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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라 아빠 나라 함께 배워요'

'엄마 나라 아빠 나라 함께 배워요'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일자리 공동체인 오가니제이션 요리에서 일하는 마리아(왼쪽)와 알로냐. 알로냐가 자신이 일하는 ‘그래서’ 카페에서 파는 러시아식 소시지빵을 소개하고 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일자리 공동체인 오가니제이션 요리에서 일하는 마리아(왼쪽)와 알로냐. 알로냐가 자신이 일하는 ‘그래서’ 카페에서 파는 러시아식 소시지빵을 소개하고 있다.



육아공동체 ‘하마방’

“팔월에도 추석날은 즐거운 명절 밤 먹고 대추 먹고 송편도 먹고~”

네다섯 살짜리가 한복을 입고 옹기종기 앉아 동요 ‘추석날’을 배운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댕기도 맸지만, 이 아이들의 피를 따지면 작은 ‘지구마을’이다. 러시아계, 인도네시아계, 중국계, 일본계가 두루 섞였다.

▎지난 9월 27일 부산시 아시아공동체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2세들이 한글 수업을 받는 모습.

▎지난 9월 27일 부산시 아시아공동체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2세들이 한글 수업을 받는 모습.

다문화 가정과 비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놀고 배우는 이곳은 ‘하마방’이다. 하마방은 다문화 육아공동체다. 서울시립 청소년 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 안에 자리를 얻어 ‘하자마을 어린이방’이라고 이름 붙였고 줄여서 하마방이라고 부른다.

육아공동체란 말도 낯선데 ‘다문화 육아공동체’라니! 육아공동체는 학부모가 운영과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참여하는 놀이방을 말한다.‘내 아이’ ‘네 아이’를 구별하지 않는 공동육아의 개념이다. 하마방도 “우리 아이 함께 키우자”가 슬로건이다.

하마방의 또 다른 특징은 ‘일하는 이주여성’의 자녀를 받는다는 것. 그래서 다문화 육아공동체라고 부른다. 보육교사 강영란씨는 “3~7세까지 아이들 15명이 다닌다. 다문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가 반반씩”이라고 설명했다.이곳의 다문화 교육 프로그램은 뭘까? 그런데 강씨는 “그런 건 없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오히려 ‘다름’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냥 뒤섞여 어울려 논다. 특별히 ‘다문화 교육’이 있을 줄 알지만, 우리는 일상생활 자체가 다문화 교육이다.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게 된다”고 덧붙였다. 부모들이 하마방에 오게 되면, 그제서야 아이들은 ‘누구 엄마는 다른 나라에서 왔구나’라는 걸 깨닫는단다. 세계지도를 보이며 “너희 엄마가 태어난 곳은 어디야”라고 묻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서로를 받아들인다.

하마방과 이주여성들 사이의 ‘다리’는 사회적 기업인 ‘오가니제이션 요리’다. 일자리가 필요한이주 여성들을 고용하고 또 이들이 맘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난해 4월 하마방을 만들었다.지난해 정부의 ‘전국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 연구’를 보면 미취업 결혼 이주 여성의 가장 많은 수가 ‘일자리 알선’(29.6%), 그 다음으로는 ‘자녀보육과 양육지원’(22.9%)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이 두 가지를 해결했으니, 이주여성들에게는 ‘우물’같은 곳이다. 러시아에서 2003년에 한국으로 와 한국 남자와 가정을 꾸린 알로냐(31)는 오가니제이션 요리가 하는 카페 ‘그래서’에서 일한다. 네 살배기 딸 다혜는 하마방에 맡긴다. 알로냐는 “일도 하고 아이도 가까이에 있어 마음이 놓여 좋다. 아이와 매일 같이 출근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다문화 가정 육아공동체인 ‘하자마을 어린이방’에서 아이들이 엄마들과 함께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지난 1일 다문화 가정 육아공동체인 ‘하자마을 어린이방’에서 아이들이 엄마들과 함께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는 이주 여성의 특성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오가니제이션 요리가 만든 홍대 앞 레스토랑 ‘오요리’를 보면 안다. 이주 여성들이 모국의 전통음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다듬어 차려내는 레스토랑이다. ‘다국적 요리사의 다문화 음식점’으로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맛집이다. 전통한식인 탕평채, 타이식 해산물 샐러드로 입맛을 돋우고 말레이시아식 미고랭(일종의 볶음국수)과 인도네시아식 나시고랭(볶음밥)으로 배를 채운 뒤 러시아의 담스키에 발츠키(밀가루 반죽에 수제 잼을 넣어 만든 러시아 디저트)로 마무리하는 상차림을 어디서나 맛볼 수 있을까. 오가니제이션 요리에서 메뉴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이를 밑천 삼아 종종 이주여성을 상대로 강연도 하는 마리아(42·한국이름 림미화)는 “(다른 곳과 달리) 이 회사에서는 (이주 여성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게 없다. 아이디어를 내면 계속 해보라고 지원해주는 동료들이 있다”며 “일도 하고 친구도 생기고 국적 차별도 없어 일하기가 즐겁다”고 말했다.

이지혜 오가니제이션 요리 대표는 “요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매개체이자 미디어”라며 “각국의 해장국, 산후 조리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문화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가 ‘다문화’를 식탁에 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다문화 대안학교 ‘아시아공동체’

▎아시아공동체학교 아이들의 태권도 배우기.

▎아시아공동체학교 아이들의 태권도 배우기.

‘여기에 오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건, 무엇을 믿건, 어떤 피부색을 가졌건 상관없이 한 형제다.’

현관에 이런 펼침막을 내건 학교가 있다. 교실엔 훌쩍 키가 커 중·고생 쯤으로 보이는 아이를 붙잡고 ‘귀 빠진 날’ ‘입이 짧다’는 말의 뜻을 열심히 설명하는 교사들이 있다. 그보다 어린 무리는 “다댜더뎌도됴두듀드디, 라랴러려루류르리”를 쓰고 읽는 데 열심이다. 부산광역시 문현동 아시아공동체 학교의 풍경이다.

아시아공동체 학교는 부산시교육청이 ‘대안학교 위탁교육기관’으로 지정한 곳이다. 전국에서 최초다. 대안학교 위탁교육기관은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운 학생에게 체험학습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는 곳이다. 학적은 기존 학교에서 관리하고 수업만 위탁 받는다. 현재는 아시아공동체 학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거주지의 학교에서 학력인정테스트를 받아 그 학교의 졸업장을 받는다. 그러나 대안학교 위탁교육기관으로 운영되는 내년 3월부터는 아시아공동체 학교에서 교과과정을 밟으면 정식 학력으로 인정된다. 원적학교에서 아시아공동체 학교로 교육을 위탁하는 형식이다. 중·고교 과정도 신설될 예정이다. 교육청에서 예산을 일부 지원 받고 교육과정이나 학사·예산업무의 관리·감독도 받게 된다.

아시아공동체 학교에는 7세부터 20세까지 중국(한족)·몽골·러시아·필리핀·파키스탄·네팔·베트남계 학생과 비다문화 가정의 학생 45명이 공부한다. 부모의 재혼으로 한국에 갑작스럽게 오게 된 중도입국 학생들이나 한국어가 서툴러 일반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다문화 가정 2세들이 주를 이룬다.
▎부산의 아시아공동체 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 2세들.

▎부산의 아시아공동체 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 2세들.

이 학교의 프로그램 중 ‘디딤돌반’은 중도입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 과정이다. 한국어의 기초를 다지고, 한국 문화를 배운다. ‘세상 밖으로 한국 속으로’는 교실에서 배운 한국 문화나 사회 시스템을 실제 거리에 나가 몸으로 부닥쳐보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면, 2인 1조로 짝을 지어 준 뒤 ‘박물관 체험기 쓰기’ 처럼 주제를 주고 스스로 박물관까지 찾아가 관람하고 돌아오는 형식이다.

이 학교의 대표교사인 이성옥씨는 “중도입국 학생들은 ‘갓난아이처럼 막 다시 태어난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10대지만 한국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며 “이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한국 생활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공동체 학교는 4년 전인 2006년 9월 처음 문을 열었다. 개교 때부터 함께한 이씨는 “당시 부산에서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부쩍 늘었는데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의기투합했다”며“교사 3명으로 학교를 시작해 지금까지 왔다”고 떠올렸다.

학교 운영은 지금껏 교사들이 발로 뛰어 모은 후원금과 교육과학기술부, 부산시교육청의 지원금으로 해왔다. 학생들에게는 수업료 없이 급식비만 매달 4만원씩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운영비가 넉넉할 리 없다. 교사가 5명으로 늘었지만, 월급이라고는 교통비 정도의 액수가 고작이라고 한다. 아시아공동체 학교는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학교 안에 사회적 기업인 통·번역센터를 열기도 했다. 이주 여성들에게 일도 주고 학교의 외국어 수업도 맡긴다. 이성옥 교사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기 쉽다”며 “다문화 가정과 비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어울려 지내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찾고 자아가 단단해 지는 게 ‘세계 학교’인 우리 학교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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