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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方 꼭대기에 앉는 ‘수퍼 왕서방’

西方 꼭대기에 앉는 ‘수퍼 왕서방’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시장 자율적 환율제도’와 ‘경상수지 GDP 대비 4% 목표제’를 합의하면서 우아하게 끝났다. 그런데 중요한 최대 당사자인 중국은 조용했다. 왜일까?

중국의 이해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합의라면 중국이 한국이 중재하는 대로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을까? 중국은 그리 어수룩하지 않다. 2010년 중국의 GDP 대비 추정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4.7%다. 이미 가이드라인 언저리에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크게 얻은 것이 없는 데도 합의를 했다. G20 회의 직후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으로 날아가 왕치산 부총리와 칭다오 공항에서 회담했다. 결국 이번 환율전쟁의 종착역은 미·중 간 막후 협상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쩌면 양국은 중국의 수입확대에 대해 협의했는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이 환율전쟁을 한다고 하지만 본질이 아니다. 미국은 무역적자와 고용을 아시아에 떠넘기는 ‘무역전쟁’ 중이다. 그리고 달러와 미국 채권을 보유한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 보면 무역전쟁이 아니라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보호하느냐 못하느냐가 달린 전쟁이다.

글로벌 불균형은 엄밀히 따지면 미국과 유럽, 중국의 불균형이다. 나머지 아시아 국가 간의 불균형은 이들 세력의 문제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특히 세계 교역량의 22%를 차지하는 미·중 간 불균형이 심각하다. 올 상반기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2400억 달러. 이 중 대중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45%다. 불균형은 갈수록 심각해진다. 지난 8월 미 상무부는 대중 무역적자가 월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쟁점은 中 달러자산 가치 방어냉정히 말해 미국과 유럽은 대중 무역적자가 크면 중국 수입을 줄여버리면 되지 환율절상 요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 중저가 제품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 중국을 미국이나 유럽 기업이 이길 방법이 없고 대체 수입처를 찾을 수 없다.

중국은 현재 미국 국채와 회사채를 1조4800억 달러어치 갖고 있다. 외환보유액은 2조6000억 달러나 된다. 위안화가 2% 절상되면 중국의 외환평가손은 520억 달러다. 보잉747 비행기 한 대 값이 2억2000만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이 비행기 236대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셈이다. 보잉747 비행기 한 대 값을 벌려면 중국은 약 6억 벌의 와이셔츠를 만들어야 한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에도 “노(No)”라고 말하는 이유다.

만약 양국이 정면 충돌하면 누가 이길까? 경제전쟁에서 제조업은 육군, 금융업은 공군으로 비유할 수 있다. 제조업은 중국이 절대 강하다. 그러나 아무리 육군이 강해도 제공권을 빼앗기면 전쟁에서는 이길 수 없다. 경제전쟁도 마찬가지다. 무역전쟁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이길 수 없고 금융전쟁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이길 수 없다. 금융이 강한 미국이 중국에 함부로 할 수 없고 제조업이 강한 중국도 미국에 함부로 대들지 못하는 이유다.

전 세계가 미국 기준의 글로벌화와 금융시장 자유화를 했는데 중국만이 금융시장 개방과 자유화를 하지 않는 것은 제공권을 빼앗길 수 없기 때문이다.



힘 빠진 미국 ‘환율 덤핑’으로 승부미·중 간의 불균형 문제는 중국은 더 많이 소비하고 미국은 더 많이 저축하는 것이 답이다. 그렇다고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바꾼 미국이 다시 임금을 낮추고 힘든 2차 산업으로 돌아가 산업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 중국이 더 소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빚을 내서라도 소비하는 것이 체질화된 미국이 허리띠를 매고 다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미국의 경기회복이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환율 전쟁의 ‘원흉’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다. 얼마 전 미국 의회는 1985년 플라자 합의 때처럼 일본과 같은 희생양을 찾으려는 법안을 만들었다. 환율 조작이 의심되는 국가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지적했듯이 이 법안은 미국이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아 무역적자를 줄일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무역 상대국을 압박해 소위 ‘환율 덤핑’을 통해 손쉽게 위기를 벗어나려는 수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돈을 더 풀겠다는 양적 완화 정책 역시 전 세계를 상대로 환율 덤핑을 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 앞서 지난 10월 23일 열린 경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G20 서울 정상회의에 앞서 지난 10월 23일 열린 경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중국 정부는 직·간접적으로 이를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뚜렷이 나타난 것처럼 미국의 힘은 약해졌다. 미국의 뜻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G7끼리 의견이 갈렸고 빚이 많은 선진국은 채권자인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미국이 금융으로 세계를 흔들 수는 있어도 생필품은 중국이 쥐고 흔든다. 먹고 마시는 것이 포도청이다. 제조대국 중국의 협조 없이 금융대국 미국이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글로벌 불균형의 역사를 보면 1980년대의 채권자와 채무자는 선진국(독일, 일본)과 선진국(미국)끼리였다. 1990년대는 선진국이 채권자, 후진국이 채무자였다. 그런데 2000년대를 들면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후진국이 채권자고 선진국이 채무자인 현상이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채무자고 아시아와 중국이 채권자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강대국은 제조업으로 일어서 금융으로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기술이 없어지면 금융도 따라서 사라진다. 금융과 기술 간 결혼과 이혼이 패권을 만들고 자본주의의 역사와 강대국의 역사를 만들었고 동시에 글로벌 불균형을 만들었다. 2000년 이후 세계 불균형의 이유는 기술과 금융의 관계에서 보면 답이 있다.

돌이켜 보자. 돈을 떠나 기술만 놓고 보면 풀을 먹는 말이 석탄을 먹는 증기기관차로 바뀐 산업혁명으로 영국은 패권을 잡았다. 이후 미국은 자동차로 강국이 됐고 IT(정보기술)산업을 만들면서 세계의 돈과 패권을 확실히 쥐었다.
▎지난 8월 13일 미국 LA시청 인근에서 벌어진 고용촉구 집회. ‘일하고 싶다’고 쓰인 피켓이 보인다.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9%지만 비공식적으론 15~17%까지 본다.

▎지난 8월 13일 미국 LA시청 인근에서 벌어진 고용촉구 집회. ‘일하고 싶다’고 쓰인 피켓이 보인다.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9%지만 비공식적으론 15~17%까지 본다.

미국의 IT산업은 1970년에 반도체산업이 탄생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산업주기 30년 사이클로 보면 IT는 이미 늙은 산업이다. 보급률이 성숙기에 도달했고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고 성장률은 둔화하고 있다. IT 강국 미국이 IT에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에 투자해 한눈을 팔다가 미국 금융가를 홀랑 태워 먹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이 보기에 늙은 IT산업보다 부동산투기가 더 수익률이 높았다.

그런데 금융업 자체는 불임산업이다. 금융은 혼자서 놀면 투기와 버블을 만든다. 제조업을 통해 투자돼야만 부가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금융은 항상 싱싱한 제조업을 따라간다. 하지만 자동차, 철강, 화학,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싱싱한 제조업이 모두 아시아로 떠난 미국에는 남은 것이 부동산밖에 없었다. 미국이 적자국이 되고 아시아가 채권자가 되는 글로벌 불균형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금 세계가 바라고 있는 환율 조정으로 글로벌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을까? 요원하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수출 흑자국에 환율로 거센 압박을 했다. 그래도 무역수지 개선이 어렵자 보호무역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올해 10월 1일부터 보름간 미국 상무부가 중국에 발동한 무역 규제는 총 24건이다. 그중 10월 12~15일에 무려 9건이나 발동했다.

미국 하원은 통화가 저평가된 국가들에 특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켜 중국 위안화에 절상 압력을 가했다. 중간선거, 높은 실업률과 느린 경제 회복 속도 등 미국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속죄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자 중국은 경제 및 대외무역 산업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환율 변동을 고려해 2% 정도 위안화를 절상시켜 미국의 의도를 무산시켰다.



미국 제조업 없이는 미국 승산 없어기축통화의 힘을 믿고 환율 압박으로 무역적자를 해결하려는 손쉬운 해법은 반드시 후환을 가져온다. 미국은 금태환을 정지하고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종이로 만든 금’인 달러의 맛에 너무 취해 일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생활이 너무 길었다.

지금 세계의 하루 통화거래량은 4조 달러에 달한다. 이는 나흘이면 미국의 1년 GDP만큼 거래된다는 뜻이다. 과해도 너무 과하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디플레 우려로 잠복해 있지만 이 돈이 제대로 돌면 하이퍼 인플레가 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미국은 엄청난 돈을 계속 찍어내고 있다. 로마가 망했던 것은 군사력의 약화 때문이 아니라 금융과 재정의 악화 때문이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글로벌 불균형은 선진국이 새로운 신성장산업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환율 조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글로벌 불균형의 문제는 환율전쟁, 화폐전쟁이 아니고 채권자와 채무자의 기싸움이고, 제조업에 대한 기싸움이자 동양과 서양의 패권 다툼이다. 제조업에서 아무것도 팔 것이 없는데 환율 덤핑을 계속하면 불균형만 더 심화한다. 경제전쟁에서 제대로 붙으려면 육군(제조업)이 진주해야 한다. 선진국은 마지막 남은 희망, 녹색산업에서 동양을 제치고 대박을 낼 묘수를 찾아내지 못하면 스스로 만든 금융 버블의 붕괴를 맞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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