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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한국 기업 유럽 명품 브랜드 정조준

[Business] 한국 기업 유럽 명품 브랜드 정조준

뉴욕 플라자호텔의 쇼핑 아케이드인 ‘플라자 리테일 컬렉션’ 에 들어서면 개방적인 분위기로 꾸며진 입구에 MCM 매장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이 M&A(인수합병)에 신선한 한 방을 날렸다(Korea Takes a Fresh Swing at M&A).’ 7월 31일 미국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는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 컨소시엄이 최근 세계 최대 골프사인 아큐시네트를 인수한 것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탈리아 브랜드 휠라를 인수해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낸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은 미래에셋 사모펀드와 손잡고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해 지난 6월 아큐시네트를 인수했다.

국내 대표적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은 8월 3일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프랑스 향수 브랜드 아닉구딸을 300억원에 인수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명품 브랜드 인수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모레퍼시픽 김효정 부장은 “이번 인수로 럭셔리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한편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서의 인지도 역시 제고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아시아 신흥시장의 향수사업 확대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1억 넘는 악어백 브랜드 인수 추진국내 패션기업 이랜드는 고급 여행 가방 브랜드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만다리나 덕을 품에 안았다. 인수 금액은 부채 포함해 약 700억원 정도. 만다리나 덕의 경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기업인 부라니 그룹에 속해 있던 브랜드로 이번 인수는 해외 패션업계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최고가 1억원을 호가하는 이탈리아 악어백 브랜드 콜롬보의 경우 국내 패션 유통업체 오르비스가 인수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1998년 국내 기업인 오르비스 인터패션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뒤 상위 1%를 위한 이른바 ‘시어머니용 혼수용품’으로 유행하며 매출이 급증한 브랜드다. 이탈리아 명품시장 심장부에 재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지름길’로 여겨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 인수’라고 하면 그동안 유럽 명품 기업을 비롯해 일본이나 대만 등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기업들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됐다. 그러나 최근 한국이 이 대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판도를 바꾸고 있다. 명품 인수에 열을 올리는 국내 기업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해외 브랜드 인수 이후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건 가죽 전문 브랜드 MCM이다. MCM은 1976년 독일에서 탄생했으며 국내엔 1991년 라이선스로 들어왔다. 2005년 성주그룹 김성주 회장이 인수했다. MCM은 2005년 인수 당시 연매출 700억원에서 2010년 285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시장에선 루이뷔통 다음으로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미국 고급 백화점 삭스 피프스에 입점하는 등 현재 32개국 156개 판매처에서 판매 중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본점 1층에 입점하며 루이뷔통 등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며 “최근 백화점 성장세가 가장 높은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고 말했다.

김성주 회장이 MCM을 인수한 배경은 패션업계에서 아직 미약한 ‘코리아 파워’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브랜드가 주름잡는 명품업계에서 한국의 인지도는 매우 낮은 게 현실이다. 국내 브랜드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엔 뛰어나지만 제대로 된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지 못해 명품 인수에 나선 것. 김성주 회장은 럭셔리 시장이 본격화하고 있는 중국시장을 타깃 마켓으로 선정하고 5년 안에 중국시장 매출을 4000억∼5000억원 규모로 키운 뒤 전체 회사 매출을 1조원대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금융위기 후 매물 늘어100년 역사의 휠라를 인수한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은 휠라 인수에 대해 “브랜드 노하우를 빠르게 습득하기 위해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힘’으로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지만, 우선 글로벌 브랜드와 대항할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해선 기존 명품 브랜드가 지닌 기업 분위기와 운영 노하우를 재빨리 체득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의 해외 브랜드 인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활발해졌다. 유럽 브랜드가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매물로 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경우 지난해 중국 기업에 인수된다는 루머가 돌았다. 베르사체·지안 프란코 페레 등은 파산 위기에 놓였다.

명품업계에선 이미 명품의 중심축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본다. 지미추와 멀버리, 에스까다, 랑방 등 유명 명품업체의 대주주가 속속 아시아 자본으로 바뀌고 있다. 멀버리는 싱가포르 여성 사업가인 크리스티나 옹이, 프랑스 패션업체 랑방은 2001년 대만의 왕패밀리가 인수했다. 자금난으로 파산했던 독일의 명품 브랜드 에스까다는 인도 재벌 부호 락슈미 미탈의 며느리인 메가 미탈이 2009년 인수했다.

특히 최근 들어 유럽 남부를 강타한 재정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알짜 매물’이 싼값에 시장에 나오고 있다. 만다리나 덕을 인수한 이랜드도 이탈리아 부라니그룹이 2008년 브랜드를 사들일 때 지불한 840억원보다 약 140억원이나 싼 가격에 인수했다. 프랑스 브랜드 루이까또즈를 인수한 태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브랜드 인수 성공 뒤 프랑스·이탈리아 등 중소 업체로부터 인수 가능성 여부를 묻는 문의가 상당히 많아졌다”고 밝혔다. 루이까또즈는 론칭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매출액 1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2% 이상 성장했다. 2009년 프랑스 명품 거리에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단독 매장)를 오픈하는 등 명품 이미지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남영비비안이 인수한 명품 속옷 바바라도 마찬가지다. 90년 역사의 프랑스 브랜드 바바라는 한때 연간 매출이 700억원에 이르는 세계적 인기 브랜드였지만 경영난에 시달려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남영비비안이 400만 유로(약 60억원)에 인수했다. 남영비비안 관계자는 “세계 70개국에 이미 진출해 있는 바바라의 제품, 유통 노하우와 국내 브랜드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올해 브랜드 내실화를 통해 유럽·미주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패션업계에선 OEM 방식 전문 국가로 그친 한국의 이미지를 한층 높일 수 있는 기회”라면서도 “기존 브랜드와의 시너지 효과 등을 충분히 검증하는 작업 없이 마구잡이 인수에 나서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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