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경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 _ “T-50은 항공산업 이륙 알리는 상징”
김홍경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 _ “T-50은 항공산업 이륙 알리는 상징”
올 초 우리나라가 만든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의 첫 수출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만 해도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이전에 ‘다 된 밥’이라던 수출 건이 두 차례나 무산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5월 말 인도네시아와 T-50 16대(4억 달러)를 수출하는 본계약이 체결됐다. 2001년 중순 T-50 1호기가 생산된 후 10년 만이다.
한국 항공산업은 활주로를 이제 막 벗어나 이륙했다. T-50은 그 이륙을 알리는 상징이다. T-50 수출의 주역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김홍경(67) 대표는 덤덤하지만 자신있게 한국 항공산업의 도약을 자신했다.
그는 “T-50 수출로 항공산업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35년 전 포니를 첫 수출할 때 누가 감히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세계 5위권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나”고 반문했다. 7월 6일 서울 중림동 KAI 본사에서 김홍경 대표를 만나 T-50이 갖는 의미와 향후 수출 가능성, 한국 항공산업의 현황과 발전 가능성을 물었다.
인도네시아 수출이 성사될 수 있었던 요인을 복기해 달라.“무엇보다 T-50 상품 자체가 좋았다. T-50은 검증된 상품이다. 현재까지 나온 고등훈련기 중 가장 성능이 좋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한다. 범정부 차원의 지원도 주효했다. 지난해 12월 발리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정상회담에서 방위산업 협력을 이끌어낸 것이 수출계약 체결에 큰 힘이 됐다.”
대역전극이었다고 들었다.“작년 6월 제안서를 넣었을 당시 러시아 고등훈련기인 ‘야크130’이 1등, 우리가 2등이라는 평가정보를 은밀히 입수했다. 이것을 역전시켜야 했다. 그런 와중에 2010년 5월 야크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우리는 T-50은 한국 공군이 60여 대 운용 중이고 3만1000시간 무사고 비행 중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해 10월 인도네시아 총사령관 입에서 ‘후배들이 탈 비행기인데 안전해야 하지 않나’라는 말이 나왔다. 상황이 역전됐다. 2010년 11월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평가가 뒤집혔다.”
항간에 인도네시아가 제작하는 수송기 ‘CN-235’와 맞교역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충분히 해명되지 않은 것 같다.“협상 당시 그런 얘기는 일절 없었다. 언론의 과민반응이다. CN-235는 이미 우리 공군과 해양경찰청이 쓰고 있다. 필요하면 더 들여올 수 있지만 T-50과 ‘바터(교환) 조건’은 절대 아니다.”
록히드마틴은 마케팅에 어떤 도움을 주나?(T-50은 KAI와 록히드마틴이 공동 개발했고, 공동 마케팅 협약을 맺었다)“서로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길 수 있는 방안을 협력하는 긴밀한 관계다. 수출 대상 국가의 움직임, 즉 기회포착 단계부터 제안서 제출, 협상까지 상호 정보를 공유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다.”
얼마 전 록히드마틴의 부사장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T-50의 다음 수출은 미국이 가장 유력하고 자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미국 수출 가능성을 논하기는 성급하다. 미 공군은 현재 T-38이라는 고등훈련기가 있다. 지금은 노후한 T-38을 업그레이드해서 쓸 것인지, 새 고등훈련기를 구매할 것인지 검토하는 단계다. 만약 새로 구입하는 것으로 결정되면 2013년께 기종이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최소 350대 이상 수출이 가능하다. (우리가 수출에 성공한다면) 경제적 파급효과가 막대할 것이다.”
세계 군수산업 1위인 록히드마틴의 위상을 볼 때 미국시장 수출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록히드마틴은 T-50의 미국 내 마케팅과 판매를 책임진다. 록히드마틴은 미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F-35, F-22를 공급한 회사다. 록히드마틴은 T-50을 F-35의 조종사 양성을 위해 가장 적합한 훈련기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최대·최고의 항공기를 만드는 나라다. 다만 훈련기만 만들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 정부는 외국 회사에서 직접 구매하지 않는다. 미국 내 기업이 미국 정부에 판매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초기 단계부터 우위를 점하기 위해 록히드와 공동으로 전략적 마케팅을 전개할 것이다.”
앞서 UAE(아랍에미리트) 수출 건에서는 이탈리아에 밀렸다. 패인이 무엇인가?(UAE는 고등훈련기 40~50대를 구입하는 사업에서 2009년 이탈리아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신부는 좋은데 혼숫감이 부족했다. UAE는 처음부터 항공기 50%, 산학협력 50%를 공식적으로 내걸었다. 이탈리아 M-346에 비해 성능은 T-50이 뛰어나지만 이탈리아의 물량 공세에 열세였다. 우리가 1억3000만 달러 정도의 산학협력안을 제시했는데 M-345를 생산하는 핀메카니카의 모그룹인 에어마키는 13억 달러 규모의 항공산업 분야 협력을 제안했다.”
UAE 수출은 물 건너갔나?“승패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올 2월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방산전시회에서 셰이크 무함마드 왕세자가 T-50도 검토 가능하다는 발언이 있었지만 현재 공식적인 접촉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탈리아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지만 협상이 잘 안 되고 있어 지금은 우리가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폴란드와 이스라엘 수출추진 건은 잘 진행되나.“폴란드의 경우 한국, 영국, 이탈리아, 체코 등이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스라엘은 올해 하반기에 제안서가 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4월 KOTRA 바르샤바센터에서 폴란드 공군의 기술적 요구사항과 정치적인 이유를 고려할 때 T-50 선정이 유력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는데.“방산 수출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아직 유불리를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 폴란드나 이스라엘 수출 모두 이탈리아와 경쟁하게 될 것으로 본다. 폴란드는 EU 국가다. EU는 공동체 아닌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부담이다. 하지만 폴란드 역시 단순 훈련기보다는 공격 능력이 있는 비행기를 원한다. 이 점은 우리가 유리하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T-50은 공격기로 전환이 어렵다는 주장이 있는데?“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T-50은 기획 초기부터 훈련기와 경공격기 두 유형을 염두에 두고 개발됐다.”
항공산업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항공기 개발은 설계와 생산, 시험평가가 중요하다. 생산기술은 선진국과 대등하다. 설계와 시험평가는 약 95% 수준까지 근접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KT-1, T-50, 수리온 헬기를 개발해 봤다.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다 갖췄다고 봐야 한다. 항공산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핵심기술도 확보했나?“정부는 T-50 개발 종료 후 기술획득심의회를 통해 KAI가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필요한 650개 핵심 요소기술 대부분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했다.”
T-50 개발에 2조원, 공군이 구매하는 데 1조원 정도가 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직접 개발한 것이 외국에서 구매한 것에 비해 얼마나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었는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산업 특성상 항공기 개발에는 많은 비용과 기간이 소요된다. 현재 우리 공군에 T-50이 65대 정도 들어가 있다. 경공격기로 개조한 A-50까지 합하면 향후 140여 대까지 늘 것이다. 이것을 외국에서 다 사오는 가격과 우리가 개발하고 구매한 비용 효과를 비교하면 분명히 T-50 개발이 유리하게 나올 것이다. 항공기는 한번 도입하면 30~40년 쓰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수리·유지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T-50이 국내 항공산업에 갖는 의미는 뭔가?“항공산업은 국내시장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홀대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T-50 수출로 항공산업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35년 전 포니를 첫 수출할 때 누가 감히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세계 5위권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정부의 ‘2010~2019 항공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보면 2010년 생산 200억 달러, 수출 100억 달러가 목표다. 너무 과한 것 아닌가(2009년 현재 국내 항공산업 생산 규모는 20억 달러 정도다).“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KT-1 기본 훈련기, T-50, KUH(수리온) 기동 헬기 수출이 늘고, 우리가 추진 중인 중형·무인 비행기 시장도 분명 클 것이다. 민간항공 수요가 증가하고 각국 방위력 구성에서도 공군력 비중이 점차 중요해지는 추세다. 여기에 정부도 항공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정부의 목표는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본다.”
민간항공기 분야 진출 계획을 밝혀달라.“군용기 분야는 초음속기 수출국 대열에 진입했지만 민항기 분야는 아직 디딤돌을 놓고 있는 단계다. 올여름 자체 개발한 4인승 소형 항공기가 첫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중형 항공기 국제공동개발도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착수하면 민항기 시장에서도 T-50 수출과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술인력은 충분한가?“KAI에 1400여 명의 엔지니어가 있다. 특히 소위 ‘항공에 미친 분’이 많다. 이들이 우리 항공산업을 이 정도로 키웠다. 하지만 향후에는 항공 전문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공계 전문인력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항공산업 전반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R&D(연구개발) 자금을 비롯한 정부의 항공산업 발전 정책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항공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고 성장하기 위해 항공산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인식으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
■ 한국항공우주산업은
국내 유일의 완제기 제조회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국내 유일의 완제기 개발·생산 회사다. 1999년 10월 당시 삼성항공·대우중공업·현대우주항공 3사의 항공부문이 통합돼 설립됐다.
국산 전투기인 KF-16, KT-1 기본훈련기, KUH(한국형 헬기), T-50 고등훈련기 등을 개발해 양산에 성공했다. 이 밖에 보잉, 에어버스 등과 국제공동개발 사업에 핵심 파트너로 참여해 주요 부품을 공급한다. 지난해 매출 1조2667억원, 영업이익 1210억원을 올렸다. 글로벌 주요 항공업체 중 매출액 기준으로 60위권이다.
KAI는 6월 30일 상장했다. 이 회사는 한국정책금융공사가 30.2%로 1대 주주다. 정부는 이 지분을 매각할 방침이다.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홍경 대표는 사견을 전제로 “KAI의 지배구조를 보면 투자를 결정할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확실한 경영권을 가진 주주가 있어야 하지만 정부나 공공기관이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항공산업은 민간기업 혼자 할 수 없고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항공 선진국의 경우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의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 민간기업의 이윤 추구 몰입을 견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투자의지가 있고 제조업 해외수출 경험이 있는 우량기업과의 결합만이 국제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며 “장기적인 투자의지가 없는 기업이 주인이 되면 지금까지 일궈낸 국가 자산이 항공산업 인프라와 전문인력 붕괴로 이어져 국가가 부담을 다시 떠안는 결과를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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