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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 Celebrity ④ Burberry 시간을 초월한 불멸의 코트

Luxury & Celebrity ④ Burberry 시간을 초월한 불멸의 코트


세계의 유명인들이 즐겨 입으며 숱한 일화를 남긴 트렌치코트. 패션 클래식의 대명사다. 현재 가장 많은 디자이너가 재해석하며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대를 물릴 만큼 가치 있는 패션 아이템인 트렌치코트가 일명 ‘바바리’라고 불리게 된 사연은 뭘까.

트렌치코트에 눈길이 가는 봄이다. 과거에는 쓸쓸한 가을남자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이 코트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가장 전통적인 스타일은 개버딘 소재로 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실크, 레이스, 가죽부터 심지어 뱀, 악어 가죽 등 이국적인 소재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덕분에 트렌치코트는 매우 패셔너블한 사람에게나, 반대로 전혀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나 꼭 필요한 옷이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옷도 없을 것이다. 멋있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대로, 못생긴 사람은 그 모습대로 그 누가 입어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야말로 패션의 보증수표인 셈이다.



윈스턴 처칠의 자존심1853년, 영국 브랜드인 아쿠아스큐텀은 방수성이 뛰어나면서도 유연한 아우터를 만들어 레인코트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완벽한 방수는 아니었다. 이후 1890년 토머스 버버리가 개버딘 소재로 트렌치코트를 만들면서 오히려 원작보다 더 큰 인기를 모았다. 당시 포목상이었던 토머스 버버리는 농부의 작업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마 소재로 만든 농부의 작업복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으며 방수성까지 뛰어난 점에 착안했던 것.

토머스 버버리는 이집트산 면을 촘촘하게 직조하고 여기에 비밀스러운 방수 코팅을 한 뒤 개버딘이라고 이름 붙였다. 고무가 아닌 재료를 사용해 방수 효과를 주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개버딘은 뛰어난 기능성 덕분에 큰 인기를 모았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바바리’라는 이름으로 트렌치코트의 대명사가 된 버버리는 전장에서 꽃을 피웠다.

1960년 버버리의 레인코트.
당시 연합군 전쟁사령부는 토머스 버버리에게 전투용 코트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버버리는 연합군 장교들이 입을 50만 벌의 코트를 제작했다. 이 옷은 개버딘 소재로 만들어져 방수, 방한 기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전시를 대비한 특별한 장치 또한 부착됐다. D자형 고리를 달아 수류탄, 지도, 탄약통이 든 가방을 갖고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쌍안경과 가스 마스크를 달기 위해 어깨에 견장을 추가했다. 오른쪽 가슴 부분에 덧댄 천은 장총의 개머리판이 닿아 원단이 마모되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했다.

이처럼 트렌치코트의 모든 디자인적 요소는 전쟁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장교들은 이 코트를 입고 적의 탄환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참호(Trench)에 들어갔는데, 덕분에 트렌치코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모습으로 종종 공식 석상에 등장해 전장에 힘을 실어줬다. 지금까지도 영국인의 마음속에 가장 인상 깊은 영웅으로 남아 있는 처칠과 영국인의 영원한 자존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트렌치코트의 인연은 꽤 각별해 보인다.

트렌치코트의 뛰어난 기능성은 영국 왕실에까지 전해졌다. 영국 왕실 최고의 패셔니스타였던 에드워드 7세. 그는 영국 신사 패션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윈저 공의 할아버지로 패션 센스는 오히려 윈저 공을 압도했다. 에드워드 7세가 입는 옷, 그리고 그가 옷을 입는 방식은 왕실을 거쳐 전 영국에 유행하곤 했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7세가 살이 너무 찌고 배가 급격히 나와 재단사는 어쩔 수 없이 조끼의 아래 단추를 풀었다. 처음에는 이를 이상하게 보던 사람들도 곧 이런 방식을 따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그가 즐겨 입은 옷이 있었으니 바로 버버리의 트렌치코트였다.

에드워드 7세는 평소 ‘내 버버리를 가져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이는 사람들이 트렌치코트를 ‘바바리’라고 줄여서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19년, 에드워드 7세의 아들인 조지 5세가 왕위에 오른 뒤 토머스 버버리에게 영국 왕실의 재킷과 코트를 만들어 정식으로 납품할 것을 명했다.

1950년, 버버리는 조지 6세의 방한복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영국 왕실의 버버리 사랑은 계속되었다.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 웰스 왕세자 등이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었다. 1955년에는 영국 여왕이 일종의 품질보증서인 ‘로열 워런티(Royal Warranty)’를 버버리에 수여했다.

1910년 개버딘 소재로 만든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영국 장교 일러스트.
이후 버버리는 여섯 차례 수출상을 수상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고 그 이름은 옥스퍼드 사전에까지 올랐다. 버버리의 창시자인 토머스 버버리는 이렇게 자신감을 표현했다. “영국이 낳은 것은 민주주의와 스카치위스키, 그리고 버버리 코트다.”



최초 남극탐험과 함께하다뛰어난 기능성이 인기의 비결이었던 만큼 트렌치코트는 20세기 초반의 모험가, 탐험가들과 늘 함께했다. 1911년 12월 14일, 최초로 남극 탐험에 성공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 선장 역시 버버리를 착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탐험에 성공한 후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겹겹이 개버딘으로 만든 버버리 아우터가 남극의 혹한과 바람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줬다. 그 덕분에 남극탐험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는 훗날 극동지방으로 썰매를 끌고 탐험할 때도 어김없이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착용했다. 남극 탐험에 성공한 것을 동료 탐험가인 스콧 선장에게 알리기 위해 남극에 버버리의 개버딘 소재로 만든 텐트를 남겨두고 왔다는 일화 역시 유명하다.

선장뿐 아니라 산악인, 비행기 조종사들도 버버리를 즐겨 입었다. 특히 비행기 조종사들은 가벼우면서도 외풍을 막아주는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선호했다. 그들은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종종 버버리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1919년 최초의 대서양 횡단자인 앨콕 경 역시 버버리를 입고 비행에 성공했다고 기록돼 있다.
버버리를 입은 할리우드 스타들. 브래드 피트, 샤를리즈 테론, 데미 무어(위부터 시계 방향).



할리우드 스타의 트렌치코트 사랑195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트렌치코트는 기능성을 뛰어넘어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 배경에는 어김없이 은막의 스타들이 있었다. 로버트 테일러는 비비언 리와 함께 출연한 영화 ‘애수’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왔다. 멋진 모습으로 워털루 다리 위에서 과거를 회상하던 장면 덕분에 1960년대 한국에도 트렌치코트 바람이 불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 ‘핑크 팬더’의 피터 셀러스는 트렌치코트가 남성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주인공이었다. 이후로도 트렌치코트는 꾸준히 유행했다. 1970년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메릴 스트리프, 1980년대 ‘나인하프위크’의 킴 베이신저는 당대 가장 인상적인 트렌치코트 스타일링을 보여줬다.

특히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 출연한 메릴 스트리프와 증권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월스트리트’에 나온 마이클 더글러스는 촬영 기간 내내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이들은 혹시나 트렌치코트를 못 입게 될 경우에 대비해 항상 같은 옷을 두 벌씩 준비시켰다고 한다. 이 밖에도 영화 ‘한밤의 암살자’의 알랭 들롱, ‘언터처블’의 케빈 코스트너, ‘딕 트레이시’의 워런 비티, ‘영웅본색’의 주윤발, TV 시리즈인 ‘형사 콜롬보’의 피터 포크 등 수많은 스타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등장해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이들이 영화 속에서 입은 트렌치코트는 구겨져도, 구멍이 나도, 때가 타고 심지어 피가 묻어도 멋졌다. 캐서린 헵번, 제인 폰다, 더스틴 호프먼은 극중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트렌치코트를 즐겨 착용한 스타로 유명하다.

많은 스타 중에서도 트렌치코트를 논하기 위해서는 ‘카사블랑카’에 출연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을 빼놓을 수 없다. 험프리 보가트는 트렌치코트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무표정한 얼굴,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40~50년대 흑백 영화에서 고독하고 반항적인 남성상을 보여주었던 그.

험프리 보가트는 일상에서도 영화와 다름없이 반항아였지만 동시에 멋쟁이로 알려졌다. 외출 때면 옷과 구두를 잘 갖춰 입고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백까지 꼭 챙겨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패션 센스 덕분에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트렌치코트를 입은,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170㎝ 초반의 비교적 단신임에도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는 거대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험프리 보가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남편과 함께 떠날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쥐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눈에 건배를(Here’s looking at you, kid)’. 당시 험프리 보가트가 입은 트렌치코트와 이 유명한 대사는 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로 꼽힌다.

마돈나, 귀네스 팰트로, 데미 무어, 브래드 피트, 샤를리즈 테론, 리브 타일러, 키이라 나이틀리…. 아직도 전 세계 유명 스타들은 옷장 속에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옷 중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는다. 이들은 청바지만 백여 벌 넘게 가지고 있는 것처럼 트렌치코트 또한 다양한 스타일, 소재, 색상으로 구비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클린 케네디를 비롯해 <달과 6펜스> 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W 서머싯 몸,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유명한 묘지명을 남긴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등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은 명사는 무수히 많다.

그들은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유행이 요동치고 화려한 옷이 많아도 결국 고전의 미학은 영원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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