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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돈 벌면 우리은행 인수 나설 것

올해 돈 벌면 우리은행 인수 나설 것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하면 떠오르는 선수들이 있다. IT의 삼성전자, 자동차의 현대차가 그렇다. 미국·유럽·아시아 어디에서든 이들 기업의 로고가 눈에 띈다. 금융업에서는 이렇다 할 대표선수가 없다. 작은 체구와 허약한 체질로 세계 시장에 나가기엔 역부족이다. 2월 14일 포브스코리아와 만난 어윤대(66) KB금융지주 회장은 한국 금융의 현주소를 꼬집었다. 그는 “금융을 국제화하는 게 재임 동안 할 일”이라고 밝혔다.
1945년 진해 출생, 경기고·고려대 경영학과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 박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 초대 국제금융센터 소장
한국국제경영학회장 ,한국금융학회장,
한국경영학회장
고려대 총장, 국가브랜드위원장
2010년 7월~ KB 금융지주 회장

고려대 교수, 국제금융센터 소장, 한국금융학회장, 한국경영학회장, 금융통화위원, 고려대 총장, 국가브랜드위원장…. 어윤대 회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리고 길다. 그만큼 다양한 곳에서 많은 일을 해왔다. 그는 여전히 바쁘다. 회사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직접 영업 일선에 뛰어들기도 한다. 직원 교육을 손수 챙기고 소원수리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나이 탓인지, 힘들어서인지 요 몇 개월 동안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는 어 회장. 그는 지난해 7월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7개월이 지났습니다. 고려대 총장 시절 ‘CEO형 총장’이라 불렸는데 금융회사를 맡아보니 어떻게 다릅니까?“힘들지요. 은행이 힘듭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크지 않습니까. 직원, 주주에 대한 책임이 무겁습니다. 빡빡한 일정보다 정신적인 면이 힘들더군요. 취임 당시 국민은행 내부 사정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전반적인 금융 관련 지식은 갖추고 있었죠. 국제금융센터 소장, 금융통화위원 등을 거쳤기에 금융은 자신 있어요. 아직 리더십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대학 총장을 한 경험이 도움이 됩니다.”



요즘 내실 다지기에 힘을 쏟고 있는 것 같습니다.“맞습니다. 100명의 변화 혁신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한꺼번에 100가지가 넘는 문제를 검토·분석하고 실행계획을 세웠어요. 직원들이 잘 호응해줬어요. 생각보다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 회장이 취임한 뒤로 KB금융지주에서는 변화가 일상이 됐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CI(기업 로고) 변경을 추진하고, 신상품 개발에 애쓰고 있다. 변화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조직원의 생활을 바꿔놨다. 계열사 임원들의 영업실적이 사내 전산망에 공개됐고, PB(프라이빗 뱅커)들은 월요일 아침마다 5쪽의 경제상식 시험을 치른다.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모은 ‘소통’이란 제목의 사내용 책도 발간됐다. 여러 변화 가운데 특히 조직 개편이 눈에 띈다.



지난해 11월 희망퇴직한 국민은행 직원이 3244명입니다. 작지 않은 규모인데요?“내실 다지기 작업의 하나라고 봐야겠지요. 민병덕 행장(국민은행)의 리더십 덕분인지 3200명 넘는 직원이 큰 무리 없이 퇴직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지점장 1000명을 100명씩 나눠 열 번에 걸쳐 민 행장과 함께 만났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막걸리도 진하게 마셨지요. 얘기가 통하더군요.”



과거에도 수장을 맡은 조직에서 늘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편하게 갈 수도 있었을 텐데요.“욕심이 많아 벤치마킹 기준이 높습니다. 국제 기준을 따른다는 얘기입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화학의 경쟁자가 누굽니까. 인텔, 메르세데스 벤츠, 다우케미컬 아닙니까? 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씨티은행, HSBC와 경쟁해야 합니다. 국내 1위에 만족하면 발전이 없어요. 11년 전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이 국민은행과 자산 규모가 비슷했지만 지금은 2, 3배거든요. 한국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할 일이 정말 많아요.”



말씀이 조금은 추상적으로 들리는데, 뭐부터 해야 합니까?“일부에서는 국제화가 한번에 이뤄지겠느냐고 하지만 총장 시절 고려대는 3년 만에 세계 대학 순위 400위권에서 150위로 올랐습니다. 우선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고려대가 한국에서 국제 경쟁력 바람을 일으켰듯 KB금융이 국제화 바람을 일으키는 게 회장으로서 하고 싶은 일입니다.”

어윤대 회장(왼쪽)과 윤길주 편집장이 서울 명동 KB금융지주 회장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내실 다진 후 해외로 나가겠다



취임 때 ‘국민은행을 금융계 삼성전자로 만들겠다’고 하셨는데 금융계 삼성전자는 어떤 모습일까요?“중국에 있는 소비자든, 이탈리아에 있는 소비자든 KB 브랜드를 아는 것입니다. 지금은 외국에서 KB라고 하면 누가 압니까. 시간이 걸리겠지요. 하지만 요즘은 정보를 접할 창구가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이집트도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바뀌지 않았습니까?”



외국 은행과 경쟁하려면 자산 규모를 늘리고 다양한 금융기법을 개발해야 하지 않습니까? KB금융은 소매금융 비중이 커 한계가 있을 거 같은데요.“소매금융이라 하면 가계만 떠올리죠. 하지만 소기업 금융 부문을 보면 국내 시장점유율 1위입니다. 상대적으로 대기업 고객 비중은 작은 편이죠. 요즘 기업금융을 강조하니 오해를 하더군요. 대기업에 대출 영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대기업은 금융권에서 자금 조달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해외에서 현금 관리, 무역금융 같은 금융서비스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있는 한국 시중은행이 없어요. 고객은 앞섰는데 은행은 뒤처졌지요. 이게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KB금융의 올해 1월 외환 관련 업무가 지난해 1월과 비교해 40% 성장한 것은 고무적이지요. 그동안 소매금융에 만족한 KB금융에는 청신호죠. 해외 금융서비스 확장은 올해 중점사업 중 하나입니다.”



올해는 기업금융 부문을 키워 국제화에 주력하겠다는 뜻인가요?“금융이란 게 사람의 경험과 능력으로 하는 장사인데 준비가 참 늦었어요. 30~40년 동안 은행 국제화를 얘기했지만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원체 왜소하다 보니 나가봐야 안 된다고 생각해 아예 준비조차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준비해서 당장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계 은행이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국의 경제력과 영어 덕입니다. 한국 금융회사는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해요. 실력도 달리고요. 은행만 나선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학교, 사회가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국내 은행들이 해외 진출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까?“진출한 지점 규모가 서울에 있는 지점보다도 작은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국 은행의 국제화 수준이 글로벌 은행과 비교해 많이 낮습니다.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논문들 보세요. ‘한국 금융회사’라고 하지 않고 ‘우리나라 금융회사’라고 쓰지 않습니까. 자기중심적이란 얘기지요. 이런 사고로는 글로벌 마인드가 생길 수 없어요.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이 성공한 이유가 뭡니까? 아르헨티나, 페루에서 영업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와 문화가 통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금융회사는 그렇지 않으니 시간이 많이 걸릴 거예요. 과거 국민은행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에 투자했지만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을 택한 것입니다. 한국과 문화가 비슷한 아시아권에 진출하는 것이 유리하지요. 쉽게 얘기해 말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영업을 합니까?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국제화에 관심을 쏟는 것은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지낸 영향입니까?“그렇진 않습니다. 제가 1981년엔가 ‘한국 금융기관의 국제화 전략’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그때 적용되던 논리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되니 그동안 변화가 없었다고 봐야지요. 이걸 차근차근 고쳐 나가자는 거지요.”



앞으로 덩치를 계속 키워나갈 생각인가요?“국민은행이 일본, 중국의 어떤 은행과 비교하겠습니까? 중국 공상은행은 지점이 2500여 개입니다. 한 해 이익이 우리 시가총액보다 많아요. 이런 면에서 굉장히 부족하고(경쟁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금융당국이나 학계는 금융을 산업 발전의 후원자 정도로 생각했지 하나의 산업으로 경쟁력을 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국가대표 은행을 키워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지요.”



KB금융 규모면 해볼 만하지 않습니까?“아이, 아니지요. 덩치가 게임이 안 되지요.”

2010년 기준 KB금융 자산 규모는 326조1000억원으로 금융지주 가운데 1위다. 우리금융은 326조원, 신한금융은 308조원이다. 그런데도 어 회장은 아직 멀었다고 강조한다.

인수합병으로 비은행 부문 키울 것

KB금융은 은행 비중이 절대적인데 인수합병으로 비은행 부문 규모를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인수합병 계획은 있습니까?

“신한금융이 LG카드를, 우리금융이 LG투자증권을 인수해 덩치가 커지지 않았어요? 씨티뱅크나 도이체방크도 그렇고요. 그게 금융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KB금융의 비은행 부문 역시 인수합병으로 키울 계획입니다. 2~3년 안에는 안 되더라도 능력이 되면 해야지요.”



우리금융 인수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입니까?“능력이 있으면…(할 것입니다).”



어떤 능력 말입니까?“기업을 살 돈이 있어야 하고 관리할 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금융 인수 얘기가 나올 때 애널리스트 분석상 KB금융이 자본금으로 출자할 수 있는 규모가 8조 9000억원으로 제일 많아 늘 이름이 올랐던 겁니다.”



지금은 능력이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현재는 유동성이 없어요. 지난해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였으니 올해 돈 좀 벌고 생각해 봐야지요. 내년이 되면 힘이 좀 생길 것 같습니다.”

KB금융지주의 2010년 당기순이익은 833억원이다. 같은 기간 경쟁회사인 신한금융은 2조3839억원, 우리금융은 1조2420억원, 하나금융은 1조108억원의 이익을 냈다. 1위 은행 위치도 불안정해졌다. 회사 측은 “자산건전성 개선을 위한 충당금 적립과 희망퇴직에 따른 비용 때문에 지난해 이익이 많이 줄었다”며 “올해 은행 부문 이익을 회복해 은행권 1위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경쟁 금융사 고위층 한 분이 KB금융을 두고 ‘덩치만 컸지 리딩뱅크가 아니다’고 말하던데…“기분 나쁜 얘기지요. 제 신념이 메가뱅크라고 하는데, 그 말 싫어합니다. 국제경쟁력이 있는 은행이라면 몰라도 중국의 공상은행이 메가뱅크지, 왜 마구 ‘메가’를 붙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보다는 존경 받는 은행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존경 받는 은행은 어떤 은행입니까?“재무구조가 튼튼하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능력 있고 경영이 투명한 은행 아닐까요?”



해외 주주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주주의 56%가 외국인입니다. 그 가운데 80%를 1대1로 직접 만났지요. ‘올해 이익을 얼마 내겠다’는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동안 믿어줬는데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현재 KB금융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도 설명했습니다. 진정성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현 경영진이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며 사심 없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 믿게 하려면 성과를 내야죠. 외국 투자자들도 ‘한번 믿어보자’는 반응입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는 운영의 문제



경영진의 독립성을 얘기하셨는데, 신한금융 사태를 어떻게 보십니까?“그런 일(신한금융 사태)이 벌어진 것은 운영의 문제입니다. 국민은행이 5년 전에 상장기업 가운데 모범이 되는 지배구조라고 했고, 신한은행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잖습니까.”

KB금융 역시 어 회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내홍을 겪었다. 황영기 전 회장이 우리은행 재직 시 파생상품에 투자해 큰 손실을 입은 문제로 징계를 받아 사퇴했고, 이어 회장 선임 과정에서 강정원 회장 내정자가 자진 사퇴했다.



하나금융지주가 지배구조 규준을 발표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개인적으로 김승유 회장님이 금융권에서 참 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모임에서 자주 봬요. 하지만 최고경영자의 연령 제한 등은 큰 이슈가 아닌 것 같아요. 50세에 끝내면 어떻고 75세에 끝내면 어떻습니까. 나이가 들면 기억력은 흐려질지 모르지만 판단력은 좋아질 수 있지요. 나이만으로 경험과 능력을 어떻게 측정합니까? 우리나라 국민은 지배구조 문제를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1등 은행 자리를 지켜왔는데 비결이 무엇입니까?“친근감과 친절입니다. 지점이 1123개로 가장 많고 어떤 고객이 와도, 예금·대출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친절하게 대합니다.”

어 회장은 대학 총장 때 20분 단위로 일정을 짰다고 한다. 요즘은 그 간격이 1시간으로 늘었다. 조직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데 20분으로 부족하기 때문인 듯했다. 해외 출장도 잦다. 인터뷰가 끝난 다음날도 그는 일본에 있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국제금융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금융센터 초대 소장을 역임한 그는 학계·관계에서 ‘국제통(通)’으로 불린다. 30년 넘게 꾸준히 금융 국제화를 위해 리허설을 해온 그가 진짜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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