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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예산, 이게 문제다] 與野 예산 싸움에 숨은 불편한 진실

[정치예산, 이게 문제다] 與野 예산 싸움에 숨은 불편한 진실

시장판의 모리배가 활극을 벌이는 것 같다. 고성과 주먹다짐이 오가고, 피를 흘린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예산안 싸움. 2011년 예산안 심의과정은 활극의 결정판이었다. 정치권은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하려 애쓴다.

“국가재정을 위해 협객처럼 의롭게 싸웠다”는 식이다. 진실이 아니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속셈은 따로 있다. 겉으론 ‘정부예산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국가재정운용이 가능하다(여권)’ ‘쓸데없는 예산을 삭감하라(야권)’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뒤편에선 지역예산 챙기기에 급급하다. 때론 권력의 힘을 이용해 예산을 갈라먹는다. ‘예산 삭감자.’ 국내외 재정학자가 국회를 빗댄 말이다.

‘예산 소비자’인 정부를 국회가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금배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정부가 짜온 예산을 얼마나 깎는가. 혹시 쪽지를 보내거나 권력을 이용해 지역예산을 챙기진 않는가.

■ 2007년 10월 9일, 국회 모 상임위원회 회의. 여당 A의원이 먼저 입을 뗐다. “사업에 1200억원을 반영했는데, 적정한 규모입니까? 부족하진 않나요?” 행정부처 B장관은 예상한 듯 빠르게 답했다. “반영을 했으면 좋겠네요.” 그러자 여당 C의원이 거들었다. “예산이 적으면 당장 내년부터 사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얘기군요.” B장관의 뻔한 답변이 이어졌다. “말했듯 어렵습니다. 국회에서 증액되면 일하는 게 훨씬 편합니다.”

▎2011년 예산안 통과 문제로 여야 의원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2011년 예산안 통과 문제로 여야 의원이 몸싸움을 하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정부가 사업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대통령 공약도 돈이 없으면 실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행정부처의 윗단이든 아랫단이든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힘을 쏟는다. 예산편성에 숨은 법칙이다. 그럼 정부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텐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에겐 ‘예산 수호자’가 있다. 예산이 제대로 짜였는지 심의하는 국회다. 정부가 돈을 쓰는 소비자라면 국회는 나라 곳간의 지킴이다.

지금 국회의 역할은 정반대다. 사례에서 보듯 예산을 줄이기는커녕 정부 관계자의 증액 요구를 은근슬쩍 돕는다. 서울시립대 양경숙(행정학) 교수는 “예산결정 과정에서 중앙행정부처 관료와 국회의원은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한다”고 말했다.

여기 한 행정부처의 담당자가 있다. 내년 예산을 더 많이 따는 게 그의 책무다. 전년보다 못 따면 큰일이다. 무능한 사람으로 몰릴 게 뻔하다. 반대로 많이 따내면 능력자가 된다. 그의 승진길에 비단이 깔린다. 국회의원도 다를 바 없다. 선거에서 이겨야 직장을 잃지 않는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끝이다.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선 지역사업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하다.

‘예산 삭감자’라는 저승사자 같은 별칭은 중요하지 않다. 지역예산을 늘리려면 정부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 예산을 편성하는 기획재정부(중앙예산기관) 공무원에게 ‘예산 좀 달라’는 내용의 쪽지를 남몰래 보낸다. 경륜이 쌓인 중진급 의원은 유리하다. 힘이 있고 정부에 아는 사람이 많다. 예산을 심의하는 예결특위 소속 의원도 그렇다. 금배지에 예산안 심사는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기회이자 도구다.

국회가 큰 상을 받았다. 망신살이 잔뜩 뻗친 상이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2010 올해의 사진’에 예산안을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이는 한국 국회의 장면이 포함됐다. 해외 언론의 눈엔 기가 막히게 보였을지 모른다. 우리는 낯설지 않다. 예산안 싸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당이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사례도 많다. 예산심의 법정시한(12월 2일)은 지켜지지 않은 지 오래다. 국회는 2000~2010년 9차례나 법정시한을 넘겨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쯤 되면 관행에 가깝다.

2011년 예산 싸움은 유독 심했다. 여당은 12월 8일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고 필수예산을 증액하는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국회의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야권도 잘한 건 없다. 민주당은 4대 강 예산삭감 등을 이유로 예산심의를 보이콧하고 거리로 나갔다. 예산심의라는 막중한 책임을 길바닥에 내팽개친 셈이다.

정치권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 한나라당은 “야권이 법정시한을 넘겼고, 합의 가능성이 작았다”며 야권에 책임을 돌린다. 민주당은 법정싸움에 돌입했다.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 및 예산안 심의확정권 등을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민주당의 속셈은 뻔하다. 예산을 볼모로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 모르겠다. “야권은 정부예산안을 줄이기 위해 장외투쟁을 선택했다. 국가를 위한 결단 아니었겠는가.” 과연 그럴까. 한번 살펴보자.

정부예산(豫算). 국가의 회계연도 수입·지출을 미리 셈하는 계획이다. 예산결정 과정은 각계각층의 요구가 다양한 형태로 분출된다. 누가 얼마를 내고, 얼마나 혜택을 받는지 결정되는 가치배분 과정이다. 속성상 환호와 비난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예산’이 누락되자 불교계가 들고 일어선 게 대표적 사례다.

그럼 여야는 왜 싸울까(※이 부분은 국회 예산심의를 오랫동안 자문한 재정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했다. 재정전문가는 익명을 원했다). 한국의 정부예산은 ‘총액예산배분제도’ 방식을 따른다. 각 부처의 예산총액 한도를 정하고, 그 안에서 (부처)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을 지출한다. 예산을 더 많이 받으려는 부처 간 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부처예산의 얼개가 짜이는 시기는 6월 말까지다. 7~9월엔 각 부처와 집권여당이 협의를 한다. 관련 국무회의도 열린다. 이 과정에서 온갖 쪽지가 중앙예산기관에 전달된다. 대부분 ‘지역구 예산 좀 챙겨달라’는 것이다. 쪽지예산의 실체다. 이를 통해 집권여당 의원은 자기 지역구의 예산을 능력껏 할당 받는다.



야당만 되면 예산안 투쟁 벌이는 이유정부가 작성한 예산안은 10월 말께 국회에 제출된다. 야권이 공식적으로 정부예산안을 보는 시기다. 큰 그림은 이미 그려져 있다. 정부와 집권여당이 만든 얼개 안에서 갈라먹기를 해야 한다. 야권의 파이는 작을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가 국회 예결특위의 ‘2011년 예산안 심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정부예산안이 제출된 후 국회에서 증액된 지역 예산은 9370억원(기금 제외 세출기준)에 달했다.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463억원이 경상도의 몫이었다. 여권에 배정된 예산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수치다.

이런 때 야권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투쟁이다. 그래야 민심을 환기할 수 있다. 집권여당 땐 정부예산안이 제출되자마자 ‘통과’를 서두르던 사람들이 야당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치투쟁을 벌이는 까닭이다. 무턱대고 싸움만 거는 건 아니다. 정부예산안을 공격하면서도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긴다. 뒷구멍으로 말이다.

예산안 심의는 11월 중순까지 상임위원회별로 진행된다. 야권 의원은 이때 자기 지역구 예산을 할당 받아야 한다. 야권의 쪽지예산은 이즈음 쏟아진다. 여권 의원도 욕심을 접지 않는다. 부족한 지역예산을 챙기려 애쓴다. 표가 달려 있기 때문에 온힘을 쏟는다. 정부예산안이 상임위원회를 거치면서 늘어나는 이유다.

2008년 국회 상임위원회는 정부예산안에서 3조5719억원 증액을 의결했다. 2009년엔 12조6803억원을 늘렸다. MB정부 때만 그런 게 아니다. 국민의정부 때인 2000년 상임위원회는 2조5276억원을 증액했고, 참여정부 집권시절인 2005년엔 7조8259억원이 늘어났다.

그렇다고 국회가 상임위원회에서 불어난 예산을 깎지 않는 건 아니다. 11월 말까지 진행되는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에서 삭감한다. 하지만 정부예산안과 별 차이 없는 수준에 그친다. 1970년대 이후 국회의 예산수정비율은 평균 -0.1%도 채 되지 않는다.



국회는 예산 삭감자 아니야한 진보언론의 비판을 보자. “한나라당이 예산안 통과의 거수기를 자처했음은 예산안 액수로 확인된다. 국회가 의결한 2011년 예산안은 309조567억원으로, 애초 정부안에서 고작 4951억원이 삭감됐을 뿐이다.” 국회, 특히 집권여당 한나라당이 예산심의 기능에 소홀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나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이 여당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정부 시절 5년간 국회가 (정부예산안에서) 삭감한 규모는 한 해 평균 4339억원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5년 동안엔 한 해 1970억원이 도리어 늘었다. 진보언론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정당도 예산안 통과의 거수기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여당이 아니라 국회의 문제라는 얘기다. 가톨릭대 박석희(행정학) 교수는 “예산결정 과정에서 국회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국회의 부실한 예산심의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많다. 예산 규모가 날로 커진다. ‘예산 소비자’인 정부가 짜는 예산안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세출예산 규모는 2009년 284조5000억원에서 2010년 291조80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11년엔 300조원이 훌쩍 넘었다. 3년 후인 2013년엔 335조3000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혹여 세입으로 세출을 충당하지 못하면 큰코다칠 수 있다. 부족한 세입을 메우는 방법은 대규모 국채발행 등 부채를 늘리는 것이다. 부담스럽다. 정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탓이다. 2010년 부채 규모는 400조원이 훌쩍 넘었다. 2013년엔 5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세연구원 송호신 박사는 “예산 재원은 대부분 국세와 기금수입”이라며 “세입이 원활하지 않으면 국가부채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또 있다. 예산심의를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재정의 주요 기능인 자원배분 효과가 약해진다. “과거 집행된 예산을 철저히 평가해 사업의 지속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신규사업의 경우 정밀하게 비용효과 분석을 해야 한다. 확실한 예산심의는 국회의 필수과제다.” 삼성경제연구소 도건우 수석연구원의 일침이다.

더구나 부실한 예산심의는 집행비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숙명여대 박재창(정치행정학) 교수는 “확보된 예산이 지역 토호세력과 결탁돼 집행되면 대규모 기관부패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예산을 효율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방안은 많다. 국회의원 스스로 ‘이어마크(earmark)’ 욕심을 버리면 된다. 이어마크란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진행되는 도로·교량·공항 신설, 상하수도 체계 개선 등 특정사업에 정부예산을 배정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쪽지예산이다. 송호신 박사는 “페이고(paygo)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했다. 페이고 시스템은 새로운 재정지출사업을 추진할 때 기존 지출을 줄이거나 재원대책을 마련하는 제도다. 미 상·하원의 재정규율이다.

예산심의기간을 늘리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의 예산심의기간은 60일이다. 미국(240일)·독일(120일)보다 턱없이 짧다. 예산과 결산을 연계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인천대 옥동석(경제학) 교수는 “국회의 결산심의가 의미 없기 때문에 예·결산의 피드백이 어렵다”고 말했다.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하자”는 다소 급진적 견해도 있다. 도건우 수석연구원은 “감사원의 국회 이관을 통해 사후평가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미국 GAO처럼 감사원(회계검사원 등)이 국회에 소속된 사례는 많다”고 강조했다. 미 GAO는 의회 소속이다. 정부의 예산집행 상황을 조사해 국회에 보고한다.



예산 담당 의원 ‘No맨’ 돼라하지만 제도 정비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한국의 예산심의시스템은 사실 다른 국가보다 나쁘지 않다. 상설화된 예결특위(2000)가 있고, 의정지원 전문예산기관인 국회예산정책처(2004)도 신설했다. 문제는 예산심의 효율성이 별반 높아지지 않았다는 거다. 양경숙 교수는 “중요한 건 국회의원의 마음가짐”이라고 쏘아붙였다. 맞는 말이다. 국회의원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효율적 예산심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부처 관료와 비교했을 때 국회의원의 예산 지식은 한참 부족하다. 예산을 삭감하려 해도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전 국회 계수조정위원의 한탄이다. “정부예산안을 제대로 파악해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심의할 의원은 거의 없다. 의원의 보좌진 중에도 재정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이런 상태로 복잡한 정부예산안을 검토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예산이 지역구를 위한 돈이 아니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이는 책임이자 의무다. 송호신 박사는 “정부예산은 국민 부담으로 마련된 재원”이라며 “(국회의원은) 개인적·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한국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민이 아닌 국민을 위해 지역 챙기기 예산, 다시 말해 이어마크를 없앤 사례는 적지 않다. 미 상원은 최근 지역의 선심성 예산이 포함된 2011년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소수당인 공화당이 강력 저지했기 때문이다. 국회 스스로 지역예산 챙기기를 통제한 예다.

국회의원이 교훈으로 삼을 만한 국내 사례도 있다. 1983년 전두환 정부는 예산을 동결하고 국방비를 삭감했다. 그러자 몇몇 현역 장성이 권총을 들고 문희갑 당시 경제기획원 예산실장을 압박했다. 하지만 문 실장은 동요하지 않았고 국방비 예산은 늘지 않았다. 권총의 공포 앞에서 ‘나라 곳간’을 지켜낸 셈이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의 사례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가 최근 펴낸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일부 내용이다.

1978년 예산안 국회 제출을 앞두고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연석회의가 열렸다. 예산국장이던 나는 예산 관련 브리핑을 마쳤다. 그때 법무장관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각하! 교도관이 고생을 많이 합니다. 수당을 인상해 주십시오.” 나는 대통령 앞에서 목숨을 걸고 답했다. “안 됩니다. 교도관의 수당을 올리면 다른 공무원의 임금도 인상해야 합니다. 예산을 증액할 수 없습니다.” 강 전 부총리는 예산 담당자가 ‘예스(Yes)맨’이 돼선 곤란하다고 했다. 예산을 지키려면 ‘노(No)’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재정민주주의는 시민의 재정 선호를 반영한 예산이 집행될 때 달성된다.” 1920년대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의 주장이다. 과연 우리에겐 재정민주주의가 있는가. 국회는 국민의 뜻을 수용해 예산을 심의하고 있는가.

예산이 정부를 밀어주는 도구(여권), 정치쇼를 위한 볼모(야권)로 전락하진 않았는가. 예산 싸움의 희생자는 여권도 야권도 아니다. 그들은 구타자와 구타유발자(성균관대 김민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장)다. 희생자는 그들에게 금배지를 달아준 국민이다. 예산 싸움의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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