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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시아 교육허브 노린다

인도 아시아 교육허브 노린다

▎날란다 대학 프로젝트는 압둘 칼람(사진) 전 인도 대통령이 승인했고, 현재 만모한 싱 총리가 지원하고 있다.

▎날란다 대학 프로젝트는 압둘 칼람(사진) 전 인도 대통령이 승인했고, 현재 만모한 싱 총리가 지원하고 있다.

비하르주는 인도 동북부에 있는 가난한 지역이다. 면적은 남한만 한 9만9200㎢이고 인구는 8300만 명에 이른다. 지역의 한가운데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갠지스강에 의존하는 농업이 주요 산업이다. 봄이면 북쪽 히말라야 산맥에서 눈 녹은 물이 마구 흘러내려 홍수를 일으킨다. 여름이면 낮 최고기온이 섭씨 35~40도를 오르내린다. 그래서 온통 메마르고 스산한 풍경을 연출한다. 하지만 고대에는 인도 권력의 중심지였다. 고대에 마가다라고 불린 이곳에서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와 굽타 왕조가 발흥했다. 불교를 널리 퍼뜨린 마우리아 제국의 아쇼카 대왕도 이 지역 출신이다.

고대 역사를 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이 가난하고 메마른 지역이 새삼스럽게 주목 받고 있다고 영국 경제일간 파이낸셜 타임스와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이곳을 현대 아시아의 교육과 문화 중심지로 거듭나게 하자는 야심 찬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날란다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고대 이곳에 있었던 거대 불교대학 ‘날란다 대학’을 재건해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교류 중심지가 되겠다는 것이다.



아시아 국제대학 더 필요…APU가 성공사례

▎날란다 대학 프로젝트는 압둘 칼람 전 인도 대통령이 승인했고, 현재 만모한 싱 총리(사진)가 지원하고 있다.

▎날란다 대학 프로젝트는 압둘 칼람 전 인도 대통령이 승인했고, 현재 만모한 싱 총리(사진)가 지원하고 있다.

기원 5세기 이 지역에 세워진 고대 날란다 대학은 인도는 물론 아시아 지역의 교육과 학문, 문화의 중심지였다. 날란다 사원의 부속학교였던 이 대학은 비하르주 고대도시 파트나의 서남쪽에 위치했다. 고대 마가다 왕국의 수도였던 라자그리하(현재 라지기르)의 북쪽에 위치한다. 라자그리하는 한문으로 왕사성(王舍城)으로 옮겨졌는데 이곳은 부처님이 설법한 곳으로 불경에도 나온다. 날란다는 한자로 나란타(那爛陀)라고 음역해 동아시아에는 나란타 사원과 나란타 대학으로 알려졌다.

5세기에 세워진 날란다 대학은 12세기까지 국제 불교대학으로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날렸다. 인도 전역에서는 물론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찾아온 승려들이 최고 1만 명까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학문을 연마했다. 7세기 인도에서 불경을 수집해 중국으로 가져간 현장 법사도 이곳에서 몇 년 동안 숙식하며 공부했다. 명실상부한 고대 국제대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193년 튀르크인이 점령해 파괴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런 고대 국제대학을 현대에 되살리는 것이 ‘날란다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골자는 아시아 각국에서 1억 달러의 대학 건립기금을 모금해 고대 날란다 대학 근처의 터에 현대식 대학을 개교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아시아 각국에서 모집한다. 그래서 이 대학은 범아시아 대학의 성격을 갖게 된다. 이들에게 우선 인기 및 유망 전공인 IT를 중심으로 하고 약학을 비롯한 생명과학과 수학·철학 등 기초 학문을 가르쳐 범아시아 인재로 길러내겠다는 것이다.

사실 아시아 국제대학이라는 아이디어는 이곳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 규슈 오이타현 벳푸에 있는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 대학(APU·Asia Pacific University)은 이미 아시아권에선 유명 대학이다. 2000년 4월 개교해 영어와 일본어 이중 언어로 교육하고 있는 이 대학은 100여 개 국가에서 모인 6000여 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학생은 물론 교수까지 국제화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제대학이라는 교육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APU의 예로 볼 때 날란다 프로젝트도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큰 교육 비즈니스의 하나다.

현재 날란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인물은 인도 출신으로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박사다. 지금은 방글라데시가 된 벵골 지역 출신인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미국 MIT, 영국 런던정경대, 옥스퍼드대 교수를 거쳐 하버드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현대 남아시아사를 가르치는 수가타 보세 박사, 베이징대의 왕반웨이 교수, 인도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 메그나드 데사이 박사 등과 함께 이 프로젝트의 자문그룹을 맡고 있다. 이러한 석학들이 학교에서 강의까지 해준다면 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 싱가포르의 제임스 여 외무장관도 자문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날란다 대학 재건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2006년 12월 9일자 미 뉴욕 타임스 보도였다. 당시에는 10억 달러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싱가포르가 주도하고 중국, 인도, 일본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5억 달러의 자금을 모금해 대학을 건설하고 추가로 5억 달러를 더 모아 필요한 인프라를 건설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자금의 규모가 워낙 커서 프로젝트 추진이 제대로 되지 않자 규모를 1억 달러 정도로 줄여서 추진 중이다.

2007년에는 이 대학의 학생 규모가 발표됐다. 첫해 1137명을 모집하고 개교 5년째에는 4530명, 최종적으로는 5812명을 모집한다는 게 골자였다. 고대 날란다 대학처럼 현대 날란다 대학도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될 것이며 국제학부를 여럿 설치해 다양한 언어와 배경을 가진 학생을 고루 받아들이겠다는 계획도 공개됐다.

2007년 이 프로젝트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났다. 당시 인도 대통령(2002~2007년)이던 항공공학자 A.P.J 압둘 칼람 박사였다. 칼람 대통령은 이 프로젝트를 승인했으며 이를 국제사회의 어젠다로 내놓았다. 그해 열렸던 EAS(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이다. EAS는 ASEAN(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지역 협의체다. 날란다 프로젝트 제안은 1회용 행사로 그치지 않았다. 칼람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인도 정부는 지난해 10월 태국에서 열린 제4차 EAS 정상회의 때 정상들이 날란다 대학 재건에 대한 공동언론성명을 채택하도록 이끌었다.



중국 등과 함께 1억 달러 모금해 지을 계획칼람은 인도에선 소수파인 무슬림(이슬람교도)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실력만으로 인도 최고의 과학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힌두 국가 인도가 경쟁국인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과 맞설 수 있도록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주도했으며 핵무기와 초음속 전투기 개발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는 자신의 종교를 뛰어넘어 고대 불교대학의 재건을 지지함으로써 이를 통한 국제사회의 협력, 그리고 가난한 비하르주의 발전을 도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인도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비하르 주정부는 이를 위해 202만㎡의 토지를 내놓았다. 인도 의회는 외국 기관이 날란다 대학 재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원래 인도는 법으로 외국 교육기관의 진출을 막고 있다. 미국의 일부 대학이 변형된 방식으로 형식적인 진출만 했을 뿐이다.

인도가 날란다 대학 재건을 돕기 위해 이런 예외적인 법안을 마련한 것은 이 프로젝트가 인도의 주요 국가 어젠다가 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가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로 보인다. 시크 교도인 싱 총리는 이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인도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비하르주를 경제 개혁의 선봉으로 만들 심산으로 보인다. 이미 비하르주는 외국과의 교류·교역·투자에서 규제를 상당히 완화하고 있다. 싱 총리는 이를 계기로 비하르주를 인도의 미래 경제특구로 키울 계산을 하고 있다고 더 이코노미스트는 풀이했다. 국제대학 비즈니스를 지역 경제는 물론 인도에 도움이 될 미래 산업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와 일본은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칫 아시아의 대형 교육·협력 프로젝트에 한국만 소외될 수 있다. 한국도 참여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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