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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금속 쇼크’에 무대책인 한국

‘희소금속 쇼크’에 무대책인 한국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철은 산업의 쌀”이라고 했다. 1963년 취임과 함께 종합제철소 건설을 추진하면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한 말이다. “쌀이 있어야 밥을 지어 먹지 않겠나? 그러니 자네가 제철소를 하나 지어줘야겠어.” 포스코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에선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했다. 삼성 이병철 전 회장은 일본 공과대학 교수에게서 이 말을 듣고 반도체 사업을 구상했다.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식량도 바뀌어 갔다. 철, 석유, 반도체, 세라믹에 이어 요즘은 희소금속이 주목 대상이다. 란타늄 계열에 스칸듐, 이트륨을 합친 17개 광물의 총칭으로 화학 주기율표 57~71번에 해당한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컴퓨터디스크, 2차전지, 전기자동차, LCD(액정표시장치) 등 첨단제품의 필수 원료다. 소량이지만 반드시 필요해 ‘첨단산업의 비타민’ ‘녹색산업의 필수품’으로 불린다. 미사일과 레이더 등 첨단 정밀병기도 희소금속 없이는 만들지 못한다.

말 그대로 ‘매우 드문 흙’ 희소금속이 중국과 일본 간 외교분쟁의 레버리지로 작용했다. 일본명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의 선장을 사법 처리하려던 일본이 중국의 희소금속 수출 중단 위협에 백기를 든 것이다.

희소금속의 무기화 으름장이 통한 것은 중국이 희소금속 강국이기 때문이다. 연간 12만여t인 세계 공급량의 97%를 차지한다. 매장량으로도 전 세계의 36%로 가장 많다. 21세기 세계 경제와 안보의 핵심 자원을 중국이 거머쥔 것이다. 1970년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원유 못지않은 강력한 무기다. 이를 내다본 듯 덩샤오핑은 1992년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소금속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당장 일본이 자랑하는 친환경·첨단산업의 대표주자인 도요타자동차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에 새로운 쌍둥이란 뜻의 희소금속 네오디뮴 0.9~1.8㎏이 들어간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리 비싸지 않던 희소금속 가격은 중국이 생산을 거의 독점하면서 크게 올랐다. 레이저·형광체의 원료인 테르븀은 ㎏당 300달러를 웃돈다.

중국의 자원외교는 치밀하고 공격적이다. 호주·남미 등의 희소금속 광산까지 사들였다. 올해 수출쿼터를 40% 삭감했다. 이 같은 중국의 희소금속 무기화에 맞서 세계 각국이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미국은 환경오염과 비용 문제로 문을 닫은 폐광의 생산 재개를 서두르고 있다. 선진국 업체들은 그린란드와 중앙아시아 등에서 새로운 매장지를 찾아낸 데 이어 폐기된 전자제품에서 희소금속을 추출하는 이른바 ‘도시광산’ 개발도 추진 중이다.

희소금속 최대 수입국 일본도 아프리카와 카자흐스탄 등지로의 수입 다변화와 대체자원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폐광이나 새 광산에서 희소금속 채굴이 궤도에 오르려면 앞으로도 몇 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중국발 ‘희소금속 쇼크’는 언제 또 세계 경제를 위협할지 모른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희소금속의 비축 목표가 1164t인데 실제 비축량은 겨우 3t. 적정 보유량의 0.3%로 국내 수요의 하루치 분량도 안 된다. 지난해부터 선진국들이 바삐 움직이는데도 정부는 대책회의 한 번 열지 않았다. 해외 자원개발을 통해 수입선을 다변화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값이 또 뛰기 전에 더 들여오려 해도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희소금속을 보관할 비축창고조차 없는 상태다. 첨단 IT(정보기술) 제품으로 먹고살고 녹색산업을 크게 일으키겠다는 나라가 이렇게 손을 놓고 있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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