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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국회 땐 국회 심의 건너뛰자

폭력국회 땐 국회 심의 건너뛰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예산안 표결을 위해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예산안 표결을 위해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국회는 헌법에 따라 매년 12월 2일까지 다음 연도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2003년 이후 헌법상 시한을 준수해 예산안을 의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더 부끄러운 일은 예산안을 처리할 때 민의의 전당이어야 할 국회가 난투극의 현장으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언론의 조롱거리가 될 만하다. 국민 모두가 이를 언짢게 생각함에도 정치권은 비난전에만 치중할 뿐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산안 의결의 시한을 준수하고 난투극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해결책은 지극히 간단하다. 국회가 의결시한을 지키지 않을 때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의원이 감당해야 할 피해가 더 크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령 의결시한을 넘겼을 때 예산안 수정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든다면 국회는 위기감을 느낄 게 뻔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헌법은 이런 제도가 있다. 회계연도 개시(매년 1월 1일) 후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하면 행정부는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일정한 목적의 경비를 전년도 예산에 준(準)해 집행할 수 있다. 1948년 정부수립 후 준예산이 시행된 적이 없어 세부적 법절차는 아직 없다. 지금까지 집권여당은 준예산이 정부의 최소 기능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 예산안 강행처리에 집착했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정부에 ‘심의권’까지 뺏기지 않을 요량에서다. 이에 따라 야당은 집권여당이 준예산을 집행하지 못할 것으로 확신하고 예산안을 합의하지 않고 버티기 일쑤였다. 준예산은 행정부의 최소 기능만 보장하는 것일까. 1980년 이전 헌법은 준예산이 집행할 수 있는 경비를 공무원 보수·사무처리용·시설 유지비·계속비 등에 한정했다. 하지만 1980년 5공화국 이후 헌법은 준예산의 기능을 포괄적으로 정의했다. 해석 여하에 따라 정부예산안에 준하는 예산집행이 가능하다. 여기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할 수 있다면 준예산은 사실상 정부예산안과 다를 게 없다.

지금이라도 준예산의 법률적 내용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두려워하는 쪽은 정부가 아니라 국회다. 법정시한에 맞춰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한 국회는 예산안에 대해 어떤 권한도 행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준예산은 국회의 합리적 예산심사를 유인해 궁극적으로 국회 예산심사 및 승인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제도엔 자기교정 절차가 있어야 한다. 예산 난투극이란 나쁜 결과를 교정하겠다면서 국회의원의 자질만 탓해선 곤란하다. 그럼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준예산이라는 자기교정적 제도를 활용하지 못함을 탓하는 게 합리적이다. 예산편성·심의·집행에서 나쁜 결과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도록 국민 개개인이 정치적 압력을 넣어야 할 것이다. 민의의 정당을 바꿀 수 있는 힘은 국민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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