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지식에 감성을 얹었다, CEO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경험과 지식에 감성을 얹었다, CEO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7월 28일 오전 11시30분 제주 신라호텔 한라홀. 250명의 CEO가 이봉서 한국능률협회(KMA) 회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KMA에서 준비한 3박4일의 하계 세미나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이 회장은 “여러분의 열정과 노력이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며 “이곳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토론했던 내용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하는 CEO들의 표정은 밝았다. 수준 높은 강연을 들으며 자기계발 시간을 보내는 동시에 잠시 경영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CEO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네트워킹을 강화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는 게 참가자들의 전언이다.
올해로 37회를 맞이한 KMA 하계 세미나는 한국 CEO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아이디어를 제공해온 지혜의 향연이다. 7월 25일 시작한 이번 세미나의 슬로건은 ‘아시아를 넘어 미래의 중심에 서자’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이미 글로벌 기업과 해외 경제연구소, 대학의 주요 관심사다. 과거에는 놀라운 속도로 이룬 번영이 주제였다면 최근에는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달리는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KMA는 이런 분위기에 맞춰 한국의 경쟁력을 조명하고 미래 트렌드를 조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KMA 세미나는 출중한 강연진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유럽 최고의 한상 권영호 인터불고(IB) 회장, 동대문 상인의 신화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테스코 본사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한국을 찾게 만든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CEO들이 눈에 띈다. 안도현 시인, 김세철 명지병원장, 손철주 미술 칼럼니스트, 장일범 음악평론가, 신상훈 서울종합예술대학 교수 등은 세미나를 풍성하게 했다. 각 분야 강사만 23명이다.
권영호 회장의 성공과 나눔기조강연은 이희범 STX중공업·건설 회장이 맡았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 주요 경제 수치를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197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는 과정을 설명하며 그는 수차례 기적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 회장은 “2011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경제의 견인차는 바로 여러분, 기업가”라며 “선진국 문턱에 도착한 지금 더욱 힘을 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세미나의 첫 번째 강연의 문은 박재희 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 원장이 열었다. 주제는 ‘고전에서 배우는 행복’. 그는 고전에 등장한 선인들의 사례를 인용해 인생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설명했다. 그는 “진정한 행복은 성공과 반드시 함께 가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행사 첫날 저녁 만찬은 제주 하얏트호텔 클리프가든에서 진행됐다. 참석자를 위해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이 특별히 준비한 자리였다. 바다가 보이는 가든에서 열린 바비큐 파티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CEO와 가족들에게 즐거운 추억이 됐다. 가든 만찬은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마무리됐다.
둘째 날 세미나는 신라호텔 한라홀과 로터스홀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한라홀에서는 기업인과 경영 전문가들의 강의가 있었다. 로터스홀에서는 문화 강좌가 열렸다.
오전 8시 한라홀에서 권영호 IB 회장의 강연이 있었다. 그는 20대에 혈혈단신 스페인에 건너가 지금 국내 사업부만 매출 1조원이 넘는 IB그룹을 일궜다. 그가 말한 성공의 법칙은 절약. 그는 아직도 소형차를 직접 몰고 다니고, 비행기도 이코노미클래스만 고집해 왔다. 술, 담배도 돈이 아까워 가까이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쌓은 부를 아낌없이 이웃과 나누고 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다.
같은 시간 로터스홀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린 신상훈 서울종합예술대학 교수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1분마다 폭소가 터진 강연의 주제는 ‘피식 하고 웃는 것이 행복이고 인생이다’였다. 그는 “웃는다고 열악한 상황이 바뀔 리는 없지만 일단 기분은 풀리지 않느냐”며 “한 걸음 떨어져 여유 있게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웃음만 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신상훈 교수의 행복론 동대문시장 출신 기업인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이야기도 흥미를 끌었다. 그는 동대문시장 골방에 3.3㎡ 크기의 매장 ‘크라운’을 열며 패션계에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그가 여성 캐주얼 의류 업계 1등 기업의 CEO가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최 회장이 말한 성공의 비결은 ‘차별화 전략’이다. 그는 동대문시장 상인 중 최초로 브랜드를 등록했고, 품질과 디자인을 차별화하며 여성의류 시장에 바람을 일으켰다. 최 회장은 “좋은 물건을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는 기업은 소비자의 관심을 모으게 마련”이라며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 형지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마지막 강의는 김세철 관동의대 명지병원장이 맡았다. 김 원장은 비뇨기과 전문이다. 이날 강의도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그는 터놓고 얘기하기 쑥스러운 주제인 부부간 사랑을 재치 있고, 품위 있게 다뤄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은퇴 이후 가족과 함께 노년을 보내고 싶으면 젊어서부터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폭넓은 대화와 서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애정 표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후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제주 올레길을 걷거나 경마장을 찾아 조랑말을 타는 이벤트가 준비됐다. CEO 대부분은 여름 휴가 일정을 사용해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곳에 7년째 참석하고 있다는 손복조 토러스증권 사장은 “하계 세미나는 휴식과 재충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는 게 다른 세미나와 다른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이 단체로 참석한 곳도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곳이 글로벌 사료전문 제조 기업 카길애그리퓨리나다. 이 회사는 5년 넘게 10여 명의 경영진이 가족과 함께 하계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박유원 카길애그리퓨리나 이사는 “회사에서는 함께 일하는 동료지만 제주를 찾을 땐 모두 가족처럼 느껴진다”며 “가족까지 서로 알고 지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다”고 전했다.
셋째 날인 27일에는 오준호 KAIST 교수와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이 각각 ‘로봇의 미래’ ‘바이오 산업의 허브’를 주제로 강연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미래 산업에 대한 CEO들의 관심은 높았다. 강연을 마치자 현재 기술 수준과 산업화, 글로벌 기업과의 차이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지식 파트너로 참석한 한국IBM의 다양한 강연도 진행됐다. IBM은 1900년 집계한 상위 25개 미국 기업 가운데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4개 기업 중 하나다. 한국IBM의 첫 번째 강연은 이휘성 사장이 준비했다. 그는 “IBM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열린 기업문화가 있다”며 “형식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기에 100년 넘게 지속성장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이 사장 강연에 이어 이장석 부사장과 한상준 전무, 송진오 상무가 IT를 통한 기업 혁신, 정보를 활용한 비즈니스 통찰력을 주제로 강의했다.
셋째 날 특히 주목 받은 CEO는 김선권 카페베네 대표다. 그는 “스타벅스를 넘어서겠다”며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에 두 번째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며 “맨해튼을 중심으로 세계 공략을 가속화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커피전문점 후발주자였던 카페베네는 모두의 예상과 달리 지금 한국 커피 브랜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며 “같은 일을 미국에서도 해내겠다”고 밝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의 일부다. 이날 문화세션에서는 안도현 시인이 감성경영을 자극했다. 안 시인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삭막한 시대일수록 인문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녁에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음악을 연출한 서희태 감독의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그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시작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청중을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는 연주 사이사이 음악에 대한 에피소드를 설명하며 집중도를 높였다. 또 단원을 이끄는 리더로서 느낀 점을 이야기해 CEO들의 공감을 얻었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벤처 1세대 이민화 메디슨 창업주(현 한국디지털병원수출조합 이사장)가 나섰다. 그는 ‘창조적 실패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야말로 한국을 이끌어온 힘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내년엔 더욱 풍성하게이어 유통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회장은 한국에서 홈플러스가 거둔 다양한 성공사례와 위기 극복 과정, 그리고 새로운 도전, 자신의 경험담 등을 밝혔다. 이강호 한국그런포스펌프 대표는 이 회장의 강연에 대해 “개인적으로 하계 세미나에서 배운 것이 가장 많았다”며 “오늘 배운 내용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며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밝혔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행사장 입구에서 KMA 임직원이 CEO들을 배웅했다. 최권석 KMA 대표는 “매년 세미나를 진행할 때마다 참석하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내년에는 더욱 수준 높고 풍성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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