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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VET - 하루 5개 탄생하는 손목 위의 황제

BOVET - 하루 5개 탄생하는 손목 위의 황제


굳건한 전통의 레이블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 안에는 역사, 교훈, 취향이 녹아 있다. 영국에서 탄생한 워치 메이커 보베 역시 그런 즐거움을 선사한다.
미니어처 페인팅 포켓워치.

18세기 후반, 섬나라 영국은 막강한 해군력으로 유명했다. 해운업도 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이 모두 정확한 항해가 밑바탕이 된 것으로 정밀한 시계는 필수였다.

영국의 시계산업은 자연스레 발전했다. 워치 메이커였던 프레데릭 보베(Frederic Bovet)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 중 3명을 런던으로 보내 앞선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이 중 에드와드 보베(Edouard Bovet)는 특히 남다른 길을 걷는다. 1815년 18세에 영국의 유명한 시계상인 밑에 들어가 일을 배우던 그는 3년 뒤인 21세에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바로 중국 시장에 눈을 뜬 것.

에드와드 보베는 본인이 만든 고가의 시계를 화물선에 싣고 중국 광둥으로 갔다. 보베의 시계는 중국 고위 인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가 가져간 시계는 모두 팔렸다. 중국 시장의 거대한 잠재력을 몸소 체험한 동시에 본인의 재능에도 확신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보베는 독립을 결심했고 런던에 있는 두 형제 알폰세(Alphonse)와 프레데릭(Frederic), 그리고 플리에(Fleurier)에서 시계 사업가로 활동하던 게스타브(Gustave)를 불러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브랜드 이름은 그들의 성을 딴 ‘보베(BOVET)’. 그야말로 전형적인 패밀리 비즈니스 형태였다. 그때가 바로 1822년. 브레게가 론칭한 1775년과 파텍필립이 론칭한 1839년 사이 즈음이다.

크리스털 케이스백 포켓워치.
설립 초기에는 영국 시계장인 윌리엄 일버리(William Ilbery)의 영향을 받은 제품을 생산했다. 곧 여기에 보베 형제들의 개성을 담았다. 처음에는 런던에 생산기지가 있었지만, 이후 모든 생산라인을 플리에로 옮겼다. 이때 다섯 형제 중 마지막 남은 찰스 헨리(Charles-Henri)까지 사업에 동참했다.



중국 황실을 매료시키다당시 ‘플레리산(Fleurisan)’으로 불리던 시계 생산자들은 유럽을 넘어 중동까지 진출해 시계를 수출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보베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띄었다. 우선 시계를 제작할 때 에나멜링 기법을 사용했다. 이는 골드 다이얼 위에 다양한 산화물을 이용해 그림의 윤곽을 잡는 방식이다. 평균 8회에서 15회 사이, 800~900℃ 가마에서 구워지는 과정에 특유의 색이 살아났다. 이렇게 구워진 다이얼은 외관이 화려하고도 선명했는데, 이는 수백 년이 지나도 유지됐다. 현재까지도 보베 시계가 경매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세기, 보베 특유의 에나멜링 기법으로 선명한 색감을 자랑하는 회중시계는 중국 고위관료뿐 아니라 황제까지 매료시켰다. 에드와드 보베는 황실의 제안으로 한동안 중국에 머물렀다.

시대를 앞서간 중국 진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베는 중국 광둥과 상하이 지역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황실의 선택을 받은 만큼 보베는 중국 상류층이 가장 선호하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국가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정세가 불안한 시기에는 보베의 회중시계가 통화 대신 사용되기도 했다. 결국 보베라는 단어는 ‘시계’를 뜻하는 중국어가 됐다.
보베 사토 모티에 성.

시계라는 단어가 탄생하기까지 보베는 중국에서 ‘고급시계’의 대명사였다. 중국에서 성공한 33세의 에드와드 보베는 큰 부자가 됐다. 그 덕분에 자신뿐 아니라 대가족과 고향 마을까지 번영했다.

1830년 에드와드는 중국에서 고향인 플리에로 돌아와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저택을 지었다. 이는 현재 시청으로 쓰이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아직 남아 있다. 1840년 11월 15일, 보베 형제들의 자산은 100만 프랑이었다. 이 모든 것은 브랜드를 만든 지 20년 만에 달성됐다.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시계 부품.


세계 최초의 투명 크리스털 케이스백남보다 일찍 중국시장에 눈을 뜬 에드와드 보베.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취향까지 꿰뚫어본 그의 심미안과 개척정신은 지금까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보베에 남아 있다.

보베는 연구를 통한 혁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단순히 시계가 아닌 예술품의 경지에까지 오른 시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시계 안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케이스백은 보베의 혁신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드와드 보베는 기계학에 매료된 몇몇 고객을 위해 투명한 케이스백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많은 브랜드에서 이런 형태의 시계를 선보이고 있지만, 당시에는 투명 케이스백을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남다른 것이었다.

세계 최초로 투명 크리스털 케이스백을 만들어냈고, 이를 계기로 무브먼트에 블루 스크루 또는 핸드 인그레이빙된 브리지와 로터를 도입해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는 다이얼뿐 아니라 시계 안까지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또 다른 혁명이었다. 무브먼트의 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시계를 만드는 플리에의 장인들은 제네바의 장인들보다 더 유명해졌다.

보베가 론칭한 지 189주년을 맞은 지금, 대표 겸 오너인 파스칼 라피(Pascal Raffy) 역시 혁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최고의 기술력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을 아낌없이 하고, 단 몇 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실상 사라진 기술을 살려내 적용하기도 한다.

세계 최초로 완벽하게 변형 가능한 특허기능의 시계 ‘AMADEO Collection’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손목 위의 회중시계’라는 컨셉트로 개발된 제품인데 손목시계로 사용할 때는 양면으로 사용 가능하고 회중시계, 소형 탁상시계로도 변형할 수 있다. 포켓워치 체인 대신 목걸이에 연결해 펜던트로 하면 하나의 주얼리로 스타일링할 수도 있다.

19세기 말, 보베가 편하고 튼튼한 손목시계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손목시계의 편리함과 회중시계의 전통을 결합해 재해석한 것이다. 이 컬렉션은 무려 7년에 걸쳐 연구개발한 뒤 선보였다.



주문 후 수개월 기다려야 손에 쥐어10여 년 전부터 고급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는 연간 몇 만 개 수준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보베는 연간 생산량을 제한하고 있다. 무브먼트 제작부터 케이스 데커레이션까지 하나하나 장인의 손을 거치기 때문에 하루 생산량이 5개에 불과하다. 연간 생산량은 2000개.

더 나아가 보베는 자체적으로 만드는 투르비옹 무브먼트 등을 타 브랜드에 제공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다. 시계를 생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품질 테스트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정확성, 피니싱 같은 기본적인 요소를 검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에이징 테스트, 24시간 시뮬레이션 테스트, 기능적 요소에 초점을 맞춘 피니싱 검정, 1만 번의 아마데오 안전장치 시스템 테스트 등 엄격한 검사에서 합격한 제품만 출시한다. 이 덕분에 보베 시계의 희소성은 유명하다.

보베의 리미티드 에디션 중 8번과 같은 특정 번호는 VVIP 고객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다. 희소성이 점점 부각되면서 신제품을 선보이는 방식 역시 새로워졌다. 예전에는 SIHH 박람회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였지만 2006년부터는 작품을 더욱 깊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살롱 쇼를 열고 있다.

판매방식 역시 다른 시계 브랜드와는 많이 다르다. 고객이 구매 문의를 하면 전담 컨설턴트가 제품에 대해 자세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그 뒤 고객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시계를 고를 수 있도록 상담한다.
AMADEO 컬렉션의 클래식 아마데오 43mm 서큘러 브러시 다이얼, 섭세컨즈, 72시간 파워 리저브.

세계 최고의 에나멜 페인팅 및 자개 다이얼 페인팅 장인들이 보베에서 일하고 있어 특별한 그림을 그려넣는 다이얼 아트를 주문 제작할 수도 있다. 예컨대 일본 고객은 예물시계로 부부의 모습을 담아달라고, 중국 고객은 제왕의 상징인 신화 속의 용이나 가문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새겨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스위스 전문가가 방한해 AS 상담예전부터 저택에 초상화를 즐겨 걸었던 유럽 사람들은 시계 다이얼에 자화상이나 종교적 심벌을 넣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고가의 미술품 수집이 취미인 한 고객은 본인의 소장 미술품을 시계 다이얼에 담아달라고 스페셜 오더를 했다.

주문 과정도 그렇지만 애프터서비스는 더 유별나다. 한국 본사에서 일단 상태를 본 뒤 스위스 전문가가 비행기를 타고 방한해 직접 확인하고 고객과 상담하는 식이다. 이후 시계를 스위스로 보내 그 시계를 제작한 장인이 직접 검정하고 수리한다.

무엇보다 VVIP 고객이 되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매력적이다. VVIP가 되면 회장인 파스칼 라피가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보베 사토 모티에 성을 휴양 목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조용한 스위스 풍경 속에서 시계 제작 과정을 직접 보고, 워치 메이커와 상담도 하며 다양한 컬렉션을 경험할 수 있다. 서비스 방식에서조차 특별함이 넘친다. 이런 서비스에 참을성 없기로 유명한 세계의 몇몇 VVIP 고객도 아주 얌전해진다는 후문이다. 시계를 주문한 후 수개월간 기다리는 것도 기꺼이 감수한다.

보베 시계는 멀리서 봐도 한번에 알아볼 수 있다. 12시 방향의 크라운과 크라운의 카보숑을 보호하는 활 모양의 보우, 그리고 스트랩을 분리할 때 누르는 사이드 푸시어 카보숑 등 디자인의 요소요소에서 클래식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다이얼 위에서도 보베만의 상징을 엿볼 수 있다. 용을 연상케 하는 구불구불한 모양의 서펜타인 핸즈가 시간을 가리키고, 12개의 연꽃 문양은 하이 컴플리케이션 컬렉션의 투르비옹 케이지를 장식한다.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넘친다.

보베는 앤티크 시장에서도 매력적인 이름이다. 보베 시계가 경매에 등장할 때면 분위기는 활기를 띤다. 19세기에 만들어진 보베 회중시계는 수집가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 감정가를 훌쩍 뛰어넘곤 한다. 제네바 크리스티에서 개최된 시계 경매를 진행한 오렐 백스(Aurel Bacs ・전 세계 크리스티의 시계 경매를 총괄하는 책임자)는 이렇게 말한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크리스티의 시계 부서를 총괄하면서 운 좋게도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비싼 시계를 판매해 봤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나멜 작업이 된 시계에 관심이 많아졌고, 특히 현재는 중국 시장을 위해 제작됐던 시계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보베 시계는 가장 좋은 예입니다. 보베는 저명하고 높이 평가되는 만큼 앞으로도 독창적인 시계를 창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전통을 강조하는 수많은 시계 레이블 가운데 보베는 가장 주목해야 할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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