은 실로 엄청나다.

랩으로 돈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금융상품보다 수익률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최근 자문형 랩 열풍의 주인공인 브레인투자자문과 케이원투자자문은 7월 14일 현재 연초 대비 20%대의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3.58%), 코스피 지수(3%)와는 비교가 안 된다. 코스피 지수가 1700 선에 갇혀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중에도 이처럼 독보적 수익을 거둔건 소수 종목을 편입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랩만의 장점이 부각된 까닭이다.

주식 편입 비율이 정해져 있는 펀드와 달리 자문형 랩은 주식 편입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증시 활황이 점쳐지면 포트폴리오를 주식으로 전부 채워도 되고, 적합한투자 종목이 없다 싶을 땐 아예 담지 않아도 된다. 또 종목별 투자 제한도 없어 유망하다 싶은 한 종목에 ‘몰빵’ 투자도 가능하다.

반면 주식형 펀드는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반드시 주식으로 채워야 한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종목이라도 자산의 10% 넘게 투자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자문형 랩의 편입 종목 수는 8~15종목에 불과하지만 펀드는 40~60개에 이른다.



독보적인 경쟁력이 강점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수천억원이 몰린 브레인자문 경우 현대차, LG화학, 삼성전기, 현대제철, 기아차, 대한항공, 글로비스, SKC, 현대그린푸드, S&T중공업에 집중 투자한 으로 알려졌다. 케이원이 선택한 종목은 제일모직, LG화학,SKC&C, LG이노텍, 엔씨소프트, LIG손해보험, 풍산, SK, 한화케미칼, LG디스플레이, 삼성SDI, 호남석유화학, 에스원, 에스에프에이 등이다.

이들 종목은 올 들어 약속이나 한 듯 동반 강세를 보였다. 특히 케이원이 30%가량 집중 투자한 제일모직은 64% 뛰었다. 이들자문사가 투자한 종목이 일제히 급등하면서 증시에선 일부 종목을 두고 ‘자문사 7공주’ ‘4대천왕’이라 불렀고 일부 기관과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추종 매수가 이어지기도 했다.

자문형 랩의 가장 큰 매력은 증권사와 투자자 간 일대일 계약으로 맞춤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펀드는 모든 투자자가

동일한 조건 아래 가입하고 추가 불입이나 환매 등 사후 관리 서비스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자문형 랩은 투자자마다 가입 조건과 서비스가 제각각 다르다. 원하는 종목을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어 투자자 의견도 적극 반영된다.

한눈에 속 시원하게 운용 현황과 성과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도 자문형 랩의 인기 비결이다. 랩 투자자는 개별 종목에 직접투자하듯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자신이 가입한 랩이 어떤 종목을 편입했는지, 얼마만큼 수익을 내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주가 급락이 눈에 보이는데도 벙어리 냉가슴앓듯 그저 펀드매니저가 알아서 매도했겠거니 생각하는 펀드와는 차원이 다른 셈이다. 일정 기간 펀드 평균 수익률을 알려줄 뿐 투자자 개인의 실제 수익률은 확인이 불가능한 펀드의 분기 운용보고서를 생각하면 랩의 편리성은 매우 뛰어나다.





과열 뒤엔 그림자도 있다이쯤 되면 자문형 랩의 인기는 당연한 결과다. 믿었던 펀드가 반토막 나면서 맘 고생한 투자자라면, 특히 거액을 묻어둬야 했던 자산가라면 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문형 랩은 매력적인 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자문형 랩은 전형적인 ‘고수익 고위험’ 상품이다.부 자문사가 선한 종목이 상승세를 타면서 탁월한 성적을 자랑하고 있지만 하락장에서 빠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손실폭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급등해 버린 종목의 차익 실현을 위해 매도하면 주가가 빠져 수익률이 손상되는 딜레마도 있다. 수익 보전을 위해 단기간 많은 종목을 매매할 경우 자연스럽게 매매회전율이 올라가고 수수료도 덩달아 뛸 수 있다.

또 자문사가 주식 전문가로 이뤄져 있다고 하지만 자산운용사보다 규모가 작아 종목 선정을 위한 리서치가 체계적으로 뒷받침되기 어렵고 운용 시스템도 상대적으로 열악해 리스크 관리에 부실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재룡 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장은 “트랙 레코드가 충분치 않고 운용철학이 확고하지 않은 자문사가 많다”며 “한두 명 스타 매니저 외에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인력으로 이뤄져 조직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게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자문형 랩 열풍으로 운용 규모가 비대해지면서 당초 의도와 달리 점차 펀드화한다는 점은 자문형 랩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모순이다. 자문형 랩의 최대 강점이 작은 덩치에서 나오는 순발력과 탄력성인데 1조원 넘는 공룡이 돼 버리면 이미 자문형 랩으로서의 매력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증권사에선 자문형 랩의 가입 조건을 수백만원대로 낮추면서 고객층이 과거 소수 억대 자산가에서 대다수 개인투자자로 넓어졌다. 업계에선 투자자가 많아질 경우 모든 계좌를 맞춤형으로 관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이미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대일 맞춤 서비스’라는 랩 본연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삼성증권은 지난달 중순 주력 자문사인 케이원의 랩 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가입액이 5000억원을 넘어 제대로 운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60여 개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와 달리 많아야 15개 종목을 담는 자문형 랩은 적 정 규모가 넘어가면 운용 자체가 부담이 된다.

일부에선 자문형 랩이 투자한 종목들이 이미 상당히 오른 상태여서 지금 가입한 투자자들은 과도하게 상승한 주식을 사게 된다고 지적한다. 자금 유입이 지속되면서 신규 자금이 자문사들이 투자한 종목의 주가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랩과 관련해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승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점점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상품이 다양해지면 투자자는 펀드와 랩 상품을 구별하기 어렵거나 업계가 성과를 높이기 위해 위험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높다”고 설명했다. 랩의 복잡한 구조 및 수수료 체계 등으로 증

권사가 일괄 제공한 포트폴리오를 대부분의 투자자가 수동적으로 따르게 될 수 있다는 것. 이 연구위원은 “결국 고객의 구체적

요구에 따라 운용돼야 할 랩이 실제 펀드처럼 운용사 마음대로 운용되거나 합동 운용될 여지가 있어 투자자 보호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행보다 투자 목적에 맞게지금까지 국내 펀드시장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자문형랩으로의 쏠림 현상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금처럼 박스권 장세에서 머물 때 소수 종목의 단기 매매가 성공하는 시기가 있다”며 “그러나 단기 수익을 추구해 과하게 사고팔다 보면 언젠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김후정 동양종금증권 펀드 애널리스트는 “금융위기 이후 펀드에 환멸을 느낀 투자자들이 50%까지 고수익이 나는 랩 상품 을 보면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시기적으로 투자자 입맛에 딱 맞아 급성장했지만 현재 열풍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투자자가 자문형 랩을 펀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랩은 펀드와 성격이 다른 상품이에요. 리스크가 높고 변동성이 큰 투자상품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야 합니다.”

우재룡 소장도 “외국의 랩 시장은 1억 달러 이상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틈새시장”이라며 “여유 자금이 충분한 고액 자산가라도 철저한 자산 배분을 통해 직접 주식 투자하는 몫을 자문형 랩에 맡긴다는 생각으로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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