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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만 골라 공격하는 분자표적약 각광

‘적’만 골라 공격하는 분자표적약 각광

▎대장암 수술장면

▎대장암 수술장면





우리 속담에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있다. 기존의 암 치료는 이런 속담을 떠올리는 방식이었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투여하는 약이 적(암세포)을 공격하는 아군(면역세포)까지 죽이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자표적약’이라 불리는 새로운 타입의 항암제는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구분해 적만 골라 죽이기 때문에 ‘꿈의 암 치료약’이라 불린다. 분자표적약은 암세포 증식에 관계하는 단백질을 표적 삼아 공격한다. 종래의 항암제가 정상적인 세포까지 공격하는 데 비해 분자표적약은 적을 골라 공격하기 때문에 그만큼 부작용이 적다. 이 약은 기존의 화학요법과 병행해 사용하면 효과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세포는 제멋대로 증식하거나 주변에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영양을 빼앗으려 한다. 분자표적약은 이 증식에 관계하는 전달 경로를 차단하는 항암제다. 전달 경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변이되면 아무리 경로를 차단해도 효과가 없고 제멋대로 암세포가 증식해버린다. 따라서 환자에게 분자표적약을 투여하기에 앞서 암 조직을 유전자 검사해 분석해야 한다. 그 결과 유전자 변이가 없으면 분자표적약을 사용해도 되지만 이미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사용할 수 없다.



일본에선 1차 치료 때부터 사용일본의 경우 대장의 항암제 치료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그동안 1차 치료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분자표적약을 초기 치료에도 사용한다. 오랜 임상시험을 통해 안정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또한 환자 개개인의 치료 효과를 사전에 조사해 선별적으로 항암제를 투여하는 ‘개인맞춤치료’도 가능해졌다. 과거에는 환자 개인에게 투여하는 항암제의 효과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항암제를 투여했기 때문에 낭비 요소가 많았다.

아이치(愛知)현 도요타(豊田)시에 사는 한 남성(65)은 6년 전 건강진단을 받던 중 대장암이 발견됐다. 그는 “향후 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통고를 받고 수술했지만 이후 암이 간장으로 전이된 사실을 발견했다. 항암제 요법도 듣지 않았고 혈중 물질을 조사하는 종양 마커 수치도 급격히 상승했다. 이때 주치의가 ‘어비툭스’라는 분자표적약을 추천했다. 2008년 12월 링거를 통해 한 차례 어비툭스를 투여한 결과 종양 마커 수치가 급격히 내려갔다. 3개월 후에는 암이 전이되었던 간장의 종양도 절개할 수 있을 만큼 줄어들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암이 양쪽 폐까지 전이됐으나 수술을 통해 제거했다. 최근에는 경과가 좋아져 매일 집 근처 골프장에서 옛 직장 동료와 라운드를 즐긴다. 그는 2개월에 한 번 병원에 들러 암을 관찰하고는 있지만 어비툭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새로운 타입의 항암제 어비툭스는 미국의 대형 바이오제약회사인 임클론시스템즈가 개발해 구미를 중심으로 세계 70여 개국에서 승인을 받았다.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 1차 치료에서 어비툭스를 사용한 환자의 생존기간은 평균 23.5개월로, 사용하지 않은 환자보다 3.5개월 연장된 사실을 알아냈다. 또 종양이 더 커지지 않고 안정되는 기간도 평균 9.9개월로, 사용하지 않았던 환자에 비해 1.5개월 길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에서는 지난 3월부터 1차 치료 때 어비툭스를 사용하면 의료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아이치현 암센터 중앙병원 관계자는 “어비툭스는 단기간에 종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몸 상태가 나쁜 사람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며 “전이된 종양이 축소되어 절개할 수 있다면 치료의 가능성도 크게 늘어난다”고 설명한다.



‘분자표적약’이라 불리는 새로운 타입의 항암제는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구분해 적만 골라 죽이기 때문에 ‘꿈의 암 치료약’이라 불린다. 분자표적약은 암세포 증식에 관계하는 단백질을 표적 삼아 공격한다.



유전자 검사 함께하면 효과적최근에는 어비툭스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분자표적약 ‘벡티빅스’도 발매되어 환자의 치료 선택폭이 넓어졌다. 효과는 비슷하지만 링거를 투여하는 간격이 주 1회인 어비툭스에 비해 2주 1회면 된다. 두 항암제 모두 심각한 부작용은 없지만 발진이나 건조에 의한 피부장애가 발생하는 비율이 약 90% 정도 된다. 도요타시의 남성도 얼굴이나 가슴 등 전신에 발진이 나타나고 손이 부르터 반창고를 붙이고 다닌다. 또한 어비툭스는 기관지 경련이나 의식불명 등의 반응이 5% 미만의 확률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또 시판 후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는 심부전에 의한 사망 사례가 2건 보고되었다. 이 약의 첨부문서 ‘중대한 부작용’에는 심부전과 심한 설사가 명기돼 있다.

이들 항암제가 주목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장암 환자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약의 효과를 사전에 판정하는 ‘개인맞춤치료’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암세포의 유전자가 변이된 사람은 어비툭스나 벡티빅스 모두 듣지 않는다. 대장암 환자의 30~40%는 이러한 유형이라고 한다. 이 연구 결과는 2008년에 미국 학회에서 발표됐다.

그 후 구미에서는 항암제를 사용하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게 필수사항이다.

일본에서는 유전자 검사 비용의 의료보험 혜택이 올 4월부터 인정됐다. 환자가 3할을 부담하면 검사비용은 6000엔 정도다. 지바현에 위치한 국립암센터 동병원 소화기 내과의 요시노 노부유키(吉野信之) 박사는 “지금까지는 항암제가 듣지 않는 사람에게도 항암제가 투여되었지만 유전자 검사에 보험이 적용됨에 따라 이러한 낭비 요소가 개선됐다”고 말한다.

분자표적약은 아직 고액의 의료비 부담이 문제다. 예컨대 신장 165㎝, 체중 60㎏의 환자가 항암화학요법이라는 종래의 치료법을 시행하면 월 약 18만 엔(자기부담 약 5만3000엔)이 든다. 여기에 어비툭스를 투여하면 월 약 91만 엔(자기부담 약 27만 엔)으로 늘어난다. 치료기간은 수개월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1년 이상 걸린다.

대장암용 항암제는 대개 비싼 편이지만 일본에서는 환자 개인의 의료비 부담이 많을 경우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는 ‘고액요양비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연 수입 약 600만 엔 이하의 일반소득세대 환자가 27만 엔의 의료비를 부담했을 경우 이 제도를 이용하면 약 19만 엔을 돌려받을 수 있다.

김국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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