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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떠나고 누가 오나, 그들이 벌일 영토전쟁

누가 떠나고 누가 오나, 그들이 벌일 영토전쟁

2010년 11월 26일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하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김승유 하나금융회장은 ‘개선장군’이었다. 2006년 두 차례 인수합병(M&A) 경쟁에서 잇따라 탈락한 후 세 번 만에 성공했고, 이를 통해 하나금융이 다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공항을 찾은 기자들의 질문은 외환은행 인수 못지않게 오는 3월 임기가 끝나는 김 회장의 연임 여부에 집중됐다. 2011년 은행권의 핵심 이슈가 은행권의 구도 재편과 지배구조 변화라는 점을 함축해 보여준 장면이다.

은행권 재편의 신호탄은 하나금융지주가 쐈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지분 51.02%를 4조6888억원에 인수키로 계약한 것이다. 하나금융은 오는 2월 중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변경 인가를 받아 계약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인수 대금이 지급되면 외환은행은 하나금융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그렇다고 바로 하나은행과 합병하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 1지주, 2은행 체제를 가져가기로 했다. 하나금융은 3월 정기주총에서 새 외환은행장을 선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은행 직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현직 외환은행 임원 중에서 새 행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끝나면 국내 은행권은 4대 금융지주체제(빅4)로 재편된다. 총자산 규모가 310조~330조원 수준인 4대 금융지주사가 치열한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올해엔 4대 금융지주회사 간에 치열한 선두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위축됐던 은행권이 본격적 영업 경쟁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2010년 12월 중순 한 세미나에 참석해 “대외적으로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지만 빅4 체제가 형성되면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장 선출 문제로 홍역을 치른 KB금융지주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내면서 대출을 늘리는 등 공격적 영업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내분 사태에 휘말린 신한금융지주도 오는 3월 새 회장이 선출되면 본격적 영업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크다. 하나금융 역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묶어 시너지를 내려 할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4대 금융지주 체제가 되면서 치열한 외형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과거처럼 남의 고객을 빼앗는 전략보다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으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 민영화 무산 가능성은행권 재편의 큰 변수 중 하나는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다. 정부는 지난 7월 말 공적자금 회수의 극대화, 조기 민영화, 국내 금융산업 발전이란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우리금융 민영화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서 경쟁구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우리금융 주도의 컨소시엄마저“정부가 요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고선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없다”며 입찰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정부는 지난 12월 17일 매각 중단을 발표했다. 기세 좋게 시작했지만 예비입찰도 받아보지 못한 채 뜻을 접고 말았다.

정부는 이른 시일 안에 새로운 틀을 짜서 다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영화 의지가 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한이나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금융 민영화는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왔던 경쟁입찰 방식보다는 좀 더 완화된 형태로 접근하겠다고 밝힌 것은 진전된 부분이다. 블록세일(묶음매각)이나 수의계약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블록세일은 일정한 규모의 지분을 주식시장에서 시가보다 약간 할인된 가격에 파는 방식이라 공적자금 회수의 극대화란 목표엔 부합하지 않다. 인수를 원하는 특정 투자자에게 우리금융 지분을 넘기는 수의계약은 특혜 시비를 부를 수 있어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정부가 보유한 57% 지분 중 일부를 블록세일한 뒤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의 지분만 경쟁입찰을 통해 매각하는 방안 등이 절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정부가 다시 우리금융 민영화를 추진할 경우 우리금융 자회사인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을 따로 매각할지도 관심이다. 두 은행이 어디로 인수되느냐에 따라 지방은행 판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은행을 놓고선 부산은행, 대구은행, 경남지역 상공인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남은행의 경우 부산과 대구가 경쟁하는 모양새라 정부 입장에선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분석도 있. 광주은행은 전북은행과 광주 상공인들이 인수를 희망하고 있다.



장기적 M&A 가능성 남아우리금융 민영화가 불투명해졌지만 장기적 M&A 가능성은 남아 있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2010년 6월 회장 선출 직후 우리금융과의 합병을 통한 메가뱅크론을 내세워 주목 받았다. 노조의 반대로 “앞으로 2년간 M&A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글로벌 경쟁을 하기 위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소신까지 접은 것은 아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엔 어 회장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될 수도 있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의 합병이 이뤄진다면 자산이 600조원을 넘는 초대형 금융회사가 탄생한다. 금융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는 ‘빅4’ 체제를 흔들 수밖에 없고 이에 대응하는 M&A를 유발할 수도 있다. 새로운 경영진을 맞는 신한지주도 올해 말 이후엔 조직 안정화해 M&A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산은지주 민영화라는 변수도 있다. 산은지주 밑에는 산업은행과 대우증권, 산은캐피탈, 산은자산운용, 산은인프라자산운용이있다. 어윤대 회장은 “대우증권을 거느린 산은이 민영화를 한다면 관심이 있다”고 밝힌 적 있다. 산은지주는 올해나 내년께 국내외 증시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4년 5월 말까지 최초 지분 매각을 시작해야 한다. 정부의 의지와 금융회사 경영진의 결단에 따라선 지금까지 예상 못한 판도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

금융지주 회사들이 증권이나 보험사를 사들일 가능성도 있다. 은행권 M&A보다 규모가 작아 부담이 덜한 편이다.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한 하나금융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보험 부문 강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김승유 회장도 “보험 분야가 약해 M&A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장 선출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KB금융은 지난해 아무런 M&A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윤대 회장과 민병덕 국민은행장 체제가 자리잡은 만큼 올해엔 M&A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지주회사 내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 증권 분야를 강화할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진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과 기업은행의 경우 인도네시아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지주 수장 인사 최대 관심사오는 3월 은행권 정기주총에선 최고경영자(CEO)들의 임기가 대거 만료된다. 특히 신한은행과 신한지주를 오랫동안 이끌어왔던 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이 현직에서 물러난 신한지주의 인사가 최대 관심사다. 현재 신한지주 사외이사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는 새 회장 선출과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단 지금처럼 대표이사 회장과 대표이사 사장을 함께 두지 않고 대표이사 회장만 두는 단일 체제로 가기로 결정했다. 유동적이지만 회장은 외부 명망가를 영입하고 은행장엔 내부 출신을 기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아울러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세대교체성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전직 신한은행 출신 고위 임원들의 복귀 가능성은 다소 낮은 편이다. 이들이 현직에 복귀할 경우 라 전 회장과 신전 사장 지지로 갈린 은행에 또 다른 파벌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부에선 라 전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그와 가까운 류시열 대표이사 직무대행이 과도기적으로 신한금융을 이끌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권과 가까운 사람이 자리에 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관치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외환은행 인수 계약을 통해 화려하게 부상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도 3월에 끝난다. 김 회장은 현재 은행권 최장수 CEO다.

그러나 김 회장 이후의 후계구도는 명확하지 않다. 김종열 지주 사장과 김정태 하나은행장이 있지만 두 사람도 이번 주총으로 임기가 끝난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을 통합하는 것뿐 아니라 지배구조를 튼튼히 다져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김 회장은 2010년 11월 26일 인천공항에서 연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 코멘트”라며 즉답을 피했다. 대신 그는 “미국 씨티은행이 필립모리스 사장 출신을 CEO로 데려간 것처럼 하나은행도 내부 사람만 (CEO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시장이 인정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계와 하나금융 내부에선 김 회장이 3월 주총에서 3연임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은행 인수를 주도한 만큼 합병 이후의 마무리도김 회장이 해야 한다는 논리다. 다만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를 김 회장이 어떻게 수용할지가 관심이다. 김회장이 연임할 경우 2014년 3월까지 임기를 보장 받는다. 하지만 앞으로 2년 후엔 현 정부 임기가 끝나고 정권이 바뀐다. 김 회장은 이명박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61학번)이다. 지금은 누구나 김 회장을 금융계 실세로 인정하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그 점은 오히려 부담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김 회장이 당장 3월 하나금융 인사를 어떻게 풀어갈지를 주시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은행 CEO들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CEO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 전체가 휘청거리는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금융회사 이사회가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후계자 승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이종휘 우리은행장도 3월 임기가 끝난다. 이 회장은 우리금융의 민영화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연임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휘 우리은행장의 경우는 대주주인예금보험공사에서 두 차례 경고를 받아 연임할 수 있느냐가 논란이다. 후임으로 몇몇 현직 부행장과 자회사 사장의 이름이 거론된다. 민간 금융회사 CEO 인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09년 1월 취임한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임기가 3년이지만 올해 초 경제부처 인사가 단행되면 함께 교체될 가능성이 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3월로 임기가 끝난다.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의 임기도 6월 만료된다. 다른 금융 공기업 사장들도 차례로 3년 임기가 만료된다.

빈 자리를 누가 채우느냐에 따라 경제관료나 금융감독원 고위 임원들의 연쇄 이동이 일어날 수 있다. 전직 관료 출신들이 민간 금융회사의 고위직으로 옮길 수도 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 차관,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의 이름이 계속 거론된다. 2011년 3월엔 한국 금융계를 이끌어갈 금융당국의 수장과 대형 금융회사 CEO의 면면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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