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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삼성 넘어 첫 재계 1위, 정몽구 회장 ‘뚝심’ 리더십 빛 봤다

현대차, 삼성 넘어 첫 재계 1위, 정몽구 회장 ‘뚝심’ 리더십 빛 봤다



올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9개 상장사 순이익은 9조1679억원으로 삼성그룹 13개 상장사 이익(8조1036억원)보다 많았다. 현대차그룹 출범 이후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3분기에도 순이익에서 삼성을 따돌릴 전망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재계 서열 1위였던 옛 현대그룹의 영화를 재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말이면 해외에 연산 350만 대의 생산기지도 확보한다. 세계 자동차 역사상 가장 이른 시간에 300만 대가 넘는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한 자동차 업체가 된다. 이럴 경우 국내와 합치면 연산 650만 대로 도요타·GM에 이어 세계 3위권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2020년에는 도요타를 넘어 세계 1위에 오른다’는 이야기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비결은 뭘까. 원화가치 하락과 세계 자동차시장의 판도 변화 덕을 봤다지만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원동력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품질과 현장을 가장 중시하는 그가 중심을 잡고 버텼기에 지금의 현대차그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따라가 봤다.
2010년 1월 시무식을 끝낸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동관 21층 회장실. 정몽구(73) 현대차그룹 회장이 김용환 기획총괄 부회장에게 말문을 열었다. “삼성그룹과 매출 차이가 얼마나 나는가. 언제 우리가(예전 현대그룹 시절) 삼성에 졌나. 삼성을 따라잡을 방안이 뭔지 알아보라.”

김 부회장은 일주일 후 삼성그룹 전체 매출과 현대차그룹 매출을 보고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대략 50조원 차이가 났다. 정 회장은 “삼성그룹을 이기려면 1조∼2조원씩 매출을 늘려서는 소용이 없다”며 “대형 매물을 인수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지시를 내렸다.

삼성그룹을 따라잡는 데는 자동차사업 매출만 늘려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대형 인수합병이 필요했다. 그 대상으로 하이닉스·현대건설이 물망에 올랐다. 매출 10조원의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1년 후인 2011년 1월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자가 되면서 현대건설을 품에 넣는 데 성공한다. 1999년 현대·기아차 회장을 시작으로 단 한 번의 사업실패 없이 승승장구한 정 회장이 또 한 번 자신감을 갖는 순간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재계 서열 1위는 현대그룹이었다. 당시는 현대·삼성·럭키금성(현 LG)·대우그룹이란 빅4가 연 매출 수조원 차이로 순위 다툼을 할 때였다. 당시 자산 규모로만 따지는 재계 랭킹 수위는 줄곧 현대그룹이었다. 더구나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1987년 11월 19일 작고하면서 재계 리더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이 구도는 얼마 가지 않아 달라졌다. 외환위기 파고에 대우그룹이 먼저 넘어졌다. 이어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작고하면서 현대그룹이 해체됐다. 그러면서 재계의 확고한 리더는 지난해 단일 기업 매출 130조원을 거둔 삼성전자를 내세운 삼성그룹만 남게 됐다.

해마다 삼성전자에서만 1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면서 삼성그룹은 외형과 내용 면에서 다른 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재계 전체가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는 형국이 됐다. 전경련 관계자는 “과거 10년간 사회적 현안이 되는 사안에 대해선 일단 삼성이 하는 걸 보고 다른 그룹이 이를 참고해 결정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한다.

최근 이런 재계 구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현대차그룹의 독자행보다. 특히 민감한 현안에 대한 대처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재계 전체의 분위기를 현대차가 선도하는 양상까지 나타났다. 삼성의 움직임을 지켜본 뒤 결정하던 과거 패턴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순이익에서 삼성 따돌려특히 8월 28일 발표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재 출연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공생발전’이란 어젠다를 제시한 후 재계가 이에 화답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는 사이 정 회장은 이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회동을 사흘 앞두고 5000억원에 이르는 개인재산 기부를 전격 발표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 자녀에게 충분한 교육 기회를 부여해 사회적 계층 이동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현대차는 사재출연 문제도 일단 삼성의 행보를 지켜본 다음 결정했다”며 “현대차에서 이런 어려운 문제를 먼저 치고 나가면서 여론을 주도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사재 출연 발표 다음날 ‘공생발전 시리즈 2탄’ 격으로 1조1500억원 규모의 납품대금 조기집행 계획을 내놓았다. 이 역시 삼성보다 한발 앞선 내용이다.

정 회장의 이 같은 적극적인 모습에는 기본적으로 실적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지진 여파로 일본 자동차 업체가 부진에 빠진 데 따른 반사이익도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인지도가 급상승하면서 미국·중국·유럽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진정한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특히 올 상반기 국내 상장사 순이익에서 현대차그룹은 처음으로 삼성그룹을 앞질렀다. 현대차그룹의 9개 상장사 순이익은 9조1679억원으로 삼성그룹 13개 상장사 이익(8조1036억원)보다 많았다. 현대차그룹은 3분기에도 순이익에서 삼성을 따돌릴 전망이다. 연합인포맥스 컨센서스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상장사는 3분기에 4조248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그룹 13개 상장사의 예상 순이익 3조9216억원보다 3000억원 넘게 많다.

여기에 항상 발목을 잡았던 현대차 노사문제도 3년째 무분규로 협상을 마쳤다. 올 초 인수한 현대건설도 안정을 찾아가는 등 현대차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호황이다. 이처럼 경영 기반이 탄탄해진 만큼 정 회장이 이젠 범 현대가 장자로서 부친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한 것으로 재계는 해석하고 있다.

요즘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에서는 ‘글로벌 빅3에 만족 못한다. 2020년에는 도요타를 넘어 세계 1위에 오른다’는 이야기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국내 재계 1위를 넘어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이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다.



통찰력 뛰어난 감각적인 경영현대차 관계자들은 요즘 ‘현대차가 왜 유독 잘나가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도요타 같은 세계 1위 메이커도 휘청거리는데 현대차가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원화가치 약세다. 현대·기아차가 좋은 실적을 올린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둘째는 2008년 하반기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몰아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다. 미국 같은 선진국 소비자가 새 차를 구매할 때 선택했던 가치 기준을 확 바꾼 계기가 됐다. 기존 평판이나 고급 브랜드에 의존했던 구매 패턴이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차’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어렵기만 했던 현대차의 미국 판매 신화가 시작됐다. 미국 시장에서 벤츠·BMW·렉서스로 대표됐던 프리미엄 브랜드, 품질 좋은 차의 대명사로 현대차보다 30% 비쌌던 도요타·혼다에 대해 미국 소비자들은 의문을 품게 됐다. 경기침체와 자산가격 하락으로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가격에 대비한 가치에 눈을 뜬 것이다. 5만 달러가 넘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과연 3만 달러 전후의 가격에 빼어난 모델 라인을 보유한 현대차보다 뭐가 나은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품질과 인테리어, 디자인뿐만 아니라 뛰어난 연비는 경제성에서 호평을 받았다. 아울러 도요타가 2009년 리콜 사태로 품질 이미지에 흠이 나면서 반사이익도 봤다. 올해는 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도요타·혼다가 6개월 동안 생산을 50%까지 줄인 게 미국 시장 성공의 또 다른 요인이다.

셋째는 정 회장의 탁월한 경영감각이다. 정 회장은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세계 자동차업체가 재고난에 허덕일 때 과감한 재고떨이 전략을 지시했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환차익으로 남는 돈을 인센티브 같은 마케팅 비용에 할당해 순식간에 재고를 처리하고 공장 가동률을 높인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와 가치사슬로 엮인 2000여 개 부품업체가 다시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면서 살아났다. 재고를 처리해야 공장을 돌릴 수 있고 협력업체와 공생해야 한다는 정 회장의 판단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09년 12월 24일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현장을 방문해 가동을 위한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제1고로를 최종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는 환율로 번 돈을 마케팅 비용으로 꽤 돌렸다. 보통 CEO라면 환차익을 위기를 넘기기 위한 예비비용으로 비축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다면 현대차가 지금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지 모른다. 자동차 전문 컨설턴트 그랜트 손턴의 킴벌리 로드리게스는 “현대차가 2009년 10개월간 다른 어떤 일본 경쟁사보다 많은 대당 2825달러의 인센티브를 줘 재고를 털고 공장을 재가동했다”고 분석한다.

정몽구 회장과 품질은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테마다. 품질경영은 지금의 현대차를 만든 원동력이다. 현대차는 1986년 미국에 ‘엑셀’ 차종으로 수출을 시작해 첫해에 16만 대 넘게 팔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어 다음해 26만3610대를 팔면서 ‘엑셀 신화’를 일궜다. 현대차의 미국 진출 역사에서 아직도 깨지지 않는 단일 차종 판매 기록이다. 하지만 판매량이 늘면서 문제가 생겼다. 정비망 부족과 품질관리 미흡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탓에 판매량이 떨어졌다. 1998년 9만1217대로 사상 처음으로 10만 대 이하의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품질은 목숨과 같다”1999년 정 회장이 취임하면서 특유의 품질 최우선 경영을 도입한다. 정 회장은 취임 첫해 미국을 방문했다. 수출 현장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다. 그는 한국 근로자가 공을 들여 만든 차량이 미국 시장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현대차는 당시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아 리콜 요청이 쇄도했다. 미국 언론은 현대차의 이런 저품질을 문제 삼아 가십의 주제로 삼기도 했다. N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자니 카슨 쇼’나 CBS의 ‘데이비드 레터맨 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당시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을 현대차 구매 결정과 비교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 딜러들은 정 회장을 만나 너도나도 “차가 좋지 않으니 못 팔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정 회장은 1999년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J.D파워와 품질과 관련된 컨설팅 계약을 하라고 지시했다. J.D파워의 품질 관련 컨설팅은 1996년 고 정세영 현대차 명예회장 시절부터 추진하던 프로젝트다. J.D파워는 미국에서 출시되는 신차를 대상으로 소비자의 불만사항을 조사해 언론에 공표하고 있는데 그 결과에 따라 현지 판매가 좌우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3월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고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J.D파워는 당시 현대차에 다섯 가지 사항을 고치라고 권고했다. 첫째, 제품기획·설계·생산단계에 고객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둘째, 고질적인 품질 문제는 모델이 바뀌어도 반복해 발생한다. 셋째,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대책이 불완전해 시장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넷째, 대당 문제점 건수가 전체 평균보다 2~3배 높다. 다섯째, 협력업체 품질관리가 부족하다. 내용을 보면 뻔한 이야기였다. 중요한 건 실천의지였다.

이때부터 정 회장의 품질경영 신화가 시작된다. 정 회장은 이 보고를 받고 생산, 영업, A/S 등 부문별로 나뉘어 있던 품질 관련 기능을 묶어 품질총괄본부를 발족하고 매달 두 번씩 품질 및 연구개발, 생산담당 임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주재했다. 당시 이 회의는 현대차에서 ‘목숨을 건 회의’로 불렸다. 품질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이에 대한 대처를 머뭇거렸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공장장은 그 자리에서 해고됐다. 2004년까지 울산이나 아산 공장장의 임기는 길어야 1년 반 정도였다. 이때 잘린 공장장만 10명이 넘는다. 이처럼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정 회장은 품질 문제를 해결했다. 10명이 넘는 공장장이 잘리면서 현대차 내부에서는 ‘품질은 목숨과 같은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인식이 돌기 시작했다. 현대차 품질이 두세 단계 상승하는 전기가 됐다.

좋은 품질의 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 회장의 철학 때문에 생산라인을 멈추기도 하고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정 회장은 1999년 미국 시장에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를 내세웠다. 당시 도요타나 혼다 등 일본 경쟁사들은 이를 두고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다. ‘2년 2만4000마일 워런티’가 일반적이던 때였다. 현대차의 10년 10만 마일 워런티 마케팅을 두고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바보짓”이라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러나 현대차는 흔들리지 않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를 비웃던 경쟁사들이 이젠 오히려 현대차를 따라 하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본차의 워런티는 ‘3년 3만6000마일’로 늘어나더니 슬그머니 ‘5년 6만 마일 워런티’를 채택하는 회사도 생겨났다.

물론 우려도 많았다. “지금이야 워런티를 늘려 판매 실적을 높일 수 있지만 나중에 애프터서비스가 돌아올 때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10만 마일 워런티가 부메랑이 될 것이란 우려다. 그러나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같은 우려는 기우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우선 예상만큼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많지 않다. 또 워런티 연장에 대한 비용을 모두 상각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 1999년부터 10만 대, 20만 대, 30만 대의 벽을 차례로 돌파했다. 2003년에는 40만221대를 팔아 40만 대의 벽까지 허물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50만 대를 돌파했다. 올해는 60만 대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2층에는 24시간 가동하는 종합상황실이 있다. 미국 CNN 방송의 뉴스룸을 모방한 이 방에서는 수십 대의 컴퓨터 모니터로 시간마다 달라지는 세계 15개 공장의 생산 현황과 공장 정보를 볼 수 있다. 마치 전시 상황실을 떠올리게 한다. 각 공장에 설치된 수십 대의 CCTV를 통해 부품 공급부터 조립라인을 통해 완성차가 나올 때까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물론 단일 공장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울산공장 현황도 포함된다. 종합상황실은 유럽과 일본, 미국에 있는 연구소의 개발 현황뿐만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있는 거대한 17.4㎢ 주행시험장 내 10.3㎞ 주행로에서 차량 테스트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이 방은 정 회장의 지시로 2006년에 만들었다. 한눈에 현대·기아차 생산 현황을 점검하자는 차원이다.

정 회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불확실성이다. 현실은 불확실성투성이다. 해마다 세계 글로벌 자동차 수요에 대한 예측이 부정적인 데다 그런 전망치가 대부분 다르게 나오고 있다. 종합상황실은 이런 불확실성을 줄이는 중요한 무기다.



종합상황실 가동으로 불확실성 줄여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자신감 있고 공격적이다. 단순히 경쟁회사를 이기고 싶어 한다기보다 당연히 이길 거라는 자신감이 대단하다. 1999년 정 회장이 경영을 맡은 후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해마다 판매목표를 전년 대비 두 자리(15∼20%)씩 잡은 건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유일하다.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된 올해는 판매목표를 전년 대비 10% 증가로 조금 낮춰 잡았다. 역대 최저 증가치지만 무려 55만 대를 더 팔아야 한다. 55만 대라면 스웨덴 볼보의 연간 판매대수를 능가하는 수치다.

종합상황실을 통해 현대차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시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문제가 있으면 즉각 발견하고 당일 해결을 목표로 빠르게 조치한다. 도요타가 작업자 스스로 생산성을 개선하는 도요타생산방식이라는 일관성을 유지하며 차분히 생산성을 늘려 나가고, 혼다가 기술혁신에 초점을 둔다면 현대·기아차는 공격성과 스피드를 무기로 내세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6월 29일 기아차 조지아 공장을 방문해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금의 상승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새 모델 출시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 속도가 경쟁력이라는 뜻에서다. 미국 소비자들은 지난해 12월 2011년형 신형 쏘나타를 볼 수 있었는데 원래 계획보다 2개월 일렀다. 이례적으로 생산시기를 앞당겼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통상적으로 공장 스케줄을 바꾸는 걸 꺼린다. 비용이 많이 들고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며 조립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서다. 그러나 현대차는 생산을 앞당기고 있다. 쏘나타가 여러 품질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었고, 공급업체들은 풍부한 부품 재고량을 가지고 있었으며 엔지니어도 앨라배마 공장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대·기아차가 뜨는 또 다른 이유는 기존 선진 시장인 미국·유럽 이외에 떠오르는 신흥시장인 중국·인도에서 호조를 보인다는 데 있다. 현대·기아차는 2009년부터 중국과 인도에서 이미 톱3에 진입했다.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현대·기아차에 대한 이미지는 싼 가격에 타는 ‘저가형 차’ 정도였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현대차와 기아차의 주력 차종은 세계 곳곳을 누비는 명차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계가 인정하는 품질력과 철저한 사후 관리로 국내외 평가가 좋다. 지난해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 기업인 GM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크라이슬러는 피아트에 인수되는 등 세계 자동차업계의 지도가 바뀌었다. GM·포드 등 거대 공룡 자동차 기업들의 몰락은 기존 자동차 시장의 경쟁구도에 변혁을 불러왔다.

현대·기아차는 2001년 이후 해외 생산기지 확충에 나섰다. 2011년 말이면 해외에 연산 328만 대의 생산기지를 확보하게 된다. 세계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300만 대가 넘는 해외생산 기지를 구축한 자동차업체가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국내와 합치면 650만 대로 도요타·GM에 이어 세계 3위권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세계 주요 권역별로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작업이 2012년이면 마무리된다. 연산 60만 대가 넘는 해외 거점은 중국(143만 대), 인도(60만 대), 미국(60만 대), 유럽(60만 대)이다. 나머지는 브라질(15만 대), 터키(10만 대), 러시아(20만 대)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가운데 연산 300만 대가 넘는 해외 공장을 보유한 업체는 도요타·GM·폭스바겐그룹 등 3곳에 불과하다. 폭스바겐이 사실상 단일 시장인 동유럽 지역에 대부분의 공장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현대·기아차의 해외공장 확충은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수준이다.

요코하마국립대 조두섭(경영학) 교수는 “1970년대 미쓰비시자동차에서 기술을 배웠던 현대차가 불과 40년 만에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한 건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대단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대담한 승부수를 던진 정 회장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쯤 퇴근한다. 그는 오너라기보다는 최고경영자에 가깝다. CEO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인사다. 그는 다른 최고경영자와 달리 골프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한 달에 한두 번 평일 오전 9홀을 돌고 올 뿐이다. 주로 가족들과 골프를 친다고 한다.

정 회장은 TV 매니어로 알려져 있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나 24시간 뉴스를 켜 놓고 있을 정도다. 주말 오후에는 주로 ‘동물의 왕국’이나 ‘로마제국 흥망사’ 등 역사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그는 이런 다큐멘터리를 통해 약육강식의 세상 질서를 터득하고 경영에 접목한다.

현대차그룹 부사장급 이상 고위층들은 추석 전후에 가장 긴장한다. 정 회장은 연휴기간에 인사 구상에 들어갈 때가 많아서다. 지금까지 추석 이후에는 부회장단을 경질하는 큰 인사가 뒤따랐다. 그는 휴일 오후에는 종종 200여 장의 그룹 고위층 임원 파일을 꼼꼼히 본다고 한다. 학력과 회사 이력뿐만 아니라 그만의 꼼꼼한 메모가 적인 인사 비(秘)파일이다.



해외 공장 늘려 세계 자동차 역사 바꿔정 회장이 서울 양재동 21층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을 때는 언제나 보고자의 눈을 주시한다.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보고 내용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여기에 보고서는 A3 용지에 20포인트가 넘는 큰 글자로 3페이지를 넘지 않아야 한다. 간략하게 요점만 보고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이다. 이때 정 회장의 질문에 자신 없는 목소리나 변명이 이어지면 불호령과 함께 교체 인사명단에 들어가고 수개월 내 사표를 내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전직 그룹 고위층 인사는 “보고는 간단 명료하게 자신 있는 목소리로 해야 한다”며 “회장님과 눈을 가끔씩 마주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회고한다.

정 회장은 현장을 자주 찾는다. 충남 당진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공사가 한창이던 2009년 7, 8월 아홉 번 연속 토요일에 당진을 찾았다. 양재동 본사 22층 옥상에 마련된 헬기장에서 전용 헬기로 40여 분 만에 당진까지 이동했다. 2009년엔 해외출장을 제외한 토요일의 절반 이상을 당진을 방문했다. 이에 따라 박승하 현대제철 부회장 등 주요 임원은 금요일 오후에 당진에 내려가 토요일까지 제철소 건설현장에서 보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일요일에도 불시에 건설현장을 찾았다. 토요일에 임원회의를 하다 갑자기 “제철소 현장을 둘러보고 싶다”며 떠난 것도 여러 번이다. 우유철 현대제철 생산총괄 사장은 명절 이외에는 서울 집에는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예정에 없는 현장방문은 직원들을 격려하면서 긴장도 불어넣자는 뜻을 담고 있다. 공사기간에 대한 보고를 받고 문제점을 발견하곤 현장에서 건설소장(부사장)을 경질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지난해 8월 미국 앨라배마 공장 현황을 둘러보면서 현지에서 갑자기 공장장을 경질했다. 지난해 2월 앨라배마에서 생산한 YF쏘나타와 투싼 일부 차량의 리콜이 발생하면서 공장장을 교체한 지 6개월 만에 나온 인사다. 더구나 앨라배마 공장은 상반기 역대 최고의 생산성을 기록했다. 쏘나타를 생산하면서 가동률이 100%를 넘어서 상반기 생산대수(15만4000여 대)가 전년 대비 40% 이상 급증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경질한 건 정 회장의 품질 및 현장경영에 대한 평소 소신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앨라배마 공장 조립라인을 순시하면서 당시 S공장장에게 막 조립된 쏘나타의 트렁크와 보닛을 열어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S공장장이 보닛과 트렁크를 열려고 했지만 보닛 후크(걸이)를 찾지 못해 주저하자 다른 동행자가 보닛을 열었다. 쏘나타는 라디에이터 그릴 크롬도금 안쪽에 후크가 달려 있다. 공장 순시를 동행한 한 관계자는 “품질과 현장을 중시하는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며 “공장장이 보닛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것에 대해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사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일정 회장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일’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자리를 잡았지만 정 회장은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출근하다. 올해 설 연휴가 이어진 2월 5일 토요일 오전 6시 반. 한산한 거리와 달리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에는 검은색 에쿠스·제네시스·오피러스 세단 100여 대가 몰려 북적거렸다. 경비원들이 몰려드는 차량의 뒷문을 열어주기 바빴다. 현대차그룹은 부사장 이상에게만 차량과 기사를 제공한다. 한순간 긴장이 감돌면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탄 에쿠스 리무진이 들어왔다.

설 연휴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보낸 정 회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소 출근시간인 6시 반에 양재동 본사에 도착한 것이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지키던 토요일 출근수칙이다. 이날도 오전 7시부터 해외 판매와 공장 가동률 등을 보고받고 11시가 조금 넘어 퇴근했다. 본사 이사대우급 이상 임원 대부분이 출근했다. 서울 역삼동 현대모비스도 마찬가지로 정석수 부회장 등 임원 대부분이 평상시처럼 오전 7시쯤 출근해 대기했다.

이날 양재동 본사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설 연휴 기간에 정 회장이 사장단 인사를 구상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부사장급 이상 승진 및 보직 인사를 하지 않았다. 현대차를 포함한 모든 계열사의 대표이사 인사가 남았던 것이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정 회장이 토요일 출근이 몸에 밴 것은 부친 정주영 회장의 영향”이라며 “토요일에 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현대차 임원들은 토요일 골프 약속을 모두 오후 1∼2시로 잡는다. 정 회장이 토요일 오전 불시에 해당 본부장을 찾는 경우가 많아서다.

현대차그룹은 평상시 토요일, 팀장급 이상의 경우 오전 7시까지 출근하는 게 관례다. 임원이 되면 이른바 빨간 날인 공휴일과 일요일 이외에는 모두 정상 출근이다. 그래서 일주일 달력이 ‘월화수목금금일’이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건설 인수

현대가의 정통성을 잇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에 근무한 게 불과 1년도 채 안 된다. 1973년 잠시 현대건설 자재부장을 했다. 1974년에는 현대차써비스 사장으로 경영자로 변신하면서 이후 현대정공·현대산업개발 등 신규 사업에 주력했다. 현대건설은 오히려 작고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인연이 더 많았다. 정 회장의 관심은 현대차써비스로 시작해 줄곧 자동차에 있었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 경영권 승계의 가장 큰 버팀목이었지만 그와 남다른 인연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파트 사업으로 옥고를 치른 건이 있다. 1977년 한국도시개발공사(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던 정 회장은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한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함께 조사를 받고 아버지 대신 구속됐다.

그는 2000년 초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경영권 승계를 놓고 분쟁을 벌이면서도 “현대건설에 관심이 없다”며 “현대차가 현대그룹에 남아 있으면 대북사업에 물려 망할 수 있으니 현대차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해 9월 현대그룹에서 현대차그룹을 계열분리했다.

현대차그룹으로 독립한 그에게 당시 부도 상태였던 현대건설에 대한 처리 방안을 묻자 “현대차를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 키우는 데 매진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이후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톱5 진입과 일관제철소(고로) 사업에 힘을 쏟았다. 당시 현대·기아는 세계 9위권이었다. 일관제철소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1990년대부터 정부에 줄곧 인가를 요청했지만 정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 회장은 현대가의 장자로서 현대건설 인수보다는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인 일관제철소를 택한 것이다. 고로 사업은 2004년 현대제철이 1조원에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2006년부터 7조원을 쏟아 부어 지난해 11월 당진에 제2고로를 완공하면서 꽃을 피웠다.

정 회장이 현대건설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정치와 연관된 대북사업에 발을 담가서는 안 된다’는 평소 경영지론에 따른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룹의 규모를 더 키우고 현대가의 적통을 잇는다는 뜻에서 현대건설을 인수한 정 회장이 가장 경계하는 건 대북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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