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물사업 잔혹사] 봉이 김선달도 백두산서 울고 갔다
[백두산 물사업 잔혹사] 봉이 김선달도 백두산서 울고 갔다
“백두산 자연보호구역에서 취수한 프리미엄 생수가 출시됐다. 이 제품은 백두산의 화산암·현무암층에서 나온 물을 사용해 칼슘·나트륨·칼륨·마그네슘·불소 등 천연 미네랄이 다량 함유돼 있다. 제품을 생산하는 천양천음료유한공사는 중국 동북지역 음료회사로 최신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2008년 12월 롯데칠성음료(이하 롯데)는 ‘아이시스 백두산 샘물’을 출시했다. 롯데의 당시 보도자료에는 백두산 샘물의 우수한 효과와 생산업체의 기술력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롯데 관계자는 “2009년 매출 목표는 750억원”이라고 밝혔다.
롯데는 내심 돌풍을 기대했다. 농심 삼다수와 승부를 겨룰 만하다고 봤다. 예상은 빗나갔다. 롯데의 백두산 물사업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일부 판매처에 시제품을 내놨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탁월하다’고 선전했던 백두산 물의 품질은 때마다 달랐다. 물 생산업체가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백두산 물사업에 도전했던 롯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을 접었다. 회사 관계자는 “아이시스 백두산 샘물을 팔고 있지 않다”고 말할 뿐 추가 설명은 하지 않았다.
백두산 물사업에 뛰어든 대기업은 또 있었다. 대형 할인유통업체 홈플러스다. 2010년 3월 홈플러스는 성도녹색산업유한공사와 독점계약을 하고 ‘백두산 천지수’를 전 매장에 선보였다. 당시 보도자료의 내용은 화려했다. “백두산 천지수는 ISO9001과 국제식품안전 HACCP인증을 획득했다. 독일 프레스닌스와 서울시의 수질검사를 통과해 안전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백두산 천지수는 건강한 물을 원하는 고객 수요를 만족시킬 것”이라며 “직수입으로 판매가를 낮춰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2005년 수질 검사 후 백두산 물 각광결과는 실패였다. 홈플러스는 백두산 천지수 사업을 1년도 안 돼 접었다. 회사 관계자는 “백두산 천지수를 팔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이유에서 사업을 접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기자는 2000년부터 백두산에서 물사업을 하고 있는 A씨에게 홈플러스 실패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은 이랬다. “홈플러스에서 백두산 천지수를 판매하기 시작한 직후 내게 전화가 왔다. 회사 관계자는 ‘성도녹색산업유한공사를 믿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성도녹색산업유한공사의 공장은 백두산에서 300㎞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백두산에 들어가려면 4시간이 넘게 걸렸다. 백두산 물이 쉽게 공급될 수도, 생산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사업을 계속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백두산 물이 각광 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이후다. 중국 지린(吉林)성은 2005년 EU(유럽연합)와 독일에 백두산 물의 수질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는 지린성 관계자를 흥분시켰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에서 나오는 광천수 ‘볼빅’과 수질이 유사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백두산 물이 좋다는 소문이 나자 한국의 ‘봉이 김선달’이 백두산으로 향했다. 2006년 초반의 일이다. 때마침 국내 생수시장이 커지고 있었다. 백두산 물사업은 신드롬이 됐다. 그 대열에는 개인사업자 B씨도 있었다. 그는 백두산 물을 팔겠다며 중국 모 유한공사와 계약을 했다. 그해 백두산 물이 담긴 시제품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B씨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백두산 물의 참맛을 세계인에게 알리겠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지 2년이 흘렀지만 B씨의 소식은 없다. 현재로선 실패로 보인다. 대기업이든 개인사업자든 백두산 물사업에 투자했다가 성공했다는 이는 아직까지 없다.
2006년 백두산 물사업을 추진했던 C씨는 실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린성에 가면 백두산 물 생산공장이 몇 개 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다.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고 품질은 장담하기 어렵다. 대기업이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큰돈을 들여 회사를 만들어도 중국 정부에 51%의 지분을 줘야 한다. 더 어려운 것은 생산이다. 백두산은 한겨울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 겨울철에는 물을 생산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백두산 물사업이 줄줄이 실패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거다.”
여기서 주목되는 곳이 있다. 군인공제회와 농심이다. 이 둘은 2006년 이후 백두산 물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군인공제회와 농심은 2006년 상선워터스(당시 네피아건설)가 추진하는 백두산 광천수 개발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군인공제회는 194억5000만원, 농심은 42억원을 투자했다.<※ 농심은 2008년 말 상선워터스에 150여억원 이상을 추가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2010년 말 상선워터스의 지분구조는 김병순 상선워터스 대표(37.8%), 농심(32%), 군인공제회(22.7%) 등이다.>
조영호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당시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해 백두산 물사업에 투자했다”며 2007년 여름부터 중국시장에 판매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해 8월까지 생산공장이 준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잡음이 많았다. 감사원은 2009년 3월 군인공제회의 백두산 광천수 사업을 특별감사했다. 김병순 상선워터스 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올라 생산공장 건립이 늦어졌을 뿐 다른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다.
2010년 9월 말 상선워터스의 백두산 광천수 생산공장은 준공됐다. 연변일보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연변천지광천음료유한회사(상선워터스 현지법인) 생산공장에서 백두산 광천수 공장이 준공됐다. 이날 준공식에는 명망 있는 지린성 고위 관계자가 다수 참가했다. 백두산 샘물 브랜드 화산옥수도 발매됐다.” 김병순 대표는 “지난해부터 화산옥수를 중국 전역에 팔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 수백억 투자 괜찮나?문제는 실적이다. 상선워터스의 매출은 2010년까지 0원이다. 2009년, 2010년 당기순손실은 각각 41억원, 31억원이었다. 덩달아 농심의 투자손실은 올 1분기 63억원으로 늘어났다. 한국투자증권 이경주 연구원은 “K-IFRS 기준 농심의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5% 증가, 29.6% 감소했다”며 영업이익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상선워터스의 손상차손(63억원)을 꼽았다. 상선워터스의 회계감사기관인 안진회계법인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상선워터스가 존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만약 존속하기 어렵다면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상환하지 못할 수 있다.”
군인공제회는 2009년 백두산 광천수 사업을 ‘대손충당금’ 사업(고정 이하)으로 분류했다. 백두산 물사업의 실패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자산 건전성 분류기준’은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다. 이 가운데 고정은 ‘채권 회수에 상당한 위험이 발생한 거래처 자산’을 말한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대손충당금 사업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백두산 물사업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사업 실패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런데 농심은 상선워터스에 대한 투자를 계속한다. 올 1분기 투자손실이 60억원이 넘었던 농심은 최근 209억원을 또다시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2대 주주였던 농심은 상선워터스 최대주주에 올랐다. 군인공제회가 안전판을 만들고 있는 것과 달리 농심은 ‘무조건 간다’는 모양새다.
김병순 대표는 “백두산 물사업의 첫 성적표가 미미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올 7월 일본에 화산옥수를 수출하는 것을 기점으로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3년 안에 흑자전환을 하겠다는 말도 했다. 김 대표는 2006년 등장했던 백두산 봉이 김선달 중 유일하게 사업을 계속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군인공제회와 농심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백두산 물사업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답은 2년 후 나온다. 군인공제회와 농심의 백두산 물사업 투자 비밀도 그때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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