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식품업계 원자재값 상승에 속앓이

식품업계 원자재값 상승에 속앓이


원화가치 하락에 원자재값 올라 이중고…제품값 못 올려 긴축경영 돌입
원화가치 하락에 원자재값 인상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식품업계가 정부의 암묵적 제재로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해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한 대형마트.

원화 가치 하락과 원자재 가격 상승 탓에 원가 부담이 커졌지만 정부와 여론의 압박 등에 밀려 제품 가격을 올리지 못한 기업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들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가격 인상에 나설 태세다. 이에 따라 물가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다. 원유(原乳) 가격 인상 이후 두 달여간 판매가를 올리지 못해 적자에 허덕이던 우유업계는 가격 인상 해프닝을 겪었다. 라면·밀가루·설탕 업계도 어려움을 호소하며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할 움직임이다.



물가상승 압력에 정부 강경자세국내 최대 우유업체인 서울우유가 이르면 10월 중순부터 우유 가격을 평균 10% 올리기로 하고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에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서울우유는 최근 대형마트와 수퍼마켓 등 유통 매장에 우유 가격을 10% 안팎 올릴 계획이라고 통보했다. 마트를 비롯한 소매점에서는 1L들이 우유 한 통의 가격이 2200원인데, 납품가가 올라가면 2450원 안팎까지 값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우유가 정부의 만류에도 우유 값 인상을 강행하기로 한 건 8월 16일 낙농농가가 우유업체에 납품하는 원유 가격이 L당 138원 올랐기 때문이다. 8월의 원유 공급가격 인상이 우유와 유제품 가격 연쇄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유업계는 원재료 값이 올랐지만 정부의 암묵적인 제지로 우유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하루에만 1억원 이상 적자를 보고 있어 우유 값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서울우유는 하루 2억5000만원, 남양과 매일유업은 각각 하루 1억원 이상 적자를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원유 가격이 두 달 전에 올랐지만 판매가격을 올리지 못해 적자를 보고 있다”며 “물가안정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기업이 적자를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연말까지 우유 값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해온 농림수산식품부는 서울우유의 납품가 인상 추진 소식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우유업계 관계자를 불러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며 단속에 나섰다. 농식품부는 최근 잇따라 서울우유와 매일유업 관계자를 불러 가격 인상 시기를 늦추고 인상폭을 낮추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우유 측은 정부가 견제에 나서자 “가격 인상과 관련해 정부와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원유 가격 인상폭만큼은 판매가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유업계가 비효율적인 유통구조를 개선해 제품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며 압박을 늦추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우유는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생활필수품인 만큼 업계가 가격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격인상 요인이 있지만 값을 올리기 전에 유통 비용을 줄이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유 값이 오르면 이걸 주원료로 쓰는 빵과 커피음료 등의 가격도 연쇄적인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들 업계는 우유 대신 두유 판촉을 강화하거나 긴축 경영체제를 가동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우유가 들어가는 음료를 주문할 때 우유 대신 두유를 시키면 음료 크기를 업그레이드해주는 행사를 10월 한 달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상품 다양화 측면도 있지만 우유 값 인상을 앞두고 스타벅스가 우유 수요를 두유로 돌려 원가 상승에 대응하려는 포석도 있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가격 인상 여부에 대해 “우유는 연간 단위 계약을 통해 공급받고 있는 데다 이미 우유 값이 올라도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당장 가격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최대 빵집 가맹점인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은 일찌감치 업무추진비 등을 대폭 삭감하는 등 긴축경영을 하고 있다. 식품산업 불경기의 영향도 있지만 우유뿐만 아니라 최근 원재료 값이 많이 오른 밀가루와 설탕 등의 공급가가 인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심도 최근 급하지 않은 출장은 자제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안 쓰기 운동’을 벌이는 등 긴축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식품업계에서는 라면업계가 언제 가격을 올릴지 주목하고 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하반기에 라면과 우유 업계가 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라며 “우유가 이번에 일을 저질렀으니 라면업계도 조만간 가격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라면업계는 지난해 초 2∼7%가량 라면값을 올렸다. 최근 라면의 주재료인 밀가루와 신선식품 등의 가격이 올라 실적이 악화돼 다시 가격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농심의 프리미엄 상품인 ‘신라면 블랙’ 출시가 사실상 가격 인상 시도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제품 출시 직후에 가격 거품 논란이 제기됐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등 조치를 받으면서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면서 신라면 블랙은 결국 판매를 중단했다. 신라면 블랙 사태의 여파로 라면업계는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이제는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업계 내부에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신라면 블랙 때문에 가격 문제를 논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지만 재료 값이 너무 올라 업계 1위인 농심이 가격을 올리면 다른 업체들도 일제히 가격을 현실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1위 움직임 예의주시밀가루와 설탕업계도 국제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밀가루는 4월 원맥 통관 가격이 t당 370달러에서 현재 410달러 수준까지 올랐는데 원화 가치도 1100원 선에서 최근 1170원 선으로 떨어져 이들 업계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밀가루업계는 4월 밀가루 가격을 평균 9% 정도 올렸지만 당시 실제로 필요한 인상률은 17% 정도여서 가격을 다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밀가루 값만 뛰었지만 지금은 원화 가치도 문제여서 밀가루 사업이 어렵다”며 “원화 가치가 빨리 안정되지 않으면 부득이하게 제품 가격을 인상해 현실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설탕업계도 뉴욕선물거래소 기준으로 원당(1파운드) 가격이 2월 초 30년래 최고치인 36센트까지 올랐다가 이후 조금 안정되는가 싶더니 5월 반등해 30센트 선을 유지하고 있어 사정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들도 설탕 기본관세 인하 문제 등 현안이 있어 당장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인상 얘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유일무이’ 양복장이 명장 전병원 “뒤늦게 경제학 전공한 이유는요”

2LPG·LNG 할당관세 지원 연장…"서민 경제 부담 완화"

3무암(MooAm), SC벤처스와 MOU 체결로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환경에서의 협업 강화

4현대차, ‘아반떼 N TCR 에디션’ 판매 개시

5칠갑농산, 국산 재료로 만든 ‘우리밀감자수제비’ NS홈쇼핑 첫 방송

6미국투자이민 프로젝트 APN Lodge Phase 2, 빠른 수속 기간으로 주목

7변화와 규제 속 2025년 재테크 전략은

8“2분 드라마, 보셨나요?”...K-숏드라마 선두 노리는 왓챠

9제네시스, GV70 부분 분경 디자인 공개...내년 1분기 판매

실시간 뉴스

1‘유일무이’ 양복장이 명장 전병원 “뒤늦게 경제학 전공한 이유는요”

2LPG·LNG 할당관세 지원 연장…"서민 경제 부담 완화"

3무암(MooAm), SC벤처스와 MOU 체결로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환경에서의 협업 강화

4현대차, ‘아반떼 N TCR 에디션’ 판매 개시

5칠갑농산, 국산 재료로 만든 ‘우리밀감자수제비’ NS홈쇼핑 첫 방송