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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성 교수의 문화예술 경영 토크① - 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

서용성 교수의 문화예술 경영 토크① - 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


미국 애플에서 시작된 ‘감성 코드’가 글로벌 경제의 화두다. 그중에서도 문화와 예술은 시대를 아우르는 부드러움의 원천이다. 서용성 한양대 사회교육원 교수가 그 주인공들을 찾아간다. 첫 이야기 손님은 서울예술학원 이사장이자 참빛그룹 창업주인 이대봉(70) 회장이다.
이대봉(왼쪽) 회장은 그림을 받치는 이젤처럼 예술 영재들의 든든한 지지대가 되고자 한다.

8월 16일 덕수궁 정동길의 예원학교에 들어서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4년 만인가, 그를 만나는 것이….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은 24년 전 장학회를 설립해 예술 인재 양성에 힘써왔다. 그렇다 해도 지난해 8월 이 회장이 서울예술학원을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서울예술학원은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경영하는 학교법인이다). 그가 서울예고와 어떤 인연으로 맺어졌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들추기엔 너무도 아픈 사연이기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얼굴을 보자 반가움이 앞섰다.



서용성 안녕하셨어요. 여러 번 찾아뵈려고 했는데 한국에 안 계셔서….



이대봉 그러게 말입니다. 작년에 외국에 있었던 날이 286일인가. 한국에 들어오면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서용성 어느 나라에 많이 가십니까?



이대봉 주로 베트남에 있어요. 2008년 하노이에 54홀 규모의 용봉휘닉스골프리조트를 개장한 데 이어 지난해 9월엔 그랜드프라자하노이호텔과 참빛타워를 세워 뿌듯하네요.

참빛그룹은 1975년 설립한 동아항공화물(현 동아항공)을 모태로 출발했다. 현재 참빛가스산업, 참빛동아산업, 참빛원주도시가스 등 20여 개 계열사를 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 해외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서용성 베트남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대봉 언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나. 1990년대 백두산 관광을 다녀와서 해외로 눈을 돌렸어요. 험한 백두산 등산로를 보니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국 지린성 정부와 협의 끝에 96년 등산로를 열었어요. 다음해에는 백두산 높은 곳에 천상온천관광호텔을 지었습니다. 그게 소문이 나서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서 골프장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해란강 변에 36홀 규모 골프장을 지었지요. 그런데 겨울이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 골프를 칠 수 있어야지요. 여름에도 골프를 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알아보기 위해 6개 나라를 돌아다니다 베트남 하노이를 발견했습니다. 하노이는 가장 추울 때가 한국의 초가을 날씨 정도예요. 주변 경관도 아름답고요. 골프장 완공을 계기로 하노이시 특급호텔 사업권을 따내 호텔까지 문을 열었습니다.



서용성 참빛그룹의 밑바탕이 된 항공화물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이대봉 미국에서 부두 파업이 일어나는 바람에 항공화물 수요가 엄청났어요. 정부에 허가를 신청해 그때 개장한 김해국제공항에서 사업을 시작했지요.



서용성 한국 항공운수업 1세대시죠?



이대봉 허허, 안 그래도 작년에 36주년 기념행사를 했어요. 요즘은 외국 회사가 90% 이상 시장을 잠식해 아쉬워요. 동아항공화물을 설립한 자본금을 고물장수를 해서 모았다면 믿겠어요? 부산에서 사업을 하다 크게 망해 거의 야반도주하다시피 서울로 왔어요. 집을 구하고 보니 위층에 사는 사람이 고물을 취급하더라고요. 그걸 해서 돈을 상당히 벌었어요.

이대봉 회장이 국제무용콩쿠르에서 입상한 예술 꿈나무들과 함께했다.

잊을 수 없는 1987년, 그리고 서울예고



서용성 그게 언제, 어디쯤입니까?



이대봉 서울 용두동 어딘데 지금은 없지. 1967년이었을 거예요, 아마.



서용성 67년은 예원학교가 개교한 해 아닙니까. 그때 용두동에서 고물장수를 하셨다니, 참 앞날은 알 수 없습니다.

이 회장이 항공물류, 관광업만큼 공을 들인 분야가 또 있다. 바로 장학사업이다. 그는 예술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남몰래 돕는 키다리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참빛그룹은 1988년 이대웅음악장학회를 설립해 매년 11월 26일 한국성악콩쿠르를 개최한다. 내년이 25회째다. 해외에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학생이 베트남 전쟁열사 유가족 자녀 100명, 북부 화빙성 소수민족 학생 300명 등 500명에 이른다. 국내에서는 매년 예술 인재 100명에게 이대웅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대웅. 서울예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는 이 회장의 막내 아들이다. 성악을 공부하던 대웅군은 서울예고 2학년 때 학교 선배의 폭행으로 학교에서 숨졌다. 어렵게 얘기를 꺼냈지만 이미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을 용서한 듯 목소리가 담담했다.



서용성 올해 24회 콩쿠르가 열리니 24년 전인가요?



이대봉 휴…. 동아항공화물을 할 때였지요. 1987년 11월 23일 대웅이가 성악 발표회를 했어요. 엄마, 형은 다 왔는데 아버지는 안 왔다고 서운해 했지요. 세계적인 성악가가 돼 외국에서 공연하면 가겠노라고 하고선 미국에 출장을 갔어요. 둘째 날 자고 있는데 전화가 왔더라고. 발표회 때 인기가 좋았던 게 선배들에게 곱지 않게 보였는지 뒷산으로 불러냈대요. 건방지다고 하니까 대웅이가 영문도 모르고 빌었는데 그 상급생이 돌아서면서 복부를 쳤어요. 한 대 맞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걸 ‘내가 무슨 죄가 있어’라며 대들었대요. 그러니까 또 복부를 때렸다고 해요. 그 순간 심장마비가 왔는데 선생님들은 다 점심 먹으러 나가고 학교에 차가 한 대도 없어 병원에 늦게 옮겼어요. 내가 전화로 의사들한테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꼭 살려야 한다’고 하니까 ‘벌써 냉동실에 들어갔다’ 이러더라고….

학교 인수한 것 후회 안 해



서용성 저도 서울예고를 나왔습니다. 서울예고 출신이라면 그 일을 거의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때 가해자 학생이 처벌 받지 않기를 바라셨던 게 정말인가요?



이대봉 처음에는 다 엎어버리겠다고 학교에 갔어요. 분노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학교고 선생이고 교장이고 때린 아이고 전부 다, 내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만 있다면 돈이든 뭐든 했을 거야. 그런데 아이를 보니 상처도 없고 편안해 보여. 아, 얘가 노래를 잘하니까 하늘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일찍 데려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용서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선처를 부탁했지만 담당 검사가 ‘검사 생활 10년 넘게 했지만 자식을 때려 죽인 사람을 용서해 달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거절하기에 내가 직접 구명운동을 해서 가해자 학생이 풀려났어요. 학교에서 추도예배라도 드리게 해 달라고 해서 대웅이가 노래하던 강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영하 12도에 학생들이 운동장에 줄을 서서 우는데 그게 내 귀에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죽었을 때 국민이 우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더라고요.



서용성 다시 쳐다 보기도 싫었을 텐데, 그런 학교를 위해 장학회를 만드신 게 놀랍습니다.



이대봉 당시 우리 애를 가르치던 선생님한테 어떻게 하면 아이를 평생 잊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물었더니 그러면 성악 콩쿠르를 열어 장학금을 주자고 하더라고요. 예술 앞에 폭력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고 내 아이를 평생 기억할 수 있게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서용성 아무리 그래도 인수까지 하는 건 더 괴로운 일 아닌가요?



이대봉 물론 쉽지 않았죠. 지금 생각하면 대웅이가 학교를 인수하게 해 준 것 같아요. 전 재단 이사장이 부채를 50억원 남기고 도피하는 바람에 학교가 빚더미에 앉았다고 하더군요. 네 군데 기업이 입찰을 신청해 제가 인수하기로 결정 났어요. 23년 동안 대웅이 이름으로 장학사업을 해 왔는데 학교가 어렵다고 하니…. 사실 경제위기도 있었고 작년에 베트남 호텔 사업을 하느라 사정이 어려웠어요. 부산에서 제일 잘되는 13층 빌딩을 학교에 내놓고 110억원을 털어 그걸로 어렵게 인수했습니다. 내 뜻과 대웅이 뜻을 이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서용성 사모님 반대는 없었습니까.



이대봉 집사람은 그 일이 있고 몇 번이나 기절을 해 응급실에 실려가곤 했어요. 나도 옛날에 노래를 참 잘 불렀는데 그 일로 목이 완전히 잠겨 말이 잘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아내도 학교를 인수한 것은 참 잘했다고 합디다. 그 전에는 학교를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애정이 많아요.



서용성 그럼 그때 일을 계기로 문화예술 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가요?



이대봉 어릴 때부터 ‘로렐라이’ 같은 가곡을 즐겨 부르곤 했지만 특별히 문화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어요. 대웅이가 성악을 해서 박수를 받는 걸 보면 그저 흐뭇했죠. 그쪽 분야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학교니까 학교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학교 경영이 정상화되면 하늘에서 대웅이도 기뻐할 거예요. 아이 넋을 기리다 보니 저절로 문화예술에 관심이 생겼네요.



서용성 제가 서울예고에 다닐 때만 해도 시설이 낙후된 편이었지만 얼마 전에 가서 보니 연주홀도 잘돼 있던데요.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학교를 운영할 계획입니까.



이대봉 가장 먼저 할 것이 과밀 학급을 없애는 겁니다. 학생 수를 줄이고 선생 수를 늘려 전문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서울예고에 공연장을 짓고, 예원학교는 신관을 증설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서용성 한국의 문화예술이 발전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대봉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국제성악콩쿠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유명 성악가가 출전하는 콩쿠르가 3~5년에 한 번씩 열리면 학생들에게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거예요. 장학금과 레슨비 지원 범위도 점차 확대할 계획입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이 회장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문화예술 인재를 양성하는 의지로 승화시켰다. 한 명이라도 더 재능 있는 학생을 길러내 한국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이 회장의 뜻이자 먼저 간 막내아들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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