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 동남아 ‘숨은 보석’ 캄보디아를 가다
[Repo] 동남아 ‘숨은 보석’ 캄보디아를 가다
8월 16일 새벽 비행기가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 내려앉자 활주로에 뿌연 모래바람이 일었다. 활주로의 포장이 덜 된 탓이다.
공항에서 프놈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 주변은 한국 음식점과 ‘KTV’로 통칭되는 유흥주점이 즐비했다. 손님 없는 주점에서 붉은 조명을 받은 여성들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도로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 ‘뚝뚝’으로 가득 찼다. 서울과 시차는 불과 2시간뿐이지만 마치 1960년대 어느 시골에 내린 듯 심리적 시차는 무척 큰 느낌이다.
한국의 1960년대 시골 풍경
흔히 보이는 광고판에 혼다 오토바이를 탄 신부의 사진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는 남자가 혼수를 장만한다. 오토바이는 기본 혼수품목이다.
오토바이는 무법천지로 다니는 자동차를 알아서 피했다. 자동차는 왼쪽 방향 지시등을 켠 채 중앙선을 넘나들었다. 도심에서도 신호등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교통량이 현저히 줄어든 밤시간이 돼야 자동차가 시속 60㎞를 낼 수 있다.
캄보디아가 속한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태국이 있다.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이들 나라는 인도의 동쪽, 중국의 남쪽에 끼여 두 가지 문화가 혼재한다. 태국을 제외한 이들 나라는 유럽 열강의 지배 아래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지배한 식민지 상황은 1948~1954년 무렵에나 끝났다.
캄보디아는 입헌군주제지만 국왕의 상징성은 낮은 편이다. 대신 총리의 권한이 막강하다. 훈센 총리가 집권할 당시 베트남 군부를 끌어들인 탓에 현재 캄보디아 주요 이권이 베트남 수중에 있다. 예를 들어 세계의 관광객이 즐겨 찾는 앙코르와트의 1일 관람료 25달러 중 상당 부분은 곧바로 베트남 국고에 귀속된다. 사회가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프놈펜 시내 한 대학의 경제학 교수는 “캄보디아 정부는 외신기자와 깊은 대화를 나눈 교수에게 불이익을 준다”면서 입을 열었다. 그는 “대학의 거의 모든 모임에는 군부 인사가 관여돼 있고, 언론 및 출판물에 대한 검열도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훈센은 자신의 직업을 총리라고 말할 정도”라며 “캄보디아 경제발전이 더뎌 시민의 삶이 더욱 피폐해지면 재스민 혁명 같은 일이 이곳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겠느냐”고 푸념했다.
도농 간 격차가 크고 부패도 만연해 있다. 프놈펜 사람은 캄보디아를 ‘프놈펜과 그 외 시골’로 나눈다. 한국에서 서울과 지방으로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격차가 훨씬 크다. 교통 지옥을 겪는 프놈펜 시내와 달리 시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면 거의 원시림에 가까운 자연이다. 제2 도시라고 할 만한 곳도 거의 없다. 프놈펜에서 일하는 일반 노동자의 월급은 40~60달러 수준이다. 프놈펜 밖에서 월급은 10~20달러를 넘기 어렵다.
공무원은 일반인에 훨씬 못 미치는 월급 20달러를 받는다. 이 때문에 길을 가다 차를 세우는 경찰에게는 그냥 아무 말 없이 1달러를 쥐여준다. 외국인은 2달러를 줘야 한다. 이유는 “외국인이기 때문”이란다. 입국비자를 받을 때도 이런 일이 흔했다. 비자 용지를 나눠주던 한 공무원은 비자 신청을 돕는 척하다 25달러를 요구한다. 25달러를 내면 줄을 설 필요도, 사진을 부착하지 않아도 된다. 본래 입국비자 요금은 20달러. 5달러는 공무원 몫이다.
아직 자본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인도차이나 반도가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 편입된 건 태국과 베트남이 신흥시장으로 분류되면서다. 그러면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숨은 보석’인 캄보디아의 빗장도 활짝 열렸다. 한국·중국·일본 자본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캄보디아의 외국인 투자 순위 5위다. 2010년 8월 기준 중국이 6억7500만 달러, 말레이시아 1억5200만 달러, 베트남 1억1400만 달러, 대만 5300만 달러에 이어 36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한국·중국이 적극 투자 나서한국은 특히 2006년 전체 외국인 투자액의 절반에 이르는 10억900만 달러를 전격 투자하면서 캄보디아에 한국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다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춤하는 사이 중국이 전면에 나섰다. 중국은 2008년에만 43억7100만 달러를 캄보디아에 쏟아부었다. 캄보디아는 투자 순위에서 좀 밀렸지만 한국을 투자 여력이 큰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해 하반기 조사한 국내 자본의 캄보디아 투자 내용을 보면 부동산업 및 임대업이 46%, 건설업이 25%, 제조업이 10%로 나타났다. 캄보디아에 투자한 국내 기업은 삼성·현대차·포스코건설·신한은행·동양증권을 비롯해 544개사에 이른다.
캄보디아가 주목 받는 이유는 저임금 경쟁력이다. 캄보디아 정부에 따르면 전체 인구 가운데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30세 미만 연령층이 70%가 넘는다. 그럼에도 20~30대 청년층 실업률은 30%가 넘는다. 얼마를 주든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널려 있다. 프놈펜의 화이트칼라 회사원은 80달러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 외국계 회사에서는 100달러 넘게 준다. 그래서 캄보디아에서는 2잡, 3잡이 흔하다. 새벽에 시장에서 일하고 아침에는 회사에 나갔다가 저녁에는 ‘뚝뚝’을 모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버는 평균 월급은 120달러 정도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프놈펜에서 2잡을 하고 있는 초인 보인(22)은 “물가가 너무 올랐는데 월급은 그대로라서 내년에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청소일을 더 할 예정”이라며 “외국인은 팁으로 1달러씩 주는데 일당보다 더 많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에 5시간 넘게 자본 적이 없다는 그는 “프놈펜에는 언제나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누구나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의 지난해 GDP(국내총생산)는 46조 리엘, 미화 약 114억 달러 수준이다. 농업 비중이 GDP의 25%가 넘는다. 질 좋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가공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농산물은 헐값에 베트남으로 넘어간다. 베트남은 이걸 가공해 캄보디아에 비싸게 되판다. 이 때문에 농산물을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베트남만 좋은 일 시키는 형국이다. 캄보디아의 일반인이 먹는 한 끼 식사는 0.5달러 수준이다. 베트남 커피로 만든 ‘카페 딱고따꺼(연유를 넣은 아이스 커피)’ 가격과 거의 같다.
2차 산업 거의 없어농경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캄보디아에는 2차 산업이 거의 없다. 그나마도 의류 공장이 대부분이다. 공산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관광수입을 제외하면 달러를 벌어들일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달러 부족에 시달린다.
2차 산업을 키우려고 해도 도로·철도·항만 등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의 경부선에 해당하는 주요 고속도로가 왕복 2차로다. 고속도로에서 추월하려면 중앙선을 넘어야 한다. 이 때문에 대형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고속도로에서 시속 80㎞로 달리는 차 앞에 소가 한가로이 앉아 있는 경우도 흔하다. 가로등도 거의 없다. 시내외를 막론하고 교통편도 별로 없다. 먼 시외로 갈 때는 승합콜택시를 불러 간다. 출발지는 자신의 집이고, 도착지는 그냥 누구네 집이다. 대형 버스회사는 있지만 변변한 터미널이 없는 형편이다.
철로는 일부 있지만 산업용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국토 대부분이 평지지만 넓은 늪지대가 많아서다. 늪 위로 모래를 쌓아 다진 뒤 레일을 놓아야 하는데 지반이 물러서 레일이 끊어지거나 침수될 우려가 크다. 항구도 매우 좁아 물건을 실어 나르기 어렵다. 프놈펜 항구는 컨테이너 30여 개만으로도 가득 찬다. 프놈펜에서 전기가 끊어지는 일은 흔하다. 정전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가전제품의 수명도 그만큼 짧다.
그래서 웬만하면 비싼 가전제품은 사지 않는다. 수도에서 북서쪽에 있는 시엠립은 태국에서 전기를 끌어와 쓴다. 그나마 북동쪽 스땅뜨리엥은 자체 발전기를 돌린다.
풍족하진 않지만 어렵지 않게 개발할 수 있는 천연자원도 인프라 부족으로 무용지물인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에도 깜꿍 지역에 세계 사용량의 절반에 이르는 대규모 텅스텐 광산이 발견됐다. 캄보디아 정부는 그러나 이걸 실어 나를 수 있는 도로나 철도 설비가 부족하다며 광산 개발을 보류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인프라 개발에 외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지금까지 아시아개발은행이나 세계은행의 원조나 민간 직접 투자에만 의존했다. 앞으론 달라진다.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할 예정이다. 8월 1일 프놈펜에는 캄보디아거래소가 출범했다.
거래소 지분은 한국거래소가 45%, 캄보디아 재정부가 55%를 가지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거래소를 통해 도로, 항만, 통신 등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금을 모을 계획이다. 인프라 구축과 동시에 농작물을 가공할 수 있는 공장 설립도 서두르고 있다. 농민을 공장 노동자로 끌어들여 2차 산업을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동남아 농산물 유통 허브 유망동양증권 한경태 법인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는 부동산 개발이 붐을 이뤘다가 지금은 농업과 자원개발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캄보디아는 지형적으로 동남아시아의 핵심권에 위치해 동남아시아 관광 허브, 메콩강 주변국을 연결하는 농수산물 유통허브로 개발할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이 관심을 둘 만한 분야다.
장기집권 중인 훈센 총리는 최근 “2012년까지 세계 최빈국 딱지를 떼겠다”고 공언하고 외국인에게 시장을 적극 개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투자가 늘고 있다. 캄보디아의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부산저축은행 사건 역시 중국과의 투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한국이 무리하게 서두르다 벌어진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투자 유치를 서두르고 있지만 적지 않은 국민이 냉소적인 반응이다. 프놈펜에서 자동차로 9시간 걸리는 시골의 한 직업학교 기관장은 “외국 자본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많지만 총리 일가와의 거래일 뿐”이라며 “캄보디아인 대다수는 구매력이 없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생기든 자본시장이 어떻게 개방되든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외국 투자와 함께 국민 다수를 산업자본에 참여시켜 인도차이나 반도의 보석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 한경태 동양증권 캄보디아 법인장
“증시 활성화로 기업 투자도 늘 듯”
캄보디아 재경부(MEF)는 프놈펜에 주식거래소를 개설했다. 캄보디아거래소는 캄보디아 정부 지분 55%, 한국거래소 45%의 합작 거래소다. 이 때문에 한국의 여러 증권사가 캄보디아 주식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동양증권은 가장 먼저 캄보디아에 들어가 캄보디아 재경부 금융자문사로 선정됐다. 동양증권은 현재 캄보디아 대표 국영기업 3곳에 대한 IPO(기업공개) 주관사 계약을 했다. 동양증권의 한경태(41·사진) 법인장에게 캄보디아 시장 상황을 들었다.
캄보디아 진출 배경과 준비과정은.“캄보디아는 베트남과 더불어 동양증권의 동남아시아 진출 전초기지다. 사무소를 2006년 말에 세웠는데, 당시 캄보디아에 진출한 최초의 증권사였다. 진출 이후 거래소 개설 전까지 몇 가지 프로젝트에 대한 타당성 조사, 장기적인 진출 전략 수립을 위한 시장 조사에 집중했다.”
경제 개발에 필수인 인프라가 너무 부족한 듯하다.“캄보디아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분야가 바로 인프라다. 동일한 품질의 원자재나 농산물을 유리한 가격에 현장에서 생산하더라도 저급한 물류 인프라 때문에 비용이 늘어난다. 이게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외국 원조나 금융 지원의 우선순위를 인프라 구축에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반응은.“캄보디아는 자본시장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확실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해외 투자자의 관심이 커지며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외국인 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투자 후 회수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었다. 주식시장 설립은 그런 우려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중요하고 확실한 수단이다. 다만 자본시장이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혜택이 경제 전반에 미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동양증권의 현황은 어떤가.“현재 캄보디아 증권산업 발전 초기에서 유리한 위치로 출발했다. 현지 1호 종합증권사이고 캄보디아 1, 2호 IPO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중요 기업과 프로젝트에 대한 사업기회를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나를 포함해 한국인 2명이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 본사와 홍콩 지사에서 3명이 파견 근무 중이다. 캄보디아 현지인 직원은 9명을 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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