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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뉴타운 무더기 싸움판] 정치권·지자체 방치에 ‘갈라선 이웃사촌’

[누더기 뉴타운 무더기 싸움판] 정치권·지자체 방치에 ‘갈라선 이웃사촌’

지난 1월 초 안양 만안 뉴타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뉴타운 설명 공청회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만안 뉴타운은 주민 반대로 뉴타운 추진이 무산됐지만 지역 내 갈등은 여전하다.



뉴타운 민심이 흉흉하다.

정치권과 지자체의 뉴타운 남발이 부른 후폭풍으로 서울·수도권이 몸살을 앓고 있다.

낙후된 지역을 개선하고 재산도 늘릴 생각에 ‘타운돌이(뉴타운 시행을 공약으로 내세운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에 표를 던졌던 뉴타운 주민들 사이에 ‘우리가 속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뉴타운 지역에서는 이웃사촌이 찬성, 반대로 갈려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곳곳에서 연일 반대 집회가 벌어지고 송사가 난무한다. 주민 반대로 뉴타운이 취소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뉴타운 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과 지자체의 방치 속에 주민 간 갈등을 겪고 있는 뉴타운 실태를 취재했다. 뉴타운 한파에 떨고 있는 건설사와 갈등을 풀 해법도 알아봤다.
8월 4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당고개역. 역 플랫폼에 진입하기 전 전철 밖으로 ‘주민 재산 강탈하는 뉴타운 즉각 철회하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역을 나서자마자 오른편 2층 상가와 왼편 4층 상가 건물에도 커다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분양가도 몰라! 사업성도 몰라! 뉴타운 환상 속에 원주민은 깡통 찬다’.

상계3·4동을 6개 구역으로 나눠 뉴타운 사업을 진행하는 이곳은 현재 4개 구역에 조합이 설립됐고 시공사 선정까지 마쳤다. 다른 뉴타운과 마찬가지로 한때 상계동 땅값은 들썩였다. 주민 반응도 좋았다.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재산도 늘 것이라는 기대 속에 재개발추진위원회와 조합 구성은 큰 탈 없이 이뤄졌다(뉴타운조합은 주민 75%의 동의를 받아야 구성된다).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6월 말 당고개역 인근 공원에서는 이 지역 주민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뉴타운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 지역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가 열린 건 처음이었다. 일부는 노원구청 앞에서 반대 시위를 했다. 지역 주민은 혼란에 빠졌다.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한 조합원은 “뉴타운 하면 오히려 손해라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조합 설립에 동의했던 이웃들도 표는 내지 않지만 (뉴타운을) 안 했으면 하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부 지역처럼 뉴타운 지정이 취소될 만큼 반대 여론이 대세인 건 아니다. 상계동에서 32년째 거주하고 있는 김모씨는 “이제 와 취소하면 다른 대안이 있느냐”며 “전문 반대꾼들이 주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단골 한의원 원장이 반대 모임을 주동하는데 이제는 거기에 다니지 않는다”며 “동네가 흉흉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방선거·총선 때 뉴타운 공약 남발뉴타운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은 상계동만의 얘기가 아니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곳은 전국 77개 지구 719구역이다. 면적은 8000만㎡,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만 100만 명에 달한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각각 35개 지구, 23개 지구가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18대 총선 때 뉴타운 공약이 남발되면서 지정된 곳들이다.

본지 취재 결과 서울·경기 58개 지구 중 40여 곳이 뉴타운 추진 찬반을 둘러싸고 주민 간 크고 작은 갈등을 빚고 있었다. ‘전국뉴타운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연합’에 따르면 전국 200여 구역에 뉴타운을 반대하는 ‘비대위’가 구성됐다. 갈등은 뉴타운별로 지정 단계부터 추진위 구성, 조합 설립, 사업시행, 관리처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벌어진다.

갈등은 점차 심해지는 양상이다. 소송이 난무하고 주민 간 물리적 충돌도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상대의 뉴타운 관련 행정소송이 53건 진행 중이다. 2007년 이후 전국에서 제기된 뉴타운 관련 행정소송은 220여 건에 이른다. 2007년부터 올 5월까지 서울·인천·경기도 소재 법원에 접수된 뉴타운 관련 민사사건은 4400여 건에 이른다. 뉴타운 시행 초기에는 재개발 이후 재정착하기 힘든 세입자가 주로 반대했다면 요즘은 집과 토지를 소유한 주민이 반대 진영에 가세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뉴타운이 이른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뉴타운 사업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서울 241구역 중 착공한 곳은 32곳뿐이다. 경기도는 23개 지구 중 6곳이 주민 반대로 뉴타운이 취소됐다. 부동산컨설팅 회사 유엔알컨설팅의 박상언 사장은 “정치권의 표심 잡기 공약과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개발 계획으로 시작된 뉴타운 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정치권과 지자체는 뒤늦은 반성과 대책을 내놓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최근 “뉴타운은 실패한 사업”이라며 “터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더 이상 뉴타운 추가 지정은 없다”고 했다. ‘뉴타운 민심’에 놀란 정부, 정치권, 지자체가 뒤늦게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 해법은 아직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오히려 주민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오면서 ’민민(民民) 갈등’만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고 있다. 서민 주거안정과 주거의 질을 개선한다는 뉴타운은 누더기가 된 채 무더기 싸움판으로 변질됐다. 이웃사촌만 원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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