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 나무 가꾸듯 키운 예술 영재가 국가 경쟁력의 원천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 나무 가꾸듯 키운 예술 영재가 국가 경쟁력의 원천


지난 8월 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메세나 활동의 지원에 관한 법률(메세나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늘리기 위해 세액공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한국메세나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박영주(70) 이건산업 회장은 “소프트웨어와 창의력이 경쟁력인 시대에 문화산업 발전을 뒷받침하는 제도는 꼭 필요하다”며 법 제정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박 회장을 만났다.

“오늘 어땠어요? 잘됐어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마이크가 신통찮아서 전달이 어느 정도나 됐는지 모르겠어.”

박영주 회장이 재차 물었다. 185㎝ 넘는 큰 키에 다부진 몸매, 굵직한 저음,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과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 쌍꺼풀 없는 눈매는 날카롭다. 세상에 두려운 것도, 부러울 것도 없어 보이는 재계의 노장(老將)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이날 박 회장은 기자들을 지명해 질문을 받아낼(?) 정도로 열심이었다.

“메세나법 제정이 워낙 중요한 일이니까요. 몇 년을 노력했거든요. 내 (태어나) 처음으로 국회 공청회(2009년 메세나법 관련)도 참석했어요.”

그가 힘줘 말하는 메세나법의 핵심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2009년 11월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해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날은 메세나법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관련 법을 발의한 이성헌·조윤선 한나라당 의원,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이성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과 함께했다.

박 회장은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이 많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국메세나협의회에 따르면 국가 예산에서 문화지원 비중은 1.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평균은 1.8%다. 기초예술지원 비중은 국가예산의 0.1%에 불과하다.

박 회장은 “프랑스는 2003년 메세나법을 도입한 후 2002년 3억4000만 유로(약 5100억원)이던 기업의 예술기부금이 2008년 10억 유로(약 1조5000억원)로 늘었다”며 “세제 지원으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유도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메세나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세수가 줄 수 있고 교육, 복지 등 다른 분야와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반론 때문이다. 박 회장은 “프랑스에서는 메세나법을 도입한 후 문화예술 산업이 발전해 줄어든 세금보다 더 큰 효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분야 기부는 99.8%고, 문화예술 분야는 0.2%에 불과해 형평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메세나협의회에 따르면 메세나법을 도입했을 때 기부 증가 예상액은 1192억원, 세수 감소 예상액은 321억원이다. 그는 “올해 메세나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2005년부터 한국메세나협의회를 이끌어 왔다. 기업과 문화예술 단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며 기업 지원의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지난 6년 동안 한 일 중 가장 뿌듯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예술 지원 매칭펀드 사업”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중소기업이 지원하는 만큼 국가가 같은 액수의 돈을 더해 예술단체를 지원하는 사업을 가리킨다.



“메세나법 올해 통과해야”“2007년 예산 6억원으로 시작했을 때만 해도 중소기업이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 걱정했지만 이달에 벌써 예산이 바닥날 정도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요. 초기에는 클래식, 미술에 집중됐는데 요즘은 다른 기업이 지원하지 않는 니치 마켓을 찾아요. 메세나법이 통과되면 훨씬 더 많은 기업이 지원에 나설 것으로 봅니다.”

이건산업 역시 같은 방식으로 직원이 1%를 기부하면 회사가 같은 액수를 더해 문화예술 단체를 후원하거나 사회공헌 활동에 쓴다. 지난해 현지법인이 있는 칠레에 대지진이 났을 때 이 기금으로 10만 달러의 성금을 전달했다. 또 박 회장은 90년부터 매년 이건음악회를 열고 있다.

처음 음악회를 열자고 했을 때는 반대가 심했다. 중소기업에서 무슨 클래식 공연이냐는 것이다. 박 회장은 우선 몇 년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체코 아카데미아 목관 5중주단을 초청해 직원과 직원 가족들을 앉혀놓고 음악회를 열었다. 첫 공연은 예상 밖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이렇게 시작한 이건음악회는 올해로 22회를 맞는다. 올해는 세계적 클라리넷티스트 샤론 캄을 초대해 10월 말부터 전국 순회를 시작한다.

“이왕 기업을 할 거면 재미있게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스포츠도 좋지만 제가 음악, 미술 쪽에 관심이 많거든요. 처음 음악회를 열 때만 해도 사람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세요. 이건음악회가 하나의 본보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박 회장의 문화예술 지원은 외국에서도 이어졌다. 남태평양 솔로몬군도에서 특히 활발하다. 80년대 초 조림사업을 할 땅을 찾아 솔로몬군도에 들어간 박 회장은 먼저 병원과 학교부터 지었다. “원주민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봤어요. 이전에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기업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아프리카에서 슈바이처가 봉사하듯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의료, 교육사업을 하면서 원주민들에게 농업, 임업을 전수했다. 국립미술관도 지었다.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던 이건산업은 87년 솔로몬 정부로부터 초이셀섬의 단독 산림 개발권을 따내는 성과를 거둔다. 이 섬은 제주도 두 배 넓이(3600㎢)다. 96년부터는 뉴조지아섬 숲에서 조림 활동을 해왔다. 이 숲 역시 여의도의 90배 (264㎢)에 이르는 큰 규모다. 지난 3월 이곳에 나무를 심은 지 15년 만에 목재를 벌목했다.

“매년 솔로몬군도를 방문합니다. 올해는 11월에 가려고요. 처음 이건산업이 솔로몬군도에 진출했을 때 옷을 입은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만큼 원시적인 사회였지요. 그때 어린애들이 이제 청년이 다 됐으니 그곳에 가면 참 보람을 느낍니다. 요즘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뛰노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우리 나름대로 또 다른 가치에 대한 만족을 찾은 거죠.”

얼마 전에는 칠레에 다녀왔다. 이건산업은 93년 칠레법인 ELA를 설립하고 이곳에서 생산한 합판을 유럽과 미국·멕시코 등에 수출한다. 박 회장은 이곳에서도 음악회를 열고 어린이 사생대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예술을 전파하고 있다.



음악, 미술 좋아하셨던 아버지문화예술과 박 회장의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을 하기 훨씬 이전이다. “아버지께서 음악, 미술을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가야금을 연주했죠.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어요. 딸, 며느리도 미술 관련 일을 해요.”

박 회장에게 문화예술은 인생의 절반이다. 조카 역시 첼리스트고, 큰누나는 피아니스트였다. 큰누나의 아들이 ‘포크 록의 대부’로 불리는 한대수씨다. 요즘도 가야금을 타느냐는 질문엔 손사래를 친다. 이제 가야금은 못 타지만 대신 부인 박인자 여사와 종종 음악회와 미술관을 찾는다고 했다. 가끔 혼자서도 나선다. 가장 최근에 간 전시회는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 휘트니미술관 전’(展)이라고.

그는 자신을 ‘나무 장수’라고 부른다. 박 회장이 목재사업에 눈을 돌린 것은 20대 중반이다. 그는 아버지가 하는 기계사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서 장인어른께서 경영하는 목재회사에 들어간 것이 1965년이었어요. 제가 학군(ROTC) 1기거든요. 근데 요새 50기가 넘었다고 하니까… 나무사업을 한 지 47년쯤 됐네요.”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은 합판공장에서 현장 업무를 익혔다. 필리핀에 목재를 구하러 갔다가 일본 기업에 밀려 더 비싼 돈을 내고도 좋은 질의 목재를 얻지 못한 것에 분개했다. 원자재 확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목재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72년 이건산업을 세운다.

그는 목재에서 창, 마루, 친환경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이건창호, 이건환경, 이건그린텍, 이건에너지를 설립했다. 현재 박 회장이 가장 신경쓰는 것은 친환경 사업이다. 올해 7월 이건창호는 진해해양솔라파크 조성공사의 건물 일체형 태양광발전시스템(BIPV) 공사를 수주했다. BIPV는 건물 외부에 별도의 구조물 없이 커튼 월이나 발코니 같은 건축자재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결합한 것이다. 박 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창문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는 시스템”이다.

1965년 합판공장에서 처음 나무를 쥐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박 회장은 나무만 바라봤다. 하지만 그 모습은 계속 진화했다. 88년 이건창호를 설립하며 창문을 집의 부속품이 아닌 독자적인 고급 자재로 인식하는 트렌드를 만들었다. 2002년에는 바닥재 전문기업인 이건리빙(2008년 이건산업에 합병)을 설립했다. ‘다른 사업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재주가 없어 그렇겠죠”라며 웃었다.

빙그레 웃기만 하던 박 회장이 다시 입을 뗐다. “90년대 후반 사업이 한창 잘될 때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자는 의견이 많았어요. 하지만 본업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좀 더 나은 회사, 좀 더 나은 목재를 추구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인 것 같아요. 이제 성숙했으니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 나이가 됐죠.” 그의 말에서 ‘종심(從心·70세)’의 세월이 묻어났다.



문화와 환경 생각하는 마음 통해메세나협의회 회장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박 회장은 평소 ‘환경’과 ‘문화’을 중시한다. 솔로몬군도의 나무를 베면서도 다시 묘목을 심으라고 지시했다. 그는 환경과 문화를 생각하는 마음이 서로 통한다고 했다. 문화적이라는 말이 환경을 고려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주변 환경을 돌아보고 나눔을 생각했다는 박 회장은 뜻이 있으면 시작하라고 말한다.

“돈을 벌어서 하려면 힘들죠. 돈이라는 게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가 없잖아요. 뜻이 있으면 형편에 맞게 시작하는 거지요. 하면서 키워나가고 그게 또 보람 아니겠어요?” 그는 인터뷰를 하며 ‘키워나간다’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 뒤에는 꼭 ‘재미’ ‘보람’이라는 말이 따라왔다. 무엇이든 키우는 것이 재미있는 천생 나무장수다 싶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후원하는 ‘금호 영재’ 이수빈(12·여)양의 바이올린 공연이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박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직접 무대 앞으로 걸어가 이양을 격려했다. 이제 막 뿌리를 내린 묘목과 고목이 맞잡은 두 손 사이로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보이는 듯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농구 선수 허웅, 전 여자친구 고소 “협박·스토킹…마약 연루도”

2택배 기사님 “아파트 들어오려면 1년에 5만원 내세요”

3“응애” 소리 늘까…4월 출생아 수, 전년 동월 대비 증가

4책 사이에 숨긴 화려한 우표…알고 보니 ‘신종 마약’

5경북도, K-국방용 반도체 국산화 위해 전주기 지원체계 구축

6영천시, 베트남 대형 유통업체 K-MARKET과 "농특산물 수출 확대" 협약 맺어

7대구시, 경기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피해 복구 지원에 1억원 지원

8소방당국, 아리셀에 ‘화재 경고’…‘예방컨설팅’까지 했다

9최태원 동거인 첫 언론 인터뷰 “언젠가 궁금한 모든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실시간 뉴스

1농구 선수 허웅, 전 여자친구 고소 “협박·스토킹…마약 연루도”

2택배 기사님 “아파트 들어오려면 1년에 5만원 내세요”

3“응애” 소리 늘까…4월 출생아 수, 전년 동월 대비 증가

4책 사이에 숨긴 화려한 우표…알고 보니 ‘신종 마약’

5경북도, K-국방용 반도체 국산화 위해 전주기 지원체계 구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